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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 |||
7일 |
사순 제3주일 |
루카 13,1-9 |
성가 123, 280 |
14일 |
사순 제4주일 |
루카 15,1-3.11-32 |
성가 118, 119 |
21일 |
사순 제5주일 |
요한 8,1-11 |
성가 115, 117 |
28일 |
주님 수난 성지 주일 |
루카 22,14-23.56 |
성가 10, 490 |
●● 말씀나눔 l 사순 제3주일 ~ 주님 수난 성지 주일
함께하는 복음묵상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안병철 신부
<새 단장한 명동성당 야경>
사진 : 서울대교구 사목국 이준성 신부
진행 중인 하느님의 심판
3월 7일 사순 제3주일 루카 13,1-9
오늘 복음은 공관복음 전승에서뿐만 아니라 역사가였던 플라비우스 요셉조차 언급하지 않았을 정도로 성경 외적인 원천에서는 전하지 않은, 변사(變死)와 요절로 얼룩진 역사적 사실을 상세히 알려줍니다. 무슨 이유로 갈릴래아 사람들이 죽임을 당해야 했으며 예루살렘 사람들이 깔려 죽어야만 했는지요? 무슨 이유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어떤 이들은 살고 어떤 이들은 죽어야 했는지요?
그 사건을 놓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선한 양심을 가진 자들은 살아남고, 악을 일삼던 자들은 죽게 되었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식의 편협한 해석은 하느님의 모습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라고 두 번에 걸쳐 말씀하신 예수님을 생각한다면, 일부가 죽고 일부가 살아남았다는 것은 하느님의 최종적인 심판이 이미 진행 중임을 말하는 표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테르난트 교수는 “빌라도의 병사들에 의해서나 탑이 무너져 내림으로써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살아남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중한 죄인이라는 것은 확실치가 않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그들도 죄인이었다. 그들을 엄습한 재앙은 회개를 촉구하기 위한 하느님의 섭리였다. 그 재앙들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회개하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을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 속에서 오늘 복음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 묵상: 지금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 있다면?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
3월 14일 사순 제4주일 루카 15,1-3.11-32
되찾은 아들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통해서 드러내 보이신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주제를 심화시켜줍니다. 아버지에게 유산을 청해 받은 아들은 먼 지방으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가진 것을 다 탕진한 후 그는 배고픔의 고통을 하소연해야하는 절박한 현실을 직시해야만 했습니다. 그에 반해서 아버지는 모든 것을 다 탕진한 연후에 초라하기 그지없는 빈털터리의 모습으로 돌아온 아들을 조건 없이 맞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과분할 정도로 대접하였습니다.
목말라 본 자만이 물 한 방울의 진한 맛을 압니다. 배고파 본 자만이 빵 한 조각의 소중함을 압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행했던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뉘우칠 수 있는 이만이 용서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앞에 죄인이지 않습니까?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거나 거부할 때 비극은 시작됩니다. 자만에 빠져 있거나 자족감에 도취해 있는 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위선을 벗어던지려는 용기가 있어야 하느님께서 건네시는 뜨거운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내 소유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과감하게 떨쳐버릴 수 있어야 내 안에 하느님의 사랑이 머물 공간이 마련되지 않겠습니까?
■ 묵상: 용서할 수 없었던 경우를 떠올려보고 왜 그랬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회개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
3월 21일 사순 제5주일 요한 8,1-11
바리사이즘은 율법 정신으로 돌아가서 예언자들의 외침에 응답해야 한다는 사고로부터 태동했습니다. 하지만 바리사이즘에 열정을 쏟았던 이들은 사실상 얼마가지 않아 율법을 엄격하게 준수해야 한다는 율법제일주의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바리사이즘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을 경계하거나 멀리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바리사이즘을 추종하던 이들은 간음한 여인의 일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예수님과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에게 율법이 명하고 있는 벌을 적용한다면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스스로 가까이 하고자 했던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될 것이요, 그렇지 않고 그 여인을 용서한다면 율법을 어기게 되는 것입니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예수님의 반응은 단호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결국 어느 누구도 자신이 죄 없다할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지키고 살면서도 마음 안에서 진정한 회개가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시며,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제대로 알아들어야 한다고 우리를 일깨워주십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하면서도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우리의 일그러진 모습을 직시해야할 순간이 지금이 아닐까 싶습니다. ‘회개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라는 인식이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출발점이 아닐는지요? 그리고 복음의 삶은 우선 나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 묵상: 어떤 경우에 다른 사람들을 판단해 왔었는지 되짚어봅시다.
주님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
3월 28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루카 22,14-23.56
루카는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를 통해, 미움과 증오가 난무하던 현실에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보여주시려고 얼마나 꿋꿋하게 모든 일을 겪어내셨는지 상세히 전해줍니다. 루카는 앞서 최후만찬의 이야기에서도 스스로 종의 신분을 취하시어 제자들을 위해 자신의 실존을 송두리째 내어주신 예수님과 자기들끼리의 자리다툼으로 눈이 멀어버린 제자들을 대비시켜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런 식의 대조는 공격자들에 맞서 싸우고 있는 사도들과 대제관의 종을 치유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루카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고발한 적대자들 앞에서도 극도로 온화한 모습을 보여주신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길을 가시면서도 당신을 배척하는 백성들의 불행을 염려하고 걱정하셨습니다. 또 회개한 강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유다 법정이 조롱거리로 삼았던 진실, 다시 말해서 “이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라는 백인대장의 진솔한 고백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신 구원의 길은 이렇게 당신 자신을 온전히 희생 제물로 내놓으신 그리스도의 행위를 통해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예수님께는 시련과 고통의 길이었지만 우리에게는 희망과 구원의 길이었음을 오늘 우리는 묵상해야 하지 않을까요?
