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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 후 사파이어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그럼 이 자리에 황홀공주님을 모시겠습니다!”
그녀의 폭탄 같은 발언에 청중들은 일순간 웅성거렸다가 장내는 다시 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진다. 그 동안 한 차례도 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은 황홀공주가 출현한다니, 군중들은 기대감에 가슴이 몹시도 긴장되었다. 김일한 역시 마찬가지다.
천하의 절세미녀들을 모두 합해도 그녀의 미모에는 따라가지 못한다는 전설적인 미녀, 미스 백악산아사달 진 출신, 황홀공주의 모습이 궁금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특히 현장의 군중들 가운데 함께 참석해 있던, 황홀공주의 섭선을 받은 공자들은 가일층 설레는 가슴을 금할 길이 없었으리라.
“공주님, 어서 올라오세요!”
그 때 팡파르가 한 차례 짧게 울렸다. 이어서 낮은 음의 고요한 곡이 마치 호수 위의 여름 안개처럼 장내에 낮게 깔린다. 대시전 뜰 사방의 조명이 일순간 색색으로 바뀌며 어두워진다. 이에 따라 무대 위의 조명도 황홀한 빛을 연출했다.
‘분위기 한 번 크게 잡는구먼.’
일한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 때 한 훤칠한 키의 여인이 우아하고 늘씬한 신형을 황홀한 조명 가운데 비추며, 발에 끌리는 긴 옷을 걸친 채 무대 뒤에서 올라오는데, 겉으로 현란해 보이나 실상 고요하고 침착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움직임은, 그곳에 모인 뭇 심령들로 하여금 무대가 마치 출렁거리는 듯한 환영을 느끼게 했다.
그녀가 무대 위로 천천히 올라오자, 조명이 점점 밝아졌다. 예의상 진즉부터 일어서 있던 김일한이 그녀의 자태를 바라보니, 고귀하고 찬연한 모란꽃 색깔의 빛나는 자색 의복이 발밑까지 치렁치렁 내려오고 있었는데, 허리에는 금빛 나는 띠를 두르고 있었다.
그 금빛은 밤의 조명 가운데서도 환하게 드러나 그녀의 기품을 더욱 높이 쌓아올리는 형세다.
가슴에서는 수놓인 환꽃 무늬가 유달리 돋보인다. 하지만 아쉽게도 얼굴을 망사로 가리고 또 머리에 흰색 베일을 썼으므로 그녀의 낯이 식별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망사와 베일은 매우 순결하고 아름답게 보였으므로, 그녀의 자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가슴에 신비감과 황홀감을 한껏 침투시키고 있었다.
그녀는 등단해 청중에게 허리를 숙여 우아하게 인사한 다음, 김일한에게도 매우 정중한 태도로 절을 했다. 김일한은 엉겁결에 허리를 숙여 답례를 차렸다.
그녀가 고개를 들더니 잠시 김일한을 바라본 후 사파이어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김일한의 자리와 마주 바라보이는 위치였다.
청중은 소문만 자자하던 그녀의 미모를 구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다가 다소 실망할 수 밖에 없었으나, 그녀의 훤칠하고 아름다운 자태는 뭇 남성들 특히 그녀의 섭선을 받은 후보 공자들과 여성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예, 공주마마께서 이 자리에 친림하셨습니다.”
사파이어가 다시 확인하듯 운을 뗀 후 김일한에게 묻는다.
“이건 넷째 고개의 연속인데요, 공주마마께서는 지금까지 며칠 동안 이 대회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밤 이곳에 갑자기 나타나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참으로 어려운 질문만 내어놓는다. 김일한은 즉각 떠오르는 대로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냥 별 생각 없이 놀러오셨습니다.”
그의 어린애 같은 발언을 듣고 청중이 일제히 와아! 웃어버린다. 사파이어, 루비, 에머럴드 등 사회자들도 함께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럼 공주마마께 김일한 공자님의 말씀이 옳은지 그른지 여쭈어보겠습니다.”
사파이어 림은 이렇게 말하며 황홀공주의 곁에 서 있는 루비 운을 바라본다. 루비 운이 공주에게 물었다.
“마마, 김일한 공자님의 대답이 옳은가요?”
황홀공주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다고 대답하십니다.”
“오, 김일한 공자님의 추측이 옳았답니다!”
청중들이 방금 전과는 달리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다. 청중석에 동석한 후보 공자들도 함께 박수를 쳤으나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파이어 림이 활짝 웃는 낯으로 김일한에게 요청한다.
“그럼 이번에는 김일한 공자님께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공자님께서 저희 공주마마께 무슨 말이든 좋으니, 한 말씀 해 주실 수 있습니까?”
