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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4장 종소리 크게 울려라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 1809~1892)(406장)경의 [인 메모리암]중 1849년에 쓴 제106부 8절의 시에서 명 시구를 따로 모아 6절을 만든 것으로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파란 많았던 한 해가 가고 사회정의와 형제애로 가득한 희망의 새해가 되기를 바라는 내용의 아름다운 시다.
종소리는 어떤 모임을 알리거나 어떤 사건을 기념할 때 울리는 관습이 있는가 하면 한 해의 계절에 따라 농부들의 파종기를 알리고, 곡식이 익어 거둘 때가 되면 수확기를 알리는 종이 울렸고, 수확하는 농부들이 버려놓은 이삭을 주우라고 아침 9시와 오후5시에 종이 울렸다. 또한 미국 농가에서는 식사 때가 되면 모든 식구들이 식탁으로 모이라고 식사 종을 울렸고, 봉건시대에는 영주들의 화덕 사용이 끝나면 소작인들이 와서 그들의 빵을 구울 차례를 알리는 화덕 종(Oven Bell)이 울렸다. 그 뿐이랴, 옛날에는 마을마다 불종을 매달아 놓고 불이 나거나 폭풍이 닥쳐오면 경고하는 폭풍 종(Storm Bill)이 울렸고 학교에서는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으며 미국의 대륙을 횡단하는 기차도 종을 울리며 달렸다.
그러나 이런 종들은 다 인간의 마음을 놀라게 하고 불안과 초조함을 갖게 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런 종소리를 들으면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들에서 고달프게 일하던 농부에게 기도시간을 알리는 만종(晩種)이 은은하게 울려올 때 얼마나 아늑하고 차분해 지는가? 세상의 고달픔을 잊고 평화를 되찾는 순간 하나님의 기쁨이 그의 마음에 가득히 메우리라.
필자가 미국의 미시시피강이 흐르는 일리노이 주의 사바나에서 한동안 머물고 있을 때였다. 마을이 온통 아름다운 석양에 붉게 물들일 때 교회 종소리가 멀리서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강을 따라 숲을 따라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골짜기를 메울 때 “벌써 하루가 갔구나.”라고 생각하며 하루의 흐름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교회에서는 종을 많이 울린다. 초종과 재종을 구별하여 울리고 새벽이면 새벽종을 울린다. 이것을 영국에서는 가브리엘 종(Gabriel Bell)이라 부른다. 성도가 세상을 떠나면 조종(弔鐘)을 울리는데 영어로“Tolling”이라고 하는 말 이외에 “Passing Bell”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것은 모든 착한 크리스챤들이 그들의 이웃이 세상을 떠났으니 그 영혼이 무사히 천국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종이다
어떤 교회에서는 예배 도중에 종을 울리는데 이를 설교 종이라고 하며 성찬 때 하나님의 용서를 확신하는 용서의 종(Pardon Bell)종을 울리기도 한다.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기 전에 종을 울리는 교회가 있는데 이는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니 집에 있는 요리사는 푸딩을 준비하여 집에 가면 곧 먹게 하라는 푸딩 종 (Pudding Bell)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을 많이 사용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고달프게 사는 사람들의 구열에 의하여 종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특히 섣달그믐 자정에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는 우리의 마음을 착잡하게 하였다. 오래도록 전통적으로 울려오던 제야의 종소리가 심한 구열로 지금은 울리지 못하고 있다. 마치 한국의 해방 기념일인 8.15 행사에 태극기 없이 기념행사 하는 것과 같다.
종소리는 신비성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종소리에도 내려오는 전설이 적지 않다. 영국에서는 “성화된 종소리”란 말이 있는데 이는 거룩한 종소리는 폭풍과 질병을 쫓아내고 악귀를 몰아내며 불을 끈다고 믿어왔다. 그리하여 1852년 말타(Malta) 주교는 태풍을 막게 하기 위하여 한 시간을 교회 종을 울리도록 하라고 명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신비성을 지닌 종소리는 시인의 심금을 울려 마침내 그의 심금을 쏟아 놓기에 이르렀고 심오한 사색의 세계에서 방황하다가 드디어 하나님을 만나게 이르렀던 것이다. 원문에 의하여 내용을 더듬어 보며 우리 찬송시도 같이 생각해 보자. 찬송시에, 주에 울려 보내고, 또 울려 들이자. 라는 가사는 종의 울림을 말하는 것이다. 참고하시기 바란다.
