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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州禪師
중국 선종사(禪宗史)에서 조주(趙州)스님처럼 많은 일화를 남긴 스님도 없을것이다.
그만큼 무애의 일생을 살다간 스님이랄수 있었다.
조주종념(趙州宗稔)선사는 대개 조주고불(趙州古佛)이라고도 하나 대개 조주스님으로 불리우고 있다. 그것은 스님이 오늘의 하북성 조주의 관음원에서 오래동안 방장으로 주석했기 때문이다. 스님의 속성은 학[郝)씨 그는 778년 출생 1백20세까지 재세했다.
스님은 어려서 출가하였다. 그의 스승은 안휘에있는 남전선사였다.
그가 처음으로 남전선사를 찾았을 때, 젊은 내방객을 본 남전선사는
[어데서 왔는가?]하고 물었다.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어허! 그래 서상! 상서로운 모습을 보았는가?]
[상서로운 모습은 커녕 졸고 있는 여래를 보았습니다.]
그때 남전선사는 침상에 누워 쉬고 있었다.
젊은 조주의 이 말에 놀래 남전선사는 일어나 앉으며
[젊은이는 스승이 있는 사내인가. 스승이 없는 사미인가?]
[스승을 뫼시고 있습니다.]
그의 대답에 스승이 누구냐고 물었다.
조주는 그 말에 대답을 않고, 남전선사에게 큰 절을 하면서
[겨울이 깊고 날씨 추우니 스님께서는 몸을 잘 보증하십시오.]
이렇게 하여 조주는 남전선사의 제자가 되었는데 남전선사로서도 똑똑한(?) 제자를 하나 얻어 기뻐하였다.
그런 후 어떤 날 조주는 스승에게 정중히 묻는다.
[도란 무엇입니까?]
[평상심(平常心)이 도로다.]
[여기에 접근하는데 무슨 수가 있습니까.]
[의도적으로 접근하려면 이미 길을 잘못 찾는 것.]
[도란 유 무식(有無識)에 있지 않다. 유식이란 미망(迷妄)에 지나지 않으며 무식은 단순한 혼란이다. 만일 자네가 완전한 도를 깨닫는다면 자네의 지견(知見)은 일체의 제한과 장애가 없는 무한한 공간과 같은 것. 옳고 그름은 외적으로 인위적으로 규정될 수 없는 것이니라.]
이 말을 듣고 조주는 깨달았다. 이리하여 조주는 남전에게 정식으로 계를 받고 스님이 된 것이다.
남전이 조주에게 전한 심인은 실로 이토록 대단하였다. 일상적으로 설명지어질수 없는 선가의 내밀이 숱하게 깔려 있었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자뭇 당혹감을 일으키게 하기도 한다.
어느날 조주가 남전선사에게
[유(有)를 깨달은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하옵니까?]
[그는 산에서 내려가 아랫동네의 한 마리의 소가 되어야 하네!]
그러나 조주는 놀랍게도 스승에게 철저하게 깨닫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 것이다. 그러자 남선선사는, [어젯밤 삼경(三更) 에 창을 통해 달이 비치었다.]
그런데 깨달았다는 이 [제약의해방]은 참으로 놀라운 많은것을 남겨주었다. 가령 임제스님이 그의 스승 황벽의 뺨을 때린 것 등은 사실상 범인의 눈에는 방자하기 까지 한것이었다.
그러한 예는 조주와 그의 스승 남전선사에게도 있었다.
하루는 남전선사가 조주에게 말했다.
[근래에는 우리와 다른 이유(異類)와 더불어 어울리는 것이 가장 좋을세]
이 많은 짐승을 구하는 것이 사람을 구하는 것보다 쉽다는 속담이다.
그러나 조주는.
[먼저 다름이라는 두고 도대체 류란 무엇입니까?]
남전선사는 땅에 엎드려 두 손을 짚어 짐승 흉내를 내었다. 이때 조주는 그의 뒤로 가 사정없이 밟아 버렸다. 그리고 열반당으로 가 [후회합니다. 후회합니다.]라고 외쳤다. 그때 남전선사는 조주의 그 사정없는 발길질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사자에게 조주에게가 그 뜻을 알아 오라했다.
조주는 이렇게 말했다.
[내 스승을 두세 번 더 밟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네.]