■ 묵상: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역설적 행위를 닮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문화산책 l 세상은 당신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당신이 필요합니다
영혼의 멘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베네딕토 16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가경자(可敬者) 선포’
오랜 세월 바티칸 기자로서 교황을 동행하며 취재한 저자가 기자의 눈으로 교황의 생애와 업적을 예리하고 통찰력 있게 전한 한 권의 책이 나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노동자이자 배우로 활동하다가 사제가 되었으며, 주교와 추기경을 거쳐 폴란드인으로는 처음으로 교황이 된 요한 바오로 2세의 생애가 40장에 걸쳐 전개됩니다. 가족을 잃은 아픔과 교황으로 선출되기까지의 과정, 조국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등을 잔잔한 감동을 담아 전합니다. 동유럽과 소련 공산주의의 몰락을 앞당기고, 온 세계를 두루 다니며 평화와 자유의 복음적 메시지를 알리고, 그리스도교의 일치와 타종교와 대화를 위해 힘쓴 교황의 면모가 드러납니다. 또한 교회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청하는 용기, 가난한 이들과 젊은이들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 진보적인 사람들에게서 오는 도전을 받아들이고 파킨슨병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소명을 늦추지 않는 결단력을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교황의 이미지로 새천년기를 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삶을, 인간미 넘치는 여러 에피소드와 함께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 책은 가톨릭 신자는 물론 세계 모든 이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삶을 통해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지혜를 얻고 신앙인들이 그의 삶을 본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것입니다.
※가경자(可敬者):시복(諡福) 후보자에게 잠정적으로 주어지는 존칭
구입문의 : 02)944-0944 또는 바오로딸 인터넷 서점(http://www.pauline.or.kr)
루이지 아카톨리 지음 / 성염 옮김 / 568쪽 / 18,000원
●● 도란도란 성경이야기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갈라6,14)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는데 그는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이었습니다. 그가 세례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순시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순시기만큼은 희생과 절제의 생활을 하며 뜻 깊게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배운 것이 도둑질 밖에 없었던 그는 이 고질적인 습관과 버릇을 쉽게 고치지 못하였고, 사순시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빈집을 털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물론 사순시기만이라도 도둑질을 하지 않는 양심적이고 신앙적인 도둑(?)이 되고 싶었지만 이것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대부분의 신자들이 일반적으로 많이 하는 절제 생활 한 가지를 실천하기로 하고 남의 집을 털러 다녔습니다. 그날따라 빈집을 찾지 못하던 그는 근처에 보이는 성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때마침 성당 마당에서 묵주기도를 하고 있던 신부님 뒤로 조용히 다가선 그는 칼을 들이대며 “신부님, 가진 것을 모두 내어 놓으십시오. 그러면 저는 말없이 돌아가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 신부님은 주머니 이곳저곳을 뒤지다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도둑에게 “자네 참 안됐네. 하필이면 이 가난한 신부에게 와서 가지고 갈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하시며 “그런데 줄 것이 딱 한 가지 있긴 하네만, 내가 피우고 남은 담배가 있는데 그것이라도 가지고 가겠는가?” 했더니 이 도둑이 하는 말이…… “신부님, 저도 사순시기라서 담배는 끊었습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중고등부 학생들을 위한 강론집」중에서)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는 우리도 무엇인가 한 가지씩은 희생하고 절제하며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위의 이야기처럼 겉으로는 희생하고 절제한다면서 마음속에서는 하느님께 대한 흠숭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쏙 빠져있다면 그 희생과 절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2차 선교여행 중에 세웠던 갈라티아 교회는 이러한 문제로 위험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시기 전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의 율법과 할례를 중요시하는 유다교 신자(유다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메시아라는 사실이 드러난 이후에 그리스도교가 시작되었고 그리스도교 신자(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유다인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율법과 할례를 중요시하던 과거의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사도15,1).”라고 가르치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갈라티아 교회에 있던 이방 민족과 이방 종교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모세 율법의 굴레를 씌우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오로에게 큰 위험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인간은 신앙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율법 준수와 할례에 의해 의화(義化)되고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5,17-20).”
바오로 사도 역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갈라티아 교회에 이야기합니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갈라2,16).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율법은 은총의 표징이며 계약의 표징이었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목적은 하느님을 흠숭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 흠숭과 사랑 실천이 없는 율법 준수와 할례는 인간을 교만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도구밖에 되지 않는다고 경고합니다. 주일미사에 빠지지 않고 교무금과 헌금을 꼬박꼬박 내며 금육과 단식을 충실히 지켜도, 혹은 사목위원이나 구역·반장으로 봉사하고 있더라도 하느님께 대한 흠숭과 이웃 사랑의 실천이 빠져 있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께 질책을 받던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사순시기를 맞이하여 바오로 사도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갈라6,14).”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행하고 있는 봉사, 희생, 절제 등이 내가 얼마나 잘난 사람인지를 드러내거나 우쭐거리게 하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하느님의 은총을 드러내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도구로 살아간다면 좋겠습니다.
●● 만남,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3장 성령을 믿나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683~870항)
- 제8절 성령을 믿으며
684항 성령께서는 당신의 은총으로 우리 신앙을 불러일으키는 데 첫째이시며, 또한 새로운 생명의 전달에서도 첫째이시다. 그 생명은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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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거룩한 영’이라는 뜻으로 원어는 히브리어 루아(Ruah)이고, 숨결, 공기, 바람 등을 의미합니다. 또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제3위를 가리키는 고유한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파라클리토(Paracletos) 즉 변호자, 위로자라 하시기도 하고, ‘진리의 영’이라고도 부르셨습니다(요한16,13).
성경에 나오는 성령의 상징 : 물, 기름부음, 불, 구름과 빛, 비둘기 모양 등은 성령께서 임하심을 상징하고, 손가락은 성령께서 하느님의 능력이심을 상징합니다. 안수(按手)는 성령을 누구에게 준다는 뜻이고, 인호(印號)는 성령께서 어떤 것을 확인, 날인하신다는 뜻입니다.
구약의 성령
성자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기 전까지는 성령께서 숨겨진 상태로 활동하셨습니다. 예언자들은 성령의 영감으로 구세사를 기록하였습니다. 창조에서는 말씀(성자)과 숨결(성령)은 모든 피조물의 생명의 기원이었고, 하느님의 영은 ‘계약’의 백성들과 함께하셨습니다. 계약에 충실하지 못해서 유배의 고난을 겪고 있을 때 예언자들은 메시아와 그분의 영을 기다리도록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신약의 성령
신약은 세례자 요한의 등장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로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을 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동정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나셨으며, 예수님의 일생은 언제나 성령과 함께 구원의 계획을 실현하는 삶이셨습니다. 주님이 떠나실 때가 가까이 오면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불어넣어 주셨고, 오순절에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교회의 성령
성령 강림으로 교회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하느님의 선물인 성령께서는 교회를 세우시고, 생기를 주시며, 거룩하게 하십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의 진리를 증언하도록 파견하시고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의 직분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필요한 “성령의 열매(갈라5,22)”를 나누어 주십니다.
