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풀(2008. 9. 7. 춘천소양강마라톤대회)을 뛰고 난 후 『첫 경험(105리의 긴 여정)』이란 제목으로 대회 경험수기를 쓴지 만 5년이란 긴 시간이 지났지만 또 다시 이렇게 대회수기를 올릴 수 있게 됨을 무척 영광스럽게 생각하면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105리의 긴 여정”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나의 마라톤 프로필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 달리기 입문 : 2007. 9. 16. 달서웃는얼굴마라톤대회
◆ 대구마라톤 가입 : 2007. 12. 1.
◆ 주요 마라톤 기록
- 07. 09. 16 : 달서웃는얼굴마라톤 / 0:54:05 / 첫 출전(10km)
- 08. 02. 24 : 밀양아리랑마라톤 / 1:40:06 / 첫 하프
- 08. 09. 07 : 춘천소양강마라톤 / 3:28:37 / 첫 풀
-12. 04. 08 : 대 구 마 라 톤 대 회 / 0:40:15 / 10km 최고기록
-10. 12. 12 : 대구생활체육마라톤 / 1:28:40 / 하프 최고기록
-11. 11. 06 : 서울중앙마라톤대회 / 3:00:49 / 풀 최고기록
-13. 11. 03 : 서울중앙마라톤대회 / 2:59:43 / 서브-3 달성
아직도 2008년 9월 첫 풀의 기억이 생생하다.
마라톤 입문 6년 동안 10km 29회, 하프 56회, 풀 20회, 기타 6회 등 총 110회의 각종 대회를 뛰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첫 풀이다.
첫 풀 완주는 내가 마라톤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동기가 되었으며,
클럽에도 생소한 나의 이름을 회원님들께 각인시킨 대회이기도 하였다.
개인적으로도 첫 풀 완주가 대회 1위 입상과 함께 대구마라톤클럽 명인에 등극하는 감격을 누리게 하였다.
나에게 큰 영광을 안겨주기도 하였지만 너무나도 힘들었던 첫 풀이었기에 아직도 생생하게 잊혀 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 때의 힘든 기억이 없었다면 오늘의 영광 또한 있지 않았을 것이다.
▶ 긴 여정의 끝
드디어 40km 거리표지판이 보인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어떻게 뛰면 됩니까?”
페이스메이커 풍선보다 몇 발짝 앞서 달리고 있으니 서브-3 달성을 짐작하면서도 옆에 함께 뛰고 있는 이재춘 코치님께 물어 보았다.
“이대로 들어가면 충분합니다.”
멀리 잠실종합운동장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배동성 아나운서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제 앞에 보이는 네거리만 지나면 이 지긋지긋한 긴 여정도 끝이 나는구나! 눈물이라도 핑 돌아야만 할 것 같은데 마음은 더욱 담담해진다. 풀을 한 두 번 뛴 것도 아니니 그럴만도 하겠지만 오늘은 좀 다른 날인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좌절을 맛보았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출발선에 서면서 이제 두 번 다시 풀을 뛰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는데... 뛰자! 마지막을 힘차게 뛰어 보자! 다리에 힘을 주니 눈앞에 경기장이 잡힐 듯 다가온다. 첫 풀을 뛸 때는 한없이 쏟아지는 잠과 앞을 가리는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는데 이젠 나도 마라톤이라는 것에 이력이 생겼나 보다. 목표지점이 다가올수록 정신이 맑아지고 다리에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주로 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제 다 왔다 힘내라!”고 응원한다. 정말 이제는 다 왔나보다. 옆에서 페이스 해주는 분들을 슬쩍 바라보니 자신감에 차 있다. 얼굴 표정에서 Sub-3 달성을 확신 할 수 있었다. 첫 풀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또 다른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무더운 여름내 굵은 땀방울의 대가가 이 한 순간만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해도 후회되지 않는다.
▶ Sub-3의 집념이 남편의 생활을 바꾸다
내가 Sub-3를 달성하면서 남편 이야기를 빼고서는 할 얘기가 별로 없다. 아니 후기를 쓸 수가 없다. 그가 Sub-3를 향한 훈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의 얘기부터 하고자 한다.
