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산
논설위원ㆍ부산 홍법사 주지
요즘만 같다면 사는 맛이 난다. 스님이 별 소리 다 한다 싶겠지만 솔직한 심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연등 물결이요 만나는 이 마다 부처님오신날 준비이야기로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기가 돈다. 사람마다 여유가 있다. 특히 우리 절은 동글동글 동자승들의 깍은 머리가 절 구석구석을 몰려다니느라 시끌벅적하다. 신기한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고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래서 웃음과 울음이 수시로 교차하는 동자승 세상이다.
이 얼마나 큰 포교인가
올해로 세 번째 동자승 단기 출가를 진행하고 있다. 4살부터 7살까지 10명이 사미, 사미니계를 받고 당당한 동자승으로 살고 있다. 출가하는 순간부터는 부모와 가족으로부터 철저하게 분리된다. 말 그대로 출가다. 행자생활도 일주일을 한다. 그리고 스님들과 똑같이 새벽 4시에 기상해서 예불을 올린다. 집에서는 깊은 잠에 빠져있을 이른 새벽에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졸린 입을 옹알거린다. 아침은 고사리 손으로 발우공양을 한다. 천수 물과 반찬은 동자승들이 직접 나눈다. 참 곤지랍다. 사시에는 매일 육법공양을 올리고 천수경 독송까지만 동참한다. 사월 초하루에는 부처님 말씀을 외워 신도들에게 법문도 한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또 있을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라는 표현이 뭔지 비로소 알 것 같다. 마냥 바라보고 싶고 안아보고 싶고 그래서 있는 것 다 줘도 아까울 것 없는 존재가 자식이라는 세속의 의미가 자연스레 느껴져 온다. 사실 예쁜 모습만 보여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출가 첫날 밤 집에 가고 싶다고,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고 막무가내로 울어 댈 때는 그리움의 사무침이 이런 것 인가 하고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울다가 지처 잠들고 하루가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도반들과 놀기에 바쁜 동자승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또한 화장실만 해도 집에서는 문만 열면 되지만 절은 동선이 길어서 참지 못하는 경우에는 옷에다 실례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참 난처한 상황이다. 그런데 옛말에 “아이는 밤새 똥 싸고 보채도 예쁘기만 하고 노인은 밤새 떡 해주고 밥해줘도 밉기만 하다”는 말이 있다더니 그래서 아이들을 키우는가 보다.
따지고 보면 동자승 단기출가 기간에 더 힘들어하는 것은 부모나 가족들이다. 어리게만 보아온 서너 살짜리 아이가 21일 동안 집을 떠나 절에서 엄격한 출가 생활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도 가벼운 인연도 아니다. 직계 가족은 말 할 것도 없고 외가의 외가까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다. 출가하는 동자승은 한 명이지만 바라보는 시선들은 수 백 명이다. 그래서인지 매일 매일 사진이 게재되는 홈 페이지 접속 건수가 평소보다 몇 배는 많다. 이제 동자승은 단순한 한 명의 의미가 아니다. 인연 있는 모든 분들과 심지어 다니던 유치원 선생님들의 댓글은 불교를 바라보는 시선을 교정하기에 충분하다. 이 얼마나 큰 포교인가.
‘영원한 불자’ 씨앗 심기
지난 가을 처음 동자승 예비모임에 올 때만 해도 ‘아저씨’ 하고 쫓아 다니던 동자승들이 지금은 누구보다 친근하게 스님을 따르는 모습에서 영원히 불자로 살아갈 씨앗을 심는다는 자부심을 가져본다. 이토록 감동적인 동자승 단기출가를 어린이 포교의 새로운 시도로 모든 절들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