“성령 없이는 성자를 볼 수 없으며, 성자 없이는 아무도 성부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성부를 아는 것은 성자를 통해서, 성자를 아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성 이레네오).”
- 제9절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776항 교회는 “온 인류가 하느님의 한 백성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모이며 성령의 한 성전을 함께 세우기를” 원하시는, “인류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가시적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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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Ecclesia)라는 말은 ‘불러 모음’을 뜻하며, 구약에서는 하느님 앞에 모인 백성들의 집회를 가리키는 말로, 실제로는 전례를 거행하는 집회와 지역 신자 공동체와 전체 교회를 가리킵니다.
성경에 나오는 교회의 상징 : 교회는 양의 우리, 신자들은 양떼, 그리스도는 목자이십니다. 또 교회는 하느님께서 가꾸시는 밭이고, 하느님의 집이며, 그리스도의 순결한 배필이고, 하느님의 가정이고, 우리의 어머니이며, 천상 예루살렘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영원한 구원 계획 안에서 창조 때에 예시되고,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준비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활동, 죽음과 부활로 세워지고, 성령 강림을 통하여 구원의 신비로 드러났으며, 마지막 날 천상 영광 안에 완성될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시작된 하느님 나라를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선포하고 세우는 일입니다. 이는 교회가 구원의 보편적 성사로서 모든 인류와 하느님 사이에 화해와 친교를 이루게 하는 그리스도의 구원 도구입니다.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성전인 교회
810항 온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로 모인 백성’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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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세례로 그 일원이 된 하느님의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성령께서 계시는 성전이 되고, 하느님의 자녀라는 품위와 자유를 지닌 공통된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법으로 삼고 있으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만인에게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여 지상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사명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교회는 그리스도와 ‘한 몸’입니다. 세례로써 그리고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콜로1,18)”이시며, 우리를 당신의 파스카에 결합시키시며, 당신을 향해 성장하도록 돌보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갑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요한15,4-5)”
성령의 성전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 머무르시어 교회를 “살아 있는 하느님의 성전(2코린6,16)”으로 만드십니다. 또한 사랑 안에서 말씀과 성사, 은총과 덕, 특히 은사들을 통하여 교회를 건설하십니다. 은사는 성령의 특별한 은총으로서 인류의 선익과 세상의 필요를 위하여 필요한 것입니다. 은사를 받은 사람은 겸손되이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위해 이를 사용하여야 하며, 목자들은 이를 제대로 식별하여 “공동선(1코린12,7)”에 협력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
865항 교회는 근본적으로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온다. 왜냐하면 ‘하늘 나라’ 또는 ‘하느님 나라’가 이미 교회 안에 존재하고 종말에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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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하나이다. 교회는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을 모시고 하나의 신앙을 고백하며, 하나의 세례로 태어나 오직 한 몸을 이루며, 한 분이신 성령께 생명을 얻습니다. 단 하나의 신앙과 단 하나의 성사 생활과 단 하나의 사도적 계승, 그리고 단 하나의 공통 희망과, 단 하나의 사랑을 가집니다.
교회는 거룩하다. 교회는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그 창시자이시며,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으며, 교회를 당신과 결합시켜 당신 몸이 되게 하시고, 또한 성령의 선물로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사랑으로 교회에 생명을 주십니다. 교회의 거룩함은, 모두가 이 땅 위에서 언제나 회개와 정화가 필요한 죄인임을 인식하는 하느님 자녀들의 성화의 원천이 됩니다.
교회는 보편되다. 우리가 믿는 교회를 보편된 교회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교회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에 가톨릭 교회가 있다(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교회는 신앙의 진리 전체를 선포하며, 모든 시대, 모든 민족에게 파견되었습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말을 건네며, 모든 시대를 포용하여야 하며 세상 마칠 때까지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교회는 사도로부터 이어온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뽑으시고 선교에 파견하신 사도들 위에 세워졌으며, 사도들의 가르침과 사도들이 전한 신앙의 유산을 보존하고 이를 전하며, 사도들의 후계자를 통하여 다스려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한 신비체의 모든 활동이 바로 사도직입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이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모든 구원이 당신의 몸인 교회를 통하여 주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 의하여 설립되었고 구원에 필요한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교회에 들어오기를 싫어하거나,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교회를 모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그분 교회의 은총 덕분에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7,21).”
※ 자세한 내용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8)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가정기도 l TV에 관한 불편한 진실
TV에 관한 불편한 진실
가정에서 온 가족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서 진행합니다.
1. 시작 기도
│진행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우리 중의 한분이 주님을 초대하는 기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생활 말씀
│진행자│ 돌아가면서 한 구절씩 성경 말씀을 읽겠습니다.
† 루카 복음서 22장 39-46절
39 예수님께서 밖으로 나가시어 늘 하시던 대로 올리브 산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40 그곳에 이르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41 그러고 나서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곳에 혼자 가시어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42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43 그때에 천사가 하늘에서 나타나 그분의 기운을 북돋아 드렸다. 44 예수님께서 고뇌에 싸여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 45 그리고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시어 제자들에게 와서 보시니, 그들은 슬픔에 지쳐 잠들어 있었다. 4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자고 있느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일어나 기도하여라.” |
│진행자│ 더 큰 목소리로 다함께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다 읽은 후) 약 2분 정도 성경 말씀을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묵상을 끝내고 다음의 나눔을 진행합니다)
♠ 나눔
① 성경 말씀을 읽고 느낀 점을 이야기해 봅시다.
② 우리가 일상생활 중에 빠지기 쉬운 유혹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진행자│ 다음의 내용을 다함께 살펴보겠습니다.
TV에 관한 불편한 진실
우리는 TV를 통해 드라마, 스포츠, 연예, 뉴스, 교육 등 다양한 내용들을 저렴한 비용으로 손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TV를 보면 좋은 점이 많을까요? 아니면 나쁜 점이 많을까요? 물론 좋은 점도 있습니다만 나쁜 점이 더 많습니다. 문제는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라 무지 많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無知)합니다.