남편은 전화 받기를 정말 싫어한다. 집에 같이 있으면 집 전화는 거의 받지 않는다. 10번이 울려도 받지 않는다. 내가 목욕을 하고 있으면 울어대는 전화기를 들고 목욕탕으로 가져다준다. 머리에 거품이 가득한 것을 보고도 전화기를 목욕탕에 두고 간다. 전화기는 제발 받아달라는 듯이 더욱 애절하게 울릴 뿐이다. 그러나 전화 걸기는 더 싫어한다. 몇해전 직장을 따라 밀양으로 떠난 남편이 처음에는 왕복 140km의 거리를 거의 매일 올라오더니 1년쯤 지나자 시간과 교통비가 많이 들어가고 체력이 달린다면서 밀양에 방을 하나 얻더니 주중에 한번정도 또는 주말에만 올라온다. 그러나 항상 그랬듯이 특별한 일없으면 일주일내 거의 전화 한통 안한다. 20여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나 자신도 전화를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그런 남편에게 24년 만에 변화가 생겼다. 6월쯤 어느 날부터인가 전화가 한통씩 걸려온다. 아픈 발목은 어떠냐? 종아리는 좀 어떠냐? 웨이트는 하였느냐? 등을 묻는 전화다. 그러더니 7월부터는 점심때와 밤 10시쯤 하루에 두 번은 꼭 걸려온다.(훈련프로그램이 가동된 모양이다)점심때 오는 전화는 새벽에 운동하였느냐? 어떻게 하였느냐? 몸 상태는 어떠냐? 묻는 전화이고, 밤 10시쯤에는 저녁에는 무슨 훈련을 얼마나 어떻게 하였느냐, 근력운동은 했느냐는 확인 및 내일 할 훈련을 자세하게 지시해 주는 전화다. 뛰어야할 거리와 시간, 방법, 또한 어디를 어떻게 뛰라고까지 얘기해 주고 다음날은 몸 상태와 훈련을 체크한다. 발목과 무릎이 조금 아프다고 하였더니 연습할 때도 꼭 테이핑을 하라면서 인터넷에서 박스채로 사왔다. 색깔별로 참 많이도 들어 있다.압박붕대도 아니고 저 많은 것을 언제 다 쓰나?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으나 지금은 나도 테이핑 매니아가 되어버렸다. 그 이후에도 한 박스나 더 사서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요즘은 참 행복하다. 하루에 두 번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몸 생각도 해주니..
또한 무더운 날씨에 강한 훈련으로 힘이 부칠까하여 보약도 다려 왔다. 마라톤을 하다 보니 보약도 다 먹어 본다. 칠성시장에서 장어 2관에 자라 2마리와 가물치 그리고 한약까지 넣은 보약을 세 박스나 지어 왔다.(45만원이나 줬다나..)처음으로 지어준 비싼 보약이라 생각하니 먹기도 전에 힘이 절로 나는 것 같았다. 매일 매일 챙겨먹으라고 당부하는 말에 눈물이 핑 돈다. 덕분에 근육에도 힘이 붙는 것 같고 자신감도 생긴다. 훈련도 강도가 더해졌지만 얼마든지 소화할 수 있다. 비싼 보약을 먹고 있는데 이정도 쯤이야..
남편은 서브-3를 위해서는 체력적인 훈련도 중요하지만, 마음가짐과 정신수련도 무척 중요하다며 회원님들의 서브-3 달성 시 올린 수기들을 하나하나 프린트해주며 읽어 보라고 한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달성한 체험들이기에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체중조절을 위한 고투와 13분의 시간차를 극복하며 서브-3를 일궈낸 박복환 명인님의 수기며, 글리코겐의 저장이 잘되지 않아 마라토너로서는 가장 힘든 당뇨를 이겨내고 달성한 이창호 명인님의수기, 감동을 자아내는 곽명희 언니의 많은 수기들 그리고 대회 때마다 몇십킬로를 자전거를 타고 가서 풀코스를 뛰는 열정과 노력으로 4주 연속 서브-3와 249를 달성하여 “하면 된다”는 희망을 주신 류병조 전 대곡총무님의 얘기도 해주면서 마음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또한 신천 이종국 감독님께서 올려놓으신 많은 자료와 훈련관련 댓글들을 정리하여 줘서 내가 훈련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를 짚어 볼 수 있는 자료가 되어 좋았다. 그 외에도 많은 분들의 수기와 글들...(감사드립니다)
▶ Sub-3를 향한 준비
첫 풀을 뛸 때부터 최근 몇 년 동안은 힘들어도 시키는 대로 하니 기록도 단축되고 재미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양과 질 모두가 엄청나게 늘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100% 소화하려고 노력하였다.
