放浪詩人 金삿갓[차차차]-명국환
김문흥 작사 전오승 작곡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흰 구름 뜬 고개 너머 가는 객이 누구냐열두 대문 문간마다 걸식을 하고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떠나가는 김 삿갓세상이 싫던가요 벼슬도 버리고기다리는 사람 없는 이 거리 저 마을로손을 젓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 삿갓
[옮긴 글]
차차차(cha-cha-cha)는
라틴 아메리카 스타일의 댄스 음악이다
룸바와 맘보에서 파생했다.
다음백과
쿠바의 댄스음악
엔리케 호린(Enrique Jorrín, 1926~1987)이 1940년대에 시작하였고 1950년대에 세계적으로 유행하였다
차차차 악기는 서인도제도 카리브지역에 섬에서 자라는 Tcha tcha 또는 Kwa kwa 열매로 만들었기에
차차차
[퍼온 글]
방랑시인 김삿갓 김병연(金炳淵)에 대하여
방랑시인 김삿갓 김병연(金炳淵 1807~1863)은 조선후기 풍자 방랑 시인이다
본관은 안동 김씨(新)안동김씨 로 본명은 김병연(金炳淵)이다
자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이다
선대의 조상을 살펴보면 9대 조부는 병자호란때 척화대신으로 유명한 청음 김상헌의 사촌형인 형조참판을 지낸 김상준이며
5대조부는 황해도 병마절도사 김시태 고조부는 전의현감 김관행 증조부는 경원부사 김이환이다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참 괜찮은 뼈대있는 집안이다
한자로 표기할 때는 삿갓 립(笠)자를 써서 김립(金笠)이라고도 한다
그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로 있다가 항복한 것을 두고 비난하는 스물되던 해인 1826년 과거인 향시(鄕試)에서 장원급제 즉 수석 급제한 것을 수치로 여겨 일생을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죽장을 벗을 삼아 각지로 방랑을 한다
도처에서 독특한 풍자와 해학 등으로 퇴폐하여 가는 세상을 개탄했다
방랑시인 김삿갓 마지막 여정 02-(150 마지막 편)
乘彼白雲 羽化登仙(승피백운 우화등선) 돌이켜보면 기구하기 짝이 없었던 50 평생이었다.그러기에 혼미한 의식 속에서 자신의 생애를 회고하며 김삿갓은 다음과 같은 마지막 시를 읊기 시작하였다.
조소수소개유거(鳥巢獸巢皆有居) 날짐승도 길짐승도 제 집이 있건만
고아평생독자상(顧我平生獨自傷) 나는 한평생 혼자 슬프게 살아왔노라.
망혜죽장로천리(芒鞋竹杖路千里) 짚신에 지팡이 끌고 천릿길 떠돌며
수성운심가중방(水性雲心家中方) 물처럼 구름처럼 가는 곳이 내 집이었다.
우인불가원천난(尤人不可怨天難) 사람도 하늘도 원망할 일이 못 되어
세모비회여촌장(歲暮悲懷餘寸腸) 해마다 해가 저물면 혼자 슬퍼했노라.
초년유위득락지(初年有謂得樂地) 어려서는 이른바 넉넉한 집에 태어나
한북지오생장향(漢北知吾生長鄕) 한강가 이름 있는 고향에서 자랐노라.
잠영선세부귀문(簪纓先世富貴門) 조상은 부귀영화를 누려 왔던 사람
화류장안 명승생(花柳長安名勝生)장안에서도 이름 높던 가문이었다.
인인래하농장경(隣人來賀弄璋慶) 이웃 사람들 생남했다 축하해 주며
조만귀기관개장(早晩歸期冠蓋場) 언젠가는 출세하리라 기대했건만
수모초장명점기(鬚毛稍長命漸奇) 수염이 나면서 운명이 점차 기구해져
회겁잔문번해상(灰劫殘門飜海桑) 멸문(재가 되도록 잔인한 위협으로)으로 상전이 벽해되듯 뒤집어졌네.
의무친척세정박(依無親戚世情薄) 의지할 친척없고 인심도 각박한데
곡진야양가사황(哭盡爺孃家事荒) 부모마저 돌아가셔 집안은 황폐했도다.
