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이라 불린 찹쌀떡 장수
김영애
사진 전시회를 꿈꾸는 남편은 포토샵 공부에 열중이다.
오늘은 카페에서 라일락 향기 속에 마시는 커피 덕분인지, 어려워하던 부분이 쉽게 풀렸다.
기분이 좋아진 우리 부부는 집으로 가는 길에 맥주 한 잔을 하기로 했다.
치킨 집은 평일임에도 많은 손님으로 북적거렸다. 쇼윈도 쪽으로 오십여 마리는
되어 보이는 튀긴 통닭들이 거꾸로 매달려있었다. 지난봄에 어느 사진 전시회에서 본,
살아서 푸드덕거리는 닭을 거꾸로 매달아 놓은 사진이 생각났다.
6.25 전쟁 즈음의 장터 풍경인데 그때는 산 닭들을 눈요깃감으로 그렇게 매달기도 하고
팔았단다. 아주 가끔씩 장날이면, 닭을 사다 백숙을 해주던 엄마의선한 모습위로
닭 모가지를 비트는 상상이 떠올라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오!, 한 마리 오천 원.”
맥주와 통닭 값, 만 삼천 원을 지불하고 데크 쪽 시원한 자리를 차지했다.
저렴한 금액과 좋은 자리에 횡재라도 한 것처럼 신이 나서 닭의 비애는 잊어버렸다.
이 때를 놓칠세라 “한 팩 천원.”하며 누가 찹쌀떡을 불쑥 내민다.
다리가 불편한 오십대쯤으로 보이는 아저씨다.
천원이라며 버티고 서있는데 곤혹스러웠다.
‘말이 천원이지 오천 원은 받겠지’ 살까말까 망설이다 남편의 당 수치가 겁이 나서 고개를 저었다.
옆 테이블에서 일행과 수다 중이던 육십 대 아주머니가 어느 새 들었는지 “천 원요?” 하며 반색을 한다.
못들은 척 하고 있자니 조금 후에 사기 당했다고 펄쩍 뛴다.
“어머! 어머, 생각 할수록 분해 죽겠네 . 천원이라더니 사기꾼 아니야?”
만원을 내고 거스름돈을 달라고 했더니 잔돈이 없다고 서비스라며 한 팩을 더 주고는 잽싸게 사라지더란다.
아무리 천원에 찹쌀떡 여섯 개를 살 수가 있다고 생각하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 아줌마도 안 돼 보였고, 사기꾼이라 불린 찹쌀떡 장수도 조금은 괘씸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산다는 건 살아낸다는 것과 동의어가 아닐까?
답답한 마음에 남은 맥주를 남기고 그만 일어섰다.
봄이라고는 해도 조금 쌀쌀한 거리는 어느덧 밤이 되어있었다.
보이지 않는 달을 찾다가 씁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남편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만약 내가 오천 원을 내고 찹쌀떡을 샀다면 어떻게 됐을까?
옆자리 아주머니는 황당한 착오를 하지 않았을 테고, 장사 핑계로 무리수를 둔 아저씨의 기분도 좋았겠지.
어라! 그러고 보니 내 잘못이 제일 크잖아?
미안한 마음에 글속에서나마 그들에게 기분 좋은 결말을 만들어 주고 싶다.
내가 꾸며내는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아주머니는 속아서 만원을 날린 것이 창피하다.
찹쌀떡 장수를 사기죄로 고소를 한다고 전화번호까지 알아내어 윽박지르기 시작한다.
‘찹쌀떡 여섯 개에 천원이라고 믿는 그런 모자란 머리로 소송이라니?’
아저씨는 필시 통닭집에서 일행이던 꼬불꼬불 파마머리 할머니가 충동질 한 것이라고 여긴다.
어지간하면 만원 돌려주고 사과하면 해결될 것 같지만 어쭙잖은 자존심이 그러기는 싫다.
생각다 못해 지하방에 사는 법대를 나왔다는 술주정뱅이 황 씨한테 자문을 구했다.
“오냐 끄윽, 한 수 가르쳐주마. 그 뭐시냐, 뭔 농담인가 뭔가가 있는디.” 횡설수설이다.
“치워라, 애초에 너한테 묻는 내가 잘못이지”
구석방에서 반백수로 뒹구는 아들이 눈에 거슬린다.
이 녀석은 공인중개사 시험을 1차에서 내리 3년을 떨어지고, 제 놈이 들고 있는 민법 책 겉장처럼
얼굴색이 누렇게 떠가고 있는 중이다. 혹시나 해서 말을 건네 본다.
오랜만에 아들의 눈에 생기가 돈다.
“민법 107조 비진의 표시(非眞意表示), 찹쌀떡 6개가 천원이라고 하면 믿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있겠습니까, 흐흐.’ 처음 들어보는 아들의 존댓말에 어이가 없지만, 지금은 말투잡고 늘어질 때가 아니다.
아들 말에 의하면 ‘비진의 표시’란 법률 용어이다.
“내가 우스갯소리로 말했고 상대방도 그렇게 들었다면 무효가 된다는 법이 있어요.
그러니까 농담이었다고 딱 잡아떼어도 됩니다.”
단단히 교육을 받은 찹쌀떡 아저씨는 아들에게 만 원짜리 몇 장을 쥐어주고는 호기롭게 집을 나선다.
마침 모자란 아주머니에게서 전화가 온다. 겁날 것 없는 아저씨는 지금 당장 만나자고,
지나가는 사람이 다 들리도록 큰 소리로 약속을 잡는다.
'이 여자를 아주 싹 몰아세워서 망신을 줘야지. 뭐 사기꾼으로 고소를 한다고?' 하며 씩씩거린다.
도봉산 공원에 자리한 카페에 도착하니 고불고불 파마머리 할머니도 나와 있다.
그 둘의 얼굴을 보니 다시금 화가 치밀어 오른다.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려는데 꼬부랑 머리 할머니가 다정하게 웃는다.
“창수 아버지 오랜만이네. 내가 그날은 못 알아보고 실수를 했어요.”
“아이고, 제가 잘못 했지요. 찹쌀떡이나 팔고 있는 처지가 창피해서 아는 척도 못하고
그냥 도망을 가버렸구먼요.”
사정을 들어보니 아주머니는, 다리가 불편해 보이던 아저씨가 잘도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 속았다 싶어
괘씸했단다. 아저씨는 담장 너머로 인사하며, 수년을 같이 살아온 할머니를 보자 순간적으로 피한 것뿐인데.
오해가 풀어진 세 노인은 라일락꽃이 화사한 공원의 벤치에 앉는다.
봄바람에 실려 온 꽃향기가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라일락꽃의 꽃말은 첫사랑과 젊은 날의 추억이래요.”
똑똑한 아주머니의 말이다. 모자란 여자 취급을 해서 더 미안해진 아저씨는 점심식사까지 대접하기로 한다.
오랫동안 관절염으로 불편하던 아저씨의 다리도 오늘따라 부드럽다.
찹쌀떡 아저씨와 고소한다던 아주머니, 옆집 살던 할머니는 ‘하하 호호’ 웃으며 봄날을 걷는다.
봄바람이 살랑거리며 뒤따른다. 내 마음도 살그머니 봄바람을 따라간다.
아아! 내가 애초에 찹쌀떡을 샀으면,
이 봄날에 소설 같은 이야기를 꾸미는 헛수고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 재미로 수필의 형식을 바꿔봤습니다. 2024년 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