김일한이 이번에도 역시 생각해보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답하려고 했다.
‘어차피 이판사판이다. 내가 타의에 의해 억지로 끌려 나왔으니 잘 보일 이유도 없고, 시간만 때우면 된다.’
그가 이런 상념을 신속히 굴리며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사파이어가 급히 말한다.
“잠시만요, 조심하십시오. 우리 공주마마께는 사람의 얼굴을 척 보면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순간적으로 해독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더구나 단 한 마디 말만 나누어 보더라도, 그 사람의 직업이나 됨됨이에 대해 90퍼센트 이상을 파악하십니다. 그러니 매우 신중하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사파이어 림이 김일한에게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성격상 그런 것에 구애받을 김일한이 아니다.
“공주님을 환영합니다. 오늘 저녁식사는 맛있게 드셨습니까?”
역시 청중들은 폭소를 터뜨리고 난리다. 휘파람을 불고 손뼉을 치는 사람도 있다.
황홀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주님은 혹시 벙어리이신가요?”
김일한이 대뜸 무례한 질문을 던지자 황홀공주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청중도 그녀가 입을 열지 않자 매우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김일한의 당돌한 질문에는 더욱 놀랐다.
‘젠장! 그저 신비감만 잔뜩 키우려고 하는구먼.’
일한이 이렇게 헤아리고 있을 때 사파이어가 대답을 대신했다.
“아, 죄송합니다. 저희 공주마마께서는 오늘 밤 입을 열지 못하실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양해해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황홀공주가 그녀의 말끝에 고개를 끄덕인다. 청중들은 그녀가 얼굴까지 가린 채 왜 입을 열지 않을까 몹시 궁금했지만, 개중에는 감기에 목이 잠겼나보다고 추측하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청중과의 첫 대면에서 잘 나오지 않는 쉰 목소리로 자기 이미지를 구긴다는 것은 확실히 바람직한 건 아니라고 말이다.
그 때 김일한이 다시 물었다.
“공주마마께선 왜 얼굴을 가리고 다니십니까? 혹시 그럴 만한 긴요한 사정이라도 있는지요?”
이번에는 공주 곁에 있던 루비 운이 재치있게 그녀의 입에 자기 귀를 가져다 댔다. 공주가 머리를 끄덕이며 뭐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작아 가까운 일한의 귀에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다 들은 후 루비 운이 대답한다.
“긴요한 사정이 있답니다. 그건 말씀 드리기 곤란하니 묻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십니다.”
김일한이 사파이어를 바라보고 말했다.
“전 더 이상 공주마마께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공주마마께서 김일한 공자님께 하실 말씀이 없는지 여쭈어 봐도 괜찮을까요?”
김일한에게 묻는 말이다.
“네, 얼마든지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사파이어가 황홀공주에게로 몸을 돌렸다.
“마마, 일한 공자님께 혹시 드리고 싶은 말씀이나 묻고 싶은 게 있다면 서슴없이 말씀해 주세요.”
다시 루비 운이 공주의 입에 귀를 가져다 대자 공주가 몇 마디 속삭이는 것 같았다. 루비가 허리를 일으키며 말했다.
“사해제일관의 소실에 대해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위로를 드린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맙습니다.”
김일한이 대답했다. 방금과 같은 방식에 의해 두 사람 사이에 약간의 대화가 오고갔다. 공주가 묻는다.
“공자님은 저와 혼인하실 의향이 전혀 없습니까?”
김일한은 자신의 뜻을 간파한 듯한 공주의 혜안에 속으로 놀랐다. 자신은 공주와 결혼할 의사가 추호도 없었고 낮에도 임금의 침전인 영안전에서 에머럴드 리를 만났을 때 오늘밤의 주인공으로 출연할 맘이 전무하다고 확언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공주가 에머럴드 리에게서 낮의 상황을 전해 듣고 그렇게 추정했으리라.
그러나 현장에 참석한 후보 공자들은 공주의 그 말을 달리 받아들였다. 마치 공주가 김일한에게 청혼하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공주의 말은 분명히 그런 뜻이 아니었다. 공주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혹시 저와 혼인하실 의향이 없습니까?”
물론 그 자리에 온 후보자들 가운데 공주와 혼인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녀가 만일 그렇게 발언했다면, 이는 청혼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후보 공자들은 서로 예민하게 암묵적인 신경전을 펴고 있었기 때문에 사소한 말도 크게 들리고 유사한 말도 오해할 소지가 많았다. 바로 이 경우가 그러했다.
“네, 그렇습니다.”
김일한의 이 대답을 후보 공자들 가운데 일부는 공주와 혼인하고 싶다는 정반대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건 혼인할 맘이 전혀 없다는 의사의 피력이었다.
