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의 보고, 대구의 재실
35. 전설의 고향, 도원동 수밭골과 도원재·방해재
글·송은석 (대구향교장의·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프롤로그
대구시 달서구 도원동 월광수변공원 상류에 ‘수밭’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마을 개척 당시 숲이 우거져 ‘숲밭(萩田)’이라 불린 게 ‘수밭’ 유래라 한다. 마을 역사는 400년이라고도 하고 혹은 500년이 넘는다고도 한다. 달서구를 대표하는 수변공원이자 먹거리촌으로 변해버린 수밭골.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밀양박씨 재실 도원재(桃源齋), 고령김씨 재실 방해재(放海齋)를 랜드마크로 하는 두 성씨 집성촌이었다. 이번에는 수밭골에 전해지는 흥미로운 전설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보자.
‘청룡못·청룡굴’ 전설, ‘배방우’ 전설
수밭골은 비슬산 북쪽 지맥인 청룡산과 삼필봉(松峯·甑峯·鵲峯) 사이에 자리한 남북으로 길쭉한 골짜기 마을이다. 수밭골 서쪽이 삼필봉, 동쪽이 청룡산이다. 수밭골에는 두 가지 청룡 전설이 전한다. 청룡못 전설과 청룡굴 전설이다. ‘청룡못’ 전설은 마을 연못에서 청룡이 승천했다는 전설로 청룡못은 지금의 월광수변공원 내 도원지다. 도원지는 청룡못·수밭못·우리제·우리못 등으로도 불린다. ‘청룡굴’ 전설은 인근 달비골 황룡굴 전설과 연관된 흥미로운 전설이다. 두 가지 유형의 전설이 전한다.
○ 옛날 달비골 황룡굴 암자에 이름난 도승이 있었다. 도승을 모시는 이는 황룡굴에 살고 있는 남해 용왕의 아들 황룡이었다. 하루는 황룡을 만나기 위해 서해 용왕의 딸인 청룡이 찾아왔다. 도승은 청룡을 황룡과 함께 둘 수 없어 청룡을 맞은편 청룡산 서쪽 기슭에 있는 청룡굴에 머물게 했다. 마을에 7년 가뭄이 들었다. 중생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던 도승은 청룡에게 비를 내리게 했다. 청룡은 도승의 부탁대로 비를 내렸지만 자연의 법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옥황상제로부터 벌을 받게 됐다.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사자는 청룡굴에 벼락을 내렸다. 그때 청룡굴에 함께 있는 황룡도 벼락을 맞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황룡굴은 지금도 멀쩡하지만 청룡굴은 주변에 너덜 돌이 많이 널려있다.
○ 옛날 청룡산에 이무기 네 마리가 사이좋게 살았다. 그런데 승천할 때가 되자 서로 승천하려고 다퉜다. 결국 네 마리 중 한 마리만 승천했다. 승천한 이무기가 살았던 굴이 지금의 청룡굴이다.
‘배방우(배바위)’ 전설은 수박골에만 있는 전설은 아니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어디서든 흔히 접할 수 있는 전설이다. 마치 구약성서의 ‘노아의 방주’, 그리스 로마신화의 ‘데우칼리온과 피라’ 신화를 연상케 한다. 아주 먼 옛날 홍수로 세상이 모두 물에 잠겼다. 이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청룡산 정상 배방우에 배를 묶었다는 전설이다. 배방우는 모양이 상여를 닮아 ‘상여바위’라고도 한다.
이외에도 인근 달비골의 ‘쌀바위(석샘)’ 전설과 유사한 ‘부처바위’ 전설도 있다. 배방우 아래 옛 절터에 쌀이 나오는 바위가 있었다. 한 번은 공양주가 욕심을 내 꼬챙이로 바위 구멍을 찔렀는데 그때부터 쌀은 나오지 않고 물만 나왔다는 전설이다. 수변공원 주차장 잔디밭에 놓여 있는 두 개의 거북바위도 전설이 깃들어 있다. 할배바위·할매바위·천황바위라고도 하는데 지금도 정월보름날이면 이곳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 제사를 올린다.
네 그루 당산나무, 대구 유일 수밭골 상엿집
상전벽해 수밭골이지만 지금도 옛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공간이 있다. 수령 400년 느티나무 네 그루가 서 있는 마을 당산이다. 지금도 정월보름이면 이곳에서 마을 제사가 행해진다. 주민들은 매년 봄이면 당산나무 잎을 보며 한 해 농사를 점쳤다. 나무 전체에 잎이 동시에 나오면 풍년, 그렇지 않으면 흉년이라고 봤다. 또 300년 내력을 지닌 도원동 상엿집에서도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수변공원 주차장 남쪽 끝 등산로 초입에 있는 상엿집으로 2016년 보수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예전에는 월배 지역에 상여 있는 마을이 드물었다. 그래서 상이 나면 이곳 수밭골 상여를 빌려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과거 이 상엿집에는 16명이 매는 중형 상여와 32명이 매는 대형 상여가 각각 1대씩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빈 상엿집만 남았다.
밀양박씨 도원재, 고령김씨 방해재
수밭골 역사는 400년이 넘는다. 밀양박씨, 고령김씨 집성촌인 수밭골은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 밀양박씨가 처음 정착하고 이어 고령김씨가 들어왔다고 한다. 밀양박씨 수밭 입향조는 도암(桃菴) 박민호(朴敏豪)다. 그는 판서 박웅상의 아들이다. 효행으로 참봉에 천거됐으며, 임란 때 의병을 일으키고 산성을 쌓은 공로로 병조참의에 추증됐다. 고령김씨 입향조는 박민호의 사위 영희전(永禧殿) 참봉 정양(靜養) 김영립(金永立)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임란 의병장으로 이름난 송암(松庵) 김면(金沔)의 동생이자 황석산성 전투에서 순절해 선무원종공신에 오른 송재(松齋·松軒) 김회(金澮)의 외아들이다. 김영립 역시 임란 때 의병으로 활약하다 순절했다.
수밭골을 동서로 양분하며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도원천을 중심으로 동쪽에 밀양박씨 도원재, 서쪽에 고령김씨 방해재가 있다. 도원재는 1983년 건립한 양옥 건물로 입향조 박민호를 기리는 재실이다. 방해재는 1943년 김용하(金用夏) 선생이 서당으로 건립한 한옥으로 이후 재실로 사용되다 2023년 말 철거됐다.
에필로그
도원동에는 과거 수밭, 못밑, 원덕 세 마을이 있었다. 못밑은 도원지 못 둑 바로 아랫마을, 원덕은 못밑에서 북서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마을이다. 아파트 단지로 변해버린 지금은 두 마을 모두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원덕마을 앞 높은 둔덕인 곤지둑에 서 있는 거대한 수령 500년 느티나무만은 옛 모습 그대로다. 도원동은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등장하는 무릉도원에서 유래한 동명이다. 도원동 옛 자연부락 중 아직도 옛 모습을 일부 간직한 수밭골에는 ‘기시니골, 꽃밭동산, 노리박골, 꽁사릿골, 도시락샘, 맷돌바위, 벌바우골, 시부렁만댕이, 말랑뜰, 위티재, 제비골짝, 쪽박샘, 토끼재, 상그랑뜰’ 등 정감 어린 옛 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젠 나이 많은 어른들만 기억할 뿐 예쁜 지명들이 하나, 둘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옛것이 자꾸만 사라진다. 참!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