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의 꿈, 이효석 소설 “산”을 읽고
1.
요즘 종합편성채널인 MBN에서 방송되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당해 방송사의 대표프로그램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대부분 남성이 주인공인 이 프로그램은 조직과 도시생활에 지친 중년남성의 로망을 자극하며 자연으로의 회귀라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만족시켜 주어 인기를 끌고 있다.
나는 이효석의 “산”을 읽으면서 맨 먼저 이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김영감네 집에서 성실하게 머슴살이를 하던 주인공 중실은 김영감의 첩을 건드렸다는 모함을 받고 새경도 받지 못하고 주인집에서 쫒겨난다.
조직과 가족을 위하여 청춘을 불사르는 오늘의 중년남성들도 중실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젊은 시절 회사에 입사하거나 사업을 시작하여 우여곡절 속에 가족을 지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건강을 잃거나 나이가 들면 회사에서 명퇴를 당하든지 사업이 망하든지 하여 아무런 준비도 없이 조직과 사회의 울타리 밖으로 내팽개쳐진다.
이들이 돌아갈 곳은 가족 밖에 없는 데 가족도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지 못할 때 그들이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곳이 산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조직, 사회, 가족이라는 모든 굴레를 벗고 알몸으로 자연과 마주하는 것이다.
중실은 지친 몸과 마음으로 산으로 들어가지만 산은 말없이 중실의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여 준다. 꿀과 열매를 채취하고 산불에 타 죽은 노루고기로 포식을 하기도 한다. 나무를 팔아 생필품을 사기 위하여 들른 장터에서 김영감의 첩이 면서기와 눈이 맞아 도망갔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머슴살이를 다시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갈등도 하지만 그가 있어야 할 곳은 산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산으로 돌아간다.
소설 속 주인공 중실은 자연인의 원조처럼 느껴진다. 예언가처럼 소설가 이효석은 현대의 중년들에게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얘기하고 자연으로의 회귀를 준비하라고 1936년 “삼천리”잡지에서 미리 조언을 해주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원두를 직접 볶고 분쇄기로 간 커피가루를 여과지에 내려서 마시는 작가의 모습은 전형적인 차도남이다. 이효석은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였다. 그의 수필이나 자전적 작품들로 유추해보면 이효석은 도시생활을 즐기던 전형적인 댄디보이였던 것 같다.
그런 그가 “메밀꽃 필 무렵”, “산,”, “분녀” 등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작품들 속에서 꿈꾸었던 것은 자연과 합일되는 인간의 삶이었다. 드립커피와 신여성과의 연애 등 도시생활을 즐기던 그가 자연 속에서의 인간의 원초적 모습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의 고향인 강원도 평창군으로 귀향하면서부터였다.
일본인 은사의 주선으로 총독부에 취직을 하고 지인으로부터 일제의 개가 되었느냐는 질타를 받은 그는 충격을 받고 낙향을 하게 된다.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인 자연을 다시 접하게 되면서 유년시절에 심어져 있던 자연친화적 본능이 되살아났는지 그는 이때부터 불꽃처럼 소설을 쏟아내게 된다. 한국 근대단편문학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메밀꽃 필 무렵”이 그 정점에 놓여져 있다.
하지만 그의 창작열은 개인적인 불행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이상과 김유정이 그랬고, 김소월과 백석이 그랬듯이. 문학적 천재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불행의 그림자들을 이효석도 피해가지는 못하였다. 아내 이경원과 장남 우현을 1940년 한해에 여의고 그의 건강도 급속도로 악화된다. 1942년에 뇌막염으로 사망한 그는 사랑하는 부인이 묻힌 그의 고향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 고등골에 안장되어 35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가족의 죽음으로 이효석이 결정적 타격을 받듯이 산의 주인공 중실도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위하여 가족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갈등상황에 놓여진다. 산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하는 활동에는 만족하지만 밥을 하고 가정을 가꾸는 여자의 존재가 그리워진 것이다. 마침 이웃에 사는 용녀를 보고는 상사병에 걸린 듯 밤마다 그녀와 함께 사는 삶을 상상하다 잠에 드는 중실. 중실은 용녀를 맞이하여 자연인의 꿈을 완성할 수 있을까? 작가는 열린 결말로 소설을 마무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상상력을 요구하고 있다.
2.
