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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比스님과 함께 하는 유마경 공부(2020.10.12.PM7시)
유마경 제자품
라후라와 출가공덕
벌써 많은 분들이 밤 시간에 이렇게 유마경을 공부하러 교실에 속속 들어오셨다. 반갑다. 아주 볼만한 부처님을 모셨다. 잘 감상하시기 바란다. 환희심이 나는 부처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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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처님 십대제자중에 아홉 번째로 되어 있는 라후라, ‘라후라와 출가공덕’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이야기 가 진행된다.
라후라는 아시는 바대로 부처님이 세속에 계실 때 아들이다. 부처님은 사실 일찍 출가하려고 했는데 부왕이 ‘장가도 가고 자식도 낳고 대를 이을 자식을 하나 남겨놓고 출가하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아무리 당시 소국이라고 하더라도 일개 나라인데 ‘나라를 물려받을 사람이 있어야 되지 않느냐?’하여서,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출가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부처님 출가가 스물 아홉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35세에 성도하셨다고 하면 스물 아홉이 맞다. 6년간 고행을 했다고 계산하면 그렇다.
혹은 9세에 출가했다. 이런 설도 있고 하도 오래된 일이라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부처님에게 아들 라후라는 반갑고 기쁜 자식이 아니라 내 공부하는 데, 내가 출가해서 도를 이루려고 하는 일에 크게 방해꾼 노릇을 했다, 그래서 ‘라후라’ 라고 하는 말이 ‘장애’ 또는 ‘방해’ 라는 뜻이라고 한다. ‘저 방해꾼이 이제사 나타났구나’ 아무튼 자식을 낳았으니까, 대를 잇는 일은 됐고, 그래서 나중에 출가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시고 교단을 이루고 나중에 왕궁에 친척들을 보려고 왔다가 라후라를 데려가서 출가시킨 사연이 있다.
라후라는 특징이 밀행제일(密行第一) 비밀한 행동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다.
화장실 청소를 한다든지 도량청소를 한다든지 다른 사람의 신을 가지런히 놓는다든지 아니면 신발을 닦아 놓는다든지 이런 것도 남이 모르게 티나게 하지 않게 하고 몰래 선행을 잘했다는 설명이다.
저는 그 점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부처님의 아들이니까 뭘 해도, 가만히 있어도 드러나고 티가 난다. 잘해도 눈에 띄고 잘못해도 눈에 띄는 신분이니 좋은 일을 하든 봉사를 하든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남몰래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 그렇겠는가? 그 처지를 가만히 우리가 객관시해서 생각해 보면, 부처님 아들이 되어서, 나설 수도 없고 안나설 수도 없고, 등등 그래서 남모르게 행동을 잘 했을 줄로 믿는다.
부처님은 사리불에게 라후라의 교육을 맡겼다.
‘본래 자기 자식은 자기가 교육을 못시킨다’고 유교에 그런 말이 있다.
상좌도 자기 상좌는 자기가 교육 못 시킨다. 어떻게 오해를 해서 틀어져 버리면 다시 돌려놓기도 참 힘이 들기 때문이다.
사리불 존자가 누구인가? 부처님의 오른팔과 같은 분으로서 인도사회에서 가장 지성이 빼어난 인물이다. 그분에게 부처님은 ‘저 라후라를 잘 좀 가르쳐라’ 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수행자들은 저녁에 죽도 먹게 안되어 있고 점심 한끼만 먹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라후라가 어려서 출가를 하다보니 배가 고프니까 자꾸 징징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처님이 저녁에는 약석이라고 해서 아주 가볍게 약으로 생각하고 먹도록 해라. 부처님이야 안 자셨을 것이다. 그러나 노약자들은 약이라고 생각하고 조금 먹는 것을 허용한다. 그렇게 저녁먹는 것이 허용이 되었다 하는 이야기도 있다. 약석(藥石) 약이라고 하는 약(藥)자하고 돌 석(石)자 약석이라고 한다.
지금도 오후 불식하는 스님들이 많다. 수행자는 큰 노동은 하지 않으니까, 오후에는 굶어도 그런대로 견딜 수 있고, 첫째 잠이 적게 오고 머리가 맑고, 정신이 맑고 그런 큰 이득이 있다. 노약자는 어렵지만 정상적인 건강한 사람이라면 한 번 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사연이 있는 라후라, 그 사람의 출가공덕 이러한 내용을 공부하게 되겠다.
