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제와 한국대학입시
2009/06/07 23:28
최근 각 대학이 앞 다투어 유행처럼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고 있다. 지난해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총 4000명을 선발했는데 올해 1만 명으로 대폭 선발 대상자를 늘린다니 기존 선발 방법의 보완이 아니라 획기적인 대입 전형중 하나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정부는 입학 사정관제를 도입하는 대학에 30억 원씩 지원하겠다고 하고 이 예산을 따내기 위해 대학들은 입학사정관 공모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12년에는 대부분 대학들이 이 제도를 통해 신입생을 선발한다고 밝혔다. 지난 4~5년 전 서울대학교가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겠다며 예산 지원을 해달라고 했을 때 정부가 거절한 것에 비하면 놀랄 만한 변화이다.
올해 대학 신입생 중 4000여 명이 입학사정관 제도를 통해 대학에 합격했지만 대부분 수험생과 교사들은 이러한 사실이 금시초문이라고 한다. 아직은 일부에게만 알려져 있는 입학사정관제는 일부 교육 운동 진영에서도 도입하기를 바랐던 정책이다. 장기적으로 바람직하고 현재로서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2002년 대입 제도 개선안에 들어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도입되지는 않았던 제도가, 2009년에 들어와서 갑자기 우리나라 입시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안인 것처럼 강조되고 있는데, 그 배경은 이명박 정부의 대입 자율화 정책과 관련이 있다. 08년도 들어서 이명박 정부는‘대입 완전 자율화’를 추구하면서, ‘3불 정책’을 그 걸림돌로서 생각하였다. 물론 이것은 우수 인재를 싹쓸이 하고 있고 막강한 학벌을 형성하고 있는 소위 명문 대학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이렇게 이명박 정부가 ‘대학 입시 자율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3불 정책을 폐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명문 대학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고교 등급제를 실시하고(고려대), 노골적으로 본고사 실시를 공언하기도 하였다.
이명박 정부가 대입 완전 자율화 정책을 추진한 명분은 사교육비 문제 해결과 공교육 만족도 증가였다. 그러나 입시 경쟁은 더울 치열해지면서 사교육비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사상 유래 없이 증가하였다. 또한 고려대의 고교 등급제 실시로 파문도 일어나고, 3불 정책 폐지에 따른 국민들의 불안감도 커졌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아무런 대책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렇게 입시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데도 이명박 정부는 대학 입시 자율화나 3불 정책 폐지할 생각이 없었고, 그 대안으로 입학 사정관제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입학 사정관제는 사교육비 문제 해결이나 공교육 정상화 문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고, 오히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대학 입시 완전 자율화를 관철하기 위한 우회 통로이며, 입시 문제에 대한 학생 학부모들의 불만을 은폐하는 도구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입학사정관 제도는 대학의 선발권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입학 사정관은 대학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입학 사정관 제도는 대학을 위해 복무하게 되어 있고, 각 대학들은 입학 사정관제도라는 이름으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공교육의 입장, 사회 형평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볼 때는 부작용이 많아질 것으로 본다. 예컨대, 대학 입시 과정에서 객관성 공정성 훼손도 문제 삼을 수도 없을뿐더러, 사회적 형평성과 사회 통합 등을 배려하도록 요구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지금까지 공교육 정상화 입장에서 만들어 놓았던 제도들도 쉽게 허물어질 우려가 있다고 생각된다.
사회적으로도 대학입학사정관 제도가 도입되면 얼마 동안 교육 문제는 은폐될 것이다. 그 본질이 드러날 때까지 학생 학부모들은 더 불안에 떨며 새로운 제도에 적응하기 위해 사교육 기관을 찾아 우왕좌왕하며 혼란을 겪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교육 불평등은 더 심화되고, 공교육은 더욱 황폐화 될 것이다.
지금까지 입시제도 개혁 과정을 보면 객관성 공정성 중심의 입시를 강조하는 입시 제도를 만들고 그것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다른 문제가 심각해지면 그것을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또 다시 새로운 입시 제도를 들고 나왔다. 지난해까지 강조되었던 논술 중심의 입시도 그런 과정에서 파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논술 중심의 입시도 처음에는 사교육비 문제나 암기 위주의 공교육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인 것처럼 강조한 바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논술 강화에 따라 사교육비는 더 증가하고, 입시의 투명성은 낮아지고, 학생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더 높아졌다. 그렇다고 하여 공교육이 정상화되는 것도 아니고, 공교육은 그에 따라 출렁거린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물론 대학들도 논술 점수로 학생들을 자신이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은밀하게 고교 등급제를 실시하고, 내신의 객관성을 문제 삼거나 수능 비중을 높이는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지 않다면 논술의 의의를 강조하던 대학들이 이제는 그것을 쉽게 포기하고 입학사정관제를 강조하는 것일까. 이해가 잘 안 된다.
