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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6월 26일 수요일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요시야 임금은 주님의 집에서 발견된 계약 책의 말씀을 백성에게 읽어 주고 그 말씀을 실천하기로 계약을 맺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라시며, 그들이 맺는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임금은 주님의 집에서 발견된 계약 책의 말씀을 백성에게 읽어 주고 주님 앞에서 계약을 맺었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22,8-13; 23,1-3
그 무렵 8 힐키야 대사제가 사판 서기관에게,
“내가 주님의 성전에서 율법서를 발견하였소.” 하고 말하면서,
그 책을 사판에게 주었다. 그것을 읽고 나서,
9 사판 서기관은 임금에게 나아갔다. 그는 임금에게 먼저 이렇게 보고하였다.
“임금님의 신하들이 주님의 집에 있는 돈을 쏟아 내어,
주님의 집 공사 책임자들 손에 넘겨주었습니다.”
10 그러고 나서 사판 서기관은 임금에게,
“그런데 힐키야 사제가 저에게 책을 한 권 주었습니다.” 하면서,
임금 앞에서 소리 내어 읽었다.
11 그 율법서의 말씀을 듣고 임금은 자기 옷을 찢었다.
12 임금은 힐키야 사제, 사판의 아들 아히캄, 미카야의 아들 악보르,
사판 서기관, 그리고 임금의 시종인 아사야에게 명령하였다.
13 “가서 이번에 발견된 이 책의 말씀을 두고,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주님께 문의하여 주시오.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리에 관하여 거기에 쓰여 있는 그대로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를 거슬러 타오르는 주님의 진노가 크오.”
23,1 임금은 사람을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원로를 소집하였다.
2 임금은 모든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
사제들과 예언자들, 낮은 자에서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을 데리고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
주님의 집에서 발견된 계약 책의 모든 말씀을 큰 소리로 읽어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3 그런 다음에 임금은 기둥 곁에 서서,
주님을 따라 걸으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분의 계명과 법령과 규정을 지켜,
그 책에 쓰여 있는 계약의 말씀을 실천하기로 주님 앞에서 계약을 맺었다.
그러자 온 백성이 이 계약에 동의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16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거두어들이고,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거두어들이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19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
20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거짓 예언자를 식별하는 기준을 일러 주십니다. 그 기준은 바로 그들이 맺은 “열매”입니다.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식별 기준으로서 열매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의 ‘행실’과 ‘업적’에 따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는 사람이 자신이 가르치는 것들을 삶으로 옮기는지 그의 ‘행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정의를 부르짖지만 정의롭지 않게 살아가는 모습, 가난의 가치를 열심히 말하지만 소유에 자유롭지 못한 모습, 겸손을 가르치면서도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 비천한 곳에 오신 예수님을 전하면서 안락함을 추구하려는 모습들은 참예언자인지 거짓 예언자인지를 가려내는 기준입니다.
둘째, 그 ‘행실’이 맺고 있는 ‘업적’을 보아야 합니다. 참예언자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에 꼭 맞는 삶은 세상에 주님을 드러내고 사람들 마음을 움직일 것입니다. 물론 참예언자들도 그들의 행실이 가르침에 못 미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 살펴야 합니다. 지향은 올바르지만, 인간적인 부족함과 나약함에서 오는지, 아니면 자신의 말과 전혀 다른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지향과 목적에서 오는지는 그가 맺는 열매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지향이 올바른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부족함을 채워 주시고,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은총을 베푸실 것입니다. 만일 지향이 올바르지 않다면, 그 지향을 아무리 숨기려고 하여도 오직 자신을 위한 열매로서 올바르지 못한 의도가 드러날 것입니다. 날마다 묵상하고 선포하는 하느님 말씀이 내 삶으로 드러나는지, 그리고 그 삶이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좋은 열매를 맺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최정훈 바오로 신부)
비정상의 정상화를 배격합시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우연히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북한 방문 장면 관련 뉴스를 보았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두 정상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나와 환호성을 올리고 손을 흔들고...정말이지, 끔찍했습니다.
이 지구상에 아직도 저렇게 한 사람을 우상화시키고, 강제동원령을 내리고, 꼭두각시 쇼에 동참하지 않으면 엄청난 불이익이 뒤따르고, 운집한 군중은 영혼 없는 얼굴로 환호를 하고, 그런 모습에 독재자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오늘 하루 온종일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 없었습니다.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어떻게 우리 민족에게 이토록 가혹하신지? 하는 탄식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 남북한 동포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남북 분단의 고착화를 너무나도 당연히 여기는 태도입니다. 평화 통일은 이제 완전히 물 건너간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입니다.