특정한 행동이나 패턴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하게 알아보려면 단기적인 연구뿐만이 아니라 10년, 20년, 30년 혹은 그 이상에 걸친 장기적인 추적연구를 통해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패스트푸드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를 현대인에게 최적화된 건강식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패스트푸드에 대한 장기적인 연구가 수십 년 동안 이루어지면서 인체에 미치는 나쁜 영향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이제는 아무도 패스트푸드를 건강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TV도 마찬가지입니다. TV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장기적인 연구들의 한결같은 결론은 ‘심각할 정도로 부정적인 영향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자료가 너무나도 많아서 일일이 소개하기 버거울 정도입니다.
TV시청 시간이 늘어날수록 비만, 당뇨병, 심혈관 질환, 심장병, 암, 디스크 등 신체적 질환뿐 아니라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틱장애(TIC) 등 정신적 질환이 크게 증가합니다. 밤늦도록 TV를 시청할 경우 멜라토닌 분비 저하로 인해 면역기능이 떨어지고 노화가 촉진되며 어린이들의 경우 성조숙증이 유발됩니다. 특히 여아의 경우 성인이 되어 자궁내막증, 자궁암 등 여성계 질환에 취약해집니다. 아기들을 TV 앞에 방치하면 언어장애와 함께 유사자폐증이라고도 불리는 반응성애착장애의 원인이 됩니다. 가족 간 대화 부족을 유발하여 관계를 악화시키고 이로 인해 생활 만족도와 행복지수가 감소합니다… 이하 수없이 많은 자료들은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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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눔
① TV시청이 나쁜 줄 알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② TV시청을 적절히 조절하기 위해 우리 가족이 함께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4. 함께 실천합시다
│진행자│다음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TV를 아예 안보며 살아가기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TV시청의 부정적인 영향을 올바로 인식하고 온 가족이 함께 노력해 나가면 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우선 다음의 세 가지부터 함께 실천합시다.
① 밥 먹을 때 TV를 끕시다.
② 잠잘 때 TV를 끕시다.
③ 가족들과 대화할 때 TV를 끕시다.
TV를 끄면 사랑이 켜집니다.
5. 가족 회의 시간
│진행자│ 가족 회의 시간입니다. 가족이 함께 알아야 할 사항이나 논의가 필요한 일들, 가족 친지들의 생일, 축일 소식이나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 가족에 바라는 점 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 해주시기 바랍니다.(자녀에 대한 훈계의 시간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6. 가족 평화의 인사
│진행자│지금부터 평화의 인사를 나누겠습니다.(온 가족이 돌아가면서 포옹을 하며 평화의 인사를 나눕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의 기도를 해줍니다.)
7. 마침 기도
│진행자│다함께 손을 잡고 주모경을 바치겠습니다.
●● 그리스도교의 상징
돌 고 래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돌고래는 영혼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상징이었습니다. 고대부터 돌고래에 관한 수많은 전설이 전해오지만, 삶이라는 바다를 헤엄쳐가는 물고기이자 물길의 안내자라는 점에서 돌고래를 본다면 쉽게 예수님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구원의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생명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8,12).”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다음과 같이 증언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1요한4,14).”
예수님의 책무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이고, 여러 성사들을 통해서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에 도달하도록 당신의 활동에 동참하기를 바라십니다. “오늘 이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19,9-10).” 우리는 노력할 기운을 잃었을 때일수록 하느님의 도우심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분 현존의 표징에 집중하게 하시며 은총을 통하여 우리에게 기회를 허락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십니다(2코린6,1-2참조).
다음의 시편 기도는 인도자이며 구원자이신 하느님을 잘 보여줍니다. “주님께서는 선하시고 바르시니 죄인들에게 길을 가르쳐 주신다. 가련한 이들이 올바른 길을 걷게 하시고 가련한 이들에게 당신 길을 가르치신다(시편25,8-9).”, “주님은 당신 백성에게 힘이시며 당신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구원의 요새이시다(시편28,8-9).”, “당신의 빛과 당신의 진실을 보내소서. 그들이 저를 인도하게 하소서. 그들이 저를 당신의 거룩한 산으로, 당신의 거처로 데려가게 하소서(시편43,3).” 예수님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의 말씀이십니다. 그분은 구약에서 시작된 아버지의 구원 계획을 완성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말씀하신 후, “마지막 이 시대에 와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히브1,1-2)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영원한 말씀이신 당신 아드님을 파견하셨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인간 가운데 사시며 인간에게 하느님의 내면을 알려 주심으로(요한1,1-18) 모든 인간을 비추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혈육을 취하신 말씀이시며 “인간들에게 파견되신 인간”이시고, “하느님의 말씀을 하시며”(요한 3,34), 아버지께서 맡기신 구원의 임무를 완수하신 분이시다 (요한5,36-17,4참조). (계시 헌장 4항)
●● 해외 선교사 공동체 탐방 l 러시아 선교현장 (3)
러시아 선교현장 (3)
이번 해외 선교사 공동체 탐방에서는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성모승천성당’과 그곳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마리오 베네라티(Mario Benerati)’ 신부를 소개합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승용차로 6시간을 달려 어느덧 러시아의 북서부에 위치한 ‘니즈니 노브고로드’에 다다랐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로 가는 길에 적어도 4개의 교구는 지날 수 있었을 터인데, 니즈니 노브고로드는 모스크바대교구 관할이었습니다. 도착한 곳은 성모승천성당으로, 마구간을 개조해서 지은 성당 내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곳은 1854년에 설립되었지만 공산정권으로부터 강제 징발되어 1925년 문을 닫았고, 신앙의 터전을 잃어버린 신자들이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등 주변국가로 건너가서 미사를 참례하며 신앙생활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행여 집에서 미사를 봉헌하려고 해도 커튼을 치거나 창문으로 가려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본당 신자들에게 더 큰 아픔이 있었습니다. 1942년 안토니오 주임신부가 공산당에게 총살을 당해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스탈린 시절까지 사제 뿐 아니라 예술가 등 4천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했습니다.