종남효종일납이(終南曉鐘一納履) 새벽 종소리 들으며 방랑길에 오르니
풍토이방심세량(風土異邦心細量) 생소한 객지라서 마음 애달팠노라.
심유이역수구고(心猶異域首丘孤) 마음은 고향 그리는 떠돌이 여호같고
세역궁도촉번양(勢亦窮途觸藩羊) 신세는 궁지에 몰린 양 같은 나로다.
시 조차 읊을 기운이 떨어진 김삿갓은 잠시 뜸을 두었다가 다시 읊기 시작했다
남주종고과객다(南州從古過客多) 남쪽 지방은 자고로 과객이 많은 곳
전봉부평경기상(轉蓬浮萍經幾霜) 부평초 처럼 떠돌아가기 몇몇 해던고
요두행세기본습(搖頭行勢豈本習) 머리 굽신거림이 어찌 내 본성이리오
설구도생유소장(楔口圖生惟所長) 먹고 살아가기 위해 버릇이 되었도다.
광음점향차건실(光陰漸向此巾失) 그런 중에도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
삼각청산하묘망(三角靑山何渺茫) 삼각산 푸른 모습 생각할수록 아득하네.
강산걸호관천문(江山乞號慣千門) 떠돌며 구걸한 집 수없이 많았으나
풍월행장공일낭(風月行裝空一囊) 풍월 읊는 행랑은 언제나 비었도다.
천금지가만석군(千金之家萬石君) 큰 부자 작은 부자 고루 찾아 다니며
후박가풍균시상(厚薄家風均試嘗) 후하고 박한 가풍 모조리 맛보았노라.
신궁매우속안백(身窮每遇俗眼白) 신세가 기구해 남의 눈총만 받다 보니
세거편상발발창(歲去偏傷髮髮蒼) 흐르는 세월 속에 머리만 희었도다.
귀혜역난저역난(歸兮亦難佇亦難) 돌아가자니 어렵고 머무르기도 어려워
기구방황중로방(幾口彷徨中路傍) 노상에서 방황하기 몇 날 몇 해이던고
[보탬 : "난고평생시(蘭皐平生詩)"라는 제목의 시인데
오자 2곳, 한자를 몰라 한글로 쓴 곳 1곳을 바로잡고 또 한자를 찾아서 보완하는데 2시간도 더 걸렸다휴우~! 이제 더는 이런 짓 안 해도 된다.후련하다 : 만당]
김삿갓은 여기까지 읇조리다가 마침내 기운이 진해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응구첩대(應口輒對)로 시를 읊어댄 것은 그의 타고난 천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를 읊을 기력조차 없어져 버렸던 것이다.그리하여 눈을 감은 채 오랫동안 무거운 침묵에 잠겨 버리고 말았다
배는 가벼운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이윽고 눈을 감고 있는 김삿갓의 심안(心眼)에는 홀연히 한 조각 하얀 구름이 떠올라 보였다
그리고 잠시 뒤에는, 누군가가 그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며 "승피백운 우화등선(乘彼白雲 羽化登仙!) 저 하얀 구름을 타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하고 읊조리는 소리가 분명하게 들려 왔다
김삿갓은 그 소리가 들려오자, 별안간 몸을 꿈틀하며 "뭐? 승피백운 우화등선? "하고 입속말로 뇌까리다가
다음 순간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이리하여 삼천리 방방곡곡을 두루 편답하며 수많은 시를 뿌려 놓은 천재 시인 김삿갓은 마침내 전라도 동복 적벽강(全羅道 同福 赤壁江) 나룻배 위에서 영구 귀천했으니 때는 지금으로 부터 155년 전인 1863년 철종14년 3월 29일이요향년 56세이었다.
*방랑시인 김삿갓은 사후(死後)에 전라도 땅에 묻혔다가
그의 둘째 아들 익균(翼均)에 의해 고향인 영월땅으로 이장(移葬)되었다.
뒷날 사람들은 그를 기려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216번지로 그의 유택幽宅(묘)에 주소를 붙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통상은 매장을 하지만 중앙아시아의 북방 유목 민족들은
새를 숭배하여 장례를 치룰 때 조장(鳥葬), 천장(天葬)을 한다.
