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천왕봉 능선마다 가을빛들머리 거림골 단풍 산행 명소
난코스 거의 없고 길 찾기 쉬워한국전쟁 격전지로 비극의 현장
진달래 산인 여수 영취산, 창원 비음산, 대구 비슬산과 철쭉 산인 남원 바래봉, 장흥 제암산은 봄 한철 반짝 인파가 물밀듯이 밀려오지만 평소에는 사실 한산하다. 억새가 장관을 이루는 가을에는 승학산이나 천성산이 그렇고 형형색색의 단풍이 온 산을 불태우는 만추에는 내장산이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양수겸장의 산도 있다. 깔딱고개를 넘어야 하는 화왕산은 진달래와 억새로, 소백산과 태백산은 철쭉과 설경으로 일년에 두 번씩이나 산꾼들을 유혹한다.
이번 주 산행지는 지리산 남부능선. 거림골로 올라 삼신봉을 거쳐 청학동으로 내려왔다.
들머리 거림골은 철쭉으로 유명한 세석평전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해서 매년 5월 하순~6월 초순에는 폭발적으로 많은 산꾼들이 몰려 장사진을 이룬다.
거림골은 단풍도 아름답다. 물론 피아골이나 뱀사골의 그것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계곡과 어우러진 고운 자태는 웬만한 단풍 산만큼은 된다. 해서 양수겸장의 산이라 해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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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봉 정상 직전 바라 본 장쾌한 '한 일(一)' 자의 지리산 주능선이 손에 잡힐 듯 시원하게 펼쳐진다. 왼쪽부터 덕평봉 칠선봉, 남부능선과 만나는 둥그스런 영신봉, 뾰족한 촛대봉, 동명이산(同名異山)인 삼신봉, 연하봉 제석봉, 그리고 맨 오른쪽이 천왕봉. 남부능선 우측 푹 꺼진 곳이 거림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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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의 남부능선도 잊지 못할 등산로로 기억될 법하다. 동서로 길게 누운 지리산 주능과 T자를 이루며 남북으로 길게 뻗은 이 남부능선의 삼신봉에 서면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25㎞의 장쾌한 지리의 대파노라마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주능의 북쪽인 함양쪽 지리산 전망대인 금대산(847m)이나 삼정산(1289m)에서 바라보는 그것과 견주어도 전혀 뒤질 게 없다. 되레 낫다.
거림골과 남부능선은 또 한국전쟁 중 토벌대와 빨치산의 격전지로, 분단의 아픈 현실을 간직한 우리 근대사의 비운의 현장이기도 하다.
1952년 1월 토벌대인 수도사단이 빨치산을 대성골에 몰아넣고 10여 일 동안 엄청난 화력공세를 폈음에도 불구하고 망실공비(亡失共匪) 정순덕이 산비탈을 넘어가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최후의 빨치산으로 남게 된 계기가 된 곳이 거림골이다. 그는 아마도 남부능선을 거쳐 거림골로 갔으리라. 거림골은 또 남부군 이태가 잠시 머물렀던 기록도 있다. 또 1951년 이전까지 빨치산들에게 안전지대나 다름없었던 도장골과 자빠진골(일명 엎어진뜰) 또한 모두 거림골에서 가지를 벌린 골짜기들이다. 하지만 5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거림골과 남부능선에는 당시의 상흔은 오간 데 없고 단풍과 시원한 조망이 길손을 맞았다.
산행은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 거림버스정류장~거림매표소~천팔교~북해도교~샘터~전망대~세석교~세석 갈림길~음양수샘~전망대~대성골 갈림길~석문~한벗샘 갈림길~추모비~삼신봉 정상~갓걸이재(안부)~청학동매표소~버스정류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5시간50분 정도. 거림골은 철쭉 산행지 코스로, 남부능선은 낙남정맥 종주자들이 워낙 많이 다녀 길 찾기는 전혀 어렵지 않다. 또 난코스도 거의 없어 산행 또한 어렵지 않다.
