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기술자로 살아온 25년 경험을 이 3만여평의 땅에 모두 쏟아붓고 있습니다.모교 발전을 위한 초석이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뛰지요."
서울시 광진구 건국대학교 앞.해가 막 지자 복합시설 '스타시티'의 준공현장도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중장비의 굉음 속에서도 오중근 건국AMC 부사장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진다.
그는 5년 전부터 건국대 재단 산하 건국AMC에서 부동산 개발사업을 이끌고 있다.
재단 소유의 부지를 개발해 대학 발전을 위한 수익원을 마련하고,지역의 지도를 바꾸는 게 그에게 주어진 임무다.
그 중 스타시티 프로젝트는 건국대 앞에 최고 58층의 주상복합 아파트와 상업시설을 짓는 사업.2008년 하반기면 3만여평의 황무지가 연면적 20만여평의 거대한 복합시설로 새로 태어난다.
건설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해서 누구나 이런 대규모 사업을 기획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행운'이라고 말하지만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온 삶의 결실이기도 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에 공채로 입사한 이래 하루 세 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었다.
새벽의 세 시간은 건설기술을,저녁 네 시간은 대학원 석·박사 공부를 했다. 그 노력을 회사가 인정해 그의 하루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 정도였다.주요 프로젝트의 현장 소장을 거쳐 약관의 나이에 건설기술연구소장과 상무직을 달았다.누구나 부러워하는 고속 승진이었다.하지만 전혀 다른 기회가 왔을 때 그는 안정적인 미래를 과감히 포기했다.모교인 건국대에서 부동산 개발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온 것.
"과거를 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제 생활방식입니다.기업 임원의 위치보다는 현장에서 자신의 아이디어와 전술을 직접 응용하는 일이 더 좋았습니다.모교가 바로 그런 기회를 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동안 쌓은 새로운 구상과 건축기술을 모두 활용해보고 싶었다.
우선 6동의 성냥갑 건물에 불과하던 스타시티의 설계도를 뒤집었다.
평범한 개발사업으로는 수익은커녕 적자만 볼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새로운 것 없이는 가치도 생겨나지 않습니다.초기 설계작업에만 3년간 매달렸지요.일본 롯폰기 힐을 만든 수석디자이너를 불렀습니다.안팎의 구분 없이 자유로운 동선을 만드는 등 기존 국내 상업시설의 개념을 벗어나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오 부사장 스스로 틀을 깨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상업시설에 노인요양시설을 세우기로 한 것.나이가 들수록 도심 한가운데서 각종 편의를 즐기며 활기차게 살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사회의 새로운 트렌드를 직접 만들겠다는 야심도 있었다.
초고층 주상복합의 환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건물 동 사이에 바람길을 넣는 등 전문가로서의 건축기술도 한껏 응용했다.
학교라는 보수적인 조직 안에서 뜻을 펼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엄청난 투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대학 측을 설득하느라 고민했습니다.하지만 5년간 보조를 맞추다 보니 어느새 서로의 입장을 잘 이해하게 됐지요.컨셉트를 잡고 디자인하는 초기 과정이 끝나면 이후 실무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대학의 태도가 성공을 낳았습니다."
외부 전문가를 배척하지 않고 적극 활용하는 것이 대학 수익사업의 활로라고 그는 강조했다.
건국AMC는 단 10명의 전문가가 4조원 규모에 달하는 사업을 책임지고 있다.
여느 중견 건설업체보다 효율적인 조직인 셈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인해 스타시티는 매년 200억원의 수익을 학교 발전기금으로 제공하게 됐다.
주상복합 아파트 분양에 따른 3500억원의 수익은 이미 건국대 병원과 단과대학 증축사업 등에 이용되고 있다.
날로 변화하는 대학의 모습은 학생들에게도 자부심을 주고 있다.
박종관 대외협력처장은 "외부 지원 없이 스스로 엄청난 자원을 조달한다는 점은 대학 운영에 큰 변혁"이라며 "2015년까지 국내 5대 사학,세계 100대 사학에 진입하자는 '건국대 르네상스' 계획에 결정적인 힘이 됐다"고 밝혔다.
오 부사장은 디벨로퍼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세 가지를 갖출 것을 주문한다.
"창조적인 생각,이를 구현하는 실행력,그리고 기획부터 유지관리까지 전 단계를 조율하는 관리자로서의 능력이지요.변화에 앞서가는 젊은 디벨로퍼들이 한국을 바꿀 것이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