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영화Enlightenment Film
2009, 35mm/HD, color, 120'30
감독: 박동훈
키워드: 드라마,가족
출연: 정승길,김지인,오우정
제4회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 (2010)
제32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 경쟁부문 (2010, 러시아)
제15회 인디포럼 (2010)
제35회 서울독립영화제 경쟁부문 (2009)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2009)
시놉시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모인 가족들. 이 땅에서 큰 무리 없이 살고 있다고 보이지만, 군데군데 어긋나고 있는 가족들. 딸의 과거, 아버지의 과거, 조부모의 과거를 통해서 현재의 어긋남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어떤 선택들이 이들을 이렇게 방치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제작노트>
[ Director’s Commentary ]
시작은 아쉬움 때문이었다
2005년, 단편 <전쟁영화> 최종 편집 시기. 영화 주인공 캐릭터 정학송의 윗대의 이야기와 후대의 이야기를 연결시켜 영화를 만들면 꽤 흥미로운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나름의 판단을 했다. 사실 <전쟁영화>는 지금과는 다른 버전도 있었는데, 그것은 1965년과 현재가 교차하며 진행되는 결말이었다. 선대의 태도가 현대 후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관해 표현하려 했으나 짧은 시간 안에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구조였다. 그래서 영화의 주를 이루는 1965년 시제를 유지하기로 하였고 추가촬영을 하여 완성본을 만들게 되었다. 이후, 위에서도 언급한 선대의 태도들이 현대의 우리들에게 어떤 식으로 전이되었는지 반복되고 있는 삶의 동선들을 표현하고자 했던 초기의도를 장편의 호흡으로 가능하다고 판단했고, 여건이 조성되면 꼭 제작해보고 싶었다.
2008년, <계몽영화> 시나리오 초고 완성
1895년 학송의 조부, 1931년 학송의 부, 1965년 학송과 유정(전쟁영화와 동일), 그리고 사이사이 학송과 유정의 자손들의 현재 시제가 가교 역할을 하는 구조를 가진 시나리오였다. 2008년 6월, 중앙대학교 첨단 영상대학원 장편영화 제작지원에 선정 되어 제작진을 꾸리게 되었다. 전작에서 호흡을 맞췄던 이강민 촬영감독, 오랜 친구인 백경인 미술감독이 합류하였다. 몇 차례의 제작진 회의, 첫 번째 합의점은 사계절을 담아내자는 것이었다. 여러 시대가 교차되며 진행되는 영화이니, 근본적인 차이를 두고 각 시대를 표현하는 방식이 관객들을 설득하는 데 있어 효과적이라 판단되었다. 문제는 장기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는 것, 허나 연출자 입장으로서는 욕심이 났다. 꽃들과 녹음 그리고 눈발(雪)(날씨가 도와준다면)이 공존하는 영화라...
1931년, 학송의 아버지, 정길만 에피소드
6월에 제작이 결정되었고 곧 여름. 일제 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길만 분량을 촬영하기로 했다. 당시 척박했던 농민의 생활상과 녹색으로 가득 찬 논밭의 대비를 통해 당시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싶었기에 여름이란 계절을 선택하였다. 공개오디션, 지인들의 소개를 통해 연기자들이 결정되었다. 정길만 역할은 배우 이상현, 약간 순진해 보이는 외모가 길만의 이중성을 표현하는 데에 적격이라 생각되었다. 이 에피소드에서 중점을 두었던 것은 1931년 당시를, 수탈과 저항이란 단순한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그리지 말자는 것이었다. 8월 중순 촬영이 시작되었고 8월말, 촬영이 종료되었다.
기다림 그리고 시나리오 수정. 개인적인 경험
1895년 에피소드는 길만의 아버지가 스케이트를 타는 장면이 필요했다. 따라서 겨울을 기다리게 된 상황. 그러나 여러 고민과 논의 끝에 1895년 에피소드를 삭제하고, 대신 학송의 딸인 태선의 과거 에피소드로 빈자리를 메웠다. 클라이막스를 추동하며, 윗대의 선택들의 최종결과물인 태선에게 아버지 정학송과의 관계에 분열을 주어야 전체적인 균형이 맞다라고 판단하였다. 사실 2005년 <전쟁영화>를 확장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제일 처음 떠오른 샷이 학송의 어린 딸(혹은 아들)이 최루탄 소리가 들리는 골목에서 아버지 심부름을 다녀오는 샷이었다. 내 유년기의 한 부분을 대표할 수 있는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도착한 장면. 시나리오 안에서 점점 웃음이 줄어들고 있었다.