죽은 영혼이 하늘나라로 접근하는 가장 지름길을 새라는 동물로 보았기에
새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뜯어 먹도록 함으로써 영혼이 하늘에 가깝게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승피백운 우화등선" 방랑시인 김삿갓의 마지막 남긴 말을 해석하여 보면, 그의 영혼(靈魂)은
분명히 새가 되어 창공을 마음껏 훨-훨 날아서 하늘나라에 갔을 것이다.
지겨웠거나 혹은 심심했거나 김삿갓 연재 끝읽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이제 안부 드릴일이 없어 졌네요부디 부디 건강하세요
김해병님 퍼온글
[옮긴 글] 수고하셨습니다
김병연 蘭皐 金炳淵 1807~1863 1807년 순조7년 3월 13일 김안근과 함평이씨 사이의 둘째 아들. 다섯 살 때부터 글을 배우고 열 살 전후에는 사서삼경을 통달하는 수준. 20살 되던 해에 과거 예비고사격인 백일장에 참가하는데 이날 백일장 시제는 '정가산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논하고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이를 정도였음을 통탄해보라'였다.
이는 1811년(순조11년) 12월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과 관련. 가산군수 정시는 반란군과 용감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으나 선천방어사 김익순은 국가안보의 중책을 맡은 무관임에도 불구하고 반란군이 쳐들어오자 싸우기는 커녕 즉석에서 항복. 이듬해 봄 난이 평정되자 김익순은 역적이라는 낙인이 찍혀 처형 당하고 말았다.
김병연은 평소부터 가산군수 정시를 '천고의 빛나는 충신' 이라고 존경해왔던 반면 김익순을 '백번 죽여도 아깝지 않은 만고의 비겁자'라고 몹시 경멸해 오던터라 김익순을 탄핵하는 글을 거침없이 적어 내려갔는데, 반역자 김익순이 바로 김병연의 할아버지.
반역자는 삼 대를 멸하라는 그 당시의 법대로 김병연 역시 죽어 마땅하였지만 어머니가 아들 삼 형제를 데리고 도망쳐 숨어살고 있었던 것.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얘기를 들은 김병연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죽을 생각도 하며 울기도 하다가 그의 아내와 낳은 지 얼마 안 되는 아이와 홀어머니를 뒤로한 채 방랑의 길을 떠난다.
역적의 자손인데다 조부를 욕하는 시를 지어 상을 탔으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여 삿갓을 쓰고 이름도 김병연 대신 김삿갓이라 부르게 되었다.
술을 좋아하고 금강산을 특히 좋아했던 그는 서민속에 섞여 상류사회를 풍자하는 시를 짓고 재치와 해학으로 서민의 애환을 읊으며 한평생을 보내게 된다.
삼천리 방방곡곡을 두루 살펴보며 수많은 시를 뿌려놓은 난고 김삿갓은 1863년 3월 29일, 57세의 나이로 마침내 전라도 동북땅 적벽강 흔들리는 배에 누워 기구했던 한평생을 회고하며 세상을 떠난다.
그의 시신은 차남인 익균이 거두어 영월군 하동면 노루목에 외로웠던 육신을 모셔놓았다.
세상 사람들은 김삿갓을 '한평생 술이나 얻어 먹으며 돌아다니다가 객사한 거지 시인'으로 알고 있기가 고작인데,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김삿갓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생활시인이었고, 문학적으로도 모든 욕망을 초월한 세계적인 선(禪)시인이었다.
김삿갓이 춘천 소양강변에서 나룻배를 탔다.
노 젓는 이가 처녀 뱃사공이다.
김삿갓 그예 한 마디 농을 걸친다.
"여보 마누라. 노 좀 잘 저으소."
처녀 뱃사공 펄쩍 뛰며 "어째서 내가 댁의 마누라요?"
김삿갓 태연히 답한다.
"내가 당신 배에 올라탔으니 내 마누라지."
강을 건너 김삿갓 배에서 내린다.
이때 처녀 뱃사공 회심의 한마디.
"내 아들아, 잘 가거라."
김삿갓 눈이 똥그래져서
"아니, 내가 어찌 그대의 아들인고??”
