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초보의 고민-4/1 (생각은 많은데 표현을 못 하겠다)
제일 중요한 일들은 말하기도 제일 어렵다. 그런 일들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말로 표현하면 줄어들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는 무한히 커보였는데 막상 끄집어내면 한낱 실물 크기로 축소되고 만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제일 중요한 일들은 우리의 은밀한 속마음이 묻힌 곳에 너무 가까이 붙어 있다. 그 일들은 우리의 적들에게 그들이 훔치고 싶어 하는 보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표시와 같다. 그리고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가며 고백을 했건만 남들은 우리를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기도 한다. 그들은 우리가 털어놓은 이야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우리가 말을 하다가 자칫하면 울음을 터뜨릴 만큼 그 일을 중요시하는 이유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그게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스티븐 킹의 [스탠바이미]에서 발췌)
중요한 일들이 말하기도 제일 어려운 것처럼, 마음을 사로잡는 일들도 말하기가 아주 어렵다. 대단하게 여겼던 일들도 말로 표현해버리면 시시한 일이 되어버린다. 단풍이 아름다운 산길을 걷다가 그리움 같고 슬픔 같은 영감이 떠올랐다 하자.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자.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가을을 타는지 사랑의 마음이 솟아난다.”라고 하나?
글초보들은 가끔 고민한다. ‘나를 이렇게 온통 가득 채우고, 내게 이렇게 확실하고 뚜렷한데, 왜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없을까?’라고 말이다. ......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감정을 표현하기란 원래 어려운 것이니까... 세상 누구도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똑같이 전달할 수는 없다. 그렇게 고민하는 대신에 ‘내 생각은 솜사탕이다, 내뱉으면 납작해진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대시인 김소월의 표현 방법을 보자. 연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 일부만을 나타내었다. ‘나를 떠나가지 말라’는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 중 일부에 불과하지만, 그 일부를 드러냄으로써 내 사랑 전체를 보여준다(‘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라는 반어법도 주목할 만하다.). 솜사탕 일부만을 보여줌으로써 내 마음속에 있는 사랑이 납작해지지 않고 풍성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었고, 그런 사랑을 연인에게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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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9.4.
작은큰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