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링크 & 기사 요약]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2/0002324685
아이들의 화면 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기사요약 : ‘아이들의 화면 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의 저자 김지윤의 인터뷰이다. 아이들이 때로는 화면을 이용하고, 때로는 화면에 저항하면서 삶의 균형을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이들의 아이들이 게임을 주체적으로, 자기 효능감을 위해 의미체계를 형성하며 하는 것이 아닌 ’그냥‘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주체성 문제를 포착하고, 이들이 앞으로 삶에 대해 취하게 될 수동적, 회의적 태도 문제까지 고려하며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또한 아이들이 지금 화면 속에서 겪는 주체성의 문제는 아이들의 잘못이 아닌 ‘성취’의 기준에 대해 경직된 사고를 주입하는 어른들의 잘못임을 통찰한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30/0003022273?sid=102
뉴노멀 교육, 장 폴 사르트르 철학을 호출한다.
기사요약 : 구덕회 서울교대 교수의 시사평론으로, 뉴노멀 현상이 나타나는 현재, 한국 교육의 방향을 사고하기 위해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을 적용시켰다. 교과 지식을 본질로 여기고 학생들의 사고를 획일화시키는 것을 비판하고, 학생 스스로가 자기 책임으로 교육 내용을 선택하고 자기 능력을 스스로 길러갈 것을 강조한다.
[용어정리]
실존주의 철학 : 개인으로서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하는 문예사조이다.
철학자마다 주장하는 실존주의의 성격은 조금씩 다르며,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에 따르면 인간은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없이 던져진 존재자이며, 따라서 인간은 정답이 없는 선택을 해야하는 자유를 부여받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불안감으로 인해 선택을 포기하는 행위인 ‘자기기만’을 부정적으로 보고, 선택을 계속 해나감으로써 가치를 만들어낼 것을 강조한다.
뉴노멀 :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떠오르는 기준, 표준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나의 생각]
우리는 미디어의 사용을 선택한 적이 없다. 그저 쓰도록 주어졌다. 우리에게는 자연스럽게 쉰다는 것은 SNS에 들어가거나, 영화, 릴스 등을 시청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고,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적이 없거나, 알더라도 선택하지 않는다.
이것의 문제점은 우리를 수동적이게 한다는 것인데, 주어진 콘텐츠를 보며 뿐이며, 때론 분명 봤더라도 무슨 내용을 봤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세상에 자신을 내맡겨간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미디어를 쓰기로 선택하는 하는 것, 그 의지가 필요하다. 미디어로부터 멀어질 수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통제할 주체성을 길러야한다. 심지어는 게임과 같은 환경에서조차 주체적으로 행동하며 게임에 대한 자기 효능감을 인식하며, 자신만의 의미 체계를 구축해나가야한다.
우리의 수동적 사고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한 가지가 더 있는데, 그것은 주입식 교육이다. 흔히 물타기라고 말하는 현상도, 결국 주입식 교육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시사에 대한 자기만의 관점을 구축하고 주관을 말하는 연습을 시키지 않고(오히려 틀렸다고 생각하게끔 했으며),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것을 입력하면 그것을 답으로 내놓는 연습만을 시켰기 때문에, 그 함수적 사고 방식이 우리가 수동에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이다. 먼저, 교사는 학생을 가르쳐야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 학생이 학습의 과정에 있어 주도적으로 배워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협력자의 역할을 해야한다. 교육 체계가 처음 확립되었을 시기와 다르게 미디어가 우리를 지배해버린 뉴노멀 시대에서, 미디어의 영향으로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변하지 않도록, ‘선택’하는 삶이란 무엇인지 깨닫게 돕는 환경을 이제는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기사에 언급된 구덕회 교수의 학생의 존재를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해가는 실존적 존재로 존중해줘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학생 스스로가 자기 책임으로 교육 내용을 선택하고 자기 능력을 스스로 길러가야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구덕회 교수는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주체적인 존재임을 전제하고, 그것을 학교가 억압하고 있다는 관점을 취하는 반면 나는 학생들의 주체성이 항상 미디어의 위협을 받아, 실제로 주체적인 학생은 몇 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점을 취하기 때문에 학생이 완전히 스스로 교육 과정을 선택해나가는 것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이미 우리나라는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은 이미 마련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그것이 학생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주요하게 작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맹점만 빼면.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학생 스스로 ’나는 실존하는 존재이며, 내 능력을 스스로 길러가야 한다‘라는 그 깨달음 자체를 얻을 수 있게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 사회에서는 풀 일이 없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오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보다, 그 객관식 문제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의 주체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돕는 환경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