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말 속의 한국
● '나라' 지방의 '테라'
왜(倭)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6세기 초인 538년 무렵이다. 당시 백제의 성왕이 왜나라의 백제인 킨메이 천황에게 불교를 권고한 고대기록이 <상궁성덕법왕제설(上宮聖德法王帝說, 8세기 초)>과 <원흥사가람연기 병유기자재장(元興寺伽藍緣記竝流記資材帳, 747년 편찬)> 등에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일본서기>에는 552년 백제의 성왕이 왜나라에 최초로 불교를 포교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성왕은 왜나라 킨메이 천황에게 불상과 불경을 보내면서 "불교는 천하에 으뜸가는 법이니 잘 따르라" <부상략기>라고 했다. 그러나 불교의 전래는 결코 순탄치 못했다. 오랜 전통의 국신파의 선주신앙이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어 외래 종교인 불교는 토속신앙과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538년) 최고대신 소가노 이나메(소가노 우마코 대신의 아버지)는 성왕이 보내준 금동불상을 자신의 저택에 모셔다 놓고, 자택을 코우겐지(向原寺)라 명명했다. 이무렵 국신파였던 모노노베노 오코시(物部尾輿, 모노노베노 모리야의 아버지) 대련(大連)이 조정에서 불교를 배척하기 시작했다.
일본 조정은 숭불파인 최고대신 소가노 우마코와 배불파인 국신파의 모노노베노 모리야의 두파로 갈라져 심한 세력 다툼을 벌였다. 소가노의 승리로 아스카에 7당가람이 들어서고 누구나 예불할 수 있게 되었다.
'절'을 일본어로는 '테라(寺)'라고 한다. 불교사학자 타무라 엔쵸는 그의 저서에서 '테라'는 한국의 '절'에서 유래한다고 했다. 추측컨데 당시 고구려에서는 오늘날 평안도 사투리처럼 '절'을 '뎔'이라 발음했을 것이다. 호우코우지(아스카지)에 온 고구려 고승 혜자가 '뎔'이라 하는 말을 왜인들이 '뎌라' 라고 했고 오늘날 '테라'로 변천된 것이다.
'나라'(奈良)는 우리나라 말의 '나라' 즉 '국가'를 말하는 이두식 표현이다. 일본의 권위 있는 언어학자 마쓰오카 시즈오(松岡靜雄)의 저서 <일본어고어대사전>에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나라' 는 야먀토(大和)의 지명. 도읍으로 유명하다. 나라는 한국어에서 국가라는 뜻이므로,
상고 시대에 이 고장을 점령하고 살던 한국 출신의 이즈모족(出雲族, 신라인)이 붙인 이름이다.
저명한 역사지리학자 요시다 토우고는 ' 나라는 한국어의 국가다. '라고 했으며, 오오쓰기 후미히코는 그의 저서 <대언해>에서
' 나라는 조선어로서 도읍지(왕도)를 가리키는 말임 ' 이라고 했다.
● 솟대와 토리이
카와치의 동쪽 멀리 떨어진 고장인 '나라' 땅에는 2세기 말부터 4세기 중반까지는 신라인들이 왕가를 형성하고 세력을 떨쳤으나 4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오우진 천황과 닌토쿠 천황 시대부터 백제 도래인들로 왕가가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사쿠사 신사의 토리이
일본의 신사나 신궁 앞에는 이른바 '토리이(鳥居)'라는 출입문이 어김없이 세워져 있다.
두 개의 기둥과 두 개의 가로대 나무로 만들어져 있고, '새가 사는 곳 ', 토리이(鳥居) 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나라의 아스카(飛鳥)에 터전을 잡은 한반도 도래인들은 그들의 신앙인 '솟대'를 먼저 세우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우리조상
들이 세운 '솟대'. 높다란 장대 끝에 날아와 앉은 새. 이 솟대를 세우고 제사 지내는 곳을 '소도(蘇塗)'라하여 매우 신성시하였다.
소도는 옛 한반도의 삼한시대(三韓時代)에 천신(天神)을 제사지낸 지역을 일컫는 말인데, 《후한서》 《삼국지》 등에 소도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제사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은 마한(馬韓)을 중심으로 한 삼한에서는 매년 1∼2차에 걸쳐 각 읍별로 제주(祭主)인 천군(天君)을 선발하여, 특별 장소를 설치하고 제사를 지내 질병과 재앙이 없기를 빌었다. 이 제사지내는 장소를 소도라 하는데, 그 명칭은 거기에 세우는 솟대[立木]의 음역이라는 설이 일반적이고, 높은터[高墟]의 음역인 솟터에서 유래하였다는 설도 있다.