그러면 TV프로그램 속 현대의 자연인들은 자연인으로서의 꿈을 완성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대부분의 자연인들은 젊은 시절을 도시에서 보낸 사람들이다.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으나 병이나 개인사의 아픔 등을 통해 그들의 삶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산으로 들어와 위기에 처한 삶의 회복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아내와 헤어지면서 자식을 의붓어머니에게 맡기고 자식을 키우기 위하여 외항선을 타서 돈을 벌어 왔으나 의붓어머니는 아이를 외국으로 입양을 보내고 만다. 의붓어머니와 세상을 원망하며 지리산 피아골로 들어온 자연인은 멧돼지를 잡고 밭을 가꾸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사랑도 미움도 모두 산의 메아리 속에 묻어 버리고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고 절망의 끝자락에서 선택한 그의 삶이 평온하기를 빌어주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듯하다.
또 다른 자연인은 학교 행정실에서 경리업무를 보던 교육공무원이다. 경리를 담당하는 그에게 학교교장은 사적인 일에 공금을 사용하도록 지시한다. 그것을 이행하지 않는 그는 교장에게 계속 불이익을 당하지만 그의 양심은 공금유용을 허락하지 않는다. 계속되는 요구에 학교를 그만두고 산 속으로 들어온 자연인은 준비되지 않은 어설픈 자연인이다. 닭을 키우지만 닭을 잡지 못하여 닭고기를 먹지 못한다. 농사를 지을 줄 몰라 심은 농작물 중 거의 반 이상은 수확하지 못한다. 하지만 산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도시의 삶 속에서 느끼지 못한 행복을 산이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을 20년 이상 보고 합격하지 못한 자연인은 산이 아닌 무인도를 선택한다. 아무도 살지 않는 섬, 배를 타고 나가지 않는 한 사람을 볼 일이 없는 무인도를 선택할 만큼 그의 삶에 대한 회한은 깊고도 아픈 것이었다. 무인도에서 바다와 함께 로빈슨 크루소처럼 살아가며 여생을 보내야하는 그에게서 자유보다는 고독의 기운이 많이 묻어나오는 것은 그가 도시에 남기고 온 꿈 때문인지도 모른다.
3.
현대의 도시에서 남성들은 무자비한 경쟁과 도전에 끝없이 내몰리어 승리하기를 강요받는다. 대한민국에서 아빠로 살아 남을려면 체력과 부, 지식 등 갖추어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 그럭저럭 조직과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으면 비록 현금출금기 취급을 받을 지라도 가족들은 그에게 아버지와 남편이라는 명예를 뺏어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건강과 돈, 직장 등을 잃은 남자는 하루아침에 벌레처럼 가족들과 주변사람들, 직장과 사회에서 무능력자로 내몰리어 갈 곳을 잃게 된다. 술과 담배, 마약과 여자, 일시적으로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그들 삶의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것. 그래서 그들이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산이다. 자연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인이 된다는 것도 만만치 않다. 기본적으로 땅과 집이 있어야 하고 산에서 살아가기 위하여 배워야 할 삶의 노하우들이 많다. 고독을 이겨내고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마음의 근육도 키워야한다. 이런 점에서 산에 들어가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그 시대 소설 속 중실의 삶이 진정한 자연인으로 느껴진다.
요즘 자연인들은 중실과 같이 나무를 팔아 생필품을 사야하는 극빈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프로그램 속 자연인들은 목공기술을 익혀 가구도 만들고 집도 스스로 짓는다. 닭을 잡고 회를 뜨는 등 생활을 위해서 요리실력은 필수적인 자연인의 자격이다. 생활력만 갖고 산에서 살 수 없다. 낮에 자연은 일과 먹을 것을 주지만 밤에는 고독을 준다. 고독을 진정으로 즐기려면 예술이 필수다. 시를 쓰고 기타를 퉁기며 낮 동안 노동으로 고단해진 심신을 달래주어야 버틸 수 있는 삶이다.
요즘 자연인은 땅과 연못이 있는 지주들이다. 부와 함께 자연에 대한 지식이 자연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또 하나의 요건이다. 독버섯과 식용버섯을 구별할 줄 아는 안목, 약초로 약차를 달여 스스로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생활지식이 필수적이다. 또한 건강을 위하여 헬스도 하고 어떤 자연인은 산에서 자기만의 골프장을 만들어 골프도 친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자연인으로 살기 위해 먼저 부자가 되어야 하고 지식인인 되어야 한다는 모순을 알게 된다. 내가 자연인이 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도시에서 살아남기도 힘들지만 산 속에서 자연인으로 살아남기란 더 힘들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을 선택한 자연인들, 그들은 자연인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 그것이 우리에게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을지가 점점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