5월부터 안산, 천수봉, 삼필봉 등을 뛰면서 훈련을 시작하였으나 봄에 입은 부상이 다 낳지 않아 주로 생활온천 헬스장에서 웨이트 등 보강운동과 바데풀, 스트레칭, 마사지 등으로 부상 다스리기에 집중하였다.
6월부터 본격적으로 훈련을 실시하였다. 부상이 어느 정도 완쾌되자 근력운동, 언덕훈련, 산악훈련을 집중적으로 하면서 바쁘게 보냈다. 아침에 조깅 후 회사에 출근하여 일하다 보면 옷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퇴근 후에는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저녁 먹으러 오는 아들 저녁은 챙겨 줘야하기에 퇴근하면 바로 삼필봉, 천수봉, 안산 등 가까운 산을 뛰면서 6월에 308km를 뛰었다.
7월부터는 산악훈련, 언덕훈련 뿐만 아니라 LT, 인터벌, LSD까지 질적으로도 강도가 높아졌다. 7월에도 321km를 뛰면서 몸을 만들어 나갔다. 강도가 높아지니 부상도 찾아왔다. 남편은 항상 부상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강한 훈련이 이어지다 보니 잔부상은 달고 있어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훈련 후 얼음팩과 마사지를 해주면서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8월에는 생각만큼 훈련이 잘되지 않으면서 마음의 갈등과 체력적인 부담으로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중순부터 슬럼프가 찾아왔다. 아니 남편에게 슬럼프가 왔다. 2주정도 훈련에 손을 놓으니 나도 열정과 의욕이 상실되어 갔다. 이때 곽명희 언니와 이선희님께서 함께 뛰어 주기도 하고 심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어 안정을 찾고 용기를 내면서 다시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8월에 350km를 목표로 하였으나 겨우 260km의 훈련만 소화한 것이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8월 말에는 기분 전환도 할겸 사천노을대회에 참가하여 실전 페이스 훈련을 실시하였다. 지금까지 근력운동과 언덕ㆍ산악 위주로 훈련하여 다리가 무겁기는 하였지만 며칠 쉬었더니 오히려 힘이 넘쳐 은근히 좋은 기록을 기대하였지만 1시간 32분대로 실망스러웠으나 남편은 그동안 근력위주의 훈련으로 힘은 있으나 근 전환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스피드가 나지 않은데다 대회시간인 저녁 6시경 온도와 습도가 높아 생각만큼 좋은 기록이 나오지 않은 이유도 있으니 실망이나 걱정하기는 이르다며 앞으로는 스피드에 중점을 두고 훈련하자고 한다.
9월에는 지부의 화목달 지속주와 LT 훈련에 충실하면서 부족한 부분의 보강훈련으로 스피드주와 중.장거리(800m~5km) 인터벌 훈련에 중점을 두었고 휴일에는 일달과 협회 LSD 등으로 장거리 감각도 키웠다. 이때쯤 함께 훈련하여야 할 이성재 부장님께서 9월초 DMZ대회를 다녀온 후 부상 및 대회참가 등으로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동반자를 잃고 혼자서 훈련을 하다 보니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남편이 퇴근 후 늦게라도 올라와 시간을 체크해 주고 함께 뛰어 주기도 하여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훈련에 매진하면서 근력에 힘이 생기니 대회에도 참가하여 보고 싶었다. 대회에 참가하여 실전감각을 익히는 것이 우선이냐.. 꾸준히 연습만 하면서 힘을 비축해 두는 것이 좋으냐.. 남편은 열심히 연습에만 집중하라고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대회에 참가하여 힘을 뺀 것이 결과적으로는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9월 29일 달서웃는얼굴 대회에서 첫 점검을 하였다. 하프를 1:30:34초에 뛰어 목표하였던 기록에 1분30초 정도 못 미치는 기록이었지만 아직은 괜찮다고 한다. 그러나 달서웃는얼굴대회 후 남편은 평일에도 올라오는 횟수와 전화하는 횟수가 더욱 늘었다.(9,10월 두달동안 통행료와 출퇴근 연료비만 160만원이 들어갔다고 한다)달서웃는대회 후 다시 담금질이 시작되었다. 2주 동안 인터벌(400~2km)과 지속주를 중심으로 스피드 지구력을 끌어 올리는데 중점을 두면서 9월에 340km를 뛰었다.
서울중앙대회 3주전..
