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장마와 잠 못 들게 하던 열대야 현상도 세월 앞에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밤새 요란스럽던 천둥 번개와 폭우가 여름을 몰아내고 가을을 맞는 처서(處暑)를 부른다. 총 21구간의 북한산 둘레 길은 추위(1~2월)와 더위(7~8월)로 산에 오르기 힘든 시기에만 오르다 보니 많은 기간이 걸렸다. 2012년 7월에 21구간(우이령길)부터 시작해 8회로 나누어 오늘 끝나게 되는 의미 있는 날이다.
밤새 내린 비 때문 인지, 최소한의 인원 3명(산토끼님, 왕자님, 푸코)만이 함께해 아쉬움을 준다. 한정된 기간만 가다보니 햇수로는 2년이나 걸려 완주하게 되니 더 뿌듯하다. 오늘은 3구간부터 시작해 출발지였던 1구간 우이령 입구까지 간다. 오후부터 비가 그친다고 해서 만남의 시간을 2시간 늦춰, 11시30분에 길음역 3번 출구에서 만난다. 1114번 마을버스로 종점인 북한산 생태 숲(11:55)에 도착한다.
지난번 트레킹을 종료한 성북생태 근린공원으로 오르는 언덕 우측에 성북생태체험관(자연학습장, 11:56)이 있다. 공원 내의 팔각정에서 산행 시작 인증 샷을 찍고는 출발한다. 성북구와 강북구 경계를 넘어, 생태 숲 사이(12:00)로 내려간다. 오전까지 내린 비로 인하여 수목은 더 푸르고, 흙길은 촉촉이 젖어 있어 상쾌하게 시작한다. 흰구름길 구간(3구간, 12:06)의 거리는 4.1km이고 난이도는 중(中)이다.
작은 구름전망대(12:16)에서 조망을 하니, 아파트 숲 건너편으로 수락산(좌)과 불암산(우)이 가까이 보인다. 학창시절 이 지역 삼양동 인근에서 살았기에 여름철이면 자주 찾았던 빨래골 지킴터(12:24)가 추억을 불러온다. 옛날에는 인근 아낙네들이 이 계곡에 모여 빨래를 하면서 삶의 애환을 달래었다고 한다. 화계사로 넘어가는 고개 마루(12:26)는 부드러운 흙길이었는데, 이제는 큰 돌로 포장되어 있다.
둘레 길 중에서 유일하게 높은 12m의 구름전망대(12:33)에 오른다. 가까이 보이는 도봉산의 오봉과 자운봉(12:35)은 흰 구름이 넘나드는 모습이 운치 있고 멋지다. 북한산의 만경대, 인수봉, 백운대의 주봉들은 운무에 가려져 형태를 알아보기조차 힘들다. 전망대에서 각기 인증 샷(12:38)을 남기고 아래층 쉼터에서 복숭아를 먹으면서 쉬어간다. 높이 올라왔다고 바람까지 불어 줘 도움을 준다.
고려 때 법인대사가 인근에 보덕암을 세워 오랫동안 이어져 오다가 1522년(중종17년) 신월선사가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짓고 이름도 바꾸었다는 화계사 경내(13:01)를 잠깐 들린다. 화계사 일주문 전에 있는 둘레길 안내도(13:04) 따라 데크 계단을 오른다. 능선을 따라 오르고 내려가다 보니, 전에 없었던 우회도로 안내판(13:13)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나무계단 색깔이 최근에 설치하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기존 노선이 개인 사유지 땅으로, 소유주가 둘레길 사용 금지 요청으로 우회노선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안내도에 공사 중이라는 표시가 있어 기존 길로 간다. 냉골하단 쉼터에 우회로 끝나는 지점(13:22)에 있던 한 주민은 우리가 온 길은 나이든 사람이, 새로운 길은 젊은이들이 다니는 길이라고 하니 제대로(?) 온 것 같다. 쉼터 육각정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넘는데, 좌측에 본원정사(줌, 13:28)가 보인다.
본원정사(구 도성암) 입구에서 차도 따라 양 한방 노인전문 병원(13:31)을 지난다. 차도에서 숲속으로 들어가 능선을 오르다 보니, 3년 전 겨울에 혼자 식사를 하던 장소에 시선이 머문다. 마을 옆 게이트볼 장(13:44)에는 연세 드신 분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차도가 나오면서 3구간이 끝나는 곳에 통일 교육원(13:49)이 자리하고 있다. 인근에는 아카데미하우스와 탐방지원센터도 있다.