9. 라후라와 출가공덕
불고라후라(佛告羅睺羅)하사대 여행예유마힐문질(汝行詣維摩詰問疾)하라 라후라(羅睺羅)가 백불언(白佛言)하사대 세존(世尊)이시여 아불감임예피문질(我不堪任詣彼問疾)하나이다 소이자하(所以者何)오 억념(憶念)하니 석시(昔時)에 비야리제장자자(毘耶離諸長者子)가 내예아소(來詣我所)하여 계수작례(稽首作禮)하고 문아언(問我言)하대 유라후라(唯羅睺羅)여 여(汝)는 불지자(佛之子)라 사전륜왕위(捨轉輪王位)하고 출가위도(出家爲道)하니 기출가자(其出家者)는 유하등리(有何等利)닛고 아즉여법(我卽如法)하야 위설출가공덕지리(爲說出家功德之利)러니
부처님께서 라후라에게 말씀하였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여라.”
라후라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분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억해보니 옛적에 비야리성의 여러 장자의 아들들이 저의 처소에 와서 머리를 숙여 예배하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라후라여, 그대는 부처님의 아들입니다. 전륜왕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닦으니 그 출가란 것은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곧 여법하게 출가공덕의 이익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라후라가 말하자면 전륜왕의 지위를 물려받을 사람이다.
왕의 지위를 물려받을 사람인데, 세상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고 바라는 바인 왕위를 버리고 출가해서 도를 닦으니, 출가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좋은 일이 있기에 그렇게 그 좋은 자리를 버리고 출가를 했느냐? 이렇게 물었는데 라후라가 아는 대로 여법하게 출가한 공덕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별별 신분의 사람들이 출가를 한다.
라후라 같은 이들도 출가를 하고, 부처님 같은 이들도 출가를 하고, 이발사 하던 사람도 출가를 하고, 심지어 불가촉천민 출신도 출가를 하고 별별 신분의 사람들이 다 출가를 한다.
출가하면 우리가 순치황제의 출가시를 떠올린다. 청나라때 말년에 순치황제라는 분이 왕위를 버리고 출가했는데 그분의 출가시(出家詩)가 유명하다. 잠깐 몇 소절만 읽어보면 이렇다.
나 자신이 이 산하의 주인 노릇 하느라고
나라 걱정 백성 걱정 일이 너무 시끄러웠네.
백 년을 산다 해도 삼만 육천 날이건만
승가의 한가한 반나절에 미치겠는가.
당초에 부질없는 한 생각 잘못으로
가사 장삼 벗어놓고 곤룡포를 둘렀다네.
이 몸은 그 옛적에 서방의 한 납자였는데
그 어떤 인연으로 제왕가에 떨어졌나.
짐내산하대지주(朕乃山河大地主)
우국우민사전번(憂國憂民事轉煩)
백년삼만육천일(百年三萬六千日)
불급승가반일한(不及僧家半日閑)
회한당초일념차(悔恨當初一念差)
황포환각자가사(黃袍換却紫袈裟)
아본서방일납자(我本西方一衲子)
연하류락제왕가(緣何流落帝王家)
이런 시다.
우리들이 잘 읊조리는 ‘백년삼만육천일(百年三萬六千日) 불급승가반일한(不及僧家半日閑) 백년을 산다해도 삼만 육천 일인데, 승가에서 출가한 사찰에서 반나절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한가하게 사는 것만 못하다’
그 구절이 어떻게나 마음에 와닿던지, 물론 저도 출가해서 만난 시지만 그 구절을 아주 열심히 읊조렸다.
백년삼만육천일(百年三萬六千日) 불급승가반일한(不及僧家半日閑)이다. 왕으로써 사는 것을 그렇게까지 이야기 했다. 그런데 하물며 신분이 거기에 백분의 일도 못미치는 사람이 세속에서 산다면 그 삶이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다행히도 출가해서 사찰에서 부처님 밥 얻어먹어 가면서 그야말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기 신발만 들여놓으면 된다. 그런 팔자를 누리게 되었으니 얼마나 큰 복인가? 보통 복이 아니다.
그래서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남자로 태어나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렵고, 불법 만나도 출가하기 어렵다. 거기다 정법 만나기란 더욱 어렵다. 이런 말들이 많이 있다. 한 번 더 읽어 보겠다.