아직은 몸이 무겁지만 컨디션이 조금씩 올라오는 느낌이 든다. 남편은 경주동아대회에서 하프를 뛰면서 마지막 몸상태와 컨디션을 점검하자고 한다. 페이스 챠트를 만들어 주면서 “1시간28분대는 무조건 들어와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1:29:30로 1분이 늦다. 밤새 야근 후 아침에 퇴근하여 경주로 달려온 남편이 이번에는 화를 많이 낸다. 3주밖에 안 남았는데 최선을 다한 것이 이것밖에 안되냐고... 그래도 2등을 했는데... 남편은 등위는 관심도 없다. 상금을 봉투째 줬었는데도 그냥 가방에 던져 넣어 버린다. 기록은 별로 안 좋지만 마음속에는 오히려 자신감이 넘치는데... 그렇다는 말도 못하겠고...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가잔다. 점심도 못 먹고(지부 회원님들은 산내에 소고기 먹으러 간다는데..) 죄인이 된 것처럼 말없이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이번엔 정말 실망이 큰가보다. 대구로 올라오는 길에 배가 고프다고 하니 휴게실에 들러 “라면 한그릇” 사준다.(라면은 자기가 좋아하지 나는 소고기가 먹고 싶었는데..) 남편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1주일 뒤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자며 인터넷을 뒤적이더니 아직 접수받는 곳이 있다며 접수를 하였다. 김창수 명인님께 전화를 하여 페이스를 좀 해달라며 함께 가자고 한다. 이제 대회일까지는 3주 남았다. 3주프로그램을 다시 짜주면서 조정이라도 잘하자고 한다. 인터벌과 지속주 위주로 훈련하면서 1주일에 90km 가까이 뛰던 거리도 70km 정도로 줄였다.
대회 2주를 남기고 주간 훈련량도 50km 정도로 줄이니 몸이 조금 더 가벼워지는 것 같다. 대회 2주일을 남겨두고 생활체육 경남도지사배 양산대회에 참가하여 1시간28분을 목표로 김창수님의 페이스를 받으며 강변의 자전거길 주로를 따라 뛰었다. 반환점까지는 목표대로 잘 갔으나 반환 이후 맞바람이 너무나 세게 불어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또다시 1:29:25를 기록하며 실망만 안겼다.
어디 아픈데 있느냐?
아니...
몸이 무겁냐?
아니...
컨디션이 안 좋으냐?
아니...
남편은 과훈련인가? 걱정했으나 몸 상태도 좋고 컨디션도 많이 올라왔는데 기록은 신통치 않다. 그래도 기록은 안 좋지만 왠지 이번에는 서브-3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마지막 1주..
마지막 주 훈련으로 화요일은 1.5km를 페이스주보다 빠르게(4:00/km) 3세트 실시하고 목요일에는 1.5km를 페이스주(4:15/km)로 3세트, 토요일 아침에는 조깅 후 1.2km 페이스주 2개를 실시하면서 모든 훈련을 마쳤다. 그리고 이번에는 식이요법도 확실하게 하자면서 한우 소고기를 사왔다.(보약짇느라 얼마 남지 않은 비자금을 몽탕 턴 모양이다)소고기는 미국산도 호주산도 아닌 비싼 한우 살코기로 사왔다. 좋은 고기를 먹어야 끈기와 힘도 더 생긴다고..(Sub-3 못하면 돈 아까워서 어쩌려고..)월요일부터 수요일 저녁까지 끼니당 소고기 120g, 계란흰자 2개, 밥 1/4공기, 약간의 과일... 이렇게 먹으니 전혀 배고픈 줄도 모르고 3일동안 약 2kg이 빠졌다. 그리고 목요일부터는 쌀밥과 찰밥을 평소보다 조금 더 먹었다.(빵,자장면,국수 같은 밀가루 음식은 체중만 늘고 소화가 잘 안되어서 먹지 않음)토요일날 서울로 출발전 체중을 재어보니 2kg 정도 쪄 원위치가 되어 있었다. 카보로딩 및 몸 관리가 잘 되었으니 이제 최선을 다하자며 힘을 실어준다. 요즘은 훈련에 힘은 들었지만 호강하는 것 같다. 보약에 한우 살코기 그리고 적극적인 관심과 베려..
