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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 친구에게 편지를 쓰다 / 차승열
옥탑방 작은 쪽문으로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네 두 손으로 안경을 하고 바라보는 거리풍경은 얼마나 살가운지 어둠이 어슬렁거리며 찾아드는 거리를 저녁 늦도록 바라보고 있었네
빼꼭한 아파트촌 너머로 시루떡처럼 하얀 달이 뜨고 있었네 눈 맞은 나무들은 가지를 늘인 채 겨우살이를 하고 있었지 매서운 바람이 나머지 풍경들을 세차게 흔들고 있었지만 이내 잦아들고, 길고 긴 겨울밤은 언제나처럼 깊어만 갔네
사람 사는 일이 참으로 오묘하다는 생각이네 그려 만물은 한낱 마음이 지어낸 그림자*라커니, 한 치 밖 세상은 십수 년 만에 찾아온 폭설과 한파로 꽁꽁 얼어붙고 있었는데도 나는 거짓말처럼 하나도 춥지 않았네
지난 해 내게 찾아온 불행은 절망적이었으나 다행히 희망의 무게보다는 가벼워 견딜만한 것이었네 고통 또한 그대가 보내준 위로보다는 크지 않아서 살을 에는 세밑 추위도 외려 따뜻하기만 하였네 나의 삶은 대체로 아름다웠으며 나는 비교적 행복하였다네
- 시집 <탄천을 걷는다> 2016.1.20. 오늘의문학사 발행 146쪽 * 만물일체유심조萬物一切 唯心造 : 불교 화엄경華嚴經의 중심 사상으로 , 곧 일체의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있다는 뜻. 【 시작 메모 】 오래전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 어떤 분께서 보내준 편지를 기억합니다. "지금은 흉어의 바다에 닻을 내리고 계시는 님이지만, 새벽이 멀지 않을 것입니다. 먼 동해 어디쯤에서 손짓하는 아침이 있을 것입니다." 한때 내게 찾아온 불행은 절망적이었으나, 다행히도 고통 또한 님이 보내준 위로보다는 크지 않아서 살을 에이는 세밑 추위도 외려 따뜻하기만 하였다고, 저의 삶은 대체로 아름다웠으며 나는 비교적 행복하였다고... 너 나 없이 모두들 어려운 때이지 싶습니다. 정유년 새해, 새벽 동산에 불끈 솟아오르는 해처럼 힘 내시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
첫댓글 지난해의 불행은 절망적이었지만 희망을 보고 살자는 편지
잘 보았습니다. 희망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입니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이야기지요.
큰 것은 더 큰 것보다 작다.
작은 것은 더 작은 것보다 크다.
우리가 알고있는 '크다'와 '작다'에 대한 개념이 결국엔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서
저의 경우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지요.
불행과 절망이 전염병처럼 퍼져있는 시대.
희망과 위로를 통한 치유가 필요한 때입니다.
희망의 무게가 절망보다는 가벼워 견딜 수 있다는건 현대를 살아 가는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가벼워지기를.
휙 지나가면 끝인 게 인터넷 문학인데
이렇게 꼼꼼히 읽어주시는 계신 분이 계셨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