버스종점인 두지바구산장 주차장에서 현재 비법정 탐방로인 도장골 물길과 지리산 공비토벌루트 안내판이 서 있는 주차장을 잇따라 지나면 '세석 가는 길'이라 적힌 팻말이 보인다. 정류장에서 매표소까지는 대략 12분 소요.
매표소를 통과, 돌계단으로 한굽이 오르면 왼쪽 발아래 계곡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경사가 거의 없는 늘 푸른 산죽길이 이어진다. 다만 울퉁불퉁한 돌길이라 약간은 부담스럽다.
차츰 고도를 높이자 울긋불긋 단풍이 눈에 띄지만 전체적으로 그리 깨끗하지 않다. 여름철 기나긴 장마 이후 지속된 가뭄 탓이다.
1시간쯤 뒤 천팔교를 건넌다. 1008고지라서 천팔교란다. 이내 거림골에서 가장 추운 지점이라 명명된 북해도교를 지나면 사실상 거림계곡이 끝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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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이번엔 촛대봉에서 내려오는 지계곡을 끼고 오른다. 700m쯤 뒤 너른 터. '세석 2.1㎞, 거림 3.9㎞'라 적힌 이정표 건너편에 샘터가 있다. 촛대봉에서 내려오는 샘이다.
다시 산죽길 사이로 된비알이 이어진다. 침목 나무계단과 잇단 나무다리를 지나면 전망대에 닿는다. 안내판과 함께 남부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다시 세석산장 쪽에서 흐르는 계류를 가로지르는 세석교를 지나면 곧 갈림길. 오른쪽 세석대피소 방향 대신 대성골의 들머리인 의신쪽으로 간다. 음양수는 여기서 0.7㎞.
이때부터 영신봉에서 시작되는 남부 능선길이자 낙남정맥길이다. 거림골과 달리 길은 아주 좁다. 10여 분 뒤 너른 암반에 선다. 저 멀리 왕시루봉과 황장산, 광양 백운산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너른 암반 바로 아래가 바로 음양수(陰陽水)샘. 바위 아래 신기하게도 양지 음지 두 곳에서 샘물이 흘러나온다. 예부터 자식 없는 여성들이 마시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전해온다. 주변에 벌개미취 구절초 배초향 돌쩌귀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여기서 날머리 청학동까진 8.8㎞.
이때부터 본격 남부능선길로 잇따라 만나는 전망대에서 고개를 뒤로 돌리면 지리산 주능선이, 정면에는 삼신봉이 각도를 달리해 시야에 들어온다. 등로는 국립공원 특유의 반듯한 길이 아니라 아주 거친 편이다.
대성골로 떨어지는 갈림길을 만나지만 무시하고 삼신봉 방향으로 계속 직진한다. 남부능선의 명물이자 청학동으로 가는 입구라는 전설이 서려 있는 석문(石門)도 통과한다. 능선 상에 절묘하게 자리잡은 높이 10m쯤 돼 보이는 이 석문 위에는 몇 그루의 수목이 자라고 있어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석문에서 45분쯤 뒤 수곡재. 남부능선에서 고도가 가장 낮은 고개이다. 왼쪽으로 5분쯤 내려서면 한벗샘(박단샘). 자빠진골로 가는 이 길은 예부터 거림마을과 대성골 의신마을 주민들이 넘나들던 길이다.
한벗샘을 지나면서 어른 키보다 높은 산죽길을 내달리다 거대 암봉의 왼쪽으로 에돌아 나아간다. 등로 주변의 고사목은 운치를 더해준다.
정상 바로 아래 갈림길에 추모비 앞에선 정상으로 바로 가는 왼쪽길을 택한다. 일명 '지리산 전망대'답게 삼신봉(1284m) 정상에선 노고단에서 천왕봉 써리봉에 이르는 25㎞의 주능선이 손에 잡힐 듯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조망안내판과 맞춰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날머리 청학동도 보인다.