이렇게 6월부터 20주의 긴 훈련 및 조정이 끝나고 드디어 목표대회인 서울중앙마라톤대회가 내일로 다가왔다. 토요일날 점심식사 후 일찌감치 서울로 향하였다. 평소 차안에서는 잘 못자는 나를 배려해서다. 서울에 올라가는 길에 판교IC에서 내려 25km 반환점부터 역으로 코스를 답사하면서 고저와 특징을 눈에 익히고 그 동안의 훈련과 내일의 실전을 머릿속에 그리며 미리 레이스를 달린 후 인천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딸래미 집에 여장을 풀고 저녁식사 후 코스 동영상으로 다시 한 번 주로를 머릿속에 되새기며 잠속으로 빠져 들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부드러운 손길에 잠을 깨니 남편이 다리를 가볍게 주무르며 안마해 주고 있었다. 몸도 가뿐하고 마음도 무척이나 상쾌하다. 샤워를 하고 집에서 싸간 찰밥으로 아침을 먹고 대회장으로 향했다. 어둠이 깔린 서울의 새벽공기가 차지도 덥지도 않고 적당하여 뛰기에는 좋은 날이 될 것 같다. 대회장에서 대곡 회원님들과 만나 몸을 푼 후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지기 위해 조용히 눈을 감고 그동안의 훈련과정들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파이팅을 외쳐본다.
▶ Sub-3 과정
마음을 가다듬고 출발선에 섰다. 20번이나 뛰어 본 풀코스였지만 오늘 따라 감회가새롭게 다가온다. 첫 풀의 설렘에는 비교할 수 없지만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시작된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흘러 다리에 전달된다. 힘이 솟는다. 배동성 아나운서의 우렁찬 멘트와 함께 출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번에 페이스메이커를 해주시는 이재춘님, 이상현님, 김창수님과 함께 힘차게 출발하였다. 항상 그렇듯이 5km까지는 몸이 안 풀려 힘들었지만 5km를 넘어서니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몸이 풀리면서 페이스가 빨라졌나보다. 10km까지 42:07초다. 후반을 생각하면 스테미너를 아껴야한다고 이재춘님께서 속도를 늦추라고 하신다. 서울 시내를 벗어나자 시원스런 주로에 가슴이 뻥 뚤리며 기분도 상쾌해 진다. 가로수 은행잎과 나무들이 울긋불긋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아름다운 경치를 돌아올 때도 보고 느낄 수 있을까?
10km 이후부터는 거의 일정한 페이스로 달린다. 이재춘 코치님은 시계를 보며 레이스를 조정해 주시고 종아리에 로션도 발라주고 스펀지로 종아리에 물도 뿌려주고 물도 떠 주면서 바쁘시다. 김창수님도 묵묵히 물을 떠주고 주로를 열어 주면서 페이스를 리더해 주신다. 힘든줄 모르고 반환점을 돌았다. 그러나 반환점을 돌면서 발바닥에 조금씩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풀코스 뛸 때마다 고질병인 발바닥 통증이 또 다시 찾아온 것이다. 제발 아프지 않게 아니 최대한 늦게 오도록 그렇게 빌고 빌었는데.... 양 옆에서 페이스 하시는 분들께는 아프다는 얘기도 못하겠다. 혹시나 싶어 가지고 있던 소염진통제 한 알을 먹고 통증을 잊으려 노력해 본다. 29km 오르막을 오를 때는 발바닥에 불이 난 듯 통증이 심해지면서 다리가 조금씩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직은 괜찮다. 충분히 뛸만하다. 김창수님과 이재춘님께서 계속 힘을 실어 주면서 페이스를 이끌어 주신다. 그런데 30km 전에 있는 언덕을 오르면서 지난주 춘천에서 서브-3 하시고 1주일만에 페메에 사력을 다하시던 이재춘님께서 조금씩 힘들어 하신다.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워낙 저력이 있으신 분이니... 언덕을 오르니 이상현 지부장님께서 저만큼에서 파워겔을 들고 기다린다. 3일 전 지부에 페메를 한명 더 요청하니 지부장님께서 본인의 메이저대회 서브-3를 포기하고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조금 힘들게 느껴지던 페이스가 이상현 지부장님의 합류로 다시 활력이 붙는다. 30km까지 2:07:40로 목표에 10초정도 오버했지만 아직은 컨디션이 좋다. 32km를 지나면서 앞서가던 김기권님께서 보이시더니 뒤로 처진다. 함께 가자고 하였으나 힘에 부쳐 한다. 초반에 오버하셨나 보다.