성모승천본당의 베네라티 신부는 “이곳이야 말로 진정한 순교지입니다.”라고 말하며 우리를 2층의 전시실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곳에는 안토니오 신부 초상화를 비롯해 본당 신자들의 초창기 모습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의 피는 우리에게 신앙의 씨앗입니다. 지금까지도 본당 신자들은 돌아가신 영혼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라며 공산정권 시절에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의 모습을 경건히 바라보았습니다.
현재 13년째 이 본당에서 사목 중인 베네라티 신부는 1996년 마구간으로 쓰던 건물을 돌려받아 최근에 성당으로 개조했고, 2004년부터 50여명의 노숙인들을 위해 성당 옆 수녀원 건물에서 일주일에 네 번 무료 급식을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베네라티 신부는 한 가지 더 기쁜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해마다 신자들과 정교회 성당에 찾아가 갈라진 형제와 함께 예수 탄생과 부활의 기쁨을 나누고, 지역 공동체 안에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돕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러시아 선교현장을 보면서 1995년 故김수환 추기경님께서 10여 명 남짓한 러시아 신학생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떠올랐습니다. “러시아 가톨릭교회는 겨자씨만큼 작지만 천국은 이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겨자씨가 러시아 가톨릭교회입니다.” 가톨릭 성당은 찾아보기도 힘들고 찾으러 가기도 힘든 곳에 있었지만 우리는 러시아에서 생명을 품고 숨 쉬고 있는 작은 씨앗이 주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마리오 베네라티(Mario Benerati) 신부가 설계도를 가리키며 마구간을 성당으로 개조한 상황을 설명하는 모습
마구간을 개조한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성모승천성당 내부
●● 노년의 향기 l 노인에 대한 이해
당신이 꿈꾸는 노년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80세는 기본이고 ‘인생백년’ 혹은 의사들의 미래진단처럼 우연찮은 사고가 없다면 120세까지도 무난히 살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길어진 노년을 잘 보내기 위해 우리도 그 어느 때보다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구약시대를 제외하고는 긴 노년의 모델을 갖고 있지 못한 탓에, 그토록 염원하던 장수의 꿈이 이루어진 오늘날 오히려 노년에 대한 불안과 걱정, 그리고 잘 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는 아이러니한 일도 벌어집니다. 물론,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심리적으로 안녕감(well-being)을 가진 노년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래도 무언가 빠져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어느 95세 노인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5세에 당당히 은퇴할 수 있었죠.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세 생일 때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답니다. 65세 생일에 그토록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은 부끄럽고 후회스럽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멋없고 희망 없는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긴 세월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스스로 늙었다고, 뭔가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난 지금 95살이지만 정신이 뚜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나는 이제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에 95살 때 왜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노년에 대한 편견 혹은 부정적인 고정관념 때문인지,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조차도 ‘노인’이라는 말을 썩 반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신노인’, ‘No老세대’, ‘앙코르세대’, ‘뉴실버’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도, 오래 살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늙고 싶지 않은 노년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들에게는 영광(잠언17,6)인 것과 마찬가지로, 노년은 젊은이들에게 영광스러운 존재여야 하지 않을까요? 노인들의 백발이 영광의 면류관(잠언16,31)인 것은 살아오면서 의로운 일을 한 때문입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진 시간 혹은 살아갈 나날들을 의로운 일을 하면서 보내는 것도 건강관리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입니다. 의로운 일이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온화한 모습, 인자함이 배어나오는 말 한마디, 따뜻한 눈빛, 앙상한 손이지만 잡았을 때 백 마디 말보다 더한 정을 느끼는 손길... 이런 것들이 노년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사람들이 가진 노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떨치게 하는, 그야말로 ‘노년의 힘’ 아닐까요? “백발은 면류관, 의로운 길에서 얻어진다.”라는 잠언 구절이 “평생의 행복을 원한다면, 다른 사람을 도우라.”라는 중국 속담과 겹쳐져, 내 자신의 노년을 꿈꾸게 합니다.
노인사목연구위원 이경희(세라피나)
● 나눔 : 내가 꿈꾸는 노년의 모습은 어떠한 것인지 이야기 나누어 봅시다. |
●● 노년의 향기 l 웰 다잉
잘 죽기로 선택하는 결단 내리기
1. 서론 : 죽음 - 최고의 과제2. 죽음준비와 고독 3. 죽음준비의 첫 번째 과제 :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 4. 죽음준비의 두 번째 과제 : 우리는 하느님의 같은 자녀임을 인식하는 것 5. 죽음준비의 세 번째 과제 : 미래의 세대에게 부모 되기 6. 잘 죽기로 선택하는 결단 내리기7. 죽어가는 사람 잘 보살피기 8. 죽어가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 알리기 9. 죽어가는 사람에게 모든 인류와의 연대 권하기 10. 죽어가는 사람에게 다가올 세대의 부모 되길 권하기 11. 결론 : 예수님 부활의 지평 아래 죽음 맞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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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음과 친구가 되기 위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이며 모든 사람의 형제자매이고 다가올 세대의 부모임을 믿고 주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죽음을 그 부조리로부터 해방시키고 새로운 생명으로 가는 입구로 만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길을 우리에게 열어주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살고 죽는 방식을 선택할 때, 우리도 바오로 사도가 했던 죽음에 대한 멸시의 질문으로 죽음을 대면할 수 있습니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1코린15,55)?” 이것은 선택입니다. 그러나 힘든 선택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어둠의 세력은 강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의 생각, 말, 행동을 지배하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처럼 우리의 죽음과 친구가 되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과의 연대 속에서 우리의 궁극적 결실을 믿으면서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살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우리 역시 다른 이들을 보살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소멸에 직면하고 있는 남녀로서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죽음의 어둠을 쫓아버리고 하느님의 은총의 빛을 향해 가도록 돕고 인도할 수 있습니다.