우리의 처녀 뱃사공 왈
"내 뱃속에서 나갔으니 내 아들 아닌 감!”
김삿갓 오장육부가 시원해질 정도로 껄껄 웃는다.
"헉!
맞는 말일세 그려!
하하하! 어머님 !! 만수무강 하소서.
하하하!“
김삿갓의 혼인 첫날밤 29세 때 기생 가련과 동거했던 것으로 추정 김삿갓이 일생을 죽장망혜(竹杖芒鞋)로 세상을 유람하다가 단천(端川) 고을에서 결혼을 한 일이 있었다 한다.
신혼 첫날 호롱불이 꺼지고 천재 시인과 미인이 함께 찰떡처럼 그런데, 갑자기 김삿갓이 잠자리에서 펄떡 일어나
불을 켜더니 실망의 표정을 지으면서 벼루에 먹을 갈고 그 좋은 名筆(명필)로 一筆揮之(일필휘지)
毛深內闊 必過他人(모심내활 필과타인) 털이 깊고 안이 넓어 트였으니 필시 타인이 지나간 자취로다.
이렇게 써 놓고 입맛만 다시면서 한 숨을 내쉬는 신랑의 그 요상한 행동에 신부도 요상한 생각이 일어 김삿갓이 써 놓은 화선지를 물끄럼이 보다가 슬그머니 이불에 감쌓인 몸을 그대로 일으켜 세워 백옥같은 팔을 뻗어 붓을 잡더니 필답으로 그 예쁜 손으로 一筆揮之(일필휘지) 後園黃栗不蜂坼 溪邊楊柳不雨長 (후원황률불봉탁 계변양유불우장)
뒷동산의 익은 밤송이는 벌이 쏘지 않아도 저절로 벌어지고 시냇가의 수양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니더
ㅋ 김삿갓 ko패
김병연(金炳淵, 1807년(순조 7년) ~ 1863년(철종 14년))은 조선 후기의 풍자·방랑 시인이다.
속칭 김삿갓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삿갓 립'(笠)자를 써서 김립(金笠)이라고도 한다.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이다.
선대의 조상을 살펴보면 9대조부는 병자호란때 척화대신으로 유명한 청음 김상헌의 사촌형인 형조참판을 지낸 김상준이며 5대조부는 황해도병마절도사 김시태, 고조부는 전의현감 김관행, 증조부는 경원부사 김이환이다.
그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 선천 부사로 있다가 항복한 것을 두고 비난하는 시로 장원 급제한 것을 수치로 여겨, 일생을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단장을 벗을 삼아 각지로 방랑을 했다.
도처에서 독특한 풍자와 해학 등으로 퇴폐하여 가는 세상을 개탄했다.
그의 수 많은 한문시가 구전되고 있다.
그는 20세에 방랑을 시작한 후로 가족과 연락을 일체 취하지 않았으나 한때 그의 아들 익균을 만나 귀가를 권유받기도 했지만 거절하고 방랑을 계속했다.
그 후 사실상 마지막 방문지인 전라남도 화순에 들렀던 중 그 곳에서 죽었는데 아들 익균이 부고(訃告)를 듣고 화순으로 달려가 아버지의 시신을 강원도 영월로 운구하여 그 곳에서 안장되었다.
김삿갓 붓을 던지고 羽化登仙 김삿갓은 가물가물하는 정신을 가다듬고, 마지막 정력을 다 쏟아 詩魂(시혼)을 불사른다.
從南曉鐘一納履 風土異邦心細量 (종남효종일납이 풍토이방심세량)
새벽종소리 들으며 방랑길에 오르니 생소한 객지라서 마음 애달팠노라
心猶異域首丘狐 勢亦窮途觸藩羊 (심유이역수구고 세역궁도촉번양)
마음은 고향 그리는 떠돌이 여우같고 신세는 궁지에 몰린 양 같은 나로다.
搖頭行勢豈本習 糊口圖生惟所長 (요두행세기본습 설구도생유소장)
머리 굽신거림이 어찌 내 본성이리요 먹고 살아가기 위해 버릇이 되었도다.
光陰漸向且巾失 三角靑山何渺茫 (광음점향차건실 삼각청산하묘망)
그런 중에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 삼각산 푸른 모습 생각할수록 아득하네.
