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에서 만나요!
글/사진 : 마녀와 야옹이
첼시는 현재 세가지 면에서 뉴욕을 대표하는 지역으로 떠올라 있다. 하나는 갤러리 지구, 두 번째는 게이 커뮤니티, 세 번째는 나이트클럽의 메카라는 사실이다. 물론 첼시를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다 게이도 아니며 낮에는 갤러리에 근무하고 퇴근해서 밤에는 나이트클럽에 가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뜻도 아니다. 게이 커뮤니티라는 말은 게이가 인구의 90%가 이상이란 뜻이 아니라 게이 친화적인 지역이란 의미가 강하다. 실제로 게이 인구는 많이 잡아야 30% 정도지만 충분히 붙을 수 있는 호칭이다. 10년을 주기로 미국 전역에서 실시되는 인구 조사 항목에는 동성애자 여부를 직접적으로 묻는 질문은 없지만 대략적으로 그들의 숫자를 유추할 수 있는 길이 있다. 바로 동거인 형태를 묻는 질문인데, '동성 동거인(Same sex domestic partner)'에 체크한 숫자다. 가장 최근인 2000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첼시 지역은 이 항목의 응답 비율이 30%가 넘어서 크리스토퍼 스트릿이 있는 웨스트 빌리지와 더불어 뉴욕을 대표하는 게이 커뮤니티에 등극했다. 그리고 이 30%의 게이들이 바로 그간 10여년 동안 소호에서 이전한 갤러리들과 함께 첼시의 주변 환경을 변모시킨 주도세력이다.
첼시의 명암
첼시는 이제는 매우 잘 알려진 대표적인 갤러리 지구로 소호를 대체하고 있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불과 십여년 전만 해도 '나가요' 언니들이 밤마다 득실거렸다. 빈 공장과 창고지대였던 썰렁한 소호에 가난한 예술가와 게이들이 치안부재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몰려들어 그들만의 분위기를 형성하자 60년대부터 컨템퍼러리 계열의 화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거기에 중산층이 몰려들면서 졸지에는 명품 매장이 줄줄줄이 들어선 최고급 쇼핑가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첼시는 그 전철을 밟을까 두려워하는 지역주민과 갤러리들 사이의 심각한 줄다리기가 진행중이다.
뉴욕은 예술가들이 부동산 가격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예술가들이 부동산 투기를 하기 때문이 아니다. 뉴욕이 미국의 문화, 예술 활동의 중심지인 만큼 예술가들이 뉴욕에 몰려와 싸고 넓고 교통이 편한 곳을 찾아놓으면 일반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예술가의 힙한 분위기'라는 프리미엄에 혹해 부동산과 함께 밀려들어온다. 1990년대 후반에 화랑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던 맨해튼 첼시 지역은 5년 사이에 임대료가 두배 반이나 올랐고 그 결과 오랫동안 첼시에 살던 세입자들은 갤러리가 들어오는 것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일으키게 되었다. 게다가 초기에 임대료를 올리는 역할을 한 예술가들은 당연히 그 높아진 임대료를 못견뎌 다른 장소로 밀려갈 수 밖에 없어서 예술활동과 경제활동 양쪽에 타격을 주는 악순환이 나타났다.
첼시의 이 골치아픈 문제는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자본의 논리에 따라 못견딘 사람은 떠나야 했고 첼시는 부자 동네 리스트에 추가됐다. 특히 30%를 차지한 게이들이 지역 경제와 패션을 주도하는 계층으로 떠오르며 평정한 상태다. 첼시에서 사는 패션 감각이 뛰어나며 부유한 여피 스타일의 백인 게이들을 특히 첼시 퀸(Chelsea Queen)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대부분 전문직에 종사하며 헬스클럽에서 몸 다지기에 열심이다. 여름에 웃통을 벗기 위해 레이저 시술로 몸의 털을 제거하는 수술도 마다하지 않는 그들은 미끈한 몸매 그 자체가 첨단 패션임을 과시한다. 그러나 이러니 저러니 해도 첼시 특유의 그림자가 한 겹 드리워진 듯한 묘한 분위기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첼시호텔
23가 7애비뉴에는 첼시호텔이 있다. 오 헨리, 유진 오닐, 마크 트웨인, 앤디 워홀 등 당대의 내노라 하는 예술가들이 단골로 장기 투숙했던 60년대의 뉴욕은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절정을 이뤘고 보헤미안 예술가들의 본산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살기에는 너무 허무하고, 죽기엔 너무 젊은' (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 영국의 펑크 그룹 섹스 피스톨즈의 멤버 시드와 첼시 출신이자 그의 연인 낸시의 전설적인 스토리가 서려있다. 25년전 어느 가을날, 시드와 함께 투숙했던 낸시는 그 호텔 100호실에서 피범벅이 된 채 욕조 속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겨우 스무살의 나이였다. 다음해 시드는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두 사람의 죽음은 아직도 미스테리다. 오로지 그들을 거두었던 첼시 호텔만이 진실을 안다. 첼시호텔은 몇 번의 리노베이션 끝에 관광지의 하나가 되었다. 비록 한 세대가 지나고 쇠락한 60년대의 그림자만 남아있지만 영화 '나인 하프 위크'에서 보듯 첼시호텔은 확실히 사람을 압도하는 공간이다. 그곳에는 실패한 예술가든 성공한 예술가들 울증에 걸린 이들을 불러모으는 마력이라도 있는 듯하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쓸쓸하게 웃으며 다시 일어서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아름다운 첼시 퀸들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든 뭐든 간에..
