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의 도난 사건>
세계 최대의 미술품 도난 사건은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목판에 유채․77×53cm․1500-1510경)’가 1911년 10월 21일 감쪽같이 없어진 사건이다. 이 그림은 도난 당한 지 2년만에 되찾았는데, 철옹성 같은 박물관의 경비망을 뚫고 보호유리막 속에 있는 모나리자를 귀신같이 빼내 도망친 사람은 이탈리아 사람, 빈센조 페루지아(Vincenzo Perugia)였다. 화가 루이 베루(Louis Beroud)는 어느 날과 같이 이젤을 들고 모나리자 앞에 섰으나 ‘모나리자’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경비원에게 물었다. “‘모나리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마 지금 사진 촬영 중일 겁니다.” 경비원은 한가롭게 대답했다. 그로부터 3시간이 지났을 때, 경비원은 ‘모나리자가 사라졌다.’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세상 사람들은 경악과 흥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경찰서장은 1백 명이 넘는 경찰을 풀어 박물관을 샅샅이 뒤지라고 명령했다. 박물관의 연구원과 직원들이 모두 도둑으로 몰렸고, 지하실까지 속속들이 수색했다. 그러나 발견될 리가 없었다. 그때, 그림을 고정시키는 장식들이 비스콩티 산책로에서 발견되었다. 절도 사건으로 단정하고 수사가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모두 허사였고 단서조차 잡지 못한 채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도 차츰 잊혀질 즈음이었다.
그 때 프랑스 경찰은 빈센조를 검거하여 신문하였다. 모나리자를 훔쳐 낸 그가 우피찌 박물관에게 그림 값으로 10만 달러를 요구하다가 붙잡힌 것이다. “나는 아침 7시쯤에 루브르로 들어갔다. 나는 발각되지 않고 정사각형의 살롱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중요한 작품들 중의 하나인 그 그림도 걸려 있었다. 나는 20분이 채 못되어서 그 그림을 잡아떼고 틀을 벗기고 들어낼 수 있었다.” 그의 도둑 기술에 세상이 또 한번 놀랐다. 그는 법정에서 범행의 동기에 대해 장황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탈이라의 미술품을 파괴․ 약탈한 나폴레옹에 대해 복수하고, 그 그림을 본래 주인에게 되돌려 놓으려 했다.” 프랑스 법정은 그에게 1년의 감옥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곧 7개월로 감형되어 석방되었다. 이탈리아로 돌아온 그는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매우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모나리자의 값이 무려 1조 3천 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거금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보 도난 사건>>
한국에서 일어난 미술품 도난 사건 중에서 최대의 희극은 1967년 10월 에 발생한 ‘연가7년명금동여래입상(延嘉七年銘金銅如來立像, 국보 제119호)의 도난 사건이다. 덕수궁 미술관 2층에 전시 중이던 이 불상이 감쪽같이 없어진 것이다. 경비원은 유리 진열장 속에 있어야 할 고구려 불상은 사라지고 한 장의 메모만 덩그러니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문화재관리국장께 직접 알리시오, 오늘밤 12시까지 돌려준다고. 세계 신기록을 남기기 위해. 11시에 다시 전화하겠소.’ 문화재관리국과 경찰이 발칵 뒤집혔지만, 경찰은 범인에 대한 단서조차 잡지 못했다. 범은 두 차례나 더 관리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돌려주겠다.”라는 말만 남기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수사는 갈피도 잡지 못하고 시간만 계속 흘러갔다. 드디어 반환해 주겠다는 12시가 한 시간 남짓 남았을 때이다. 문화재관리국장의 집 전화 벨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불상은 한강 철교 제 3교각 16,17번 침목 받침대 사이 모래밭에 있으니 찾아가시오.” 박물관 관계자들이 비상 출동하고, 모래밭에서 불상을 다시 찾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범인은 영영 잡지 못했다.
1997년 당국은 지난 5년간 관리소흘로 문화재 4천5백여 점이 도난 당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회수한 것은 고작 480점, 당국이 얼마나 도난 문화재에 대해 무관심하게 대처하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이다. 도난 문화재 숫자는 일제 때에 해외로 밀반출된 6만 5천 여 점의 7%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도난 당한 문화재 중에는 송광사에 소장되었던, 「16조사 진영(十六祖師眞影)」(보물 1043호) 등 국가가 지정하여 관리하는 보물도 90여 점이나 포함되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문화재 도난 사건의 70%는 사찰과 향교에 보관된 것들이다. 당국은 사찰에 소장된 문화재의 목록조차 제대로 파악치 못하며, 도난이 발생해도 어떤 문화재가 도난 되었는지 그 실체도 파악치 못한다. 따라서 범인이 잡혀도 정확한 도난 품목을 알기 어렵다. 또 문화재가 소장된 사찰에 기거하는 스님에게도 문제는 있다. 대개의 스님은 문화재에 대해 문외한이고 또 수도 이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해인사에 보관된 ‘팔만대장경목판’에 얽힌 이야기이다. 대장경판 중 동사간고(東寺刊庫)에 보관된 경판 1,600개가 지붕의 보수공사 때문에 서사간고(西寺刊庫)로 옮겨졌다. 그런데 결판을 얹을 시렁이 부족 하자, 땅바닥에 마구 쌓아올렸다. 게다가 추위를 막느냐고 연탄불까지 피워 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목제 유물 주변에서 불을 피우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로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건은 몇몇 사찰에서 소장한 문화재를 마치 사찰 개인의 재산 인양 착각하는데 기인한다.
<사진: 연가칠년명금동여래입상/ 고구려, 의령 출토, 높이 16.2cm, 국보 제119호, 국립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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