현재로서 반대를 하면 과거 점수제로 돌아가자는 말이 되지만 그렇다고 이 제도를 찬성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입시 경쟁이 완화되고 서열이 완화되지 않은 입시 정책은 번거롭기만 할 뿐 탁상공론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정한 대입 제도가 도입 취지를 살리려면 제도 적용의 조건과 여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대학입시와 관련해 새로운 제도가 도입된다는 것은 자칫하면 새로운 유형의 사(死)교육을 불러오거나 꼬리가 몸통을 뒤흔드는 격으로 고교 교육 과정을 왜곡시키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봐왔기 때문이다. 이번엔 그런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입학사정관 제도가 올바로 실행되려면 고등학교에서 교사의 평가권을 강화시켜 내신(학생부의 교과 성적)과 비교과 영역에서 학생에 대한 다양한 평가 내용을 학생부에 담도록 하고, 이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대학은 이를 적극 반영하는 '선순환' 구조를 이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늘 반복하지만 입시 경쟁과 서열화가 완화되어야 한다. 이를 하나마나한 소리라 생각하면 입학사정관제는 성공하기 어렵다. 척박한 땅에 씨앗을 뿌린다는 것은 이미 절반의 성공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귤이 탱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대학입학 경쟁이 심하고 서열화 된 상황에서는 입학사정관에게 보다 객관적이거나 엄격한 조건을 요구할 것이다. 입학사정관의 선발 행위를 사회 전체가 신뢰해야 하는데 대학에 대한 신뢰는 그리 높지 않다. 그러다 보면 입학사정관제의 재량권이 위축될 것이다.
입학사정관제는 선발 경쟁보다는 선발 이후 교육 경쟁을 중요시하는 나라, 합격한 학생들의 대학 졸업률이 50% 안팎에 이르는 나라에서 주로 활용한다. 입학사정관이 적당히 뽑은 후 치열한 교육 경쟁이 전제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선발이 곧 졸업이라 상황이 다르고 명문대 입학이 곧 기득권 기차의 탑승 여부를 나누는 것이어서 이 제도가 놓일 맥락이 다르다.
둘째, 고등학교의 평가권과 특성화가 존중되어야한다.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평가한 것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하지만 대학에 많이 보내는 것이 능력으로 인정되고 거의 모든 고등학교가 입시에 올인 하는 상황에서 고교 특성화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현재로서는 입학사정관이 무엇을 기준으로 학생의 잠재성을 무엇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아무래도 성적과 리더십, 잠재력 등일 텐데 이 제도를 운용하는 미국의 경우 학력이 고만고만한 학생이 있을 때 기왕이면 리더십, 봉사 활동, 특기 등을 겸한 학생, 그 대학이 중요시하는 가치-다양성 등이 학생이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각오를 담은 에세이 등을 보고 종합 판단하고 입학에 절대적 권한을 가졌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불과 몇 달 밖에 남지 않았고 해당학과 교수들과 함께 한다고 하는데 일단은 성적이 기준이 될 것이지만 수험생들은 입학사정관제가 무엇을 중요시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답답한 일이다. 이에 자칫하면 입학사정관에 기준에 맞추기 위해 고교 과정이 왜곡될 우려가 있다. 일테면 고만고만한 봉사 활동의 차별화를 위해 일부 외국어 고등학생이 아프리카로 봉사 활동을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몇 년 전 대입 논술이 도입되자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논술 실력을 단시간에 습득하기위해 학원으로 몰려가 서울대 자연계 심층면접에서 '존경하는 한국의 과학자를 말해보라'는 면접관 질문에 거의 모든 수험생이 장영실을 1순위로 하는, 순위가 고착화된 답변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는 외워 쓰는 논술과 면접의 실상을 보여준 것으로 꼬리가 몸통을 뒤흔든 예다. 결국 입학사정관이 중시하는 것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 학교 현장이 다시 한 번 요동칠 우려가 없지는 않다.
정보에 목마른 강남 지역 학부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진학 컨설팅과 고급 사교육을 과연 외면할 수 있을까? 대학 입시도 부익부 빈익빈, '서울 강남 지역과 강북의 대입 격차는 학부모의 정보력 차이이니 강북 학부모님도 분발해 달라'는 강북의 한 교장선생님의 회한 섞인 당부는 이 점에서 의미심장한 것이다.
입학생 선발에 절대 권한을 가진 미국의 입학사정관의 경우 30~50대로서 대체로 보수적이라고 한다. 입학 사정의 기준은 '이 학생을 선발했는데 무리가 없을 것 같다'가 판단 기준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대학 측이 입학사정관을 평가하는 기준도 엄격해 입학사정관이 1년에 몇 명을 만났나, 만난 학생 중 몇 명이 지원했나, 지원자 중 몇 명의 입학을 허락하고, 입학을 허락한 학생 중 몇 명이 실제 대학 등록을 했나, 마지막으로 등록한 학생의 1년간 학업 성적이 어떤가까지 감안하여 입학사정관의 재계약과 연봉이 정해진다고 한다. 한국 대학은 입학사정관을 대학의 필요라기보다 정부가 관심을 갖고 예산을 지원하니 비정규직으로 선발하고 있다. 현재 290명의 입학사정관이 있고 90%가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만약 정부의 예산 지원이 없어지면 대학들이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
부작용부터 문제 삼아 제도를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얼마 전 특수목적고나 각종 올림피아드 경시 대회에서 수상한 학생을 우대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일반계 고등학생 선발 비중을 늘리겠다고 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포항공대가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고교등급제를 하겠다고 시사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3불 폐지를 우회하여 고교등급제를 하기 위한 명분으로 입학사정관제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하게 만든다.
아직은 탁상공론식으로 정책의 장단점을 말하고 성패를 판단하기 이르다. 다만 제도의 점진적인 도입과 정착을 통해 잠재력 있는 학생에게 기회를 주고 더 나아가 대입 경쟁을 완화하고,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듯 조심스레 제도를 정착시키고 동시에 대학 서열과 입학 경쟁 완화에 손을 대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김 학 윤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부회장
잠신고등학교 교사
- 위 글은 (사)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에서 토론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