불과 이삼십년 전만 해도 학교에서는 학생들에 대한 체벌이나 구타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지금은 큰일 날 일이지만, 당시 선생님이 때리면 당연히 맞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찍소리 못하고 때리는 데로 맞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지금은 그 누구도 용납 못하지만 군부 독재자 시절, 천상천하유아독존인 그의 한 마디면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체포영장도 없이 어딘 지로 모르는 장소로 끌려갔고, 변호사도 없이 별의별 형태의 고문을 당하고...그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 시대를 살아온 것입니다.
남북 분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 너무 오랜 세월 분단되어 살아오다 보니, 이게 비정상인데, 정상처럼 착시 현상을 느끼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갈라서 있는 것이 편하니, 괜히 통일이나 왕래다 하다 보면 세상 복잡해지고, 그냥 이대로 쭉 갈라서서 가는 것이 더 낫다는 비정상적인 생각이 정상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남북한 동포들이 어떠한 희생과 노고를 다 치르더라도 반드시 일궈내야 할 과제요 숙명이 곧 통일입니다. 우리는 불가능하다고 아예 포기하지만,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하시는 일은 인간의 예측을 훨씬 능가합니다.
함께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노력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남북 사이의 관계가 화사한 봄날처럼 풀릴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 굳게 가로막혀 있는 철조망도 순식간에 사라질 것입니다. 그날 우리는 서로서로 부둥켜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각자 삶의 자리에서 지금까지 해오던 노력을 계속해나가야겠습니다. 매일 밤 9시 알람이 울리면 온 정신과 마음을 모아 한반도 평화와 남북통일을 위한 주모경 바치기를 계속해나가야겠습니다.
사이비가 나쁜 나무임을 알기 위한 나쁜 열매는 무엇일까?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라고 하십니다. 세상에 사람을 속이는 종교들, 거짓 예언자들이 많습니다. 이 열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면 사이비에 빠져 인생과 영혼을 망치는 일이 벌어집니다.
많은 이들은 이단이나 사이비의 잘못된 성경해석이나 교리가 그 열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이비들의 잘못된 성경해석과 교리를 공부하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교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교리까지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고 사실 진실보다 거짓말이 더 논리적입니다. 보이스피싱을 생각해보십시오. 매우 논리적으로 다가옵니다. 속이기 위해서는 논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 시대에 살았다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갔다고 말하는 경비병들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여인들의 말 중에서 누구의 말을 믿겠습니까? 그들의 교리로는 그들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교리가 만들어내는 ‘행동’이 그들을 알게 합니다.
한국 사이비의 시초는 1930년대 김성도라는 여인이 만든 성주교입니다. 17살 때 평북 철산군의 돈 많은 관리 세 번째 첩으로 달려가다시피 시집을 갔습니다. 그리고 내리 딸을 셋이 낳았습니다. 구박받았겠죠. 그러다 힘겹게 얻은 막내아들이 1년 만에 죽었습니다. 엄청난 충격으로 정신 이상이 왔어요. 근데 동네 어떤 교인이 기도하면 병이 낫는다 해서 기도했더니 병이 나았습니다. 둘째 아들이 또 병이 들었어요. 매일 열심히 기도해서 또 병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소문이 난 거예요.
그렇게 유명해지자 이젠 예수님을 직접 만나 계시받았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 예수님은 실패하였고 자신이 그것을 완성할 것이라 주장합니다. 또한 창세기에 보면 뱀이 하와를 유혹해 선악과 따먹은 얘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을요 성적 타락으로 봅니다. 뱀과 하와가 성행위를 했으면 그 후손들은 사탄의 피가 흐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면 깨끗한 피를 가진 이가 이 사탄의 피로 정결하게 해서 거룩한 피로 바꿔줘야 한다는 사상이 나옵니다. 이것이 성적인 타락으로 이뤄지고 뒤이어 나오는 모든 사이비 교주들은 이를 이용해 신도들을 자기 성적 착취물로 여기게 됩니다.
이후에 나온 백백교라는 사이비는 여기서 더 나가서 돈과 폭력까지 사용합니다. 백백교가 일제히 경찰에 의해서 조사가 되고 재판이 진행되는데 1937년까지 무려 80여 차례에 걸쳐서 백백교 신도 350명을 살해했다는 것입니다. 이후에 오대양 사건도 돈과 성과 폭력이 있었고 현재 허경영 씨도 똑같습니다.
