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과 지리산
만약 남한 땅에 설악산과 지리산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 산악계와 등산문화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우리의 산악운동은 지금보다 10년 이상 퇴보하여 있을지도 모른다. 암·빙벽 대상지가 부족하여 등반기술이 발전하지 못하고,
원정훈련을 할 마땅한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등정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할 수도 있다. 속리산·덕유산·오대산 등이 두 산의 역할을 대신하겠지만 그 깊이와 넓이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일 것이다. 전국의 등산인구, 장비점, 등산관련 업체들의 종사자 역시 현저하게 줄어있을 것이다. 외연을 넓혀 보면 불교문화가 지금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 수도 있다. 깊은 산, 절, 고승은 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영원히 침묵하고 있을 것이다. 만해가 산책하던 백담사에서 수렴동으로 이어지는 길과
그 길을 물들던 단풍이 없었다면 시의 탄생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리산이라는 든든한 후광이 사라져 버린 박경리의 ‘토지’는 형편없이 초라해질 것이고,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태어나지 못할 목숨이다. 이와 같이 두 산이 우리의 산악운동과 문화 전반에 끼치는 크고 작은 영향은 상상을 초월한다.
설악산과 지리산의 미학
설악산과 지리산은 산의 미학 측면에서 두 가지 아름다움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장엄함과 빼어남이다. 일찍이 서산대사는 명산론(名山論)에서 장엄함과 빼어남의 두 가지 잣대를 이용하여
산의 아름다움을 예찬했었다. ‘지리산은 장엄하되 빼어나지 않다’는 그의 말은
지리산이 빼어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장엄함이 빼어남을 압도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설악산은 그 빼어남이 장엄함을 압도하고 있다. 미학에서는 자연미(自然美)와 숭고미(崇高美)라는 아름다움의 범주가 있다. 자연미는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에 느끼는 미적 감정이고,
숭고미는 경이(驚異), 외경(畏敬), 위대(偉大) 따위의 느낌을 받을 때 느끼는 미적 감정이다. 우리가 산행 중에서 어떤 특정 순간에 장엄하고 빼어난 산의 모습에 전율했다면
그것은 자연미와 숭고미가 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두 가지 미적 범주는 서로 분리된 개념은 아니지만 빼어남은 자연미, 장엄함은 숭고미와 좀더 관련이 깊다. 따라서 설악산의 빼어남은 자연미, 지리산의 장엄함은 숭고미와 연결된다. 나아가 우리가 산에서 종종 종교성을 느끼는 것 역시 숭고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설악산이 주로 예술가들과 심미안이 빼어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지리산은 혁명가들과 속 넓고 뜻 깊은 사람들을 부르는 것은 산의 미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설악산과 지리산의 계보
사람들에게 지리산이 좋은지, 설악산 좋은지 물어보면 십중팔구 설악산 또는 지리산이라는 답이 나온다. 그것은 산의 특징과 인간의 취향이 서로 소통되고 있다는 뜻이다. 원대하고 웅장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지리파가 되고,
빼어나고 화려함에 끌리는 사람은 설악파가 된다. 설악파와 지리파의 우두머리는 유창서(73세)씨와 함태식(82세)씨다. 스님이나 빨치산처럼 산에 들어온 뚜렷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그 산이 좋아 입산한 의미에서 그렇다. ‘설악산 털보’로 통하는 권금성 산장지기 유창서씨는
1969년 한국산악회 대원 10명이 죽음의 계곡에서 눈사태로 몰사했을 때 그들을 직접 노루목에 묻었다. 사실 그는 조난사한 대원들과 함께 훈련하기로 했다가 사정이 생겨 참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그해 동료들이 묻힌 설악산으로 아예 입산해 버린다. 그리고 1971년부터 권금성 산장지기로 지금까지 설악에 묻혀 있다. ‘지리산 호랑이’로 통하는 피아골 산장지기 함태식씨는
구례가 고향으로 아홉 살부터 지리산을 오르내리다 1972년 노고단 산장지기로 입산했다. 1989년 노고단산장이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직영하자 피아골로 내려와 지금까지 지리산을 지키고 있다. 성동규(62세)씨와 임소혁(62세)씨는 두 산의 공식 사진사라 할 만하다. 고향이 신탄진인 성동규씨는 설악산에 반해
1973년 속초로 이사하여 지금까지 오직 설악산만 앵글에 담고 있다. 임소혁씨는 1980년 중반부터 독학으로 사진을 배워 지리산만 찍으며 생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 아예 왕시루봉 외국인별장으로 입산하여 10여 년을 보냈고,
지금은 곡성으로 하산하여 섬진강문화학교를 열었다. 두 사람이 설악산과 지리산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 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기 때문이다. 두 산에는 그들이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이 무궁무진하게 존재한다. 그 아름다움은 두 산의 우두머리,
사진작가뿐만 아니라 그 밑으로 수 십 리 줄을 선
설악파와 지리파 사람들을 오늘도 거부할 수 없는 자력으로 끌어들인다. 드넓은 설악산과 지리산의 영역에서 가장 설악과 지리다운 등산 코스는 어딜까
|
첫댓글 함태식 翁은 최근 피아골 대피소에서 방 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