나 자신이 이 산하의 주인 노릇 하느라고
나라 걱정 백성 걱정 일이 너무 시끄러웠네.
백 년을 산다 해도 삼만 육천 날이건만
승가의 한가한 반나절에 미치겠는가.
당초에 부질없는 한 생각 잘못으로
가사 장삼 벗어놓고 곤룡포를 둘렀다네.
이 몸은 그 옛적에 서방의 한 납자였는데
그 어떤 인연으로 제왕가에 떨어졌나.
후반부에 ‘당초에 부질없는 한 생각 잘못으로 가사 장삼 벗어놓고 곤룡포를 둘렀다네’ 하는 이 구절은 이야기인즉슨 이렇다.
인도에서 출가한 승려가 되어서 여기저기 탁발을 다니고 한가하게 수행이나 하고 지내다가 어느 언덕배기에 떡 올라가서 있는데 마침 그 밑에 큰 절에 임금님의 행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임금님 행차는 근사하다. 보통 옛날 왕의 행차는 몇 리가 이어진다. 앞에서 사람들이 길이 어떤가를 전부 일일이 점검하고 조사하고, 잡인들이 다니지나 않는가 조사해서 정리를 하고, 행차가 지나갈 때 악대가 음악을 연주하면서 지나가는데 높은 언덕에서 그 광경을 싹 바라보고 있으니까 ‘야 이것 출가한 것도 참 좋긴 좋지만 저 왕의 행차 저것 한 번 해볼만하다, 저렇게 근사한데’ 저렇게 많은 사람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악대가 연주를 해가면서 지나가는 광경을 보고 ‘야 그거 근사하다 한 번쯤 해볼만한 일이다’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초에 부질없는 한 생각 잘못으로 가사 장삼 벗어놓고 곤룡포를 둘렀다네’ 다음에 ‘이 몸은 그 옛적에 서방의 한 납자였었는데’ 수행하는 사람을 납자라고 한다. ‘납자였는데 그 어떤 인연으로 제왕가에 떨어졌나’ 이런 시를 지었다. 참 실감난다. 감동적이다.
불교는 역사도 오래고 불교의 세계, 그 중에서도 또 출가의 세계는 아주 독특한 삶이 전개되는 세계다. 아주 별별 사연들이 많고 이야기거리가 많다. 그래서 이런 시도 남아 있다. 여러분들 순치황제 출가시 잘 아실 것이다. 한 번 찾아서 챙겨두시면 좋을 것이다.
시(時)에 유마힐(維摩詰)이 내위아언(來謂我言)하대 유라후라(唯羅睺羅)여 불응설출가공덕지리(不應說出家功德之利)니 소이자하(所以者何)오 무리무공덕(無利無功德)이 시위출가(是爲出家)니 유위법자(有爲法者)는 가설유리유공덕(可說有利有功德)이어니와 부출가자(夫出家者)는 위무위법(爲無爲法)이라 무위법중(無爲法中)에 무리무공덕無利無功德)이니라
“그때에 유마힐이 저에게 와서 말하였습니다. ‘여보시오. 라후라여, 그렇게 출가한 공덕의 이익을 말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이익도 없고 공덕도 없는 것이 이것이 출가입니다. 조작이 있는 법이란 이익도 있고 공덕도 있음을 이야기 하지만 대체로 출가란 것은 무위의 법입니다. 무위의 법 가운데는 이익도 없고 공덕도 없습니다.’”
무위는 함이 없는 법이다. 함이 없는데 무슨 이익이 있으며 무슨 공덕이 있겠는가? 그런 이익도 없고 공덕도 없는 가운데 아주 훌륭한 이익이 있고 공덕이 있는 것이다.
그런 관계는 다른 기회에 말씀드리기로 하겠다.
라후라(羅睺羅)여 부출가자(夫出家者)는 무피무차(無彼無此)하며 역무중간(亦無中間)이라 이육십이견(離六十二見)하고 처어열반(處於涅槃)이니 지자소수(智者所受)요 성소행처(聖所行處)라
“‘라후라여, 대저 출가란 저것도 없고 이것도 없으며 또한 중간도 없습니다. 62종의 견해를 떠났으며 열반에 머무나니 지혜로운 이가 받아들일 바며 성인들이 행할 바입니다.’”
출가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받아들일 바고 성인들이 행할 바다. 궁극적으로 그렇게 말했다.