갤러리
창고와 카센터 그리고 문 닫은 공장 사이에 촘촘히 박혀있는 첼시의 갤러리들에서 초행자가 처음에 받는 시각적인 당혹감은 이내 기존 환경을 그대로 활용한 진정한 '재개발'에 대한 찬사로 바뀐다. 왜 갤러리들은 첼시를 택했을까? 외형적으로 잘 다듬어지지는 않지만 태생적(공장과 창고)으로 넓은 공간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미니멀한 디자인과 전시 스타일을 원하는 새로운 흐름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100개 이상의 갤러리와 설치미술, 얼터너티브 퍼포먼스 공간은 바로 옆의 허드슨 강의 멋진 풍경과 어우러져 소호와는 구별되는 첼시의 독특한 산업적 캐릭터를 나타내고 있다.
첼시 화랑가의 대표 거리를 꼽는다면 22가 서쪽 끝 블럭 (10애비뉴에서 허드슨 강변 사이)이다. 이곳에는 뉴욕 현대 미술계에 강력한 파워를 행사하고 있는 디아 아트 센타(DIA Art Center)가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바로 그 옆에 오랫동안 재개발 공사를 해온 첼시 뮤지엄(Chelsea Art Museum : CAM)이 드디어 문을 열었다. 이 건물은 원래 1850년에 세워진 3층짜리 벽돌 건물로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만들던 3만 스퀘어 면적의 공장으로 외관은 최대한 살리면서 내부를 대대적으로 보수하여 현대식 미술관으로 탈바꿈 했다. 게다가 이 블럭에는 명품 브랜드이자 매장도 실험적인 '꼼므 데 가르송' 뉴욕 매장이 있는데 카센타 건물에 동굴과 같은 입을 벌리고 숨어있다. 미로의 입구라는 느낌을 주는 곡선으로 된 통로를 지나 매장 안에 들어서면 미니멀한 디스플레이와 재미있는 제품들이 약간은 기괴한 분위기로 손님을 맞는다.
첼시 미술관의 오픈은 소호 미술관의 첼시 이전에 가속페달을 밟은 격이다. 대표적인 비영리 갤러리이자 탁월한 전시 기획력을 자랑했던 소호의 EXIT Art 갤러리가 조만간 소호를 떠나 첼시의 10애비뉴/36가 1만7천 스퀘어의 널찍한 공간을 얻어 이전한다. 결국 부띠끄 거리로 변모해버린 소호에서 갤러리들의 비상구(EXIT)는 첼시인 셈이다.
나이트라이프
첼시의 남서쪽 끝인 14가 10애비뉴 지역은 정육 도매상이 밀집되어 있는 육류포장지역(Meat Packing District)으로 낮에는 피가 뚝뚝 흐르는 고깃덩어리가 지배하고 밤에는 정육점 빛깔 조명의 나이트클럽들이 깨어나는 특별한 분위기를 전해준다. 이곳에는 미드타운의 넓은 플로어 대신 작은 플로어들이 여러 개 있으면서 3명 이상의 디제이들이 각각 자신이 맡은 룸에서 디제잉을 벌이는 최첨단 테크노로 무장한 첼시 스타일의 나이트가 있다. 그 옆은 흑인 클럽, 게이 클럽, 컨트리 웨스턴 클럽이 줄지어 있다. 특히 난데없이 중부를 옮겨놓은 듯한 웨스턴 스타일 클럽에선 여자 손님들이 토플리스 차림으로 바나 테이블에 올라가 춤추는 모습과 흔히 마주치는데 출렁이는 뱃살을 보노라면 진정한 용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 바가 바로 영화 '코요테 어글리'를 찍었던 실제의 장소다. 그 옆에 13가 코너를 돌면 이제는 동네방네 다 소문나고 안내책자마다 다 나오는 '아파트 바'가 있다. 아파트 바라는 것은 원래 이름이 아니고 저층 아파트 건물 지하에 간판 없이 모던하게 운영되던 바 이름을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아오게 되면서 아파트 바라고 부르게 되었다. 사실 아파트 바처럼 은밀한 구조의 클럽의 계보를 따지자면 큰언니는 따로 있다. 아파트에서 좀더 윗쪽 허드슨 강가 쪽으로 가면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이름을 날렸던 'LOT61'가 있다. 겉에서 보면 허름한 창고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은은한 조명에 검은색 톤 인테리어에 맞춰 말끔한 바텐더들이 컴퓨터로 주문을 받는 별세계가 펼쳐진다. 이곳은 고급 라운지이기 때문에 캐주얼 정장차림의 남자들과 착 달라붙는 검정색 원피스나 바지정장 차림의 여자들은 대부분 럼과 백포도주를 섞은 마티니를 마신다. 그 종류만도 백가지나 되기 때문에 결국 힙(hip)하고 쉬크(Chic)한 사교장의 백미는 마티니다.
첼시의 현재
첼시는 다양하다. 갤러리, 게이커뮤니티, 나이트클럽의 메카이면서도 여전히 한쪽에는 백년이 넘은 고즈넉한 신학원 건물이 있고 뉴욕의 유일한 현대무용 전문 공연장인 조이스 극장이 있다. 게다가 한국의 아파트 단지를 연상시키는 여러 동의 아파트들이 같은 색깔로 늘어서 있기도 하다. 이 다양한 첼시를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첼시는 계속 변화하고 있다. 비록 첼시의 중심가인 8애비뉴 14가에서 23가까지의 9블럭을 걸으며 착하고 스타일 좋은 남자는 다 게이라는 말이 정말로 사실이라는 것을 느낄지라도, 첼시는 기운이 남아도는 십대보다는 나른하게 퍼진 동년배들이 많아서 그런지 익숙해지면 그냥 편한 네이버후드 중의 하나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80년대 스타일 멘트로 마무리 - 수만가지 얼굴이 있는 곳, 첼시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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