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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의 사찰과 문화유산 원문보기 글쓴이: 광나루
충북 보은 법주사-2 written by 한국의 사찰과 문화유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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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주사 경내 전경 |
법주사 철확(보물 141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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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이서 본 법주사 철확 모습 |
금강문을 들어서면 바로 좌우에 당간지주(幢竿支柱)와 철확(鐵)이 마주 보고 서 있다. 큰 사발(大鉢)의 형상을 한 법주사 철확은 높이 1.2m, 지름 2.7m, 둘레 10.8m, 두께 10∼3㎝의 거대한 크기로, 상부의 외반된 전이 달린 구연부는 둥글게 처리하였고 기벽(器壁)의 두께는 3∼5㎝ 정도이며 무게는 약 20여 톤으로 추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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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호각 아래 위치한 철확 모습 |
비교적 단순한 구조에 몸체에는 아무런 문양이나 기록이 주조되지 않아 제조연대·제작자 및 제조방법 등을 알 수 없지만, 용해온도가 청동보다 훨씬 높은 주철로 주조된 대형의 주물솥이라는 점에서 기술사적 측면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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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확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
본래는 강원 옆 공양간 주위에 있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법주사의 사세(寺勢)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이 철확은 3,000명 정도가 먹을 수 있는 장국을 끓일 수 있다고 하는데 가람 곳곳에 있는 거대한 석조물통 및 항아리와 함께 법주사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유물이다. |
법주사 사천왕문(충북 유형문화재 4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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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왕문 전경 |
금강문을 통해 깨뜨릴 수 없는 불법의 세계를 지나면 천왕문(天王門)을 만난다. 앞면 5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앞면 3칸에는 판문(板門)을 달아 출입하도록 하였고 양쪽의 끝 칸에는 문이 아니라 작은 판창(板窓)을 달았다. 대개 사찰의 금강문은 앞면 3칸 정도의 규모인데, 이처럼 5칸을 마련하고 양옆에 판창을 댄 법주사의 경우는 매우 특이한 경우로, 국내의 천왕문 중 규모가 가장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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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왕문 좌우로 위치한 4대천왕 모습 |
안에는 사천왕상을 봉안하였는데, 동쪽 세계를 관장하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손에 비파를 들고 인간 감정의 기쁨의 세계를 총괄한다. 서쪽 세계를 관장하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용과 여의주를 들고서 노여움의 감정을 주관하고, 남쪽 세계를 관장하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칼을 들고 사랑의 감정을 주관하며, 끝으로 북쪽 세계를 다스리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탑 또는 큰 깃대를 들고 즐거움의 감정을 주관한다.
이처럼 인간사를 관장하고 있는 사천왕은 착한 일과 악한 일을 적절한 시기에 판단하여 그에 따른 상과 벌을 내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천왕문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최대의 공경을 올리곤 한다. |
법주사 팔상전(국보 5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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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왕문 안에서 바라 본 팔상전 모습. 보수 중으로 사방을 막아 놓았습니다. 2009년 3월 당시. |
법주사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 수리한 것이다.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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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왕문 바로 뒤에 팔상전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
▲ 팔상전 앞에서 현판 위로 올려다 본 모습 |
팔상도란 1)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장면, 2)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에게 태어나는 장면, 3)궁궐의 네 문밖으로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장면, 4)성을 넘어 출가하는 장면, 5)설산에서 고행하는 장면, 6)보리수 아래에서 마귀를 항복 시키는 장면, 7)성불 후 녹야원에서 설법하는 장면, 8)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하는 장면 등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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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를 줌으로 당겨서 팔상전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
1층과 2층은 앞·옆면 5칸, 3·4층은 앞·옆면 3칸, 5층은 앞·옆면 2칸씩으로 되어 있고, 4면에는 돌계단이 있는데 낮은 기단 위에 서 있어 크기에 비해 안정감을 준다. 지붕은 꼭대기 꼭지점을 중심으로 4개의 지붕면을 가진 사모지붕으로 만들었으며, 지붕 위쪽으로 탑 형식의 머리장식이 달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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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방 좌측면에서 바라 본 팔상전 |
건물의 양식 구조가 층에 따라 약간 다른데, 1층부터 4층까지는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고, 5층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설치한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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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면과 후면에서 바라 본 팔상전 |
건물 안쪽은 사리를 모시고 있는 공간과 불상과 팔상도를 모시고 있는 공간, 그리고 예배를 위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법주사 팔상전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 나라의 탑 중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하나뿐인 목조탑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
범종각과 범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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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뒤에서 바라 본 범종각 |
범종각은 팔상전의 동쪽 정면에 있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1976년 종무소를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 지었다. 안에는 범종(梵鍾)·운판(雲板)·법고(法鼓)·목어(木魚) 등이 있다. 이 네 가지의 법구(法具)가 불당 앞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를 ‘불전사물(佛前四物)’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네 가지 법구들은 각각의 용도와 의미를 지닌다. 먼저 범종은 지옥에서 한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중생들을 위해, 운판은 하늘을 나는 날개 달린 짐승들을 위해 모두 이 소리를 들음으로써 영원한 해탈심을 느끼게 한다. 또한 법고는 땅 위에 사는 네 발 달린 짐승들을 위해, 목어는 물 속에 사는 생명들을 위해 울린다. |