이들의 교리는 볼 필요가 없습니다. 열매가 비윤리적이면 그 삶을 보증해주는 교리는 올바른 교리일 수 없습니다. 나무를 살피는 게 아니라 열매만 보면 됩니다. 나무를 보면 헛갈립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톨릭교회에는 이단이나 사이비가 없을까요? 그들의 논리보다 그들의 삶을 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제는 독실한 가톨릭신자라고 알려진 바이든 대통령이 미사에 참석하여 성체를 영하려 하자 성체를 주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는 낙태를 찬성하는 이단이자 사이비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가톨릭 교리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비윤리적이면 사이비입니다. 윤 대통령이 탄 전용기가 추락하기를 바란다는 발언을 한 사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가톨릭 정통신학을 공부하였다고 하더라도 사이비입니다. 열매가 비윤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청빈하고 정결하고 온순하고 겸손한 이가 있다면 그가 어느 종교를 믿던 그는 정통입니다. 우리 열매가 무엇인지 살피고, 또 이론만 거창한 거짓 예언자에 속지 맙시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사제복’을 주로 입고 다닙니다. 아침에 산보할 때도, 마트에 갈 때도, 식당에 갈 때도 사제복을 입고 다닙니다. 산보할 때는 마주치는 사람들이 ‘Father'라며 인사하곤 합니다. 본인도 가톨릭 신자인 경우에는 더욱 반갑게 자신도 가톨릭 신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식당에서도 주인이 신자인 경우는 반갑게 인사하고, 덤으로 반찬을 주기도 합니다. 며칠 전입니다. 마트에서 ’떡‘을 사는데 주인이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얼마 전에 새로 온 본당신부냐고 물었습니다. 본인은 최근에 교통사고가 나서 한동안 성당에 못 나갔다고 하였습니다. 자매님의 본명을 물으니 ’헬레나‘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아침에 저는 떡을 주로 먹는다고 말하니 이것저것 덤으로 싸주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사제복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사제복이 저를 지켜주는 것 같았습니다. 사제복을 입으니 행동을 조심하게 됩니다. 사제복을 입으니 가지 말아야 할 곳은 알아서 안 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나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치는 사람은 나의 제자가 아닐지라도 나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서울에 있는 동창 신부님이 ‘Facebook'에 본당 가두선교에 대한 글과 사진을 올렸습니다. 개신교회는 가두선교를 적극적으로 하지만, 성당은 가두선교를 자주하지 않는 편입니다. 저도 2번 정도 교우들과 가두선교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본당에서는 3번에 걸쳐서 가두선교에 대한 교육을 마친 후에, 가두선교를 나섰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준비해간 선물도 나누어주고, 예비자 교리 신청서도 받았다고 합니다. 100여명의 사람들이 기꺼이 신청서를 작성했다고 합니다. 쉬는 교우들도 인사하면서 다음부터 성당에 나가겠다고 인사했다고 합니다. 가두선교는 두 가지 측면에서 공동체에 도움이 됩니다. 하나는 선교를 통해서 새 신자를 공동체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선교를 통해서 공동체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내가 했던 일의 결실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파견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이 있었지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병자들을 고쳐 주었습니다. 마귀들을 물리쳤습니다. 예수님께 돌아온 제자들은 자신들이 한 일을 예수님께 보고 하였습니다.
오늘 독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잊고 있었던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리에 관하여 거기에 쓰여 있는 그대로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를 거슬러 타오르는 주님의 진노가 크오. 임금은 기둥 곁에 서서, 주님을 따라 걸으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분의 계명과 법령과 규정을 지켜, 그 책에 쓰여 있는 계약의 말씀을 실천하기로 주님 앞에서 계약을 맺었다. 그러자 온 백성이 이 계약에 동의하였다.” 화려한 성전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외국과 맺은 동맹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의로움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우리들에게 ‘나무와 열매’를 말씀하십니다. 좋은 나무에서는 좋은 열매가 열리고, 나쁜 나무에서는 나쁜 열매가 열린다고 하십니다. 좋았던 나무도 거름을 주지 않고, 관리를 소홀히 하면 나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나빴던 나무도 정성을 다하고, 거름도 주고, 잡초를 뽑아주면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밀과 가라지’는 밀은 계속 밀로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라지는 늘 가라지가 아닙니다. 밀처럼 자란 사람이 가라지와 같이 변할 수도 있고, 가라지같이 자란 사람이 밀처럼 변할 수도 있습니다.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오늘의 성인
성 비질리오 (Vigilius)
활동년도: +405년
신분: 주교, 순교자
지역: 트렌토(Trento)
같은이름 : 비길리오, 비길리우스, 비질리우스
트렌띠노의 주요 수호성인이 성 비질리오이다.