출가의 심오한 의미, 저도 출가한 사람이지만 그 심오한 의미를 제대로 알기가 그렇게 쉽지가 않다. 출가의 의미는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함부로 출가할 것도 아니고, 또 모르고 출가하더라도 출가해서 배우면 그 나름대로 좋은 이익이 있다.
항복중마(降伏衆魔)하며 도오도(度五道)하고
“온갖 마군을 항복받고 5도를 제도하였다.”
오도는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다. 이런 다섯 갈래의 나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전부 제도하는 것이 출가다.
모든 마군들을 다 항복 받는 것이 출가다. 마군들을 항복 받아야 되는데 항복 못 받으면 제대로 된 출가가 아니다.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전부 제도해야 하는데 제도를 못한다든지 아니면 자기가 그런 지옥 아귀 축생에 허덕인다든지 그런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것 또한 출가가 아니다. 잘못된 출가다.
정오안(淨五眼)하며 득오력(得五力)하고 입오근(立五根)하야 불뇌어피(不惱於彼)하고 이중잡악(離衆雜惡)하며
“‘5안이 청정하고 5력을 얻으며 5근을 세워서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아니하여 여러 가지 잡되고 나쁜 것들을 떠납니다.’”
출가라는 것은 오안이 청정하고, 오력 다섯 가지 힘을 얻으며, 오근을 세워서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아니하는 것, 또 여러 가지 잡되고 나쁜 것들을 다 떠나는 것이 진정 출가다.
최제외도(摧諸外道)하고 초월가명(超越假名)하며 출어니(出淤泥)하야 무계착(無繫着)하며
“‘온갖 외도들을 다 꺾으며 거짓 이름을 초월하여 진흙에서 벗어나 얽매이거나 집착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연꽃처럼 사는 것이다. 비록 세속이라고 하는 흙탕물을 근거로 해서 출가를 했지만, 출가라고 하는 아름다운 꽃을 피웠지만, 거기에는 진흙이 묻지 않고 물한방울 묻지 않는 그런 삶을 보이는 것, 연꽃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진정한 출가다. 그런 의미다.
유마거사의 설법이 아주 훌륭하다.
무아소(無我所)하고 무소수(無所受)하며 무요란(無擾亂)하며 내회희(內懷喜)하야 호피의(護彼意)하고
“‘나의 것이 없으며 받아들이는 것도 없으며 흔들리고 어지러움도 없어 안으로는 기쁨을 머금고 다른 이의 뜻을 보호합니다.’”
안으로는 기쁨을 머금고 다른 이의 뜻을 보호한다. 이것이 출가다.
수선정(隨禪定)하야 이중과(離衆過)니 약능여시(若能如是)면 시진출가(是眞出家)니라
“‘선정을 따라서 온갖 허물을 떠남이니 만약 이와 같으면 이것이 참다운 출가입니다.’”
라후라가 유마거사에게 출가의 진정한 뜻이 무엇이냐 하는 데 대해서 들은 것을 그대로 전달한다.
어시(於是)에 유마힐(維摩詰)이 어제장자자(語諸長者子)하대 여등(汝等)이 어정법중(於正法中)에 의공출가(宜共出家)니 소이자하(所以者何)오 불세난치(佛世難値)니라
“이에 유마힐이 여러 장자의 아들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들은 정법 가운데서 마땅히 함께 출가할 것이니 왜냐하면 부처님의 세상은 만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대들은 정법 가운데서 마땅히 함께 출가할 것이니 왜냐하면 부처님의 세상은 만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부처님의 세상은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출가하십시오. 출가하되 정법 가운데서 출가해야 됩니다.’
우리 어릴 때 강원나와서 걸망지고 만행한다고 여기 저기 떠돌아 다니면서 별별 사찰을 다 돌았다. 돌다보면 그때는 교통이 불편하니까 그 동네에 가서 ‘절이 가까이 있느냐?’라고 물어보면 ‘이 부근에 절이 있다’ 해서 그 절에 가서 하루 저녁 유하고 떠났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말하는 독살이를 자주 만났다. 독살이는 혼자 사는 절인데 크게 배운 것도 없는 스님이 그냥 생활방편으로써 절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을 많이 만난다. 그런 곳으로 어떻게 인연이 되어서 출가해서 몇 년을 허송세월을 하는 사람들이 또 그런 절에 있다.