江山乞號慣千門 風月行裝空一囊 (강산걸호관천문 풍월행장공일낭)
떠돌며 구걸한 집 수 없이 많았으나 풍월 읊는 바랑은 언제나 비었도다.
千金之家萬石君 厚薄家風均試嘗 (천금지가만석군 후박가풍균시상)
큰 부자 작은 부자 고루 찾아다니며 후하고 박한 가풍 모두 맛보았네.
身窮每遇俗眼白 歲去偏傷鬢髮蒼 (신궁매우속안백 세거편상발발창)
신세가 기구해 남의 눈총 받다보니 흐르는 세월 속에 머리만 희었도다.
歸兮亦難停亦難 幾日彷徨中路傍 (귀혜역난저역난 기구방황중로방)
돌아가자니 어렵고 머무르자니 어려워 노상에서 방황하기 몇 날 몇 해이던고.
김삿갓은 여기까지 쓰다가 마침내 기력이 다하여 붓을 던지고 말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應口輒對(응구첩대)로 시를 읊어 댄 것은 그의 타고 난 천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힘이 다하여 눈을 감은 채 무거운 침묵에 잠겨 버린 것이다.
배는 가벼운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소동파의 적벽부에 보면
"바람이 가볍게 불어 세상을 잊고 우뚝 선 채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다.
(飄飄乎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
라는 말이 나온다.
김삿갓은 지금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리하여 삼천리 방방곡곡을 두루 답파하여 수많은 시를 뿌려 놓던 천재시인 김삿갓은 마침내 전라도 동복의 적벽강 범선 위에서 永久歸天(영구귀천) 하였으니 때는 철종14년 (1863), 향년 56세이었다.
(펌)
방랑시인 김삿갓-명국환
삿갓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 넘어 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세상이 싫던 가요 벼슬도 버리고 기다리는 사람 없는 이 거리 저 마을로손을 젓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
방랑에 지치었나 사랑에 지치었나 개나리 봇짐 지고 가는 곳이 어데냐팔도 강산 타향살이 몇몇해던가 석양지는 산마루에 잠을 자는 김삿갓
남긴 시 한수
詠笠 (영립) 내 삿갓
浮浮我笠等虛舟 (부부아립등허주)一着平生四十秋 (일착평생사십추)
牧堅輕裝隨野犢 (목수경장수야독)漁翁本色伴沙鷗 (어옹본색반사구)
醉來脫掛看花樹 (취래탈괘간화수)興到携登翫月樓 (흥도휴등완월루)
俗子依冠皆外飾 (속자의관개외식)滿天風雨獨無愁 (만천풍우독무수)
가뿐한 내 삿갓이 빈 배와 같아한 번 썼다가 사십 년 평생 쓰게 되었네.
목동은 가벼운 삿갓 차림으로 소 먹이러 나가고어부는 갈매기 따라 삿갓으로 본색을 나타냈지.
취하면 벗어서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고흥겨우면 들고서 다락에 올라 달 구경하네.
속인들의 의관은 모두 겉치장이지만하늘 가득 비바람쳐도 나만은 걱정이 없네
贈某女 (증모녀) 어느 여인에게
客枕條蕭夢不仁 (객침조소몽불인)滿天霜月照吾隣 (만천상월조오린)
綠竹靑松千古節 (녹죽청송천고절)紅桃白李片時春 (홍도백리편시춘)
昭君玉骨湖地土 (소군옥골호지토) 貴妃花容馬嵬塵 (귀비화용마외진)
人性本非無情物 (인성본비무정물) 寞惜今宵解汝姖 (막석금소해여거)
나그네 잠자리 너무 쓸쓸해 꿈자리가 뒤숭숭하고 하늘엔 차거운 달 우리 이웃 비추네
녹죽청송은 천고의 절개를 자랑하고 붉은 복사꽃 하얀 오얏꽃은 한 봄을 즐기네
왕소군의 고운 모습도 오랑캐 땅에 묻히고 양귀비 꽃같은 얼굴 마외파의 티끌되었네
사람의 성품이 본래 무정하지는 않으니 오늘밤 그대 옷자락 풀기를 아까워 하지 말게
難避花 (난피화) 피하기 어려운 꽃
靑春抱妓千金開 (청춘포기천금개)白日當樽萬事空 (백일당준만사공)鴻飛遠天易隨水 (홍비원천이수수)蝶過靑山難避花 (접과청산난피화)
청춘에 기생을 안으니 천금이 필요없고 백주 대낮에 술잔을 대하니 만사가 부질없네
날아가는 기러기는 물 따라 날기 쉽지만 청산을 지나는 나비는 꽃을 피하기 어렵네
蛙(와) 개구리 - 金笠(김입)
草裡逢蛇恨不飛(초리봉사한불비)-풀속에서 뱀을 만나면 날지 못함을 한탄하고
澤中冒雨怨無蓑(택중모우원무사)-못 가운데서 비를 만나면 도롱이 없음을 원망하노라.
