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고 충격받지 않는 환자는 없다. 이때 환자와 보호자를 잘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 주치의다. 주치의와 잘 소통하며 깊은 신뢰를 쌓은 환자·보호자는 병을 이기는 힘이 강해진다. <헬스조선>은 환자와 의사를 한자리에서 만나 이들의 역경 극복 스토리를 소개하고 있다. 아홉 번째 주인공은 췌장암을 이겨낸 고령 환자 김차연 씨 그리고 주치의 경희대병원 외과 김범수 교수다.
제법 기온이 쌀쌀해진 11월의 중순, 경희대병원의 빈 진료실에서 김차연씨(79)와 주치의 김범수 교수를 만났다. 긴 인터뷰를 마친 뒤, 병원의 정원으로 나가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김차연 씨는 무척 쑥스러워했다. “마주 보고 웃어주세요”라는 기자의 말에 “내가 남편 말고는 남자 얼굴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어서…. 진료를 받거나 이야기는 할 수 있는데…”라며 좀처럼 김범수 교수와 눈을 길게 맞추지 못했다. 하지만 김차연 씨와 김범수 교수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가득했다. 환자와 의사로 만났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은 오래된 친구 못지않은 두 사람이다.
헬스조선: 두 분은 언제, 어떻게 처음만났나요? 그때 환자분의 상태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김차연 씨 제가 팔십이 다 되어갑니다. 그런데 몸에 암이 있다는걸 발견하기 전까지 건강검진을 한 번도 안 받아봤어요. 평소 고혈압에 당뇨병, 고지혈증까지 있었는데, 제 몸을 너무 방치했던거죠. 지난 여름, 처음으로 건강검진을 하려 병원에 갔습니다. 자식과 며느리가 권하니 얼떨결에 건강검진을 받았어요. 복부초음파 사진을 찍는데 남들보다 더 오래, 여러 장 찍는 것 같더라고요. 그때부터 조금 이상했죠. 나중에 의사가 따로 부르더니 췌장에 이상이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큰 병원에 갔죠. 가까운 곳이 경희대병원이었어요.
김범수 교수 당뇨병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어서, 내과에 처음 가셨나봐요. 내과에서 다시 저에게 의뢰가 왔어요. 복부초음파에서 혹이 보이는 상황이었죠. 정밀 췌장CT(컴퓨터단층촬영)와 MRI(자기공명영상) 검사를 해보니, 췌장암인 걸로 확인이 됐어요.
김차연 씨 암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철렁 하더라고요. ‘아이고, 아이고’ 하는 소리밖에 안 나왔어요. 말이 제대로 안 나올 정도로 불안했죠. 교수님이 췌장암은 다른 장기로 전이가 잘 된다며, 전이가 되면 수술도 힘들다고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저는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되지않은 운 좋은 경우라고 하셨어요.
수술할 수 있다고요. 단호하게 수술하면 된다고 하시니, 그 말을 들은 후부터 ‘어? 괜찮은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사실 제나이에 수술을 결정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나이가 많다보니, ‘수술 안 하고 그냥 살지’ 생각하기 쉬워요. 저도 사실 교수님께 수술을 안 하면 어떤지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교수님이 수술하면 낫는다고, 거동이 어렵지도 않고 이렇게 팔팔하신 분이 수술을 안 할 이유가 없다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마음을 푹 놨습니다. 교수님한테 전부 맡긴다고 생각했어요.
헬스조선: 췌장암은 치료가 어려운 암이라고 들었습니다.
김범수 교수 췌장암은 극복이 쉽지 않은 암입니다. 이유가 뭔지 아세요? 조기에 발견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입니다. 증상도 복통이나 식욕부진, 체중감소 정도라 환자가 자신이 암이라고 알아차리기 쉽지 않아요.