어떤 경우는 10년 이상 거기서 그저 일이나 하고 심부름이나 하고 아무것도 배운 것도 없고, 그렇게 허송세월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잘 타일러서 ‘진정 출가하고 싶으면 큰 절로 가라. 해인사 같은 데, 불국사 같은 데, 통도사 같은 데, 범어사 같은 데 이렇게 정상적인 사찰로 가서 출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안내도 해드린 적도 있다. 정법에 근거해서 출가하는 것, 정법 가운데서 출가하는 것이 참 필요한 일이다.
또 출가는 이런 경우도 있다. 심(心)출가 신(身)출가 마음이 출가해야 되고, 마음은 출가했는데 몸이 출가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몸은 출가했는데 마음이 도대체 출가하지 못한 사람들도 참 많다. 일반신도님들은 그것이 무슨 소린가 하지만 그런 경우도 많다. 몸은 출가했는데, 도대체 마음이 출가하지 못한 경우다.
또 옛날에 내가 범어사에서 내가 들은 이야기인데 ‘나는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했는데 은사출가를 못했다’ 이런 이야기가 한창 범어사에서 유행했었다.
은사출가를 못했다. 은사가 시키는 대로 꼼짝 못하고 ‘어디에 살아라’ 하면 할 수 없이 한 곳에서 매여서 사는 경우다. 다른 목적으로 ‘니가 그 절을 지키고 그 절에서 살아라’ 이렇게 되는 경우인데,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조건이다’ 하는 뜻에서 ‘떠나지 말고 있어라’ 하면 이야기 거리가 안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은사출가 심출가 신출가 여러 가지 출가가 많다.
제장자자(諸長者子)가 언(言)하되 거사(居士)여 아문불언(我聞佛言)하니 부모불청(父母不聽)이면 부득출가(不得出家)니다 유마힐(維摩詰)이 언(言)하사대 연(然)하다 여등(汝等)이 변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便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면 시즉출가(是卽出家)며 시즉구족(是卽具足)이니라
“여러 장자의 아들들이 말하였습니다. ‘거사시여, 저희들이 들으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모가 허락하지 아니하면 출가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유마힐이 말하였다. ‘그렇다. 그대들이 곧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내면 이것이 곧 출가며, 이것이 곧 계를 구족한 것이니라.’ ”
보리심을 발하면,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낸다면 이것이 진정한 출가라는 것이다. 몸은 출가했어도 그런 데 대한 관심이 없으면 그것을 무슨 출가라고 할 것이 있겠는가? 심지어 공부도 안하고 강원도 안가고 선방에도 안가고 하는 그런 출가도 적지 않다. 그것이 무슨 출가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참 안타까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시(爾時)에 삼심이장자자(三十二長者子)가 개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일세
“그때에 32명의 장자의 아들들이 모두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내었습니다.”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보리심을 발했다.
보리심을 발하는 것이 곧 출가다.
고아불임예피문질(故我不任詣彼問疾)이니다
“그러므로 저도 그분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라후라가 자기 나름대로 자기또래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출가한 공덕에 대해서 한참 열심히 설명을 했는데, 유마거사를 만나서, 정작 진정한 출가의 의미는 유마거사에게 듣게 되었다고 하는 내용이다.
부처님의 십대 제자의 사연들은 가서 문병하는 것이 주 목적이지만 이러한 이야기거리들이 숨어 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인 라후라가 유마거사에게 가서 문병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출가 이야기를 하고, 또 따라서 다른 출가의 내력들을 우리가 살펴보게 된다.
근래에는 단기출가도 있고, 정년퇴직 하고 출가하는 제도도 마련됐다고 한다. 그렇든 저렇든 출가는 큰 결심을 가지고 해야 한다.
남을 보고 출가하거나, 어떤 사찰의 환경, 불교의 환경, 이런 것을 늘 보고 출가를 해야 되겠다. 아니면 뭐 ‘아유 이런 데서 어떻게 출가생활 하는가, 나는 이런 데 출가하는 줄 몰랐다’ 하고 되돌아 가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탓한다.
절대 출가환경을 탓할 일이 아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공부할 분위기가 아니다’‘왜 절 분위기가 이런가?’ 이런 것을 자꾸 탓하게 되면 그것은 결국은 자기만 손해다.
