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미소
김 인 규
영묘사의 이른 새벽, 운무가 짙게 내려앉은 삼 층 석탑엔 번뇌를 지우려는 민초들의 탑돌이가 진중하다. 대웅전 처마에서 지그시 내려 보며 웃는 모습의 수막새가 지붕 끝마다 줄지어 매달려있다.
땅속에 감춰둔 넉넉함 1200년, 날숨 한번 크게 쉬고 부끄럽게 내민 얼굴, 은은하면서도 강렬한 흡입력에 두 발이 붙어 버렸다. 형언하기 힘든 미소가 가히 천하제일이다. 나의 심장이 펌프질 했고 뼛속 구석구석 골수를 채워줬으며, 세상 바라보는 눈이 뜨인 곳이다. 천마도와 금관, 천년의 미소가 반가운 경주다.
희끗희끗한 모발에 쩍 벌어진 가슴, 튼실한 팔뚝엔 황토 얼룩이 문신처럼 박혀있다. 아마추어 도예가에겐 느낄 수 없는 아우라가 진하게 풍긴다. 도공의 손놀림이 차분하다. 느린 듯 숙련된 손끝에서 차츰 윤곽이 드러난다. 천박한 웃음이 아니다. 인생의 깊이를 깨우친 아낙은 문수보살의 지혜와 관세음보살의 행복지수를 닮았다. 있는 척, 아는 척, 잘난 척하지 않는 민초의 모습을 간직한 모델은 필히 귀부인 이었으리라. 부처님의 자비심을 자의적으로 해석, 온몸으로 표현하는 중이다. 심리적 충만이 최상의 상태에서 빚어낼 수 있는 해탈의 웃음, 가장 원초적인 소재인 흙으로 만들어 낸 천년의 미소다. 그 수막새가 세상에 조용하게 데뷔했다. 쇠를 주물러 찬란한 철기문화를 꽃피운 가야국이 있었다면, 신라는 흙·돌·금을 자유자재로 다루던 실크로드의 시작점일 것이다. 그 출발선에 당당히 동행했던 예술의 백미이다.
????주어??경주 사정동 영묘사지(현 흥륜사지)에서 출토되어 1934년 일본으로 반출된 후, 1972년 경주박물관으로 귀환하기까지 일제 강점기의 뼈 시린 아픔을 담담히 겪어 낸 자긍심의 결정체다. 세상을 관조하는 미소의 극치는 인류사에서도 보기 드문 압권이다. 동그란 얼굴에 살짝 부은 듯한 두 눈, 오뚝한 코, 도드라지는 양 볼, 웃음기 뗀 입, 소박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담아낸 걸작이다. 상상을 뛰어넘는 표정의 벽사기와 수막새이다.
청년시절 황성공원 답사에 나섰다. 고원의 귀면문(鬼面文) 기와는 사악한 악귀를 쫓고 집안의 안녕을 위해 사납고 험상궂은 얼굴이다. 반면 서민적이면서 허를 찌르는 모양에 가식적인 모습은 완전히 배제했다. 보물 제2010호이다. 보일 듯 말 듯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석굴암과는 또 다른 얼굴이다. 잘나고 못 빚고의 잣대로는 들이댈 수 없는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백제의 미소가 서산 마애삼존불상이라면 수막새기와는 결단코 신라의 미소이다.
까까머리 중학교 일학년, 소한의 추위는 윗목에 떠 놓은 물 사발을 고스란히 얼어붙였다. 새벽 공기는 살을 에듯 시렸다. 면도날에 베인 듯 서늘한 초승달 푸른빛은 구석진 단칸방애 새어 들었다. 구멍 난 양말 뒤꿈치엔 색깔 다른 덧댄 천이 미안한 듯, 다소곳이 포개진 채로 빵모자와 같이 빨간 내복위에 얹혀있다.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어머니의 음성에는 측은함이 배어있다.
짙은 어둠에 흔들리는 물체, 신내림 중인 무당과 흡사하다. 날뛰기도 하다가 흐느껴 우는 듯 소리마저 진한 보라색이다. 식은땀이 흐르는 등, 전신을 훑어 내리는 닭살, 머리카락까지 쭈뼛 선다. 먼 산 너머 여명이 열릴 즈음, 무서움이 사라진 자리엔 오늘 배달 끝이라는 안도감이 앉았다. 터줏대감 팽나무 가지에는 밤새 비닐봉지가 바람과 맞섰나 보다. 저걸 귀신이라고 내내 긴장했다니…. 다리에 힘이 풀리며 피식 실소가 나온다.
“신문 돌리느라 애썼다.” 어머니표 시래깃국과 꽁보리밥이 양철 밥상에 올라왔다. 잘 삭은 김장 무 한 조각 숟가락 위에 놓아주던 어머니의 따뜻한 미소가 봉창 햇살과 어우러져 아랫목에 다소곳이 앉았다. 웃음은 어머니의 자궁 같은 것이다. 무의식의 상태에서 가장 온화할 때 맑은 웃음이 나온다. 배고파 울던 아이가 엄마의 젖꼭지를 물고 짓는 모습이 가장 원초적인 형상이 아닐까. 동물 중 유일하게 웃을 줄 아는 것이 사람이라 했거늘. 긴장과 심리적 거리가 사라지면서 비로소 밝은 웃음이 나온다. 존재의 의미도 참 웃음에서 나온다. 인간은 늘 불안한 감정을 느끼며 살지만 애써 그렇지 않은 척할 뿐이다. 살아 있다는 이성이 제대로 작용될 때, 누군가에게 적의가 없다는 의사 표시로 웃음은 훌륭한 수단이 된다. 요즘은 웃을 일이 없는 게 아니라 웃지 않으려 일부러 금을 그어,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쳐놓은 것 아닌지 돌아봐야 할 일이다. 아카시아 향이 듬뿍 묻은 내면을 파안대소로 토해내고 싶다. 가슴 열어젖히면 솔잎향기 진동할 것 같은 폭소 한번 터뜨리고 싶다.
금방이라도 푸른 비단옷에 꽃신을 신고 사뿐히 내려올 것 같은 천년의 미소, 서라벌 옛길을 한 줄기 미풍과 손잡고 산보할 것처럼 가벼워 보인다. 수막새는 지붕의 가장자리를 마감하는 종결형 와당이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부드럽게 웃는 모습을 연습해야겠다. 언제 어느 곳에서 소리 없이 다가와 내 손을 잡을지도 모를 검은 갓, 검은 도포의 손님이 나의 미소 짓에 슬그머니 뒤꽁무니를 빼도록 일소일소일로일로(一笑一少一怒一老)할 일이다. 창밖 백미러에 비친 수막새 모형엔 어머니의 자상한 미소가 겹쳐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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