현재, 1983년 그리고 서교동 집
제작여건상 가을과 겨울을 나누어 촬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신 현재 부분은 겨울, 1983년 분량은 의상과 미술, 소품 등으로 늦가을 분위기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영화분량 중 50% 정도의 분량을 소화해내어야 했기 때문에 프리프러덕션을 꼼꼼히 챙겨야 했다. 15회차 촬영. 현재의 태선 역할에 오우정, 1983년 어린 태선 역할에 신규리, 태선의 남편 김성호 역할에는 박혁권을 캐스팅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캐스팅인 서교동 집. 집의 촬영은 2009년->1983년->1965년 순으로 진행되었다. 한 장소(서교동 집)를 세 가지의 모습으로 표현해야 했고, 시나리오에 설정된 계절과 집을 다시 세팅해야 하는 물리적인 시간을 계산하여 가능한 한 효율적인 방법으로 촬영을 해야만 했다. 서교동 집, 병원, 장례식장, 산소 등등을 오가며 숨 가쁘게 한 달여 동안 촬영을 했다.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봄, 1965년, 2009년 <전쟁영화>
<계몽영화>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전쟁영화>를 다시 촬영하는 작업이다. 물론 다른 시대와 연결고리가 필요했기에 대사를 수정했고 다른 에피소드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연기 톤도 원판과는 다르게 조정하였다. 이런 몇몇 변경된 요소들을 제외하면 전체적인 영화의 흐름은 4년 전 완성된 <전쟁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셋트, 조명, 촬영 등등의 업그레이드 2009년 버전이랄까? 최소한 나에게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개화하는 시기를 기다렸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봄의 풍경을 정확하게 잡아내고 싶었다. 학송의 집인 서교동 마당에는 꽃들을 심었고 잔디를 깔았다. 학송 역할의 정승길, 유정 역할의 김지인과 리허설을 하는 동안 인물에 대한 그들의 달라진 해석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4년 동안의 변화라 생각했고 그들의 의견에 동의 했다. 내 해석도 달라졌으니. 중앙대 안성 캠퍼스에 세트를 만들고, 다방 장면을 촬영했다. 전체 촬영 일정 중 가장 즐거웠던 4월의 촬영. 촬영 완료.
편집, 보충촬영, 완성.
편집을 하니 비어있는 부분, 커다란 구멍이 보였다. 그냥 두기에는 문제 있는 영화를 그냥 방치하고 넘어가는 기분이 들어 제작자인 박남희 PD와 함께 몇몇 제작진과 배우들을 설득, 아니 문제점을 솔직히 얘기했다. 그리고 7월 어느 날, 겨울이 배경인 새로운 신을 촬영했다. 이제 진짜로 촬영완료, 아니 종료.
2010년 9월
이곳저곳 <계몽영화> 소개란에 자주 보이는 작가의도.
<계몽영화>를 ‘태도’에 관한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정씨 집안 3대를 구성하는 인물들을 통해 그들이 그들의 시간을 어떤 태도로 대면하는지,
그리고 그 태도가 다음 세대로 전이 되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지를 목격하고 표현하고 싶었다.
개봉 후 위의 의도가 미진하게나마 관객들에게 전달되길 기원한다.
예고편>
상영 시간표>
11월 매 주 |
금요일 |
회차 |
토요일 |
오전 10시 30분 |
1회차 |
|
오후 5시 |
2회차 |
오후 5시 |
오후 7시 30분 |
3회차 |
오후 7시 30분 |
관람료 |
성인 |
5,000원 |
|
청소년 |
3,000원 |
|
노약자(초등생) |
2,000원 |
|
문의 : 진주시민미디어센터 상영팀 748-7306, indiecine@hanmail.net
인디씨네 티스토리(TISTORY) OPEN!
http://indiecine.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