소도는 신성(神聖) 지역이므로 국법의 힘이 미치지 못하여 죄인이 이곳으로 도망하여 오더라도 그를 돌려보내거나 잡아갈 수 없어 도둑이 성행하였다 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리스. 로마의 아실리(Asillie) 또는 아실럼(Asylum)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소도에 영고(鈴鼓)를 단 큰 나무를 세우고 제사지내던 당시의 주술적인 민속신앙은 오늘날에도 유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솟대가 바로 그것인 것이다.
높은 창공에서 날아 온 새가 거하는 곳. 솟대. 즉 토리이(鳥居)는 바로 우리 조상들이 왜에 건너가 조상신과 천신에 제사 지내던 곳이다. 오늘날 일본에서도 신궁이 신사에서 천신과 조상신을 제사하는 것이니 예나 별반 다를바 없다.
본래 신라신이며 왜나라 개국신인 스사노오노미코토(須佐之男命)신은 신라의 우두산(牛頭山, 지금의 춘천)에 있다가 왜나라 서쪽 해변 지대인 이즈모(出雲)땅으로 건너갔는다는 데서 우두천황일 불리우는 일본의 대표적인 마쓰리(祭)의 제신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스사노오노미코토신을 신라인이 아닌 고구려인 이리지(伊利之)의 후손들이 쿄오토의 야사카신사(八坂神社, 祈園社)에 모셔지고 있다.
일본 신사들이 거행해오고 있는 성대한 제사 의식을 이른바 '마쓰리(祭)'라 한다. 이 '마쓰리' 가 또한 우리말의 ' 맞으리 '에서 유래한다는 설이 있다. 하늘의 신 곧 천신의 강신(降神)을 맞이하는 ' 강신을 맞으리 '가 바로 '마쓰리'인 것이다.
일본 각 지역에 있는 사당이며 신궁이나 신사에서 해마다 성대한 제사를 지내면서, 신령을 모신 가마(神輿, 미코시)를 메고 수 십명의 가마꾼들이 ' 왔소이, 왔소이.....'라고 소리 높이 외치면서 큰 거리를 행진한다. 그들이 외치는 ' 왔소이'는 다름아닌 한국에서 신이 '오셨다'(お出になった)는 바로 우리말이다.(重金碩之, <풍습사전>, 1981)
일본 전국에서 손꼽히는 마쓰리 행사 중 하나가 바로 쿄오토의 기온마쓰리(祈園祭)이다. 이 제신 축제행사는 해마다 7월 17일부터 24일까지(옛날에는 음력 6월 7일부터 14일까지) 열리는데 야사카신사가 주관하는 마쓰리로써 우두천황(牛頭天皇)이라는 신라신을 모시는 제사인 것이다.
일본에서 으뜸가는 제신 행사인 '기온마쓰리'가 신라에서 온 신인 스사노오노미코도(우두천황)를 야사카 신사에서 모시는 것이라는 기록은 바로 야사카 신사의 <유서기략(由緖記略)>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사이메이 천황(제명천황, 재위 655~661) 2년(656)에 고구려에서 왜왕실로 온 사신(調進副使)인 이리지(伊利之)가 신라
국의 우두산(牛頭山)에 계신 스사노오노미코도 신을 쿄오토 땅(山城國 八坂鄕)에 모시고 옴으로써 제사드리게 되었으며,
왕실로부터 팔판조(八坂造, 야사카노 미야쓰코)라는 사성(賜姓)을 받았다.
또한 야사카어진 좌대신지기(八坂御鎭座大神之記)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사이메이 천황 2년에 한국에서 조진사 이리사주가 다시 왔을 때, 신라국 우두산의 신 스사노오노미코도를 옮겨
모셔와서 제사드렸다.
그런데 <일본서기>에는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고구려에서 656년 8월 8일 대사달사(大使達沙)와 부사 이리지 등 모두 81명이 왔다........
이로 미루어 보면 그 당시 고구려에서 고위 외교관들을 다수 파견한 것을 알 수 있고, 그들은 한국신인 스사노오노미코도의 신위까지 모시고 와서 이 쿄오토 지역을 새로운 한국신의 터전으로 삼아 사당을 크게 이룬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