“이유가 뭐죠?”
황홀공주가 루비를 통해 물었다.
“공주마마와 결혼할 자격도, 결혼해야 할 이유도 제게는 없습니다. 그러나 더욱 결정적인 것은, 전 공주마마와 같은 사람을 대단히 싫어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에 청중뿐만 아니라 후보 공자들도 몹시 의아해 했다. 공주는 그의 발언에 조금도 마음의 동요를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아, 그러시군요. 어떤 점이 싫은가요?”
“신비감을 풍기려는 게 싫고 도도한 게 싫고, 잘난 척하는 게 싫고, 화려한 게 싫을 뿐만 아니라, 남을 가르치려는 게 싫으며 교만한 게 싫습니다. 만에 하나 제가 공주마마 같은 분과 결혼한다면, 저는 아마 남편 구실도 제대로 못하고 숨죽여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삶은 그야말로 제게 지옥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잘 알았습니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공주가 앉은 채로 공손하게 김일한을 향해 허리 숙여 절한다.
그것으로 대화는 끝났다.
김일한은 자신이 지나치게 무례히 말했음을 스스로가 명료히 의식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와 결혼하고 싶은 욕구가 호리라도 없었으므로 좀 억지스럽고 무례한 언사를 통해 자기 점수를 깎아 내리고 싶은 심정도 일면 없지 않았던 것이다.
장내에는 김일한의 그런 에티켓 없는 발언을 통해 대리만족과 미묘한 희열을 느낀 여인들이 많았을 터인데, 특히 매아리 자매가 그러했을 것임은 불문가지라.
후보 공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왜냐하면 김일한의 옷차림이 비록 평범했으나 그의 얼굴에서 풍기는 귀공자 타입의 고고한 모습,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관옥같이 영준한 얼굴, 낯에서 남아다운 기백과 의기와 엄숙미가 강렬히 풍기는 듯한 인상 등이, 자신들의 그것과 본능적으로 비교되면서 다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그럼 공주마마께서 지켜보시는 가운데, 김일한 공자님에 대한 다섯 번째 테스트가 진행되겠습니다. 괜찮죠?”
“네!”
김일한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혹시 일전에 받으신 섭선을 휴대하고 계신가요?”
“아니오.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셨습니까? 집에 두고 오셨나요?”
“전 집도 절도 없는 몸입니다. 두고 올 집이 어디에 있습니까? 주인께 돌려드리려 했으나, 돌려드릴 길이 없어서 그냥 버렸습니다. 하지만 오늘밤처럼 이렇게 만나 뵐 줄 알았다면 반드시 간직하고 있다고 전해 드렸을 겁니다. 제 불찰입니다.”
“그건 저희 공주마마께서 손수 제작하신 것인데, 버리셨다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녀는 진정으로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일한에게 물었다.
“혹시 그 섭선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기억하고 계십니까?”
“네, 제가 발견한 것들은 환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잠깐 말씀해주실까요?”
“한쪽엔 일월복숭아 그림이 있고, 반대 면에 일월산수도 하나가 그려져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겉에 산발적으로 시구 같은 네 구절의 문구가 씌어있고, 바깥에서 시선과 태양, 부채가 일직선이 되도록 태양을 향해 부채를 들고, 부채로 태양을 가린 채 부채의 내부를 살펴보아야만 검을 든 인물화가 나타납니다. 그 밑에 삼삼오륙칠칠이라는 숫자도 보이고요.”
“네, 다 기억하고 계심에 틀림이 없습니다. 여기 모인 청중께서 그 부채가 어떤지 궁금하실 터이니, 제가 직접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녀가 품속에서 섭선을 하나 꺼내 뒤쪽으로 높이 쳐들었다. 카메라가 섭선을 잡아 화면에 띄운다. 사파이어가 화면을 보며 앞뒤로 부채를 돌렸다. 일한이 설명한 것과 동일했다.
“그럼 김일한 공자님께서 겉과 속에 있는 그림과 글자의 의미를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그 설명이 맞는지 틀린지는 공주마마께 여쭈어 판단하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습니까?”
“네, 좋습니다.”
“그럼 시작해주세요.”
“먼저 삼삼오륙칠칠부터 해석해 드리겠습니다.”
김일한은 마음 속에 계속 어떤 오기가 치밀고 있었는지라, 일전에 백의녀 매아리에게 준 바와 동일한 설명을 장난처럼 내뱉고 말았다.
그것은, 삼삼오륙칠칠이 남녀 간의 사랑과 결혼을 다루고 있는 연인수戀人數이자 또한 이번 부마간택대회에 모인 연인수延人數(연인원)라는 내용이었다.