하산은 왼쪽 외삼신봉(청학동) 방향으로 간다. 낙남정맥길이기도 하다. 오른쪽은 남부능선길 내삼신봉과 상불재를 거쳐 쌍계사나 칠성봉 구제봉 형제봉으로 갈 수 있다.
7분 뒤 갓걸이재. 직진하면 낙남정맥길, 산행팀은 오른쪽 청학동(2㎞)으로 향한다. 매표소까지는 40분 걸리고, 거기서 버스정류장까지는 3분 소요된다.
# 떠나기전에
- 거림골·도장골 등 비법정 탐방로 많아 주의
'거림(巨林)'이란 이름은 오래 전 아름드리 거목들이 이 골짜기를 빼곡히 메우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토벌대와 빨치산과의 치열한 전투로 인해 대거 훼손됐다. 지금은 거의 다 복구됐지만.
나무와 관련, 거림골에는 국립진주산업대가 수많은 종류의 활엽수목에 이름표를 달아놓았다. 고마운 일이다. 물푸레 서어나무 산뽕나무 함박꽃나무 개회나무 노린재나무 나래회나무 까치박달 물개암 등등. 자녀와 함께라면 이 활엽수들이 어떤 색으로 물이 드는지 유심히 관찰하면 좋은 공부가 될 듯하다.
거림골과 남부능선을 잇는 자빠진골은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들에게는 은신처였다. 그만큼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울창한 원시림이었다. 거림골에서 자빠진골로 빠지는 샛길은 흔적이 없으며, 한벗샘에서 거림골로 가는 길 또한 주민들 외에는 찾기 어려울 정도로 길이 묵어 있다. 무엇보다 비법정 탐방로이다.
이런 점에선 도장골도 마찬가지다. 거림마을의 길상사 뒤쪽으로 이어지는 도장골도 자빠진골 못잖은 빨치산들의 안전지대였다. 와룡폭도 윗용소 등 비경을 간직한 도장골은 특히 단풍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지만 역시 비법정 탐방로로 묶여있다.
삼신봉 정상의 조망안내판의 왼쪽 계곡은 지리산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답다는 단천골. 비법정 탐방로다. 의신마을 인근 대성교로 떨어지지만 멋모르고 내려가다간 범칙금을 물기 십상이다. 또 한가지. 갓거리재에서 청학동으로 내려가지 않고 직진하면 낙남정맥 종주길. 하지만 여기부터 지리산 국립공원 경계까지 비법정 탐방로. 국립공원 청학동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낙남정맥 종주자는 모두 범법자입니다. 이 사실을 꼭 써 주십시오."
# 교통편
- 날머리 청학동서 대중교통 오후 6시면 끊겨
원점회귀 코스가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진주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40분 첫 차를 시작으로 8~1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시간30분 걸리고 6900원. 진주터미널에서 거림(내대리)행 버스는 오전 9시5분에 있다. 천왕봉 들머리인 중산리를 경유한다. 1시간20분 소요. 5800원.
날머리 청학동에서 진주행 버스는 오후 6시(막차)에 있다. 7100원. 진주에서 서부터미널행 시외버스는 10~2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막차는 밤 9시10분. 밤 10시부터 심야버스도 있다. 8500원. 노포동종합터미널행 시외버스(7900원)도 있다. 25분 간격으로 있으며 막차는 오후 8시. 지하철 1호선 동래역(7000원)에도 선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대진고속도로 단성IC~진주 지리산 방향 직진~지리산 삼장 시천 20번 우회전~지리산 시천 20번~지리산 중산리 20번~곡점(산청양수발전소) 지나~청암 청학동 1047번 좌회전~예치터널~청학동 청암 1047번~세석산장 거림계곡~거림마을 지나 주차장 순. 날머리 청학동에서 들머리 거림까지 개인택시(055-973-6363, 011-551-0532)를 이용하면 된다. 2만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