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에드워드 가드너 지휘의 런던필하모닉,
세묜 비치코프 지휘의 체코필하모닉,
클라우스 마켈레 지휘의 오슬로필하모닉,
투간 소키에프 지휘의 빈필하모닉,
파비오 루이지 지휘의 콘세르트헤보우와
엊그제 끝난 키릴 페트렌코 지휘의 베를린필하모닉으로 이어지는 공연일정을 보자면 지금의 서울은 세계교향곡 축제의 페스티발이 이루어지는 클래식 문화의 메카처럼 보인다. 여기에 더해 오늘과 내일 펼쳐지는 안드리스 넬손스 지휘의 게반트하우스가 준비하고 있고 월말에는 정명훈 지휘의 뮌헨필이 대기하고 있다.
매년 세계의 오케스트라가 내한을 한 적이 있었지만 11월을 전후하여 이렇게 집중적으로 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심지어 베를린필과 콘세르트헤보우는 같은 날 다른 장소에서 공연을 했으니 클래식팬들은 어느 곳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도 많았을 것이다.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랑랑과 조성진, 임윤찬, 재닌 얀센, 예핌 브롬프만 등의 협연자들도 화려하고 한국청중을 의식한 다소 대중적인 프로그램들도 있지만 장인들의 손끝에서 들을 수 있는 곡들은 익숙하되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이미 벌어진 공연들은 대부분 기본기 이상의 준수함과 감명을 주는 부분들이 있었다. 각각의 공연들이 주는 색깔은 다양했으나 소절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연주자들의 모습에서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가는 듯 했다.
이 중에서도 내일 펼쳐지는 안드리스 넬손스 지휘의 게반트하우스가 들려주는 바그너와 브루크너의 프로그램은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는 공연이다.
바그너의 주요 서곡들과 말러, R.슈트라우스, 브루크너, 쇼스타코비치로 이어지는 후기낭만 및 현대 작곡가의 해석에 출중한 매력을 보여온 안드리스 넬손스는 내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서주와 종주, 브루크너의 9번을 통해 그 진가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천지의 창조와 전개 및 마무리와 성찰로 이어지는 신의 시선을 담았다고 봐도 좋을 브루크너 9번 교향곡은 들을 때마다 지금 여기에서의 마음과 피안의 시선이 어디서 조우하는 지를 살펴보게 된다. 게반트하우스를 통해 쇼스타코비치 전집을 훌륭하게 이뤄낸 안드리스 넬손스는 브루크너마저도 전곡을 이뤄냄으로써 작곡가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보여주었다.
한달 내외 사이에 일년 이상의 문화비가 나가서 뜨악하고 다양한 수입채널보다 티켓 수입에 주로 의존하는 국내 기획사의 관행에 아쉬움이 크지만 이것도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의 오케스트라들이 국내에 진군했다고 해서 국내 오케스트라들이 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레는 다비드 라일란트가 성공적으로 지휘봉을 잡고 있는 국립심포니가 베를리오즈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들려주기에 기대가 되고 다음 주엔 게반트하우스 다음으로 기대하고 있는 야심적인 공연인 얍 반 츠베덴 지휘의 서울시향이 쇼스타코비치의 5번을 어떤 색깔로 보여줄지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클래식 뿐만 아니라 국악도 있고 미술전시도 있고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가 연말까지 이어질 듯 한데 늘 고민은 한정된 시간에 한정된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이다. 이미 세계에서 손꼽는 메가폴리스로 자리잡은 서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