若使世人敎拑口(약사세인교겸구)-세상 사람들 모두 입 다물게 했더라면
夷齊不食首陽薇(이제불식수양미)-백이 . 숙제도 수양산 고사리를 먹지 않았을텐데
항상 불평과 불만에 가득차서 남을 헐뜯고 모략하는것을 개구리의 울어대는 소리에 비유하여, 교훈을 주는시
天長去無執(천장거무집)
天長去無執 (천장거무집 - 천장엔 거미집)花老蝶不來 (화로첩불래 화로에 곁불내)
菊樹寒沙發 (국수한사발 - 국수 한 사발)枝影半從池 (지영반밤종지 - 지렁이 반 종지)
江亭貧士過 (강정빈사과 - 강정 빈 사과)大醉伏松下 (대취복숭아 - 대추 복숭아)
月移山影改 (월리산녕개 - 워리 사냥개)通市求利來 (통시구리래 - 통시엔 구린내)
하늘은 멀어서 가도 잡을 수 없고꽃은 시들어 나비는 오지 않네.
국화는 찬 모래밭에 피어나고 나뭇가지 그림자가 반이나 연못에 드리웠네.
강가 정자에 가난한 선비가 지나가다가 크게 취해 소나무 아래 엎드렸네.
달이 기우니 산 그림자 바뀌고장꾼들은 시장을 통해 이익을 챙겨 오네.
뜻으로 보면 자연을 누비던 자신이 술에 취해 있는 것을 읊은 것이지만,글자를 우리말 음으로 읽으면 돈이 없어 세상에 버려질 수밖에 없는 '가난'의 참상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白髮汝非金進士 (백발여비김진사)
我亦靑春如玉人 (아역청춘여옥인)
酒量漸大黃金盡 (주량점대황금진)
世事縡知白髮新 (세사재지백발신)
허연 머리 너 김진사 아니더냐나도 청춘에는 옥인과 같았더라
주량은 점점 늘어 가는데 돈은 떨어지고세상 일 겨우 알만한데 어느새 백발이 되었네
자지면(自知) 만지고(晩知) 보지면(補知) 조지라(早知)
혼자 알려고 하면 늦게 알고, 도움을 받아 알려고 하면 일찍 알게 된다.
스스로 알고자 하면 깨달음이 늦고
도움을 받아 알고자 하면 그 깨우침이 쉬우니라.
서 당 내 조 지 (서당은 내좆이요)
房中皆尊物 방중개존물 (방중은 개 좆물라)
生徒諸未十 생도제미십 (생도는 제미십이고)先生來不謁 선생내불알 (선생은 내 불알이다)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왔는데
방안엔 모두 높은 분들 뿐이고.
학생은 모두 열 명도 안 되는데선생은 찾아와 보지도 않네.
어느 추운 겨울날 김삿갓이 시골 서당에 찾아가 재워주기를 청하나 훈장은 미친 개 취급을 하며 내쫓는다.화가 치민 김삿갓이 더러운 욕설시를 한 수 써 붙이고 나온다.(소리 나는 대로 읽어야 제 맛이 난다) 이십수하(二十樹下) 詩 함경도 지방의 어느 부잣집에서 냉대를 받고 나그네의 설움을 한문 수자 새김을 이용하여 표현한 시.
