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시는 한반도 서해안 남부에서 금강 하구와 만경강 하구로 구획되는 옥구반도와 연안의 섬들로 구성된다. 금강은 하구에서 강물을 따라 50여㎞까지 수상 교통이 가능하며, 논산평야 등 넓은 충적평야가 그 주변에 발달해있다.
만경강 하류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평야인 호남평야가 있다. 이처럼 군산시는 호남평야의 일부를 차지하면서, 나머지의 호남평야와 논산평야 등을 그 배후지로 옥구반도 주변과 금강, 만경강 하구의 간석지를 간척지로 확대시키면서 서해의 항구도시로 발달했다. 이 같은 군산의 지리적 위치가 일제 강점기에는 '쌀 반출항으로서의 군산'이 되었다.
1899년 5월 1일 개항과 더불어 금강내륙과 전북 내륙지방에 대한 일제의 수탈전진기지가 된 군산은, 항만, 행정, 철도 교통로의 개설, 근대산업시설의 설치가 이뤄져 도내에서 제일 먼저 부로 승격되어 근대도시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개항장이란 연안 항구 중에서 선택하여 조약에 따라 외국 선박의 출입이 허용된 곳이다. 이곳은 외국인 거류지가 설정되고 감리소가 설치되어 외교관이 주재해 출입외화의 관세처가 되는 곳이다. 시에는 한때 독일, 러시아, 프랑스, 중국, 일본의 영사관이 존재하기도 했지만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의 일본 승리로 일본이 주도하게 됐다.
▲ 쌀을 반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철로로 기차가 지나갈때면 지붕이 닿을 정도로 가깝다. 작년까지 하루에 한 두번 이용됐던 이 철로도 곧 사라질 운명이다. 영화세트장으로 많이 이용된다고 한다.
ⓒ 오문수
군산에는 쌀의 도시라는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동 이름에 쌀이라는 의미의 '미'라는 이름을 가진 동이 몇 개있다. 미원동, 미장동, 장미동, 미성동, 미룡동 등이 그것이다.
부두가에 지어진 옛 건물들은 흉한 모습으로 남아 있지만 외부를 손질해 보전할 계획이라는 얘기다. 혹자는 흉물이니까 해체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문화재를 보전할까?
호주는 유럽인 이주 역사가 300년도 안 된다. 하지만 역사적 가치가 있는 오래된 건물의 외형은 그대로 보존하고 내부는 편리하게 고쳐 쓰도록 문화재 보존 정책을 한다. 아픈 역사도 후손에게 교훈을 주는 역사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