잘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잘 보살피는 것도 선택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모두 보살핌의 선물을 지니고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선택할 때에만 비로소 보입니다. 우리는 동료들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다거나 조금 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하는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립니다. 또한 동료들의 절망은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면 가까이 가는 것보다 가지 않는 것이 더 낫게 보이는 때가 자주 있습니다. 이는 특히 죽음을 대면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에 더 그러합니다. 그러나 죽어가는 사람들로부터 도망가면서 우리들은 보살핌의 선물을 묻어버립니다. 보살핌의 선물을 받아들이고 우리 자신의 소멸성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소멸성도 받아들이기로 선택할 때마다 우리는 치유와 희망의 참다운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보살핌의 선물을 가지고 우리는 죽어가는 형제자매들을 하느님과 하느님의 우주 더 깊은 곳으로 부드럽게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무한한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가장 큰 약함과 가장 큰 강함이 만났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 이 신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서로 잘 죽도록 돕는 것은 우리의 약함 속에서 서로 결실을 맺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죽어감은 새로운 생명이 떠오를 것이라는 신뢰로써 우리의 십자가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다.
●● 사제의 해 특집
사제의 해 특집(7)
3월 성시간 지향 “사제성소의 증가를 위하여”
이번 호에서는 몰로카이의 성자 “다미안 신부님(축일 4월 15일)”의 간추린 생애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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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둘러싸인 외딴 곳에서 사목하는 한 사제가 자신의 사목구를 방문한 주교님을 만나기 위해 조각배를 저어 항구에서 멀리 떨어진 배를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곳은 정부당국으로부터 주교님을 비롯한 모든 일반인의 상륙이 금지된 격리 수용지였기 때문입니다. 고해성사에 목말랐던 사제는 성사를 볼 수 있게 단 몇 분이라도 승선을 허락해 달라고 청하지만 무참히 거부당합니다. 그러자 사제는 자신이 타고 온 조각배의 뱃머리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주교님은 그의 고백을 듣기 위해 최대한 바다를 향하여 몸을 기울입니다. 배 밑에는 통회의 눈물을 흘리며 고백을 하는 사제, 배 위에는 눈을 가늘게 뜨고 엄숙하게 듣는 주교님, 그 순간 바다 전체가 거대한 고해소가 되었습니다. 이 감동적인 고해성사의 장면은 ‘몰로카이의 성자’ 다미안 신부님의 삶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일화입니다.
사제 다미안은 1840년 1월 4일 벨기에의 트레멜로 마을에 있는 베스테르 집안에서 여섯째로 태어나 요셉(Joseph de Veuster)이라는 이름으로 세례 받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고 건장했기에, 부모는 그가 실업교육을 받아 집안의 기둥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기대와 다르게 그는 성소를 꿈꾸었고 끈기 있는 그의 지향은 결국 열매를 맺어 형이 먼저 입회한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 수도회’에 들어가 ‘다미안’이라는 수도명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불굴의 지향은 다미안 신부의 가장 큰 덕목이었습니다.
해외선교가 주요 목적이었던 성심 수도회는 하와이 군도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863년 선교사로 선발된 형 팜필 신부가 병자들을 돌보다 장티푸스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신학 공부 중이던 다미안은 형을 대신하여 하와이로 가고자 했으나 수련장이 허락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몰래 프랑스에 있는 수도원의 총원에 청원서를 냅니다. 그리고 그 청원이 수락되어 이듬해 하와이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피마뉴 대신학교에서 약 2개월간의 남은 신학 공부를 마친 후, 그 해 1864년 5월 21일 호놀룰루 대성당에서 루이 메그레 주교에 의해 사제 서품을 받습니다. 이후 하와이 군도의 푸나, 코할라, 하마쿠아 지구를 맡아 8년 동안 그곳에서 사목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미안 신부가 하와이에 도착했던 당시 그곳 사정은 몹시 좋지 않았습니다. 서구 질병에 항체를 갖고 있지 못하였던 하와이의 주민들이 티푸스, 콜레라, 매독과 같은 병에 전염되어 1790년에 50만 명이었던 인구가 1865년에는 겨우 5만 명으로 줄어든 상태였고, 인구의 10~15%가 한센균(나균)에 감염될 정도였습니다. 이에 공포에 사로잡힌 정부는 치유 불가능한 한센병 환자를 강제 이주시키는 정책을 반포했습니다. 자녀, 연인, 부모에게서 강제로 격리된 환자들은 하와이 군도 중앙에 위치한 몰로카이 섬의 북쪽 ‘칼라우파파’라고 불리는 오지, 즉 삼면은 바다이고 육지와 연결된 남쪽은 600~900m의 벼랑으로 막혀 있는 춥고 습한 곳으로 쫓겨났습니다. 약속했던 옷과 음식은 제공되지 않았고 그로 인하여 40%의 환자가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지옥의 땅, 그곳이 바로 몰로카이 섬의 ‘칼라우파파’였습니다. 이러한 곳에서 33세의 다미안 신부는 1873년 5월부터 새로운 사목을 시작합니다.
다미안 신부는 통나무처럼 떡 벌어진 가슴과 근육을 지니고, 마음 깊은 곳에는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인 끈기 있는 지향이라는 무기를 지니고 자신의 사명을 실천하였습니다. 때로는 불 같은 성격으로 인해 손에 몽둥이를 들고 밀수꾼, 뚜쟁이, 노름꾼, 도둑들을 대적했으며, 정부 당국과 세상과 교회를 향해서는 “끈질기게 기도하는 과부(루카18,1-8)”처럼 청원함으로써 환자들의 삶을 향상시켰습니다. 16년의 사목 생활 동안 다미안 신부는 사제이면서 동시에 경찰, 건축가, 목수, 간호원, 농부, 농장 관리인, 변호사, 은행가, 수입상, 부동산 중개인, 기업가, 무덤 파는 인부, 그리고 관 제작자로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특히 타고난 목수였던 다미안 신부는 경당, 사제관, 학교, 성당(필로메나 성당)뿐 아니라 집 없는 사람에게는 집을 지어주고, 손가락이 없는 사람을 위해서는 자신의 손으로 고름을 짜주고 싸매주었으며, 자포자기한 사람들에게는 재생의 은혜를 가르쳤습니다. 그는 스스럼없이 환자들에게 다가갔고, 환자들을 친구로 대했습니다. 환자들이 재배한 토란 요리와 그들이 피고름 나는 손으로 집어 주는 돼지고기를 받아먹었으며, 사제관을 모든 환자들에게 개방하였고, 한 환자를 요리사로 두기까지 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이 한센병에 걸리지 않아서 환자들의 고통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다 결국 자신도 그 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1885년, 자신이 병에 걸린 것을 안 다미안 신부는 강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다가가게 하기 위해 나도 나환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강론할 때 나는, 교우라는 말 대신 ‘우리 나환자’라고 말합니다.”
