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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민의 정신적 상징 하늘에 북두칠성이 빛난다면 제천 시내에는 제천 시민들의 자랑이요 정신적 상징인 일곱 봉우리, 칠성봉(七星峰)이 빛난다. 제천시는 북쪽에 해발 871미터의 용두산을 주산으로 하여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을 이룬다. 이러한 분지 한 가운데 다른 산줄기와 이어지지 않는 일곱 개의 작은 봉우리가 바로 칠성봉이다. ‘제천군지'에는 이 일곱 봉우리를 1봉 독송정(獨松亭), 2봉 연소봉(燕召峰), 3봉 성봉(星峰), 4봉 요미봉(要美峰), 5봉 자미봉(紫美峰), 6봉 아후봉(衙後峰), 7봉 정봉산(丁峰山)이라 밝히고 있다. 유림에서는 북두칠성 별자리의 이름을 따서 1봉 탐랑봉(貪狼峰), 2봉 거문봉(巨門峰), 3봉 녹존봉(祿存峰), 4봉 문곡봉(文曲峰), 5봉 염정봉(簾貞峰), 6봉 무곡봉(武曲峰), 7봉 파군봉(破君峰)이라고 한다. 칠성봉은 규장각에 보관된 제천현 지도(1872년경 제작)에도 그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한편 ‘내고장 전통가꾸기'에서는 1봉 독심봉(獨尋峰), 2봉 정봉산(丁峰山), 3봉 성봉(星峰), 4봉 요미봉(要美峰), 5봉 자미봉(紫美峰), 6봉 연소봉(燕召峰), 7봉 아후산(衙後山)으로 적고 있다.
칠성봉 가운데 여섯 번째 봉우리인 아후봉은 아사봉 또는 아뒤산이라고도 불리며 제천시 중앙로에 있다. 아뒤산이라 불린 것은 조선 태종 13년(1413년) 충주목 제천현이 되면서부터인데 ‘관아의 뒤에 있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제천현의 동헌은 현재 우체국 자리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인 1607년 왜적의 방화로 소실되었다. 그 후 현 대한 기독교 감리교 제일교회 자리로 옮겨 지어 300년 간 지내오다 1907년 정미의병 시 일본군에 의한 읍내 전역의 방화로 관아 역시 전소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렇듯 칠성봉은 제천 역사의 중심부에 있어 왔으며, 제천시의 흥망과 비극을 증언하는 현장으로서 그 의미가 각별한 곳이다. 아후봉은 관아 뒷산이었기 때문에 1896년 을미의병 거사 시에는 남산 전투의 지휘 사령부가 설치되기도 했다. 한편 각 지역 간 또는 도, 군, 현 간의 거리를 나타내는 이정(里程)의 기준점 또한 옛 관아터(구 우체국)였다고 전한다. 이는 동국여지승람이나 도계, 군계, 명산 대천승지 등에 지리적 전반 이정을 아후봉을 기점으로 정하고 측정한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칠성봉 중 하나인 아후봉은 예로부터 신성시한 풍습이 남아 있다. 이 봉우리에는 시체를 매장하지 않았으며 암매장 할 경우 이 지역에 대화재가 발생하여 유골을 여러 번 파낸 일이 있다는 구전이 바로 그러한 풍습을 입증하고 있다. 아후봉에는 2000년 충의루가 건립되었다. 제천시의 칠성봉은 ‘칠성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북두칠성은 지구와 인간에게 직접 길흉화복의 전권을 행사하는 신앙의 대산으로 기우(祈雨)의 대상신 또는 인간의 장수와 재물을 관장하는 신 등으로 형상화되는 존재다. 칠성신앙은 도교, 민간신앙에서 뿐만 아니라 불교와도 접목된 한민족 고유의 신앙이다. 오늘날 절집 가운데 많은 칠성각이 남아 있어 신앙적인 기능을 지속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제천 사람들에게 칠성봉은 ‘칠성신앙'에서 유래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역사 시대에 걸쳐서 제천에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된 것도 칠봉의 정기를 받기 위함이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칠봉 각 봉우리에 관한 전설은 발굴된 것이 없다. 그러나 가장 넓은 면적에 걸쳐 남아 있는 아후봉은 관아 부근에 있었으며, 제천 군수 또는 시장이 부임하여 잉태하면 필히 대인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 실례로 전주 이씨 가문의 백한 이경석이 제천에서 출생했다고 한다. 아후봉 또는 아사봉 뒤는 ‘애뒤'라 불렀고, 교동 청전에서 하천 중앙 시장까지 좌우 들을 ‘아사들'이라 불렀다고 한다. 관원이 제천에 도임 시에 큰 비가 와 다리가 떠내려갔을 경우 물이 빠질 때까지 아사봉 밑에서 쉬었다가 관아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칠성봉에 관한 가장 최근의 기록으로는 1943년에 개교한 제천농고 교가 ‘의림지 맑은 물 시원한 칠성봉…'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제천 시내에서 칠성봉은 남북 방향으로 길게 분포한다. 일곱 개의 봉우리를 모두 돌아보는 데는 넉넉잡아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먼저 1봉부터 4봉까지는 청전대로변에 있으며 바로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으리만큼 서로 가깝다. 1봉 독송정은 높이 약 5미터로 논 한 가운데 있다. 주변을 공원으로 단장해 놓았으며 바로 아래 정자가 있어 쉬어가기 좋다. 1봉 독송정 꼭대기에 오르면 2봉과, 3봉, 4봉이 잘 보인다. 주택가 한 가운데 있는 5봉은 대부분 잘려 나가고 일부만 남아 있는 실정이다. 그에 비해서 6봉은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도심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마지막 7봉은 국자의 자루 끝에 해당하는 곳으로 현재 제천교육청 건물이 들어서 있으며 일곱 개의 봉우리 가운데 가장 높다. 다른 여섯 개의 봉우리가 모두 ‘봉'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데 비해서 ‘정봉산'이라 하여 ‘산'으로 불리는 것이 특이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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