(우리 찬송시)
1절 종소리 크게 울려라 저 묵은해가 가는데
옛것은 울려 보내고 새것을 맞아 드리자.
2절 시기와 분쟁 옛 생각 모두 다 울려 보내고
순결한 삶과 새 맘을 다 함께 맞아들이자
3절 그 흉한 질병 또 한이 없는 탐욕과
전쟁은 울려 보내고 평화를 맞아들이자
4절 기쁨과 넓은 사랑과 참 자유 행복 누리게
이 땅의 어둠 보내고 주 예수 맞아들이자. ~~ 아멘!
(번역 찬송시)
1절 요란한 종소리 하늘 끝까지 울려라
구름은 나르고 빛은 싸늘한데
한해가 밤중에 저물어 가고 있다.
요란한 종소리 울려 퍼지고 사라지어라
테니슨이 슬픔에서 소망으로 차츰 차츰 변천해 가는 과정을 노래한 것으로 우리 찬송가에는 생략된 절이다.
그의 과거는 슬펐다. 더 없이 다정했던 친구요, 사랑하는 여동생 에밀리(Emily)의 약혼자 아더 할람(Arthur Hallam)을 잃고 슬픔에서 해어 나려고 몸부림치던 테니슨이 이제 그 슬픔의 강을 헤엄쳐 나올 수 있었고 아름다운 소망의 섬을 바라보게 되었으니 과거의 슬픔은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미치는데 까지 멀리멀리 울려 보내고 새 희망을 맞아 들여야 했다.
(번역 찬송시)
2절 옛것을 울려 보내고 새것을 울려 들이자
기쁜 종 저 흰 눈 위로 울려라
한 해가 가는 도다 가게 하여라.
거짓을 울려 보내고 진리를 울려 들이자
우리 찬송가의 1절과 같다. 옛것을 울려 보내고 새것을 울려 들이자는 것이다. 테니슨 시대의 사회상을 단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즉 옛날의 슬픔과 의심, 죽음, 싸움을 모두 종소리와 더불어 울려 보내고 진실과 기쁨, 믿음, 선하심의 새것을 울려 들이자는 것이다. 여기서 “옛것”이란“거짓(false)”을 말하고 있고“새 것”이란 "진실(true)"를 말하고 있다. 사회는 어지럽다. 헤아릴 수 없는 악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솟아오르고 있다.
이러한 악은 백성들이 의무를 다하지 않는데서 발생한다. 나라와 백성들을 사랑하지 않는데서 나타나는 결과이다. 이런 현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백성들은 고통 속에서 살아야한다. 해가 저물 때마다 새해는 좀더 괴로움 없는 밝고 아름다운 사회에서 살아보겠다고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갖게 될 것이다.
3절 세상의 것 다시 보지 못하리니
마음 괴롭히는 슬픔 울려 보내고
빈부의 반목 울려 보내며
구제를 인류에게 울려 들이자.
인간이 알게 모르게 당하는 슬픔은 영육의 건강을 해친다. 그래서 우리주님께서도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하셨다.
테니슨은 당시 사회상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케임브리지 대학에 다닐 때 지주들과 소작 농민들 간에 심한 갈등으로 농민들은 영주들의 재산에 방화함으로 테니슨도 의용 소방대원이 되어 소화 작업에 나섰던 일이 있다.
당시 박애주의자들이나 정치가들이 생각하고 있는 사회문제란 지나치게 의무를 강요하고 있을 뿐 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었다. 영국에서의 유산자들과 무산자들 간의 반목은 전 세계로 파급되어 나갔으니 반목의 진원지인 영국백성들의 간구는 모든 인류에게 주님의 사랑과 용서, 구제가 절실히 요망되었을 것이다.
4절 서서히 죽어가는 대의(大儀)를 울려 보내고
여러 모양의 옛 당파싸움도 울려 보내자
아름다운 예절과 순결한 법으로
고상한 생활양식 울려 들이자
당시 영국의 정당들은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과 사회악은 아랑곳없이 서로가 권력 다툼에만 급급하고 있었고 수 없이 많은 사건들은 다 해결되지 않은 채 그저 “과거”라는 깊은 연못에 던 지워 졌다. 교회는 이런 싸움을 외면만 하고 있었으니 가난과 질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백성들은 의지할 곳을 잃어버렸다.
