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대학과 철도협회, 안중근·하얼빈학회는 지난 8월 6일부터 13일간 ‘한국철도 110주년’과 ‘안중근 장군 의거 100주년’을 맞이하여 ‘역사의 길, 녹색의 비전, 대륙철도 횡단 행사’를 가졌다. 러시아와 몽골 국경 근처에 있는 이르쿠츠크에서 출발해 극동의 하바로프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중국 랴오닝성 다롄까지 러시아와 중국 철도를 직접 기차를 타고 답사하는 행사다. 한국철도대학 학생 20여명과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연구진 등 철도 관련 인사 등 174명이 함께 했다. 이번 답사에 동참해 취재한 내용을 두 차례에 걸쳐 기사와 화보로 소개한다.
▲ 이르쿠츠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어지는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여름 풍경.
시베리아 교통 허브 러시아 이르쿠츠크 출발해 하바로프스크까지 3336㎞ 장장 65시간 달려
러시아 동시베리아의 중심 이르쿠츠크. ‘시베리아의 파리’라는 별명을 가진 인구 60만의 작은 도시다. 도시 한가운데로는 바이칼호에서 발원하는 시베리아의 젖줄 앙가라강이 유유히 흘러간다. 앙가라강 서안에 자리잡은 러시아풍의 이르쿠츠크 기차역. 1번 플랫폼으로 ‘빵’ 하는 기적 소리와 함께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들어왔다.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극동의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어지는 유라시아대륙횡단철도다. 철도의 총길이만 서울~부산 간 경부선의 20배, 지구 둘레의 4분의 1에 달하는 9288㎞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는 6박7일가량이 소요된다. 1898년 이르쿠츠크에 처음 열차가 들어온 이후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이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자리잡았다. 항구와 멀리 떨어져 물가가 비싼 이르쿠츠크에 생필품을 공급해 주는 주요 공급선이기도 하다.
플랫폼 끝에 서 있던 역무원이 붉은색 깃발을 힘차게 흔들었다. 드디어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차가 향하는 곳은 극동의 하바로프스크. 이르쿠츠크에서 하바로프스크까지는 3336㎞ 떨어져 있다. 시베리아횡단철도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구간으로 기차로 65시간가량 걸린다. 3박4일간 밀폐된 열차에 ‘갇힌’ 승객들은 객실에서 독서를 하거나 게임을 즐긴다. 객차의 복도에 군데군데 220V 전원이 있어 노트북 사용은 가능하나 인터넷은 불가능하다. 일부 승객들은 식당칸에서 보드카를 한잔 들이켜고 깊은 잠에 곯아 떨어지기도 한다. 하바로프스크로 이어지는 철로변에는 시베리아의 풍광이 펼쳐진다. 춥고 어두운 유배지의 풍경이 아니라 울창한 삼림과 목초지가 이어지는 대초원의 모습이다. 철로로 야생동물이 접근하는 것을 막는 울타리도 보인다. 일부 승객들은 단조로운 풍경에 지루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름과 여권번호 표기된 항공기식 열차표 7~8월 여름 성수기 땐 3개월 전 예약해야
장거리 철도인 만큼 시베리아횡단열차는 항공기와 같은 방식으로 운행한다. 개인별로 열차표가 발급돼 다른 사람과 임의로 교환하거나 양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러시아어가 잔뜩 적힌 열차표에는 탑승객의 이름과 여권번호가 영어로 표기돼 있다. 탑승시간과 도착시간은 모두 수도 모스크바의 시간을 기준으로 통일돼 있다. 일부 승객들은 현지 시각과 모스크바 시각을 혼동해 종종 열차를 못 타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한다. 전세기 운항과 마찬가지로 100명 이상의 단체승객 대상으로는 전세 열차도 운행한다. 투박한 파란색 페인트에 곰팡이가 군데군데 파먹은 목조 창틀을 붙인 구 소련제 낡은 열차지만 러시아 국민들에게 시베리아횡단열차는 하나의 전설이다. 러시아 철도공사 동시베리아 지사 드미트리 요시보비치 여객수송국장은 “러시아 사람들의 평생 소원은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여행하는 것”이라며 “7~8월 여름철 성수기에는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하려는 사람들로 열차표가 매진돼 3개월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장거리를 횡단하는 기차라서 객차 내부는 침대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불하는 요금에 따라 2인1실, 4인1실, 6인1실 등으로 나누어진다. 이르쿠츠크에서 하바로프스크까지 2인1실과 4인1실의 요금은 때에 따라 다르지만 각각 우리돈으로 50만원, 25만원가량이다. 같은 구간 항공기 요금의 80% 수준이다. 매트리스커버와 베개커버, 그리고 수건 한 장을 승무원이 가져다 준다. 매트리스와 모포는 침대 아래 철제 보관함에 들어있다. 각 객실의 미닫이문에는 도난 방지와 사생활 보호를 위해 잠금 장치가 설치돼 있다.
▲ 1. 열차 사이에서 작업 중인 선로 보수공. 2. 플랫폼에 서 있는 승무원들. 발판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3. 차창 너머로 보이는 러시아 일반열차의 승객들.
바이칼호가 시베리아철도의 최대 장애물 겨울엔 빙판에 임시선로 가설해 통과하기도
맑고 청명한 시베리아의 하늘에도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시베리아는 밤 11시쯤 해가 떨어진다. 서남쪽을 향해 쉬지 않고 달리던 열차가 동쪽으로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열차의 왼쪽 창가 너머로 바이칼호가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남북 길이 636㎞, 평균 폭 48㎞의 바이칼호는 철도 건설에 최대 난관이었다고 한다. 한때는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호의 북안 포트 바이칼까지 94㎞가량을 내려가서 열차 페리로 환적한 뒤 배로 바이칼호를 건너기도 했다. 바이칼호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며 얼어붙기 때문에 1901년부터 1904년까지는 겨울철 빙판 위로 임시 레일을 가설한 뒤 열차를 통과시키기도 했다. 요즘은 바이칼호 남쪽으로 한 바퀴 빙 돌아서 극동으로 나가는 노선이 사용되고 있다. 러시아 철도공사 동시베리아 지사의 올가 카이예프스키야씨는 “포트 바이칼까지 직행하는 과거 열차 페리 구간은 현재 관광노선으로 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내 바이칼호를 벗어난 열차는 울란우데역에 도착했다. 울란우데는 극동으로 향하는 시베리아횡단철도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로 향하는 몽골종단철도의 분기점이다. 철도시설공단의 신철수 경영기획처장은 “몽골철도는 지분의 51%를 러시아 철도공사가 가지고 있어 광궤를 쓰는 등 러시아 철도와 시스템이 거의 유사하다”고 말했다. 울란우데에서 잠시 정차한 시베리아횡단열차는 몽골로 방향을 꺾지 않고 극동의 하바로프스크를 향해 경적을 울리고 다시 전진하기 시작했다.
▲ (좌)외국인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2인1실은 성인남자 한 명이 쭉 뻗고 누울 수 있는 침대 겸 의자 2개가 나란히 배열된 구조다. 천장에 LCD모니터도 달려있다. (우)2등석이라고 할 수 있는 4인실의 경우 이층침대 겸 의자 2개가 나란히 배열돼 있다. 숨이 막힐 만큼 비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