“칠칠한 남자라도 삼삼한 여자를 오륙 번만 만나면 결혼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장내는 또 다시 웃음바다가 되었다. 놀라운 것은, 황녀가 대단히 우스운 듯, 허리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한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맨 앞의 수와 맨 뒤의 수를 더하면 10이고, 그 직후 직전 수를 더해도 마찬가지로 10인데, 그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뜻의 강력한 주장이죠.”
황홀공주가 계속해서 웃음을 참지 못하자, 사파이어 림이나 에머럴드, 루비 운 등도 덩달아 웃음보를 터뜨렸다.
“이제 남은 건 가운데 숫자 둘 뿐인데, 오륙은 삼십이죠? 이는 열 번 찍어 넘어갔을 경우 삼십일 이내에 결혼식을 치러야 한다는 뜻이고, 여섯 개의 숫자를 합산하면 삼십일31인데요, 이것은 30일 이내에 신속히 결혼하지 않으면 ‘일’이 생겨 판이 깨질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공자님은 대단히 총명하십니다. 어떻게 그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셨습니까?”
사파이어가 묻는다. 그에 대해 바로 대답하지 않고 일한은 계속해서 설명한다.
“게다가 서로 붙은 두 수끼리 곱하고 거기서 나온 세 수를 합하면 88이 되는데요, 이는 결혼 후 88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가라는 계시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장수할 수 있는 비결도 그 숫자 안에 담겨 있다는 겁니다.”
“뭔데요?”
“삼삼, 인삼이든 산삼이든 삼을 복용하라, 또 밥이 보약이니 삼시 세끼를 잘 먹으라. 오륙, 일주일에 오륙일은 반드시 일하고 일주일에 오륙 번 운동하라. 칠칠, 일곱째 날은 반드시 쉬어라. 그래야 88하게 살 수 있다. 뭐 대충 이런 뜻이죠.”
황홀공주는 아직도 계속해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사파이어도 웃으며 일한에게 묻는다.
“그렇다 치고요, 속 그림의 미장부가 불타는 검으로 불붙은 심장을 겨누고 있는 건 무얼 의미하나요?”
사회자들과 청중 가운데 상당수는 며칠 전 그에 관한 김이한의 설명을 들은 바 있었다. 그 불타는 검과 불붙은 심장 그림은, 화가 설이매 공주의 그림 속에 든 다음과 같은 문구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燃 情 不 燒 消 戀 弗 연 정 불 소 소 연 불
정은 불태워도 살라지지 않고 그리움은 끄려 해도 꺼질 수 없네
이는, 황홀공주와 결혼하는 이가 황홀공주의 사랑을 죽도록 받게 된다는 뜻이라고 김이한이 며칠 전에 이 자리에서 해설했었다.
에머럴드, 사파이어, 루비 등은 그가 과연 어떻게 해석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불타는 심장을 겨누고 있는 불붙은 검은, 어떤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습니다. 그건 고구려 호동왕자의 검이 최씨 낙랑국 낙랑공주의 심장을 겨누고 있는 장면입니다. 두 사람은 불같은 사랑을 했죠. 물론, 나중에 낙랑공주가 호동의 부탁에 따라 자명고自鳴鼓를 찢어버림으로써 부왕의 손에 죽게 되는데, 그건 그녀가 호동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호동이 죽인 거나 마찬가지죠. 그걸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럼 이 그림이 부채 속에 들어간 까닭은 무어죠?”
“공주님과 혼인하는 남자는 공주님께 죽도록 사랑을 받겠지만, 결국 공주님이 남편 때문에 죽고 남편도 호동왕자처럼 자결한다는 암시가 아닐까요?”
그건 무서운 해석이었다. 불타는 사랑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김이한의 해석과 유사했지만, 다른 점도 있었다. 양자의 상이점은, 역사적 근거와 결말이었다. 김이한은 해모수와 설이매 공주의 이야기로 해피엔딩을 도출했고, 김일한은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고사古史로 얼핏 듣기에 비극적인 듯한 결말을 끌어냈다.
김일한의 해석에 의하면, 황홀공주가 섭선을 통해 남편을 얻을 경우 둘 다 죽도록 사랑하겠지만 그 결과는 비극이라는 것이다.
“정말 무서운 해석이군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징일 뿐입니다. 공주님과 부마가 피차간에 죽음을 통해 진정한 연정을 완성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겁니다.”
“말하자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죽음으로 사랑을 완성한다는 뜻인가요?”
“아, 그 죽음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육肉의 죽음입니다.”
(다음 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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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6. 8. 7. 한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