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삼국시대 말기에 촉나라의 황제 유비가 죽은 뒤, 그의 아들 유선(劉禪)이 뒤를 이었다. 제갈량(諸葛亮) 등 중신(重臣)마저 세상을 떠난 뒤, 무능한 유선은 나라를 보전하지 못하였다. 위(魏)나라가 침공하자 스스로 손목을 묶고 성문을 열어 투항하였다. 위나라 왕은 유선을 안락공(安樂公)으로 봉하고, 위나라의 도읍에 살게 하였다.
하루는 위나라의 대장군 사마소(司馬昭)가 연회를 열어 유선을 초대하고는 촉나라의 음악을 연주하게 하였다. 유선을 수행한 촉나라 사람들은 모두 그 음악을 듣고 고향 생각에 애틋한 기색이 역력하였으나, 유선만은 전혀 슬픈 기색이 없이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사마소가 그 모습을 보고 수하인 가충(賈充)에게 "사람이 저리도 무정하니, 설령 제갈량이 살아 있더라도 오래 보좌할 수 없겠거늘 하물며 강유(姜維) 정도야 말해 무엇하겠나"라고 말하며 혀를 찼다.
사마소는 마냥 즐거워하는 유선에게 고국 촉나라가 그립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유선은 "이렇게 즐거우니 촉나라는 생각나지 않습니다(此間樂,不思蜀)"라고 대답하였다. 유선을 수행한 극정(郤正)이 이 말을 듣고 남몰래 유선에게 "만일 다시 물으면 눈물을 흘리면서 '선친의 묘가 멀리 촉 땅에 있으니 서쪽만 바라보아도 슬퍼져서 하루도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다'고 대답하셔야 합니다"라고 가르쳐주었다.
유선이 자리로 돌아오자 사마소가 다시 촉나라가 그립지 않냐고 물었다. 유선은 극정이 일러준 대로 말하고는 억지로 눈물을 흘리려고 하였으나 눈물이 나오지 않아 눈을 감아 버렸다. 사마소가 "어찌하여 극정이 하는 말과 똑같은 거요?"라고 말하자, 유선이 흠칫 놀라 눈을 뜨고 사마소를 바라보며 "참으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그를 비웃었다.
이 고사(故事)는 <삼국지(三國志)>의 '촉서후주선전(蜀書後主禪傳)'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낙불사촉은 눈앞의 쾌락이나 향락에 젖어 자신의 본분이나 처지를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