이후에도 발바닥 통증은 계속 되었으나 레이스는 큰 어려움 없이 계속되었다. 35km쯤에서 요즘 컨디션이 무척 좋아 보였던 윤종상님을 추월하면서 레이스에 더욱 탄력이 붙었다. 그럴쯤 다시 한 번 큰 고비가 찾아 왔다.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여성들만의 마법이 갑자기 터진 것이다. 어제까지 다 끝난 줄 알았는데... 그래서 오늘은 준비를 안했는데... 아~ 이를 어쩌나! 옆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 세명이 함께 뛰고 있는데.., 혹시 팬츠 밖으로 새어 나오면 어쩌나... 속옷은 입었지만 걱정이 앞서면서 갑자기 몸에 힘들어가고 다리가 굳어지며 속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 몸아! 몸아! 제발 조금만 더 참아줘라! 조금만 더... 수백번을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38km쯤 가니 저 멀리 남편이 서있다. 남편을 보자 굳어 있던 몸이 조금씩 풀리면서 마음도 안정 되어간다. 마음이 안정되니 마법도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40km까지는 힘들면서도 어쩌면 쉽게 뛴 것인지도 모르겠다. 엉뚱한 곳에 신경을 쓰다 보니 발바닥 통증도 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김창수님과 이상현 지부장님께서 페이스를 안정되게 이끌어 주시고 이재춘님은 끝까지 옆에서 힘을 불어 넣어 주신다. 힘들어 하시면서도 끝까지 페이스를 이끄시는 이재춘님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다리를 더욱 빠르게 움직여 본다. 주로에 응원하는 시민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보니 이제 결승점도 얼마 남지 않았나 보다. 박수소리와 힘찬 응원에 마지막 힘을 낸다. 드디어 잠실종합운동장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아나운서의 우렁찬 음성을 들으니 더욱 힘이 난다. 그토록 바라던 레드카펫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마음은 붉은 트랙위에 눈물이라도 쏟아야 할 것 같은데 몸은 냉정하게도 결승점을 향하여 전력질주를 하고 있다.
▶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정말 멀고 먼 고행의 길이었다. 2010년 서울동아대회에서 첫 3시간 9분대 싱글을 달성한 후 2년전 이 대회에서 3:00:49를 기록하는 등 3년 동안 6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아직도 105리의 긴 여정은 끝이 아니다. 이제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모자라는 실력과 스피드가 부족한 여자라는 핸디캡으로서는 3시간의 벽 자체가 한계였으나 그 한계를 뛰어 넘었으니 이젠 또 하나의 경지에 도전해 보고 싶다.
대회가 끝난 후 남편이 “앞으로는 내 얼굴 보기가 어려울 거다”라고 한다. Sub-3를 위해 자기의 많은 것을 포기했었는데 그 꿈을 이루었으니 이젠 자기의 할 일은 다 했다고.. 그리고 통행료와 연료비를 아껴 지난 명인식 때 제대로 못해준 잔치를 이번에 서브-3 등극 큰 잔치로 해주겠다면서...
남편은 나보다 더 많이 신경 쓰고 온갖 정성과 열정을 쏟아 부었다. 훈련도 내가 프로그램에 맞춰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 상태와 컨디션에 맞게 조절해 가면서 하니 큰 부상 없이 훈련할 수 있었다. 침대가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더니 마라톤도 과학인 것이 확실한 것 같다. 49년을 살아오면서 달리기라고는 운동회 때 공책 몇 권 타 본 것이 전부였는데 육상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에게 마라톤을 시작하게 만들고 또한 마스터스 꿈의 기록에 이르게 한 남편이 내게는 국가대표 그 어느 감독보다도 더 능력 있는 훌륭한 감독이고 코치고 트레이너이다. 그 노력과 열정이 없었다면 마라톤을 시작하지도 않았겠지만 하였더라도 지금쯤 SUB-4라도 달성해 보려고 애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힘든 순간들도 많았지만 5년이란 시간에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어 정말 고맙고 행복하게 생각한다.
그동안 앞 만보고 달려왔다. 이제부터는 옆과 뒤도 돌아보면서 달리고 싶다. 그리고 SUB-3를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신 이재춘 명인님, 김창수 명인님, 갑장인 이상현 지부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또한 협회 일달, LSD 등 같은 조에서 함께 뛰신 분들과 많은 성원을 보내주신 대곡지부 회원님들께도 감사드린다.
첫댓글 인생 역경을 이겨내면서 기록을 갱신하여 대단한 사람이다
글도 잘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