로마귀족인 그는 트랜띠노에서 태어났고, 아테네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후 385년에 트랜띠노의 주교가 되었는데, 밀라노 대주교이던 성 암브로시오에게 보낸 그의 편지가 남아 있다.
이 편지에는 그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당한 여러가지 어려움을 적었고, 또 순례에 관한 의견도 나온다.
또 성 시지니오와 성 마르띠리오 그리고 성 알렉산델의 순교록을 적었다.
그는 렌데나 계곡으로 선교하던중, 사투른 신상을 파괴하여 돌을 맞고 순교하였다.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Josemaria Escriva)
신분 : 설립자, 신부
활동연도 : 1902-1975년
같은이름 : 발라게르, 에스끄리바, 요셉마리아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는 1902년 1월 9일 에스파냐의 바르바스트로에서 아버지 호세 에스크리바와 어머니 마리아 돌로레스 알바스의 여섯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나 그 해 1월 13일에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의 부모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굳건한 신앙과 그리스도인다운 덕행, 잦은 고해성사와 영성체, 기도를 향한 굳은 의지, 동정 마리아께 대한 신심에 기초한 삶의 모범을 통해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917-1918년 겨울에 호세마리아는 자신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어떤 일을 경험했다. 그 해 성탄절에 로그로뇨에는 많은 눈이 내렸는데, 어느 날 그는 눈 위에 얼어붙은 발자국을 보았다. 그것은 맨발의 카르멜회 수도자들이 남긴 것이었는데, 그것을 보고 호세마리아는 자신이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어떻게 희생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일상적이거나 비범한 분야 모두에서 풍부한 은총을 주셨다. 그는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교회와 신자들에 대한 봉사를 통해 많은 열매를 거두었다. 1928년 10월 2일 마드리드에서 피정을 하던 호세마리아 신부는 지난 몇 해 동안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내적인 움직임을 기록했고, 그러면서 어렴풋이 알던 자신의 소명을 보다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그 순간 이후 호세마리아는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남녀들이 자신의 사명을 완성하도록 양육하는데 헌신하였다. 그는 자신을 혁신가나 개혁가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에게 압도되고 교회에 지속적인 활력을 주시는 성령에 의해 쇄신되어 이웃을 사랑하고 일상생활 안에서 거룩함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오푸스 데이의 존재 이유라고 보았다.
이렇게 오푸스 데이가 그 첫 걸음을 내디디는 동안 1936년에 에스파냐 내전이 발발했다. 마드리드에서도 심각한 종교 박해가 일어났지만 호세마리아는 기도와 인내 그리고 사도적 열정으로 이에 맞서 나갔다. 이 시기는 교회에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영성과 사도직이 성장하고 희망이 빛을 발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1939년 내전이 끝나자 그는 에스파냐 반도 전역에서 사도직 활동에 대한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1943년 그는 미사를 집전하면서 오푸스 데이의 정신을 교구사제들의 삶에 육화시키기 위한 성 십자가의 사제회를 오푸스 데이 안에 설립할 필요성을 느꼈다. 1944년 6월 25일 세 명의 기술자가 사제로 서품되었는데, 그들 중 한 명인 알바로 델 포르틸로는 설립자를 계승하여 오푸스 데이의 대표가 되었다. 성 십자가의 사제회는 교구사제와 사제직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영성적 형성과 활동에 있어서 지역교회의 사목자들과 조화를 이루었고, 교구사제로 머물며 오푸스 데이의 정신을 실천하는 성 십자가의 사제회에 참여하는 교구사제들은 더욱 많아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호세마리아는 오푸스 데이의 정신을 보편교회 전역에 전파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의 사도직 활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946년 그는 오푸스 데이에 대한 교황청의 승인을 얻기 위해 로마로 본부를 옮겼고, 1947년 2월 24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로부터 ‘데크레툼 라우디스’(특별법)에 의거해 가승인을 받았으며, 3년 후인 1950년 6월 16일 교회의 최종 승인을 받아 교황청 직속 재속 수도회가 되었다. 이로써 자신의 노동과 자선 그리고 기도로써 오푸스 데이의 사도적 활동에 동참할 마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 비가톨릭 신자와 심지어 비그리스도인까지도 오푸스 데이의 협력자로 참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는 일상생활을 통해 성성(聖性)을 얻을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필요한 것은 기도하기 위해서 그리고 더 깊은 내면의 생활을 위해 투쟁하는 것뿐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살 때 모든 것은 기도가 되고 또한 모든 것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기 때문이다. 즉 모든 종류의 일이 기도가 될 수 있고, 또 실제로 기도가 되고 사도직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호세마리아가 생각한 사도직의 기초는 세상 한가운데서 얻은 그의 내적인 체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는 기도와 성사로써 자라나고 성체성사를 위한 강렬한 사랑으로서 표현되었다.