이런 일이 있은 후 남전선사는 조주를 더욱 아끼고 가까이 했다. 조주도 그랬다. 모든 뜻에 있어 언제나 일치했다. 그 스승의 그 제자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조주와 남전선사의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선문에서 화두(話頭)로 쓰여지고 있다.
하루는 고양이 한 마리를 두고 동쪽 요사의 스님과 서쪽 요사의 스님들이 서로 차지하겠다고 야단이었다. 싸움 일보 전이었다. 이때 남전선사가 이 자리에 나타나 고양이를 잡아들고 대중들에게
[그대들 중에서 누구든지 바른 말을 하면 이 고양이를 살려주겠다.]
대중들은 묵묵부답, 그러자 그는 칼을 찾아 고양이 목을 베어 버렸다. 이런 일이 있은후 조주가 절에 돌아왔다. 스승에게서 이야기의 자초지정을 들은 조주는, 한마디의 대꾸도 없이 신발을 벗어 머리에 이고 나가버린다. 그러자 남전선사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대가 여기 있었다면 그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으련만....]
이것은 쉽게 해석되어질 수 없을 것이다. 영원한 화두일 듯 하다. 다만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이 설명되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집착을 버리는 한 계기를 이들(고양이를 서로 차지하려는)에게 주고 싶었는데 이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고, 그러나 조주만이 이를 잘 간파하였다 할까.
좋은 스승을 만나 깨달음에 이르렀던 조주는 이후 여러 곳을 다니며 당대의 선지식을 찾아 법담을 나누었다. 그는 그때마다 세인들을 놀라게 하였다.
조주스님은 산천경계를 사랑 하였다.
도인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의 도반들은 그러한 그를 두고 어디에 정착하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조주스님은 아직 그러한 마음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러한 무렵 조주스님이 주유스님을 찾았을 때 주유스님은 말했다.
[스님만한 나이면 그만 어디 한곳에 주석하시어 우매한 중생과 후학들을 지도하시어야 하지않겠습니까?]
[내가 주석할 곳이 어디있습니까?]
[무슨 말씀을..... 나이가 그만하면 상주처(常住處)조차도 모른단 말이오이까]
조주는 한방 맞은 셈이다. 사실 우스꽝스러운 이 문답이 너무도 명확한 진리를 말해주고 있달까.
그래서 조주는 씁쓸하게 중얼거린다.
[내 30여년 동안 말등에 올라 자유로히 천하를 주유하는데 뜻밖에 오늘 처음 당나귀에 치인 꼴이 되었구나.]
조주스님이 관음원에 정착한 것은 그의 나이 80세였다. 그는 재물에 대해 탐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방장생활 40여년에 방치장을 제대로 하지도 않았으며 재물을 보시하도록 신도에게 청한 일도 없었다.
그는 사람대하는 데에 나름의 규정을 두었다. 아무리 높은 지위라 해도 그는 결코 높게 대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날 왕공을 맞게 되었다. 조주스님은 그를 앉은 채 맞은 것이다.
[왕공께서는 이러한 저를 이해 하셨겠지요?]
[아직 하지 못하였오.]
그러자 조주스님은
[나는 소년적부터 계속 금식을 해왔기 때문에 내 나이 이제 늙어 기력이 없어 침상을 내려갈 힘이 없오이다.]
그러자 왕공은 그러한 그를 더욱 존경하였다. 다음날, 왕공이 장군을 보내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조주는 급히 침상을 내려와 그 장군을 반갑게 맞아들였다. 장군이 돌아간 후 제자가 그 연유를 물었다.
[왕공을 맞을 때는 일어서시지도 않으시더니 장군이 오니, 확대한 영접을 하시니 무슨 뜻이오이까?]
[모르는 소리, 귀빈 오면 앉은 채 영접하고 보통사람이 오면 일어나 앉으며 낮은 사람이 오면 문앞까지 나가 맞는 것일세.]
그는 물론 여기서 사회적 신분에 대한 예의를 말한것이 아니다. 정신적 능력의 계층에 따라 그를 따르고 따르지 않도록 할 것을 당부한 것이다.
조주스님이 조주고불(趙州古佛)이라 불리웠다는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일이다.
