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주 제31일(6/7). 흐림. 22도.
오색-속초
-설악산을 넘어서-
05:10. 숙소 밖으로 나오니 안개비가 내리고 있다. 전날 저녁 식사하면서 식당에 미리 주문한 김밥을 박충상 샘이
새벽 일찍 산책 나갔나 했더니 찾아온다. 김밥과 주먹밥을 받아 넣고 남설악 매표소로 향한다.
산악회 버스가 두 대나 서 있는걸 보니 벌써 출발한 팀이 있는 모양이다. 05:30 매표소 통과.
여기서 대청봉까지는 5km. 거리는 얼마 안되지만 경사가 심한 등산로라서 4시간 정도 걸린다. 출발부터 오르막길에
숨이 찬다. 어제가 현충일 휴일이고 오늘은 평일이라서 그런지 오르는 산객들이 거의 없어 등산로는 한적하기 짝이
없다. 어느 산이나 처음 30분은 무척 힘이 든다. 쉬기를 몇 번. 땀이 나고 숨이 고르게 되자 조금 걷기가 쉬워진다.
원래 내 계획은 물이 있는 설악폭포 근처에서 아침 식사를 할 예정이었는데 배가 몹시 고픈 갑화백이 도중 계단 위에
주저앉아 김밥을 펼친다. 다람쥐란 놈들이 어느새 모여든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에 익숙해 졌는지, 주위를 돌면서
도망갈 생각을 않는다. 반갑고 귀여워서 김밥을 조금 나눠준다.
설악폭포에 도착. 시원한 폭포와 계곡물이 흐른다. 산객들 몇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곳을 지나면 대청봉까지는 물 구경을 못한다.
등산로에는 진달래가 피어있다.
10시. 대청봉에 올랐다. 우리 외에 아무 사람도 없다. 대청봉에 수없이 와봤어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늘 시장바닥 처럼 붐볐고 정상석에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순서를 기다렸어야 했는데...오늘은 사람 구경하기
힘들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올라온 사람을 만나 사진을 부탁해야 했다.
우리는 각자 가져온 물 두 병씩을 모두 다 마셔버려 중청산장에서 생수 큰병 하나를 사서 나눴다.
소청으로 향하는데 봉정암에서 올라온 여자 신도들이 대청을 향하여 힘겹게 오르고 있다. 봉정암까지 올라왔다는
자체만 해도 대단한 신심들이다.
소청에서 희운각대피소 내려가는 길은 무척 가파르다. 그러니 이 길을 올라오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다.
그런데 김제 지평선중학교에서 온 남녀 중학생 60여명이 자기 몸만한 배낭을 매고 힘겹게 오르고 있다. 모두들
지쳐서 기진맥진한 모습들이다. 인솔 교사 얘기로 이 학교에서는 매년 이렇게 백두산도 오르고 한라산도 오른다고
한다.
내리막길에서 바라보는 공룡능선과 천불동계곡은 구름에 잠겨있어 한 폭의 동양화 처럼 신비로움을 더한다.
긴 내리막길이 끝나고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하여 주먹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또 다람쥐란 놈이 주위를 맴돈다.
하는 행동이 마치 사람에게 길들여진듯 하다. 이녀석들, 이러다간 아얘 겨울 양식으로 도토리도 모으지 않는거 아냐?
허긴 도토리는 인간들이 죄다 줏어가 버리니 어쩌란 말이냐고 항의해도 우린 할말이 없지만....
무너미고개를 내려가 양폭산장으로 향한다. 안개속으로 천불동계곡의 절경이 펼쳐진다.
천당폭포와 양폭을 지나 양폭산장에 도착. 전에 늘 보던 매점은 헐려버리고 산장 옆에 붙여 지어놓았다.
전 매점 자리에는 음료수만 차가운 물에 담겨져 있다.
철다리를 오르내리며 귀면암을 거쳐 비선대로 향한다.
다들 말은 안 하지만 속으로 '이럴때 시원한 맥주 한 캔 마셨으면....'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숙소 냉장고에 마시다 남아 넣어뒀던 캔맥주를 가져오는건데.....