그러므로 영국교회는 싸우는 왕권당이나 민권 당 못지않게 악한 죄인들이라고 규탄하였다. 인간들은 그들의 시야를 넓혀서 모든 계층 사람들의 생명을 존중히 여기고 인간을 고상하게 만드는 위대한 사회변혁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5절 시대의 궁핍과 근심과 죄와
불성실한 냉랭함을 울려 보내고
슬픈 내 노래 울려 보내고
좀 더 충만한 시인을 울려 들이자
큰 악폐에 시달리는 개성들이 구원을 요청 하였는데도 인간들은 어떻게 그리도 냉담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1842~1843년 영국의 탄광 광부들은 말할 수 없는 천대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5~7세 어린이들이 12시간이나 갱내에서 일을 하였고 7세 소년들이 졸지 않기 위하여 담배를 계속 빨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나약한 소녀들 까지도 석탄 트럭에 탄을 싣는 일을 담당하며 짐승처럼 일을 했고 비렁뱅이 견습 소년들은 사실상 노예로 매매되어 잔인하게 취급되었다. 이런 비도덕적이고 야만적인 처우에서 시달리던 인구가 75만 명이 되었으나 누구하나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테니슨의 마음을 슬프게 하였다는 것이 당연하였다.
그러나 더욱 슬프게 한 것은 영국교회가 이들을 구하려는 인도주의적인 법률을 입안하는데 교회가 반대하였다, 사회 냉담을 논하기 전에 기독교 신앙이 잘못되어 있음을 탓하지 않을 수 없는 때였다. 그러던 중 마침내 1845년 곡물법 반대 동맹이 일어났고 아일랜드에서는 300만 명이 기근으로 죽어 갔다고 역사가들은 기록하고 있다. 이런 처사에 격분한 많은 국교도 들이 카톨릭교로 전향하였던 것이다.
6절 영지와 혈육의 거짓 긍지를 울려 보내고
민중의 중상과 악의를 울려 보내자,
진리와 정의의 사랑 울려 들이고
만인의 선한 사랑 울려 들이자.
그 당시 사회 계급은 또한 종소리와 더불어 울려 보낼 사회악 중에 하나였다. 제후들과 공작들, 그리고 남작들의 혈관에 흐르는 놀맨의 피, 정복자 월리엄이나 헨리8세를 은밀하게 지원했다는 보답으로 아첨하는 자들에게 수천 에이커의 광대무변한 땅을 나누어 주어 지주가 된 자들, 이들은 그 영지를 사슴농장이나 만들고 풍치지구로 만들어 놓고 땅이 필요한 농부들이나 백성들이 경작하지 못하게 금지해 놓았다. 백성들의 양식이 부족하여 곡물법까지 만들어 내던 영국으로서는 너무나 지나친 낭비였다. 그리고 벼락부자가 된 산업인들, 이들은 사실상 도시의 생산노동자들을 그들의 노예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연봉이 100,000파운드의 거액을 받는 주교구는 술책을 써서 빼앗거나 뒷거래에 의해 얻어졌고 이렇게 해서 얻어진 주교들에게 상원의원 자리까지 주는 따위는 사회에 모순이 아닐 수가 없었다. 성직자들은 승진을 위하여 뒤에서 조정하는 일이나 하고 돌봐야 하는 양 때들은 돌보지 않고 문학 취미에 탐닉하기 위하여 리비에라 (Riviera)로 가서 월동을 하는 고급성직자들, 이런 사회계급이 가져다주는 악을 종소리와 더불어 울려 보내고 평화와 평등의 새로운 사회를 울려 보내고 울려 들여야겠다는 것이다.
7절 더러운 옛 질병 울려 보내고
옹졸한 황금 욕 울려 보내자
수많은 옛 전쟁 울려 보내고
천년평화 울려 들이자.
인류를 더럽히고 괴롭히는 3대악은 질병과 탐욕과 전쟁이다. 테니슨 시대의 사회문제 중 골치 꺼리가 질병으로 인한 어린이들의 조기 사망률이요, 버림받은 어린이들의 수가 너무나 많았다는 것이다. 당시 글래스고우 경찰서장은 말 하기를 이름이 없거나 별명만 가진 애들을 1.000명 정도 모으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했다.