그 당시 오푸스 데이는 이미 모든 대륙에 전파되었고, 80개 나라에서 6만여 명이 넘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의 선종 이후 많은 사람들이 교황에게 그의 시복시성을 청했고, 1981년 심사가 시작되었다. 1992년 5월 17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수많은 순례자들 앞에서 그의 시복식을 거행했고, 2002년 10월 6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그를 성인품에 올렸다. 교황은 30만 명이 운집한 시성식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일상생활의 중심이자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새 성인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데 발라게르 이 알바스로도 불린다.
성 다윗 (David)
활동년도 : +5세기
신분 : 은수자
지역 : 테살로니카(Thessalonica)
같은 이름 : 다비드, 데이비드
그리스의 테살로니카에서 태어난 성 다윗은 작은 은둔처에서 은수자로서 또 영적 지도자로서 70년간을 살며 많은 제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의 유해는 1054년에 이탈리아의 파비아(Pavia)로 이장되었다.
성 안텔모 (Anthelm)
활동년도 : 1107-1178년
신분 : 수도승, 주교
지역 : 벨리(Belley)
같은 이름 : 안뗄모, 안뗄무스, 안텔무스
사부아(Savoie)의 샹베리 근교 시냉 성에서 출생한 성 안텔무스(Anthelmus, 또는 안텔모)는 교구사제가 된 후 1137년에 카르투지오회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그랑드 샤르트뢰즈(Grande Chartreuse)로 파견되었다가 1139년에 제7대 원장으로 피선되었으며, 그곳을 카르투지오회의 모원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카르투지오회의 제1차 총회를 소집하였으며, 복자 요한 스파니아드로 하여금 수도회의 회칙에 따라 살려는 여성들을 위하여 회헌을 마련토록 하였다. 1152년까지 총장직에 봉직하다가 은수자로 살았으나, 1154년부터 다시 2년 동안 포르트의 원장을 맡아야만 하였다.
그랑드 샤르트뢰즈로 돌아온 안텔무스는 황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의 후원을 받는 대립교황 빅토르 4세(Victor IV)에 대항하여 싸우던 알렉산데르 3세(Alexander III) 교황을 위하여 대대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안텔무스는 1163년에 벨리의 주교로 임명되자 교구 개혁을 광범위하게 착수하였으며, 성직자의 독신제를 강화하고 잘못한 이들을 징계하였다. 훔베르투스에 의해 투옥된 어느 사제가 살해되자 그는 훔베르투스 3세를 파문하였다. 그는 또 헨리 2세와 성 토마스 베케트(Thomas Becket, 12월 29일) 사이의 분쟁을 조정하도록 교황청의 영국사절로 임명되었으나 불행하게도 가지 못하였다. 그는 만년에 나환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다가 1178년 6월 26일에 운명하였다. 그의 임종 때 훔베르투스가 찾아와 서로 화해하였다고 한다
성 펠라지오 (Pelagius)
활동년도 : +925년
신분 : 소년, 순교자
지역 : 오비에도(Oviedo)
같은 이름 : 뻴라지오, 뻴라지우스, 펠라기오, 펠라기우스, 펠라지우스
성 펠라기우스(또는 펠라지오)는 오마이야드의 대제인 아브드-아르-라만 3세가 코르도바(Curdoba)를 통치하던 시대에 무어인들의 손에 죽었다. 그는 이때 10살의 소년이었다. 관리들은 이 소년의 신앙을 포기시키기 위하여 좋은 옷과 돈을 주고 훌륭한 말을 타게 해주었으나, 펠라기우스는 “모든 것이 다 싫다. 나는 그리스도인이었고, 그리스도인이며, 그리스도인으로 남을 것입니다” 하며 끝까지 버티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여섯 시간 동안의 모진 고문을 견디다가 숨졌다. 그의 유해는 967년 레온(Leon)으로 모셨다가 985년에 다시 오비에도로 옮겨 안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