이때, 하늘이 우리 소원을 아셨는지 기적이 일어난다. 반대 방향에서 박충상 샘이 올라오고 있는게 아닌가?
그리고 반가워하며 앉아 쉬려는데 배낭에서 시원한 캔맥주를 꺼내는게 아닌가?
우리 생각하고 올라올때 사가지고 왔다고 했다. 역시 프로는 프로를 알아보는구나!
갑화백이 제일 반가워한다. 넷은 캔을 따서 건배하며 카아~소리를 내며 마신다.
그래, 바로 이맛이야!
단숨에 마시고 갑화백이 좀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배낭을 뒤지던 박샘, 또 캔을 꺼낸다.
우리가 출발한 후 숙소 냉장고에서 캔을 꺼내 배낭속에 넣고 나온 사실을 깜빡하고 또 사왔단다.
"아까 먹은게 사온거고 이건 냉장고 꺼야"하고 말하는 박샘이 이순간 얼마나 이뻐보이던지!
힘이 절로나니 어느새 비선대에 도착. 맑은 물이 발을 담가본다. 제주도 이후 처음이다. 1분도 안돼 발이 시려온다.
마냥 발 담그고만 신선 노름만 하고 있을수 없어 하산을 서두른다. 소공원에 도착.
수학여행 온 학생들로 시끌벅적하다. 오늘의 산행을 끝낸다. 17:20.
하지만, 여기서 오늘 우리의 걷기가 끝난거라면 얼마나 좋으랴. 아직 끝난게 아니다. 걸어서 숙소인 한화콘도까지
더 가야한다. 이때가 심리적으로 더 힘들다. 3인방과 박선생까지 터벅터벅 걸어서 목우재 터널을 지나 척산까지
걸어서야 오늘의 걷기가 끝난다.
오늘 걸은 거리 : 22km. 10시간.
코스 : 오색-설악산-속초00000000
첫댓글 (캡화백맏딸)오늘 대청봉에 계신 아버지와 전화를 하면서 감동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나저나 캔맥주가 그렇게 그리우셨어요? 나중에 아버지 오시면 망우리 식구들은 맥주파티를 해야겠네요~ *^^* (한화콘도에 계시다는 소식에, 작년 11월에 가족들이 함께 한 여행이 생각나네요. ^^) 06.06.07 21:16
(파랑새)선배님 정말 장하십니다. 최종 목적지 통일전망대 까지 건강하신 모습으로 힘내시기 바랍니다. 단합된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본을 보여주신 노노3인방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06.06.07 23:14
(쵸이)부러버라^^; 06.06.08 10:04
(장화백)대청봉에 씩씩하게 앉아있는 젊은이가 도대체 누꼬? 06.06.08 18:09
(캡화백둘째딸)구름에 잠긴 계곡 정말 그림이네요...올 가을 망우리 가족모임은 또다시 설악산으로 하죠. 시원한 맥주사들고... 막걸리가 더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 06.06.08 20:07
(머루네)노노3인방 정말 대단하십니다!!! 오래전에 대청봉에 올랐다가 무릎이 아파서 쩔뚝거리며 천불동 계곡을 내려오던 정황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성공을 축하합니다. 06.06.08 20:21
(wanju42)아~ 대청봉, 해 내 셨습니다. 발 상태 않 좋을땐 넘 걱정했는데요. 그 고집에 찬사를 보냅니다. 06.06.08 22:17
(캡화백)태연, 태경, 동운아. 올 가을엔 꼭 설악산 등반을 하도록 하자. 물론 순희씨와 함께..... 06.06.08 23:47
(캡화백맏딸)네! 이번에는 동운이도 미리 화장실 다녀오고~ ^^ 어머니 순희씨께서는 꼭 무릎 좋아지시고~ ^^ 06.06.09 10:17
(맥라이언)와~완주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 저희는 7월중순쯤 갈천부터 다시 이을 계획인데요...양양으로 가려고 하는데 선생님들 설악산행을 보니 또 망설여 지는데욤^^ 국토종단이 얼마남지 않은 지금 이젠 강원도의 비경들을 조금 아끼면서 걸어야 겠습니다. 생각만해도 즐거워지는 강원도행입니다^^ 06.06.11 2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