그 변명은 설봉선사에게서 비롯되고 있다. 이 두 스님은 한 번도 해후한 적이 없었다.
어느날 조주스님은 설봉선사와 그의 제자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전해들었다.
설봉의 제자가 [오랜 연못의 한 샘에 대한 말씀을 해주십시오]하자 설봉이 [자네가 아무리 꽤들어지게 보아도 그 바닥을 볼 수 없네]하였다. 다시 제자가 [물을 마시는 사람에게는 어떠하시겠습니까?]하자 설봉스님이 [입으로 마시는 것이 아닐세]하였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조주가 [입으로 마시지 않으면 코로 마셨나보지] 이에말을 전한 스님이
[스님께서는 고담한천에 관해 무엇이라 말씀하시겠습니까?]
[물맛이 쓰다]
[물을 마시는 사람에게는 무어라하시겠소?]
[죽지!]
이러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남방의 설봉스님이 조주를 칭송하였다.
[고불(古佛)인데, 정말 고불이야.]
[고담한천]이란 말할 것도 없이 도(道)를 뜻한다. 여기에서 [맛이 쓰다]란 말을 수행 과정에 있어 자기 자신에 대한 엄밀한 잃어버림, 즉 자아수련 자아부정의 관문을 통해야만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쓴맛]없이 어디 단맛을 알 수 있을 것인가.
조주에 있어 진정한 자아의 완성은 곧 도의 완성에 달하는 것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이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는데 많은 힘을 기울였다.
어느 날, 조주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손님은 이곳에 와본 적이 계시오?]
[그렇습니다.]
[차 한 잔을 드시오]
조주는 다른 사람에게도 물었다.
[전에 이곳에 와본 일이 계십니까?]
[아닙니다. 처음입니다.]
[차 한 잔 드시오.]
이러한 조주스님의 행동에 그 후 한 스님이 물었다.
[전에 와 본적이 없는 분에게 차 한 잔을 권하더니 여기 와 보지 않는 사람에게도 역시 차 한 잔을 권하시니 그것이 무슨 뜻이 오리까.]
[스님!]
[네, 무슨 일이 계십니까?]
[차 한 잔 들게나!]
차를 마시는 행위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행위에도 그 차를 마시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다. 즉 일상생활에 있어 모든 것이 도라는 그의 뜻을 여기서 그는 말하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자성을 찾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6조 혜능의 진정한 가르침도 이러한 것이었는데 이러한 혜능의 법을 그는 도 또는 진여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었다.
조주는 어느날 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그의 뜻을 피력한 바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모두 부처를 구하는 사람이나, 진정한 도인은 하나도 없다... 세계가 있기 전에 자성이 있었다. 이 세계가 파괴될지라도 자성은 파괴되지 않는 것이다. 이제 당신들이 이 나이든 중을 보았으니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딴 사람이 아니다. 바로 당신들 자신의 주인공이다. 밖에서 또 다른 이를 찾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는 이러한 뜻을 집약했다할 다음과 같은 말도했다.
[내가 듣기 싫어하는 말가운데 부처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이것은 6조나 남전에도 같은 것이었다.]
즉 도나 진여는 마음도 아니고(非心) 부처도 아니며(非佛) 또한 물건도 아닌 (非物) 것이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곳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스님의 질문.
[달마조사께서 서쪽으로부터 온 뜻이 무엇입니까?(如向足西來意)] 라는 말에 [뜰 앞의 잣나무라네]라고 한 것이었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있다.
조주는 어느날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바 있었다.
그는 [없다]고 말했다. 이 대답은 불교 교리에 위배되는 대답이었으므로 그는 또 계속 질문을 던졌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위로 부처로부터 아래로 미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불성이 있다하였오. 그런데 어찌 개에게 불성이 없다 하는 것입니까?] 조주는 대답했다.
[그 분별 버릇 때문이다.]
그런 후 조주는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는 그 질문에 [있다]고 대답했다.
[개에게 불성이 있다면 어찌 개로 태어났을까요?]
[더 나은 지식을 갖고 거스려 행동하였기 때문이지.]
그가 만일 다시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지!]라고 대답하였을 것이다.
즉 그는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공식적이고 예비적인 것을 배제할 때 참선기는 있는 것이다. 생명력은 독창적이어야 한다.