다미안 신부는 한센병에 감염된 후에도 나환자들을 위하여 계속 일하였습니다. 요양해야 한다는 주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환자들을 돌보다가 1889년 4월 15일 성주간 월요일 8시에 선종하였습니다. 다미안 신부의 유해는 성 필로메나 교회 바로 옆, ‘칼라우파파’에서 첫 밤을 지냈던 나무 아래에 묻혔습니다. 그 후 벨기에 정부가 하와이로부터 허가를 받아 고향 땅으로 모셔, 현재는 벨기에 루뱅의 성 요셉 성당 지하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제의 해로 선포된 2009년 10월 11일, 성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하여 성인 반열에 올랐습니다.
하느님 진실로 제 인생은 행복이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선교사입니다
●● 이달의 성가
가톨릭 성가 401번
주를 찬미하여라 (시편148)
음악에 대해 거의 지식이 없는 분이라 하더라도 아마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정도는 알고 계시지 않을까 합니다. ‘빠바바 밤~’하면서 울리는 테마에 어떤 이가 ‘보라 운명은 이렇게 시작된다!’라고 말하면서 ‘운명’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지는데, 이 곡과 함께 베토벤의 9개 교향곡 중에서 그 못지않게 유명한 곡이 바로 ‘합창 교향곡’일 것입니다. 음악 역사에서 볼 때에 유독 베토벤만이 홀로 본래 순수한 기악음악이었던 교향곡(Symphony)에 성악 파트를 붙인 것은 아니지만, 성악이 붙은 교향곡 중 가장 유명한 곡은 바로 이 곡이라 생각됩니다. 이 교향곡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최후의 교향곡이었으며,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베토벤은 이미 청력을 상실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가톨릭 성가 401번은 이 교향곡의 마지막 4악장에 나오는 합창의 주제 선율에 시편 가사를 붙인 성가입니다.
베토벤은 1822년에 영국의 런던 필하모닉 협회(현재의 왕립 필하모닉 협회)에서 의뢰를 받아 1822년에 시작하여 1824년에 9번 교향곡의 작곡을 마친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사실은 그가 젊은 시절에 접한 쉴러의 ‘환희의 송가’를 바탕으로 이러저러한 곡을 구상하기 시작한 시간은 꽤 오래된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 곡은 1824년 5월 7일에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사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에 그는 상당히 어려운 시기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점차적으로 청력을 상실해 가고 있던 그에게 그를 위해 특별히 고안된 작은 나팔처럼 생긴 보청기도 점점 소용이 없어져 필담으로 밖에 대화를 나눌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조카 문제와 금전적 압박 등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완전히 청력을 상실했다는 사실과 그로 인한 좌절과 절망에 빠져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베토벤은 쉴러의 ‘환희의 송가’를 다시 붙잡고, 유네스코에 의해 2003년에 음악 유산으로 공식 지정되며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 걸작을 작곡하게 된 것입니다.
‘환희의 송가’ 중에서 성가 401번에 해당되는 합창 파트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백만인이여, 서로 껴안으라, 전 세계의 입맞춤을 받으라, 형제여! 별의 저편에는 사랑하는 주님께서 계시는 곳이다. 억만의 인민이여 엎드려 빌겠는가? 세계의 만민이여, 창조주를 믿겠는가? 별의 저편에서 사랑하는 주님을 찾으라! 별들이 지는 곳에 주님께서 계신다.”
성가 401번을 노래할 때,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베토벤이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 주님 안에서 희망과 사랑을 노래하고자 강렬한 열망을 담았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하며 우리도 같은 열망을 담아 노래하면 좋겠습니다.
이상철 신부 (가톨릭대학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 사목국 교육안내
사목국 일반교육부
■ 3월 구역(반)장 월례연수
주제 : 성소계발
일시 및 장소
3월 |
오전 10:30 |
오후 2:00 |
16일(화) |
고척동 |
연희동 |
17일(수) |
|
흑석동, (중앙동) |
18일(목) |
서초동 |
혜화동 |
19일(금) |
창 동 |
오금동(2:30) |
22일(월) |
(불광동) |
|
23일(화) |
청량리 |
명일동 |
24일(수) |
구의동 |
역삼동 |
25일(목) |
대방동 |
등촌1동 |
26일(금) |
목 동 |
|
※ ‘명동(가톨릭회관)’에서는 월례연수가 없습니다.
