배우 엄지원이 추천하는 영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어보는 거랑 똑같은 것 같아요." 관객들에게 추천하고픈 11편의 영화를 묻자 엄지원은 곤란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질문처럼 좋아하는 영화 11편을 고르면 다른 좋아하는 영화들에게 미안"할 것 같다는 말도 그냥 하는 말로 들리지 않는다. 그녀는 1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거쳤지만 아직도 배우이기 이전에 "영화를 분석하기 보단 느끼고", "우디 알렌의 열혈 팬"인 열정적인 관객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감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엄지원. 사실 그것은 대중이 그녀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엄지원은 연예정보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도 친한 배우의 결혼 소식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연말 시상식에선 수상자의 소감 발표에도 눈물지었다. "저도 인정해요. 심지어 남들이 안 우는 상황에서도 눈물이 나요. 웃겨도 울고 날씨가 좋은 날엔 내가 이렇게 살아있어서 행복하다고 울고. (웃음)" 그렇게 남들 보다 풍부한 감정은 분명 배우에게는 득이 되는 자산이다. 최근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도 지적이고 똑 부러지는 영화제 프로그래머이다가도 술을 먹다가,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파르르 돌변해서 울분을 터뜨리는 이 기묘한 여자를 그런 감정을 가진 엄지원이 아니라면 누가 할 수 있었을까?
사실 엄지원이라는 배우를 구축하고 있는 이미지는 그녀의 예측불가능한 감정선처럼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그림자 살인], [놈놈놈]에서처럼 정숙하고 단아한 모습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지만 특별출연한 드라마 [온에어]에서의 폭탄주를 마시고 미친 듯이 노래 부르는 여배우도, [극장전]에서의 새침하고 의뭉스러운 영실도 다 다르지만 어색하지 않다. 어디에 갖다 놓아도 주변과 척 어우러지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풍경(風磬)처럼 엄지원은 어디서나 바람에 맞춰 묵직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그 울림처럼 그녀가 고르고 고른 강렬한 영화들은 얼음송곳처럼 무더위를 시원하게 깨뜨릴 것이다.
글 l 이지혜 <10 아시아> 기자
, 사진 l 웰메이드 스타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