출가란 앞뒤 돌아볼 것 없이 그저 무쇠막대기처럼 아주 고집불통이 되어서 자기의 뜻을 관철하는 의지가 있어야 된다.
제가 그전에 수계받는 사람들에게 출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기도 했다. 주로 종단에서 수계식을 할 때 강의를 많이 맡았었다. 그때 과거 스님들의 출가의 사례들도 이야기 해주기도 하고 신심나게 강의를 아주 잘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꼭 소개한 시가 있다.
승호막도청산호(僧乎莫道靑山好)
산호여하부출산(山好如何復出山)
시간타일오종적(試看他日吾踪迹)
일입청산갱불환(一入靑山更不還) 하리라.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해인사로 들어가면서, 한림학사의 벼슬을 던져 버리고 해인사로 출가하면서 지은 시가 아주 유명하다. 나는 그 시를 꼭 소개하곤 했다.
‘일입청산갱불환(一入靑山更不還) 한 번 청산에 들어간 뒤에는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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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호막도청산호(僧乎莫道靑山好) 중아, 청산이 좋다고 말하지 마라.
산호여하부출산(山好如何復出山)고, 산이 좋다면 왜 다시 산에서 나오는가.
시간타일오종적(試看他日吾踪迹)하라, 시험삼아 다른날 내 종적을 한 번 지켜봐라
일입청산갱불환(一入靑山更不還)하리라. 나는 한 번 청산에 들어가서는 다시는 나오지 아니할 것이다.
최치원 선생은 비록 머리 깎은 스님은 아니었지만, 그런 분들에게 머리 깎은 스님의 그런 형식이 무슨 문제겠는가?
그래 그 길로 가야산에 들어가서 학사대라고 지팡이를 꽂아 놓은 나무가 살아서 지금도 해인사에 가면 있다.
한림학사가 지팡이를 꽂은 곳이다, 해서 학사대라고 한다. 아마 출가해서 거기서 정자를 짓고 좀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일입청산갱불환(一入靑山更不還) 일입청산갱불환(一入靑山更不還)’ 제가 그 구절을 천수경보다 더 많이 외우고 관세음보살 명호보다도 더 많이 읊조리면서 살았다는 그 이야기를 그 당시 신심날 때 많이 했다.
그것을 어떤 스님이 듣고는 다시 전하는 사례도 있고 그렇다.
라후라의 출가이야기를 할 때 이런 이야기라도 곁들여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은 공부를 여기까지 하겠다. 참 재미있는 이야기다. 저만 재미있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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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신 분들 한 번 살펴보겠다.
용학스님 참석하니 장엄이 멋지다. 용학스님 아는 분들도 많이 계시고, 같은 교실에서 동문수학하는 일이지 않는가? 용학스님같은 분하고 동문수학한다. 불자님들은 아주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기쁨에 충만해 있을 것이다.
아주 많은 분들이 동참해서 지금 90명, 좋은 법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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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부처님의 태양은 더욱더 밝아지고
진리의 수레바퀴는 쉬지 않고 굴러가지이다.
성불하십시오.
첫댓글 _()()()_
고맙습니다. 戒香ㆍ定香ㆍ慧香ㆍ解脫香ㆍ解脫知見香!
@釋대원성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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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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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入靑山更不還 ... 고맙습니다 _()()()_
「마하 라훌라바다경」의 한 구절
“라훌라야! 자애[慈]를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자애를 닦으면 나쁜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 라훌라야! 더불어 아파함을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더불어 아파하는 마음을 닦으면 잔인한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 라훌라야! 더불어 기뻐함[喜]을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을 닦으면 혐오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 라훌라야! 평온함[捨]을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평온한 마음을 닦으면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 라훌라야! (육신의) 더러움[不淨]을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더러움을 관하는 공부를 닦으면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착심이 사라지게 된다. 라훌라야! 무상의 상[無常想]을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무상상을 관하는 공부를 닦으면 아만(‘내가 있다’‘나다’라는 생각 asmi-māna)이 사라지게 된다. 라훌라야!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 ānāpānasati]을 닦아라. 라훌라야! 출입식을 염하는 공부를 자주 닦아 익히면 얻는 바가 많아서 크게 이익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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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密行第一 라후라
出家란 無爲의 법, 지혜로운 사람들이 받아들일 바이고 성인들이 행할 바이다.
은사출가 심출가 신출가 모두가 이루어져야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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