문 의 : 727-2062~3
■ 남성구역봉사자피정
대 상 : 본당 남성구역봉사자
3/7(일) |
10:00~16:30 |
서서울지역 |
3/14(일) |
10:00~16:30 |
동서울지역 |
3/21(일) |
10:00~16:30 |
중서울지역 |
장 소 : 명동성당 꼬스트 홀
교육비 : 10,000원 (사전 접수제)
문 의 : 727-2062~3
■ 본당수도자연수
대 상 : 서울대교구 본당수도자
일 시 : 3월 8일(월)~9일(화), 1박 2일
장 소 : 의정부 한마음 수련원
교육비 : 추후 공지 (접수마감 3/2)
문 의 : 727-2062~3
■ 구역장·반장학교 3단계
대 상 : 구역장·반장학교 2단계를 수료한 구역장·반장
일 시 : 11기 3월 16일(화)~17일(수) 13:00~17:00, 3월 18일(목) 13:00~15:00
12기 3월 23일(화)~24일(수) 13:00~17:00, 3월 25일(목) 13:00~15:00
장 소 : 11기 광장동 성당
12기 혜화동 성당
교육비 : 20,000원 (접수마감 3/9)
문 의 : 727-2062~3
사목국 선교전례사목부
■ 전례꽃꽂이 학교(1년 과정 중 1학기)
대 상 : 본당 전례꽃꽂이 봉사자, 일반신자
날 짜 : 3월 4일~6월 17일(매주 목, 14주간)
시 간 : 10:00~12:30
장 소 : 가톨릭회관 2층 강당
교육비 : 300,000원 (접수마감 2/25)
문 의 : 727-2065,6
■ 성주간 전례교육
대 상 : 본당 전례분과위원, 전례봉사자, 일반신자
날 짜 : 3월 9일(화)
시 간 : 13:30~17:00
장 소 : 명동대성당
교육비 : 10,000원 (접수마감 3/2)
문 의 : 727-2065,6
■ 수도자 성체분배권 교육
대 상 : 서울대교구 성체분배권이 없는 수도자
날 짜 : 3월 23일(화)
시 간 : 10:00~12:00
장 소 : 가톨릭회관 3층 대강당
교육비 : 5,000원 (접수마감 3/16)
문 의 : 727-2065,6
사목국 가정사목부
■ 가정성화 생명수호 월례특강 및 미사
주 제 : 가족관계 및 갈등
일 시 : 3월 2일(화) 13:30~16:30
장 소 : 가톨릭회관 2층 강당
준비물 : 필기도구, 미사준비 (회비 없음)
문 의 : 727-2071 (www.ihome.or.kr)
■ 낙태치유 프로그램 및 월례미사
대 상 : 낙태의 상처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
내 용 : 생명의 소중함, 화해 및 치유 프로그램, 미사
일 시 : 3월 9일(화) 13:30~16:30
장 소 : 서울대교구청 별관 6층 소성당
준비물 : 필기도구, 미사준비 (회비 없음)
문 의 : 727-2071 (www.ihome.or.kr)
■ 약혼자주말
대 상 : 예비부부, 1년 미만 신혼부부
내 용 : 건강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프로그램
일 시 : 68차 3월 5일(금) 19:00 ~ 7일(일) 18:00, 2박 3일
69차 3월 26일(금) 19:00 ~ 28일(일) 18:00, 2박 3일
장 소 : 68차 신길동 살레시오 회관
68차 합정동 마리스타 회관
참가비 : 240,000원/커플
문 의 : 727-2069 (www.ceekorea.or.kr)
사목국 노인사목부
■ 노인사목후원회 미사
대 상 : 노인사목후원회 회원 및 모든 시니어
일 시 : 3월 2일(화) 10:30
장 소 : 종로 성당
문 의 : 727-2121
■ 시니어 문화 마당
대 상 : 노인사목후원회 회원 및 모든 시니어
내 용 : 리더십 (강의 후 점심식사)
일 시 : 3월 2일(화) 11:30
장 소 : 종로 성당
문 의 : 727-2121
■ ‘가톨릭 영 시니어 아카데미’ 2학년 1학기
개강미사
대 상 : ‘가톨릭 영 시니어 아카데미’ 2학년 학생
일 시 : 3월 3일(수) 10:30
장 소 : 가톨릭회관 1층 강당
문 의 : 727-2118
■ ‘가톨릭 영 시니어 아카데미’ 입학미사
대 상 : ‘가톨릭 영 시니어 아카데미’ 1학년 학생
일 시 : 3월 11일(목) 10:30
장 소 : 가톨릭회관 1층 강당
문 의 : 727-2118
■ 노인대학 봉사자 월례교육
대 상 : 연합회 소속 본당 노인대학 봉사자
내 용 : 새로운 동아리 과정 수업 강의
일 시 : 3월 9일(화) 10:00~13:00
장 소 : 우리은행 본점 4층 대강당
교육비 : 6,000원
문 의 : 765-8456 (노인대학연합회)
사목국 성서사목부
■ 2010년 전반기 성서못자리 정기강좌 개강
대 상 : 성서에 관심 있는 신자 및 수도자
내 용 : 정기강좌(입문~5권), 나눔터(필리피서, 콜로새서, 마르코), 청년못자리
날 짜 : 3월 8일~6월 14일(매주 월, 15주간)
시 간 : 10:30~12:30 / 19:00~21:00
접 수 : 명동성당, 개강일로부터 3주간
교육비 : 50,000원(당일 접수)
문 의 : 775-5789
●● 성화에 담긴 영성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 1431-1506)의
죽은 그리스도 (The Dead Christ, 1490)
이 작품은 안드레아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이렇게 슬프게 표현한 작가가 또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테냐의 가장 이색적인 그림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은 단축법을 구사하는 그의 뛰어난 솜씨를 잘 보여줍니다. 이 작품에서 만테냐는 죽어서 시퍼렇게 변색된 예수님 시신의 발치에 앉아서 약간 위를 올려다보는 시점을 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이 같은 시점에서 그린 경우는 그때까지 없었습니다. 만테냐는 고통 끝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신을 과감한 단축법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몸이 아주 짧아 보입니다. 이러한 낯선 비례는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보다 큰 충격을 전해줍니다.
화면을 가득 메운 예수님의 몸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생긴 처참한 상처들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양 손과 양 발, 그리고 옆구리의 창 자국까지… 예수님의 살갗은 날카로운 금속에 뚫리고 찢겨, 수난 당시의 고통을 그대로 전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통이 아직 남아있기라도 한 듯이 예수님의 양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있습니다. 예수님의 왼편에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두 여인이 보입니다. 그 중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여인이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슬픔으로 일그러진 마리아의 얼굴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절절하게 보여줍니다. 다른 한 여인 역시 두 손을 모은 채 슬퍼하고 있습니다. 만테냐가 임종을 맞이했을 때 그의 방에 이 그림이 걸려있었다고 합니다. 화가 자신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의 잘못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 슬픔과 죽음의 어둠 뒤로 새로운 희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절망이 절망으로 끝나지 않으며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지영현 신부 (가톨릭회관 평화화랑 담당)
Tempera on canvas, 68 X 81 cm, Pinacoteca di Brera, Milan
수유동성당 제대에서 바라본 내부 전경
2009년 6월 19일~2010년 6월 11일
사제의 해에 바치는 ‘사제를 위한 기도’
○ 영원한 사제이며 착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의 백성을 당신께로 인도하도록 사제들을 불러주심에 감사하나이다.
● 사제들이 주님의 양떼들을 돌보는데 헌신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게 하소서.
○ 날마다 주님의 성체성사를 이루는 사제들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그 사명에 충실하게 하소서.
● 사제들의 모범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기꺼이 응답하게 하소서.
+ 성자께서는 세세에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 아멘.
○ 교회의 수호자 성모 마리아님
● 사제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 사제들의 수호자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 사제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 사제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인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