그런데 췌장은 폐나 간 등 주변 장기로 잘 전이됩니다. 여러 장기와 가까이 있어서죠. 암은 외과적으로 절제(切除)해야 치료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군데로 전이되면 절제가 어렵게 됩니다. 수술을 못 하는 거죠. 안타깝게도 이런 경우가 꽤 많습니다. 실제로 환자의 20~30%만 수술 치료를 받아요. 그러다보니 치료가 어려운 암이라고 알려져 있죠. 그런데 김차연 환자는 검사 결과 1기 췌장암이었습니다. 다른 장기로 전이가 없어서 수술할 수 있었죠.
김차연 씨 그런데 교수님 말이, 종양만 떼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김범수 교수 맞습니다. 환자분 종양이 혈관과 엉켜 있었어요. 종양 자체의 크기는 1cm 정도로 작았어요. 일반적인 췌장암과 상태도 조금 달랐어요. ‘췌관 유두상종양’이란게 있습니다. 췌장 내에 있는 이상조직인데, 오래되면 암으로 곧잘 변합니다. 환자분은 5cm 크기의 췌관 유두상종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중 1cm 정도가 암으로 변한 상태였고, 췌장염도 동반된 상태였어요.
그러다보니, 수술이 복잡할 거라 예상했죠. ‘췌두십이지절제술’을 할 계획이었습니다. 이 수술만 해도 6~10시간은 걸려요. 수술을 시작해보니, 암세포는 아니지만 주변에 암 전구단계(암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는 암 전 단계) 조직이 보였어요. 그래서 수술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췌장 전체를 절제하는 걸로요. 제가 수술을 집도한 시간만 8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환자분은 미리 마취도 해야 하고, 마취에서 깨어나는 시간도 있고 해서 수술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을 겁니다.
김차연 씨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과, 마취에서 깨어난 후 각각 시계를 확인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거의 똑같은 거 있죠(웃음). 알고 봤더니 12시간이 꼬박 흘렀더라고요. 교수님이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생각보다 암이 많이 진행되지 않아서 잘 할 수 있었다고 말하셨죠. 계획과도 달라지고, 수술 시간도 예상보다 길어졌을 텐데 긍정적으로 말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헬스조선: 수술이 끝나고 난 뒤에 따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김범수 교수 환자분이 원래 당뇨병이 있었어요. 거기에 췌장암 수술을 한 겁니다. 췌장을 절제하면, 건강한 사람도 당뇨병이 생깁니다. 췌장에서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인슐린(Insulin)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췌장이 사라지니 인슐린도 나오지 않고, 혈당 조절이 어려워지면서 당뇨병이 생기는 거죠. 당뇨병이 있었으면 증상이 더 심해지기도 해요. 그 때문에 식이조절이나, 운동이 꼭 필요합니다. 저는 제 환자들에게 운동을 꼭 시켜요.
그런데 췌장암 수술을 하신 분은 배에 길게 흉터가 생겨요. 개복(開腹)의 자국이죠. I자 모양으로 30cm 정도로 배를 크게 절개합니다. 상처가 커서, 수술한 분들은 운동을 부담스러워 하는 게 사실입니다. 처음 하는 운동이 병동에서 걷기입니다. 그것부터 하라고 권하거든요. 상처 때문에 통증이 심해서 환자분은 이게 제일 힘들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30분 이상 꼬박꼬박 병동을 걸으시더라고요.
김차연 씨 의사 말 따라 해서 손해 볼거 없잖아요(웃음). 믿기로 한 이상, 할 수 있는 만큼 다 해야 스스로도 후회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수술 직후 걸으면 아팠죠. 그런데 ‘큰 수술 했는데 이 정도 아픈 건 견뎌야지’라고 생각했어요. 걸어 다녀야 장도 잘 움직이고 상처 회복에도 좋다고 들었습니다.
