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우리 말 日本 말
작가가 일본 텔레비전에서 전통 인형극을 보다가 목각 인형의 머리를 ‘데코(でこ)’라고 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단다.
보통 이마를 말하지만 짱구를 뜻하기도 하는 이 말이 원래 우리말 ‘대골’에서 유래된 것임을 감지할 수 있었단다.
‘대골’은 ‘대굴’, ‘대가리’, ‘대구리’라고 하는 우리말 ‘머리’의 비속어이다.
지금은 천한 말이지만 옛날에는 머리를 가리키는 또 하나의 온전한 낱말임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대골’에서 받침이 빠져 ‘대고’가 되고 일본에서는 ‘데코(でこ)’로 발음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목각 인형의 머리는 ‘데쿠루’라고도 일컬어져 일본사람들은 궁금해 하는데, 우리는 조금도 궁금하지 않다.
‘대굴’의 리을 받침이 두 마디 소리로 늘어 ‘대구루’가 되었고 그것이 ‘데쿠루’로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 학자들은 ‘데코’와 ‘데쿠루’의 차이에 대한 연구논문을 구구하게 엮어내는 헛수고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작가는 일부 일본학자의 주장을 소개한다.
일본어와 한국어는 꽤 닮은 듯이 보이나 서로 대응하는 단어는 250단어를 넘지 않는다.
특히 신체어(아시-다리), 천체어(쓰키-달), 수사(히, 후, 미, 요... - 하나, 둘, 셋, 넷)는 어느 것 하나도 같지 않다.
두 언어가 한 계통이라면 이 세 가지 기본 낱말이 같아야 하나 기본어가 서로 다르다.
따라서 두 언어는 한 계통이 아니다.
그러나 작가는 한-일 두 나라의 신체어, 천체어, 수사는 참으로 광범위하고, 참으로 굳건하며 교묘하게 서로 고리 지어 있다고 결론을 말한다.
현대어끼리는 전혀 딴판일지라도 고대어끼리는 완전히 합치되는 경우가 많으며. 뜻이 약간 달라져 전해진 낱말, 소리가 변화된 채 전해진 낱말까지 보태면 머리에서 발끝까지 한 언어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면서 고대 한국어와 고대 일본어가 하나였다는 사실은 고대 한국인이 고대 일본을 통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는 주장이다.
그것은 말은 지배자의 말로 지배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체어(身體語)
격동하는 7세기의 일본 조정에 뛰어난 지략가로 후지와라노가마타리(藤原鎌足) 일문이 있었다.
약 1천 년 이상 일본 정계의 핵심부에서 내내 권력을 누렸다고 한다.
흔히 백제계 인물로 보아왔으나 가야 멸망 이후 백제로 편입된 가야인일 가능성이 크다.
그의 이름 가마타리의 ‘타리’는 우리말 ‘다리’와 한 낱말이다.
이름 가운데 다리 ‘족(足)’으로 ‘타리’를 표기하고 있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다리를 ‘아(あ)’ 또는 ‘아시(あし)’라고도 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다리’는 신체의 맨 아래쪽 가장자리에 위치하여 백제 계통의 말로 ‘아’, ‘앗’이라고 불렸는데 그것이 그대로 ‘다리’라는 뜻의 일본어 ‘아(あ)’, ‘아시(あし)’가 되었고 현대 일본어에서도 ‘다리’는 여전히 ‘아시(あし)’이다.
천체어(天體語)
천체어도 마찬가지이다.
‘해’의 일본말은 히(ひ)이다.
‘해’와 ‘히’ 두 낱말끼리는 좀 비슷하지만, 달의 경우는 비슷하지 않다고 일본학자는 단언한다.
달은 우리 옛말로 ‘다라’ 또는 ‘도기’였다.
이 ‘도기’가 일본어 ‘쓰키(つき)’의 어원이다.
우리말의 ‘도’음은 일본에서는 흔히 ‘쓰(つ)’로 발음되곤 했다.
그래서 ‘쓰키(つき)’로 둔갑하고 만 것이다.
‘우박’의 일본말은 ‘아라레(あられ)’다.
왜 ‘우박’을 ‘아라레(あられ)’라고 할까 하는 문제를 가지고 일본학자들은 적잖이 고민하는 모양이라고 말한다. 그 일단을 소개해 보면
<우박이 하늘에서 쏟아지면 사람들이 놀란다.
놀랐을 땐 흔히 ‘아라, 아라(あらあら), 아라라(あらら)’라 소리친다.
그래서 우박을 ‘아라레(あられ)’라고 부르게 된 것 같다>
이 해석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일본어원사전」에 수록된 구절이란다.
‘아라레’는 우리말 ‘알알이’와 한 낱말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우박은 알알이 둥근 얼음덩이이다. 그래서 ‘아라리’, ‘아라레’라 불린 것이다.
내친김에 한 가지 덧붙이면, 놀랐을 때 소리치는 일본말 ‘아라, 아라(あらあら), 아라라(あらら)’ 또한 우리 호남지방 일대 말씨의 한 가지였다고 말한다.
(그럴듯하다. 말할 때 ‘알라라↗’라는 소릴 들은 듯하다^^)
수사(數詞)
수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고구려 수사와 일본 수사가 아주 흡사하다는 것은 학계에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삼국사기」 잡지(雜志) 제6 지리(地理) 고구려편을 보면 그것을 확인하게 된다며 한 가지 예를 든다.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의 통일신라시대 이름은 삼현현(三峴縣)이고 고구려 때 이름 밀파혜(密波兮)인데 이는 ‘세 바위’란 뜻의 옛말 ‘밀바회’의 이두 표기였다.
‘셋’이라는 수사의 고구려 말이 ‘밀’이었다는 이야기다.
‘셋’을 가리키는 고구려말 ‘밀’에서 받침이 지워지면 ‘미’가 된다.
따라서 ‘미(み)’는 ‘셋’을 가리키는 일본 고대 수사라는 것이다.
작가는 다시 강조한다.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 우리 고대 방언이 겹겹이 쌓이고 또 쌓여 일본어의 뼈대를 이룩해 왔다. 이 지극히 명백한 사실에 우리 스스로가 먼저 눈 떠야할 것이다.”
이 글은 1993년 5월 30일부터 조선일보 일요판에 연재된 기획물 ‘노래하는 역사’를 간추린 내용이다.
더불어 스크랩한 신문의 뒷면에 실린 30년 전의 사회 실상을 추억하는 내용을 덧대었다.
* 작가 李寧熙(1931-2021) 선생은 이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화작가, 한국일보 기자, 논설위원을 역임하였다.
* 만엽집(萬葉集·まんようしゅう /만요슈)
8세기 나라 시대에 편찬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 모음집( 20권 4,516수).
5세기부터 8세기까지의 시가이지만 대부분 7세기 초반에서 8세기 중반에 지어짐.
당시 일본에는 문자가 없어 우리의 향찰(이두 문자)와 비슷하게 일본어 발음을 한자로 표기.
그러나 문자에 대한 해석이 완전하지 않아, 여러 가지로 번역되고, 현재도 정확한 의미가 불분명한 것들이 있다. 만요슈의 많은 노래는 중국, 한반도(특히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30년 전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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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불편함을 내키지 않아 하는 아내로 인해 가족 캠핑을 더는 못 갔지만, 이젠 나도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