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의 내 서재, by 김화수

남의 창문 기웃거리기 호치민. by 김화수
"책, 못읽는 남자"는 Howard Engel 이 쓰고 배현선생이 번역하여 알마에서 편찬해낸 책이다. 2009년 7월 27일이 펴낸 날인데, 내가 좋아하는 올리버 색스가 추천했기에 빨리 구독하기 원하였고 배달되자마자 단숨에 읽어버렸다. 사실 나 역시 책벌레에 문자중독증까지 있어 이렇게 '책'이라는 단어가 나온 책은 더구나 모조리 사서 읽는 편이다.
작가역시 원래 인쇄된 글에 중독된 베스트셀러 추리소설 작가라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쓸 줄은 알지만 읽지 못하는 병이 걸리면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그 특유의 지성과 유머로 그려내고 있다.
그는 말한다.
"이 책은 내가 일상생활로 되돌아 오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어떻게 버텨냈으며 주변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읽기와 쓰기의 수수께끼를 풀어 가며 어떻게 길을 되돌아 왔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중략). 내게는 그 무엇보다 나를 지금 여기까지 데려다준 모든 계단들을 되돌아 보며 기억해 내는 일이 중요하다. 그 길에서 내가 분투했으며 그 험한 계단을 오를 수 있도록 나를 도운 많은 이들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어디서 살든 어느 대륙에 있든 평평한 공간만 있으면 책으로 뒤덮었다"고 하는데, "환경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독서"이며 독서가 그의 "인생에 일부로 확실히 자리잡지 않았더라면 그 시절에 살아남지 못했"을 정도로 책을 좋아 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여느 아침처럼 일어나 옷을 입고 식사준비를 하고 나서 신문을 집으러 현관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날 신문은 분명히 '세르보크로아티아' 글자로 인쇄된 것 처럼 보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뇌졸중을 앓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근처 응급실을 찾았고 거기서 그가 실제로 경미한 stoke을 앓았으며 그로 인해 좌측 후두엽 시각 피질의 협소한 부위를 다쳤다는 진단을 받았다. 실독증 말고도 약간의 시각장애가 생겼다는 사실도 점차 분명해졌다. 시야의 4분의 1이 사라졌다. 손상된 뇌부위의 반대쪽인 오른편 위쪽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게다가 형태와 색을 인지하는데도 약간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 모든 증세는 단어나 낱글자 또는 숫자를 눈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 것에 비하면 경미한 편이었다.
실독증을 뜻하는 "알렉시아alexia"는 원래 "단어 맹증 word-blindness"를 뜻하며 신경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19세기 후반부터 줄곧 관심을 끌어온 병이다. 읽기와 쓰기는 함께 가는 것으로 생각하므로 누군가가 글을 쓸 수는 있으나 그 자신이 방금 쓴 글을 전혀 읽을 줄 모른다는 사실은 이상하고 직관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실서증없는 실독증 alexia sine agraphia이란 순전히 시각적인 문제이다. 뇌졸중의 여파로 좌뇌에 위치한 시각 피질의 특정영역이 같은 쪽의 언어 영역과 연결이 끊어진 것이다. 엥겔씨는 글자를 완벽하게 잘 '볼' 수 있으나 해석하지는 못하게 된 것이다.
dyslexia나 alexia가 있는 성인들을 언어치료하면서 그의 생각들에 가까이 가 보려고 한 적이 있었다. 만일 내가 책을 못 읽게 된다면...하워드 엥겔이 책을 통해 내게 준 것은 언어치료할 때 어떤 마음으로 접근 할 지에 대한 많은 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내 기억은 영원히 그 말들과 함께 내 기억노트(그도 이것을 썼다고 한다)에 기록될 것이다.
*신문이나 병문안 카드를 읽으려 애쓰지 않을 때라면 실독증은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하늘도 푸르게 보였고 태양도 병원 창문에서 빛났으며 갑자기 세상을 낯설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실독증은 오직 내가 책에 고개를 쳐박을 때만 존재했다. 내게 실독증을 데려와 '그래, 문제가 있지'라고 상기시키는 주범은 인쇄물이었다. 자연스레 독서를 피하고 싶다는 유혹이 생겼다. '무언가가 너를 괴롭힌다면 그걸 멀리하라. 그래도 지구는 돌고 돌테니.' 그런 해법이 통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나는 작가다. 더구나 끊임없는 독서가다. 어떻게 독서를 멈추겠는가? 병원에서 깨달은 것은 책읽기가 아무리 느리고 어려울지라도-지독히 당혹스러울 때도 있지만-나는 어쩔 도리 없는 독서가라는 것이다. 뇌에 들이닥친 돌풍도 나를 바꿔놓지는 못했다. 나는 열혈 독서광이다. 심장을 멈출수는 있을지언정 독서를 멈출 수는 없다. 독서는 내게 뼈이자 골수, 림프액이자 피다.
*어떤 문제는 이런 식이었다.
샘은 생일 선물로 빨간 자전거를 받았다. 이 선물은 그를,
a. 냉정하게 b. 행복하게 c. 두렵게 d. 슬프게
했다.
메리는 책을 덮었다. 그 이야기는 말(馬)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녀는
a. 동물 이야기를 b. 역사를 c. 모험담을 d.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샘이 새 자전거를 받고 '행복하게 느꼈으리라는 답을 알았지만 이와 동시에 난데없이 자전거를 타야하는데서 예상 밖의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을 법하다고도 생각했다. 비록 '두렵게'나 '슬프게'를 답으로 적지는 않았지만 그 쪽에 마음이 끌렸다. 상상력을 조금이라도 동원하여 읽는 나 같은 작가라면 이런 테스트에서 0점을 받을 수도 있다.
*재활원에 돌아와서는 언어병리학자 레아 아유야오가 매주 한시간에서 세시간 정도 나의 읽기장애를 직접 관찰했다. 레아는 CASLPO(College of Audiologists and Speech Language Pathologist of Ontario)의 기관지 <CASLPO투데이>의 바버라 마이스너 피시바인 기자에게 자신이 보여준 그림에 대한 내 설명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물론 나는 그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중략) 레아의 말은 나의 실독증에 관한 기사에 인용되어 있었다 ."그때 나는 하워드가 평범한 환자가 아님을 알았다. 그가 쓴 글은 내가 지금껏 진료한 어느 환자(의 글)보다 훨씬 자세하고 묘사가 풍부했다. 레아는 첫 진료때부터 나의 장애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런 연구가 드문 기회라고 인정했다. "글쓰기 능력은 손상되지 않고 읽기 능력에 장애가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 뿐더러 이토록 의사소통 기량이 탁월한 환자에게서 이런 증상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더욱 중요하다. 그는 자신이 글을 해독하던 과정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었다"
침대에 책을 쌓아두고 사는 독서광이자, 남의 핸드폰 문자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을 인식하고 깜짝놀라 미안해 하거나, 간식거리 먹으며 식품설명서 읽는 문자중독증인 나와 같은 사람들이여! 그대들에게 바버라 마이스너 피시바인의 말로 이 글을 맺으려고 한다.
"레아 아유야오는 엥겔씨를 진료하면서, 자신이 엥겔씨로 하여금 그의 장애를 들여다볼 독특한 창을 열어 주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엥겔씨의 읽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진정한 파트너가 되었다"
언어병리학자로서 읽기치료와 언어인지과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어느 오후이다.
첫댓글 책 못읽는 남자.. 저도 읽어봐야겠네요..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