김범수 교수 당뇨병 있는 사람이 큰 수술을 하면 상처가 잘 안 아물거나, 덧나기 쉽습니다. 높은 혈당은 혈관을 손상시키는데, 손상된 혈관 쪽 조직은 재생이 느린 경향이 있거든요. 그런데 환자분은 상처가 빨리 나은 편이에요. 덧나지도 않았고요. 혈당관리를 잘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균형 잡힌 식단을 적절히 섭취하고, 매일 꾸준히 운동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김차연 씨 어휴, 쑥스럽네요. 저랑 비슷한 시기에 다른 병원에서 똑같은 수술을 받았는데, 이미 운명을 달리 한 사람도 있다고 들었어요. 제가 운이 좋았죠. 그리고 수술해주신 교수님께도 참 감사하고요. 그래서 교수님 말씀은 전적으로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김범수 교수 의사는 매일 보는 병이지만, 환자는 생전 처음겪는 일입니다. 그러다보니 혼란스러워하거나, 의사를 의심하기도 해요.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가 의사를 의심하거나 힘들게 하면 방어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진료해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환자들이 아무래도 회복도 빠르고, 예후도 좋은 편입니다. ‘긍정의 힘’이란 게 정말 있는 걸까요(웃음)? 김차연 환자께서는 자기 관리도 잘 할 뿐 아니라, 긍정적이세요. 간이나 췌장쪽 수술은 규모가 크다보니 합병증도 잘 생기는데, 자기 관리도 잘 하고 긍정적이라 예후도 좋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차연 씨 운동은 요즘도 짬을 내서 하고 있어요. 별건 아니고…. 원래 수술 후에 배를 감싸는 복대를 하거든요? 사실 지금은 안 해도 되는데, 안 하면 허전한 마음에 복대를 하고 천천히 걸어다닙니다. 집에서 노인정이 버스 네정거장 거리여요. 여기만 걸어다녀도 운동이 되더라고요. 걷는 모습을 본 동네 사람들이 ‘자기보다 어려 보인다’고 말하기도 해요(웃음).
헬스조선: 두 분이 서로 신뢰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췌장암을 겪은 환자와, 이를 치료하는 의사 입장에서 또 다른 췌장암 환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김범수 교수 췌장암은 조기 발견이 가장 중요합니다. 직계가족에 대장암·방광암·췌장암 환자가 있다면 건강검진을 규칙적으로 해야 합니다. 이미 체중감소·황달 등 췌장암 증상이 나타났다면 병원으로 빨리 가야 하고요.
당뇨병도 췌장암 위험인자예요. 그리고 암을 치료 중이라면, 의사지시에 잘 따라주세요. 검사할 때 왜 이렇게 자주 하느냐, 이 약은 먹다가 끊으면 안 되느냐 하는 분들이 있어요. 검사는 병의 진행상황 등을 보기 위함이고, 약은 환자가 임의로 중간에 끊으면 증상이 급격히 나빠질 수 있습니다.
김차연 씨 수술이 끝난 뒤에 입맛이 없다고 잘 안 먹는 환자를 봤어요. 저는 병원을 나가자마자 골고루 잘 챙겨 먹었습니다. 물론 당뇨병 환자의 기준에 맞춰 칼로리를 제한하고, 단 음식은 적게 먹었죠. 그래서 운동할 힘도 생기고, 큰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꾸준히 운동하세요.
김범수 교수가 알려주는 췌장암 예방 수칙
1 흡연자는 비흡연자에 비해 췌장암 걸릴 확률이 2~5배 높다. 금연은 췌장암 예방에 필수다.
2 장기간 과음은 췌장염을 일으키고, 췌장염은 다시 췌장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
3 고지방·고칼로리 식이는 피하는 게 좋다.
4 잡곡류·과일·채소 등 식이섬유를 중심으로 하는 식생활을 가진다.
5 췌장암은 췌장염·당뇨병과 관계 있다. 중년 이후 가족력이 없는데 당뇨병이 새롭게 생겼거나, 당뇨병을 오래 앓았다면 췌장 검사를 받아야 한다.
6 만성췌장염이 있거나, 췌장암 가족력이 있는 경우도 췌장 검사가 필요하다.
7 40대부터는 건강검진할 때 복부초음파 검사나 CT검사를 받는다.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06/2016120600955.html
첫댓글 무서운 병이군요 그때그때 잘 이겨 나갈수있게 최선을 다 합시다...^^
우리가 할 수 있는것은 오직 최선을 다하는것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