순례길 구간(2구간, 13:49)의 거리는 2.3km이고 난이도는 하(下)이다. 구간이 시작되는 계곡에는 많은 음식점들이 자연을 훼손하고 있어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준열사 묘소, 대동교를 지나 있는 섶 다리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 했으나, 긴 장마에 다리 중간이 붕괴되었다. 늦은 점심을 위해 식사장소를 물색했으나 시간만 흐르더니, 최상의 식탁(14:00~14:45)을 맞는다. 애국선열의 묘소(14:49)를 머리 숙여 지난다.
길가 담장 위로 높게 핀 이름 모를 꽃(15:04)을 보다가 그랬는지, 식사하면서 마신 반주에 취해서인지 주택가 골목을 마냥 걸었더니 차도가 나온다. 알바 했음을 직감하고 내려온 길을 거슬러 올라오니, 좌측으로 가야될 골목(15:08)을 지나쳤다. 10여분 알바를 하다니, 친구들한테 미안하기만 하다. 반대방향으로 가지만, 3년 전 왔던 길을 기억 못한 것이다. 신숙 선생 묘소(15:14)를 앞으로 보며, 우측으로 간다.
1788년 원담 스님께서 창건했으나 한국전쟁으로 대부분 소실되었다가, 1979년 정일 스님께서 불사를 일으킨 후 보광사(15:22)로 이름을 바꾸었다. 1963년 9월20일 건립된 국립 4.19 민주묘지(15:30)는 1960년 4.19 혁명 당시 희생된 290명의 영령들이 잠들어 계시다. 이분들을 기리는 기념탑이 세워져 있고, 기념탑 중앙에는 의롭게 죽어간 이들을 기리는 탑문이 새겨져 있는 우리나라 민주이념의 최고 성지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둘레길 전망대에서 휴식(15:34)을 취하고는 마지막 구간인 1구간으로 이동한다. 소나무 숲길 구간(1구간, 15:50)의 거리는 3.1km이고 난이도는 하(下)이다. 열대야 현상은 이제 물러나고 조석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지만, 한 낮의 더위는 누그러들 줄 모른다. 둘레길 자체가 산 중턱을 오르고 내리자니, 바람마저 없다보니 마지막 구간에서 일행 모두가 피로를 느끼기 시작한다.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솔밭공원(15:54)은 더위를 피해 나온 동네 어르신들로 만원이다. 넓은 공원을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따라서 출구가 일정치 않아 지난번에도 길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오늘은 그 때의 실수를 다시 하지 않겠다고 자신 있게 갔는데 다른 골목이다. 같은 길을 간다는 어느 주민의 안내로 이곳저곳 다니다 보니 더 헷갈린다. 독단적으로 우이 제일교회(16:15)를 물어물어 찾아 알바를 끝내었다.
마지막 낮은 소나무 고개(16:19)를 넘기 전에 숲속 쉼터에서 과일을 먹으며 쉬어간다. 오늘 마지막 구간이라고 방심을 해서인지 두 번씩이나 알바를 하였다. 구간이 종료되어 가고 있음을 알리는 중간 1구간 대문(16:29)을 지난다. 손병희 선생 묘소(16:31)를 지나니, 우이동에서 도선사로 올라가는 차도가 보인다. 친구들과 함께 북한산 둘레 길을 완주한 만족함과 함께 보람도 느껴본다.
도선사를 경유해 백운대로 오르는 차도 옆에 북한산 국립공원 우이분소(16:34)가 자리하고 있다. 분소에서 도선사 방향으로 오르다가 우측 계곡 따라(16:35) 시작지점으로 간다. 우이령 입구 이정표(16:45)에서 북한산 둘레길 21구간의 막을 내린다. 3년 전 겨울에 혼자 둘레 길을 돌면서 언제 한번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 길을 걷고 싶다 했는데, 그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니 기쁘다.
겨울철보다는 녹음이 우거진 둘레 길을 걷는 것이 더 의미가 있었지만, 사패산 아래 소복하게 쌓인 둘레 길은 인상적이었다. 우이동 버스 종점 인근에 있는 음식점에서 뒤풀이(16:49)를 하며, 다음 혹한기와 혹서기에 갈 서울 둘레길 이야기를 나눈다. 친구들과 함께 가기위한 사전 답사를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니 그 때가 또 기다려진다. 함께한 두 친구! 수고 많았습니다.
2013. 8.23(金). 북한산 둘레길 트레킹 하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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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연과 책 속에서... 원문보기 글쓴이: leepuco
첫댓글 마지막 구간을 남겨두고 함께 하지 못해 많이 아쉬웟지만
사진과 후기글을 보며 마지막 3~1 구간 들레길을 트레킹 하듯이 잘 하었습니다
항상 같이 하다가 하루 빠지니, 그 자리가 크게 느껴졌습니다.
다음 산행 일자가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