이십수하삼십객(二十樹下三十客) 사십가중오십식(四十家中五十食) 인간개유칠십사(人間豈有七十事) 불여귀가삼십식(不如歸家三十食)
이십수(二十樹):느릎나무과에 속하는 나무 이름. 삼십객(三十客):서러운의 뜻 즉 서러운 나그네. 사십가(四十家): 사십은 마흔, 망할의 뜻으로 망할 놈의 집.
스무나무 아래에서 설은 나그네가 망할 놈의 마을에서 쉰 밥을 먹는다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차라리 집에 돌아가 설은 밥을 먹으리
오십식(五十食):오십은 쉰, (상하다)의 뜻으로 쉰 밥. 칠십사(七十事):칠십은 일흔, 이럼의 뜻으로 이런 일. 삼십식(三十食):삼식은 서른이니 선(미숙하다)의 뜻으로 설익은 밥
죽시(竹詩)
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차죽피죽화거죽 풍타지죽랑타죽)飯飯粥粥生此竹 是是非非付彼竹 (반반죽죽생차죽 시시비비부피죽)賓客接待家勢竹 市井賣買歲月竹 (빈객접대가세죽 시정매매세월죽)萬事不如吾心竹 然然然世過然竹 (만사불여오심죽 연연연세과연죽)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생기는 대로 먹고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른 대로 부쳐주고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하고 시정 매매는 시세대로 하며
세상만사 내 마음대로 안 되나니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나가세.
비아그라 칠언시
知未時八安逝眠(지미시팔안서면) 自知主人何利吾(자지주인하리오)
女人思郞一切到(여인사랑일체도) 絶頂滿喫慾中慾(절정만끽욕중욕)
男子道理無言歌(남자도리무언가) 於理下與八字歌(어이하여팔자가)
岸西面逝世又旅(안서면서세우려) 飛我巨裸王中王(비아거러왕중왕)
아침 여덟 시 전에 편안히 죽은듯 잠자고 있으면스스로 대접받는 주인 노릇할수 없음을 알아야 하느니
여인이 남정네 사모하면 모든것 일체가절정에 순간을 만끽하는데 이르니 욕망중에 으뜸이니라
도시 남자의 도리란 말 없이 행위로 보여야 하거늘순리에 따른다면 팔자 타령으로 그만이지만
해지는 서녘바다 떠나야 할때 이 속세 여정 다시 걷고파모든 것 벗어 버리고 날아가니 왕중왕이 되었도다
漂浪一生嘆 (표랑일생탄)
鳥巢獸穴皆有居 (조소수혈개유거)
顧我平生我自傷 (고아평생아자상)
芒鞋竹杖路千里 (망혜죽장로천리)
水性雲心家四方 (수성운심가사방)
새도 집이 있고 짐승도 집이 있어 모두 거처가 있건만
거처도 없는 내 평생을 회고해보니 이내 마음 한 없이 서글프구나
짚신 신고 죽장 짚고 가는 초라한 나의 인생
여정 천리 길이 머나멀다
吉州明川 길주명천
吉州吉州不吉州 (길주길주불길주)許可許可不許可(허가허가불허가)
明川明川人不明(명천명천인불명)漁佃漁佃食無漁(어전어전식무어)
길주 길주 하지만 길하지 않은 곳 허가 허가 하지만 허가 하는 곳 없네
명천 명천 하지만 사람은 밝지 못하고 어전 어전 하지만 밥상에는 고기도 없네
"김삿갓"이 어느 집 앞을 지나는데, 그 집 아낙이 설거지물을 밖으로 휙~ 뿌린다는 것이 그만 "김삿갓"에게 쏟아졌겠다.
제가 뿌린 구정물을 지나가던 객(客)이 뒤집어썼으니 당연히 사과를 해야 마땅하련만,"삿갓"의 행색이 워낙 초라해 보이는지라
이 여인네, 제 잘못을 알면서도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그냥 돌아서니...
그래서 "삿갓"이 한마디 욕을 했단다.하지만.... "삿갓"이 누군가?
쌍스런 욕은 못하고 단지 두 마디"해, 해." / 해=年
그러니, "해. 해."이면 ''''년(年)''''자(字)가 2개,2年(=이 년!)일까 ?
아니면 두 번 연속이면 쌍(雙)이니 "雙年"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