그는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보여준 다음과 같은 일화는 그러한 것을 잘 나타난 사건이었다. 어느날 그가 오대산을 가는 도중, 한 노파를 만나게 되었다. 이 노파는 길가에서 산으로 오르려는 스님들에게 일일이 예를 표하며 간혹 절로 가는 길을 물으면 [똑바로 가시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스님이 산에 오르려면 [마침내 그는 이렇게 지나는 것이다]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준 스님들은 덧붙여 조주에게 [선의 이치에 통달하였음이 틀림없다]고 칭찬해 마지 않았다. 그러나 조주는 그 노파를 만나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그는 그 노파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절로 가는 길을 물었다.
그 노파는 역시 [똑바로 가시오]라고 말했다. 조주가 산으로 올라가자 [마침내 그는 이렇게 지나가는 것이다]라고 그 노파는 다른 스님들에게 한것과 같이 말했다.
조주는 동행인들에게 [그녀가 가짜인 것을 알아냈네!]라고 말했다.
이렇듯 조주는 가짜 골라내어 들봉을 내기도 했다. 그만큼 그는 모조품에 대해서는 날카로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양자강의 남쪽 여러 선원에서 초심자들이 모여 들었다. 그들은 각기 배운 경구와 화두를 들고 조주에게 와 점검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들은 자기들 스승의 용어들을 사용하며 거침없이 이야기를 던졌다. 조주는 그러한 그들을 행상인( )이라 불렀다.
그는 늙어서도 놀랄만한 생기를 간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90여년 전에 마조의 가풍을 이은 선사들을 80여명 보았는데 그들은 모두 창조적 정신에 넘쳐 흘렀다. 최근에 이르러 선학의 수련은 쇠잔하여졌고 분파가 많아졌다. 최상의 지혜를 지닌 사람들의 본래적 정신에서 점점 멀어만 가니 세대가 지나 갈수록 쇠퇴풍조만 계속될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는 1백 10세. 시간적으로는 9세기말. 이 말은 그 후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그는 최후의 대선사였던 것이다.
조주는 재자신의 종문을 설립치 않았다. 그는 너무 자유분방하였고 자산이 개산조가 되어 후대에 추앙 받는것 등에 통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후일 5가는 그의 뛰어난 지혜를 공동원천으로 추대하였다.
조주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다. 그 많은 일화는 때때는 우리들을 경악케하며 그래서 공안으로 채택되기도 하는 것이다. 조주의 일화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날 한 초심자가 조주에게 와 최대의 겸손한 자세로 말한다.
[이렇게 빈손으로 왔습니다.]
[그러면 내려놓게나.]
[아무것도 안 가져왔는데 무엇을 내려 놓습니까?]
[그럼 계속해서 들고 있게나!]
어느날 한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
[거지가 오면 무엇을 줄까요?]
[거지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네!]
어느날 그의 제자중 한 스님이 이 세상을 떠났다. 방장인 조주스님도 그의 장례행렬에 참가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 많은 죽은 사람이 단 하나의 산사람을 쫓아가는군.]
어느날 한 스님이 선학의 근본 요지를 들려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조주는 변명하듯 거절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변을 좀 보아야겠는데, 생각해 보게 이런 사소한 일 조차도 내 자신이 스스로 해야 하는데!]
어느날 한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
[조주(趙州)는 어떻습니까?]
이때 그 스님은 조주라는 도성(都城)에 대해서 묻는 것이 아니었다. 조주스님의 가풍에 대해서 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주는 고의로 도성에 대한 뜻을 대답 했다.
[동문 서문 남문 북문.]
어느 날 학인 하나가 조주에게 와 말을 건다.
[소승은 이 선원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청하옵건데 스승께서 가르쳐 선도하여 주시옵소서.]
[아침은 먹었는가?]
[네 스님.]
[그러면 어서가 바릿대나 씻게]
어느 날 한 스님이 조주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 초상화를 선사받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이 정말 나의 모습이라면 그대는 나를 죽일 수 있을걸세, 그러나 그렇지 않으니 밖으로 가져가 태워버리게나.]
이렇듯 조주의 일화는 끝이 없다.
당대 마지막 대선사 조주고불 종문도 열지 않고 그는 갔지만 그의 지혜는 오늘에도 남아 많은 철학자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