팔상전 우측 석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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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상전과 범종각 사이에 있는 이름모를 석등의 앞뒤 모습 |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 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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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주사 쌍사자 석등 전경 |
대웅보전에서 팔상전에 이르는 앞마당에는 신라시대의 걸작 쌍사자석등(雙獅子石燈)이 있다. 국보 제5호로, 높이 3.3m에 이르는 팔각석등이다. 신라시대의 석등은 대개 하대석과 중대석, 상대석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대석을 두 마리의 사자가 앞발을 높이 치켜들어 상대석을 떠받치는 독특한 양식이다.팔각의 지대석은 아래 위에 가는 테를 돌리고 우주를 나타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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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상전 뒤에 위치한 쌍사자 석등 보호각과 석등 |
윗면에는 역시 팔각의 고임을 나타냈고 다시 그 안에 원형의 고임을 새겼다. 하대석은 한 겹의 커다란 연꽃문양과 그 속에 또 다른 꽃문양을 조각하였다. 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좁아져 중대석을 받고 있다. 중대석은 두 마리의 사자가 뒷발로 버티어서고 앞발로 상대석을 받치는 모습으로 새겼다.두 마리의 사자가 가슴을 맞댄 채 머리가 위로 향한 똑같은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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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우 측면에서 바라 본 쌍사자 석등 |
사자의 조각은 매우 정교하여 크고 둥그런 눈, 머리의 갈기, 몸체의 근육 등이 마치 살아 있는 느낌이다.사자가 받들고 있는 상대석의 아랫 부분은 두 줄의 가는 받침위에 원형에 가까운 앙련석이다. 다시 그 위의 화사석은 팔각으로 네 면에만 장방형의 화창(火窓)을 냈다. 이곳에 구멍이 여러 개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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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사자 석등 부분 모습 |
옥개석은 위에서 아래로 약간의 경사를 보이고 추녀 끝에서 반전되었다. 옥개석의 위에는 복련과 공모양의 보주로 장식하였다.법주사의 역사에 있어서 영심 대사의 중창 이후 즉 8, 9세기의 사정은 전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이처럼 뛰어난 석탑이 있어 8세기 번성하던 절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어 다행이다. |
약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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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사자 석등 우측에 위치한 약사전 전경 |
약사전(藥師殿)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안에는 중생의 질병과 고통을 치유하는 약사불과 후불탱을 봉안하였다. 약사 신앙은 대표적 불보살신앙 가운데 하나다. 동방의 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를 교화하는 부처님인 약사여래는 보살도를 닦을 때, 열 두 가지의 크고 거룩한 원을 세워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구하는 바를 다 이루게 하여 부처님이 되신 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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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사전 앞에도 이름모를 석등이 있습니다. |
우리 나라의 약사 신앙은 대체로 8세기 이후에 번성하였다. 삼국유사에 약사 신앙의 영험이 많이 전한다. 선덕여왕 때 밀본(密本) 스님이 약사경을 읽고 왕의 병을 고쳤고, 통일신라 때 경주에 위치한 신라의 대표적 사찰 중의 하나인 분황사(芬皇寺)에는 거대한 크기의 약사여래입상이 있었다. 또한 경주 남산의 곳곳에서 발견되는 사방불과 약사여래입상 등이 약사신앙의 대중적 인기를 보여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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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사전 앞에서 바라 본 좌측편의 쌍사자 석등 보호각과 우측의 요사채 전경 |
법주사에 약사전이 들어선 것은 오래되지 않은 듯하다. 조선 중기의 가람이나 18세기 중엽의 배치도에도 약사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세기 초에 지금의 원통보전 동쪽 정면에 작은 규모의 약사전이 비로소 등장하였다. 지금의 약사전은 최근에 조성한 것인데, 안에는 약사여래좌상과 1997년에 조성한 약사후불탱을 봉안하였다. |
법주사 사천왕 석등(보물 1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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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앞에 위치한 사천왕 석등 원경 |
대웅보전 앞에 높이 3.9m에 이르는 사천왕석등(四天王石燈)이 있다. 보물 제15호로 지정된 이 석탑은 상대석에 사천왕이 새겨져 있어 사천왕 석등이라 부른다. 전체적으로 팔각이 기본 구조를 이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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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왕 석등 전경 |
지대석은 방형으로 네 개의 돌로 구성했다. 그 위의 하대석은 2단인데 하단의 각 면마다 안상을 얕게 부조하였다. 상단은 그릇을 엎어 놓은 형상으로 위로 올라가면서 면을 줄이고 8개의 복련을 나타냈다. 중대석 즉 팔각의 간주석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이 늘씬하게 올라갔고 윗부분에만 8개의 앙련을 새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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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주석의 위아래로는 각각 3단, 2단의 옥개받침을 두었다. 화사석 역시 팔각으로서 각 면에는 화창과 사천왕을 번갈아 두었다.
장방형의 화창 주위에는 쌍사자 석등과 같이 구멍이 남아 있다. 사천왕의 조각은 매우 역동적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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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강암으로 이 정도의 사실적 조각을 이룩했다는 사실이 신라인의 예술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옥개석은 경사가 완만하고 끝에서 약한 전각(轉角)을 두었다. 위에는 둥근 보주가 있으나 새로 보수한 것이다. 이 사천왕 석등에서 우리는 신라 석등의 전형적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 장식성이나 조각 기법으로 보면 쌍사자 석등과 같은 8세기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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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면에서 바라 본 사천왕 석등 |
법주사 원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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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2 동선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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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지점이 금강문이고, 철확부터 빨간선을 따라서 대웅전 앞의 석등까지 돌아봅니다. 소재지: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