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것 (1979)
Vengeance is Mine (日本영화)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
배우: 오카타 켄, 바이쇼 미츠코, 키요카와 니치코.
줄거리:
일본 역부근에서 공기업 배달차의 수금원 두명이 살해되고 거액의 현금이 절도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배달차 운전수인 부랑아 에노키즈(오카타 켄)였다. 그는 경찰에 쫓기다가 부두에서 요식업을 하는 성인 업소녀(요시카와)와 동거를 시작하고, 자신의 가족에게는 거짓 유서를 남기고 투신자살로 위장한다.
에노키즈는 하마마츠(浜松) 지방에 나타나 학자로 신분을 위장하고 하숙집의 여자를 범하는 등 범죄를 저지른다. 치바(千葉)에서는 변호사 행세를 하며 보석금을 횡령하고, 원로 변호사를 속이고 살해한다. 일본 전역에 수배지가 붙고 극장에서까지 수배 내용이 공개되는 와중에도 에노키즈는 살인, 사기, 절도를 저지른다. 신분을 연거푸 위장하며 사기를 치던 에노키즈는 다시 하마마츠(浜松)로 돌아가 전에 묵었던 하숙집에 들어간다. 그가 수배자임을 알아낸 하숙집 운영자인 아사노 하루를 매수해 성(性)에 탐닉하는 변태적 행위를 하기도 한다.
아사노 하루의 모친은 노파 살인죄로 15년간 수감생활을 했던 인물이다. 하루의 모친은 같은 처지라고 생각되는 에노키즈를 집에서 은거하게 해준다. 에노키즈는 배은망덕하게 결국 모녀까지 죽이고 금품을 훔쳐 도주한다. 이러한 도피 생활이 78일째 되던 날, 그는 고향인 큐슈(九州)에서 행인의 밀고로 잡혀 조사 끝에 처형된다.
제일 마지막, 에노키즈의 부친과 에노키즈의 아내가 화장한 에노키즈의 유골 더미를 산 정상에서 연거푸 뿌리며 막을 내린다.
필자의 평:
2002년에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영화를 본 일이 있다. 소규모 전기 공장의 사장이 자기 딸이 유괴,살해 당하자 그 범인을 찾아내 보복하다가 결국 자기도 당한다는 줄거리였다. 송강호와 신하균의 각자 복수하는 모습과 교차를 보여줬다.
이번에 감상한 영화는 일본영화로 전혀 다른 내용의 1979년 영화다.
20세기의 걸작 리스트에(특히 아시아 영화의 리스트)에 올려지고 주목받는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은 그 구조가 독특한 작품이다. 이마무라 쇼헤이가 시도하고 있는 하드보일드 연출을 박찬욱 감독이 좀 도용한 것 같다는 말도 있었으나 스타일은 다르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에서 중요한 화두는 '근원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나? 라고 묻는 그의 질문에 관객들이 충격과 연민을 느끼는 이유는 그가 정확한 핵심만을 짚기 때문일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의 주인공 에노키즈(오카타 켄)의 살인 행각을 통해 받는 충격보다 그의 부친과 그의 아내 사이에 도사리고 있는 이상한 육체적 욕정(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의 욕정)을 통해 받는 충격이 이 작품이 일본 문화와 정서가 매우 독특하다라는 것을 강조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에노키즈의 살인 행각이나 도주 과정이 아니라, 그를 가공할 연쇄 살인마로 만든 성장 배경과 가정환경이다. 결국 그는 가정이 아닌, 가정과 무관한 '외부'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지만 근본 원인은 가정의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에노키즈는 어린시절, 천황에게 바칠 선박을 무력하게 빼앗기는(권력 앞에 저항하지 못하는) 에노키즈의 부친에게 느꼈던 그의 분노와 실망감은 그를 점점 비뚤어지게 변화시킨다. 독실한 카톨릭 교도인 부친의 무력함은 어린 아들에게 신앙인으로서의 고결한 순종이 아니라 실망감과 가족의 생업을 중단시킨 무력함으로 어린 에노키즈에게 받아들여진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그의 성장과정에서 또 그의 수감생활 이후 에노키즈의 아내가 시아버지(에노키즈의 부친)에게 느끼는 정욕과 존경심(이것은 그가 고결한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눈에 에노키즈와 정반대의 인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며느리의 육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윤리적으로, 신앙 속에서 갈등하는 시아버지의 번뇌야말로 에노키즈의 살인 행위를 야기한 원인이다는 메세지도 있다.
결국, 흉포한 남편의 작태 때문에 겪는 일련의 고충에 비하면 이 정도의 욕정은 그리 악한 것은 아니라고 자신들을 정당화 시키는 에노키즈의 아내와 (가정으로 다시 돌아오지만 사실 그것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라 도덕적이지 않은 것이다) 에노키즈의 부친(그는 단번에 며느리를 물리치지 못한다. 사실은 그도 며느리의 몸을 원한다)을 에노키즈의 도주 경로와 함께 등장시킴으로써 이마무라 쇼헤이는 교차된 역설의 연출을 보여준다.
"난 며느리에 대한 내 짐승같은 욕정을 눌러왔다"라고 아들 앞에서 고해하는 아버지를 구박하는 아들이 계속 그려내는 모습은 삶의 고통을 함께 담고 있다. 에노키즈가 복수하려고 했던 것은 무고한 타인들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내(결국 가정)였던 것이다. 출소한 성인 아들에게 용돈을 주던 에노키즈의 모친이 자신의 며느리와 정욕에 휩싸이는 남편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결국 그녀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사형당한 에노키즈의 유언대로 아버지와 며느리가 에노키즈의 뼈를 허공으로 뿌리면서 이 영화가 끝나기 때문에 허무하고 비참해지는 것이다. 결국 복수의 대상이었던 아버지와 아내는 아들의 뼈를 산 위 허공에 던지며 자신들의 앞날을 조용히 계획하는 것이다.
이마무라 쇼헤이가 그리는 가정에서의 불화와 윤리의 무너짐, 그로 인한 상처와 상실감은 아들의 연쇄 살인을 불러일으키고 엄청난 사건으로 번진다. 그는 이 분노와 욕망을 누그러뜨릴 기미를 보여주지 않는다. 결국 에노키즈를 죽이고 아버지와 며느리를 살림으로써, 허공에 그의 뼈를 뿌림으로써, 부질없던 허황된 복수의 종말을 장식하는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은 이렇게 보는 이의 눈에 연민과 탄식의 잔상을 남긴다. 이 작품은 이후 이마무라 쇼헤이의 후기작에서 보여질 인간군상에 대해 많은 것을 예견한다. 주인공 에노키즈를 연기한 오카타 켄의 연기는 당시로서는 화제가 될 만 했다.
그러나 뭔가 부족함을 떨칠 수 없는 것은 1979년의 영화라 구티나 많이 남아있고 영화 속 소품과 건물 내부 등이 너무 좁고 불편하고 초라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또 조명효과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게 아쉽다.

살인범 에노키즈 카츠 역(오카타 켄)의 충혈된 눈과 희생녀의 갸냘픈 표정이 인상적이다.
첫댓글 오카다 켄의 살기 가득한 눈이 인상적이네요. 으~ 제 스타일은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