최근 에딘버러에서 소년들에게 세수해 본 것이 언제쯤이냐고 묻자“내가 감옥에서 출옥한 날이지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덤프리스(Dumfries)에서는 매해 11명 중에 1명꼴로 콜레라로 사망했는데 그 도시에는 12개의 빵집과 79개소의 술집이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테니슨의 아들 할람 테니슨(Hallam Tennyson)은 말하기를“국민 헌장 운동가들과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선동은 당시 영국에 큰 경고가 되었다. 나의 부친은 그들을 모두 투옥시키거나 탄압하지 말고 영국교회가 독점하고 있던 국가 교육을 광범위하게 개방하고 좀더 애국적이어야 하며 당파심을 지향하고 다른 종파에 속해있는 신도들의 정력과 공감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셨다.”고 하였다.
이런 어지러운 사회에서 빈부격차는 매우 심하였고 1840년에는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역시 전쟁이었다.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입은 참화의 상처가 아직 가시기도 전에 국민헌장 운동가들의 움직임은 불란서 혁명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 하층계급에서 혁명의 불이 붙을 수 있는 조짐이 보였다. 이런 모든 불안과 사회악을 울려 보내고 영원한 평화를 울려 들이자는 것이다.
8절 용감한 자와 자유를 울려 들이고
대담한 자와 친절한 손을 울려 들이자
나라의 어둠을 울려 보내고
계셔야 할 그리스도를 울려 들이자.
결론 절이다. 모든 악을 다 울려 보내고 어두운 사회를 울려 보내면 밝은 사회를 울려 들일 수가 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든 인간의 좀더 고상한 인격의 창조가 절실히 요망된다는 것이다.
끝으로 “the Christ that is to be(계셔야 할 그리스도를 울려 들이자)”라고 했는데 최상의 인격구성은 그리스도와 같게 되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고 바울 사도는 말하고 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빛 되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참다운 인격으로 가장 가까이 가는 사람만이 가장 훌륭한 인격의 구성이요, 이런 인격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새 사회는 밝아진다는 내용의 훌륭한 찬송이다. 사43:18~19에 이르기를.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네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날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의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라고 하였다. 또한 사66:17~19절에 보면.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 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다.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으로 인하여 영원히 기뻐
하며 즐거워할 지니라 보라 내가 새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즐거워
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
라고 하였다. 우리가 매일 매일 같은 생활을 한다고 하자, 어제의 역사가 오늘의 것과 같을 수 없는 것 같이 하루, 하루 살면서 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것을 매일 경험하다가 마침내는 영원한 새나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않겠는가? 그곳은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이 흙을 식물로 삼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 찬송은 전혀 새로운 기독교 찬송으로서 새로운 특징이요, 교회 비전을 앞서 가는 것이었는지 19세기 말 사회복음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전까지는 우리 찬송가에 수록되도록 허용되거나 인정조차 받지도 못하였다. 1906년 판 영국교파 교회찬송가[English Hymnal]에나, 1916년에 나온 성공회 [고대와 현대 찬송가(Hymns Ancient and Modern)]의 최신 수정판, 1940년도에 나온 미국 성공회[찬미가(Hymnal)]에 실리지도 못했다.
그러나 테니슨은 이 찬송가에 나타난 바와 같이 앞에 더 좋은 것을 내다보고 있고 옛것보다 훨씬 더 좋은 새날의 영광을 확신시키고 있다.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특정한 계절적 의미를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젊은이들에게 새것에 도전할 용기와 열의를 불러일으키고 있음도 부인 못할 사실이다.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사회 변혁을 위한 열정적인 기도에서 신앙고백으로 바뀌는지 놀라지 않을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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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송 곡 WALTHAM
이 WALTHAM 곡은 죤 뱁티스트 코긴(John Baptiste Calkin, 1827~1905)(95장)이 작곡한 곡으로 찬송시의 미를 차임 반주로 더욱 큰 효과를 낸다. 즉 종소리가 맞아드릴 영광스런 새 시대와 울려 보낼 옛 악습들의 구시대와 대조를 두드러지게 나타내기 위하여 경쾌하고 맑게 부르게 되어있다. 만약 1, 2, 3, 절을 부드럽게 부른다면 우리 찬송가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은 마지막 절“the Christ that is to be(계셔야 할 그리스도를 울려 들이자)”라는 내용의 찬송을 부를 때에는 좀더 힘차고 승리감에 가득차서 부른다면 더욱더 효과적일 것이며 이 찬송의 클라이막스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