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죽었다』, E. 라이머 지음·김석원 옮김, 한마당, 1997
한국사회뿐 아니라 인간이 모여사는 곳이면 어디라도 籍은 중요하다.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사회가 籍을 권한다. 나아가 나와 같은 籍이 아니면 모두 敵으로 만들어버린다. 籍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本籍, 學籍, 軍籍, 黨籍, 成績, 痕迹….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 이전까지만도 本籍이 매우 중요했다. 내 어릴 적부터 촌수 따지고 족보따지고 그랬으니까. 고3이었을 때 처음 경험한 本籍의 실체, 멋스러운 제복과 박정희 우상화 그늘을 피할 수 없었을 나는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했는데, 서류상 하자로 불합격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 된 결과라지만 그때는 좌익운동을 했다는,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 이후 민주사회가 점차 실현되었다고 하지만 기실 보이지 않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계급은 아직도 수직 분산을 계속하고 있다. 물과 기름처럼 말이다. 그 기준의 으뜸 자리에 學籍이 있다. 오늘날에는 직업 선택을 비롯한 거의 모든 선택이 학교를 얼마나 다녔느냐,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또 학력에 따라 봉급 수준이 결정되고 그 사람이 앞으로 생활해 나갈 영역과 교제할 수 있는 사람들의 범위, 즉 그의 모든 삶의 양식이 결정된다. 자유민주주의의 모범이라는 미국에서조차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으면 목수가 되기 어려우며, 뉴욕에서는 시청 청소부까지 고교졸업장이 있어야 한다.
하물며 대한민국이야, 지방 상고 출신 대통령을 인정할 수 없다고 일류학벌 국회의원들이 탄핵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또 대통령의 부인이 고등학교도 제대로 안나왔다면서 ‘쌍∼’, ‘씨∼’ 소리 지껄이며 청와대 안주인 자격이 없다고 시위(?)하는 사람들조차 있지 않니한가! 2004년에 말이다.
폐일언, 오늘날 학교는 병아리를 까는 부화장처럼 기술의 제왕에 순종하는 순한 시민들을 생산하는 제도로 변했다. E. 라이머는 이러한 학교 제도를 테크놀로지 사회의 모순과 관련시켜 비판한 교육학적 우상 파괴에 해당한다. 서구의 종교적 황혼에“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처럼 오늘날 인간을 잃은 우리의 교육적 황혼에 이 책은 “학교의 빈사”를 선언한다. 도대체 학교가 여태까지 무슨 잘못을 저질러왔으며 미래 학교의 운명은 어떠한지 알아보자.
1. 학교를 왜 거부하는가
전 세계 어린이들의 대부분이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있다. 그 아이들은 패배감을 느끼고 인생을 살게 되고 자식들은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계속되는 교육비용의 증가로 인해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학교제도는 교육기회의 균등함도 교육기금의 분배관계도 부적절하다. 교육은 가난한 사람들이 부와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수단이 아니라 그 반대로써 작용하고 있다. 순종을 가르치면서 규정위반을 가르치는 것도 모순이고, 보편적인 종교와 같은 차지하고 그 사상을 전파하고 구체화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상을 받아들이게 유도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2. 학교는 무엇을 하는가
첫째, 학교는 보호기능을 수행하고 이 기능에 가장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어린아이들이 성장할수록 보호할 필요성과 비용이 줄어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보호기능은 대부분 젊은이들의 소년기를 12살에서 25살까지 연장시켰으며 일종의 종합적인 기구가 되어 불필요한 간섭까지 하고 있다.
학교의 두 번째 기능은 사회적 역할에 따른 분류기능인데 직업 선택을 위해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낭비이며 개인에게도 불행인 경우가 많다. 또한 학교의 그러한 분류기능은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학교체제 내에서 얼마나 있었는가에 의해 권력과 재산의 가능성이 결정된다. 학교의 선별기능에 의해 승자가 탄생하지만 그와 동시에 패자도 또한 탄생하며 인생의 선별로 연장되어 인생의 패배자를 만들어내게 된다. 학교는 신분제처럼 몇몇의 특권적 위계질서를 유지해나가기 위한 수단기도 하다.
학교의 세 번째 기능은 사상이나 원리의 주입기능이다. 훌륭한 학교는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를 가르치지 주입하지 않는다. 이 기능에 의해서 학생들은 환경에 순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배우는데 학교는 그 사회에서 지배적인 가치를 반영하고 있으며 동시에 계층화된 질서를 합리화하여주고 있다.
끝으로 학교에서는 지식을 창출하기도 한다. 비록 이것이 학교가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목표이기도 하지만 자원이 남아돌 때만 수행되고 있다. 한편 문법, 수학, 과학, 예술 등은 학교를 다녀야만 배울 수 있을까? 교육목표달성여부를 측정해보면 이것은 별 의미가 없다.
3. 학교는 무엇인가
학생들이 공부하는 시기가 너무 길어지고 생활의 모두를 바쳐야함에 따라 문제가 생기고, 교사(책에는 선생이라고 번역을 했지만 나는 교사라는 단어가 더 적합해 보인다.)가 가르치는 것도 학생들이 무조건 교사가 가르치는 것에 의존함에 따라 문제가 되며, 교실에 출석하여 공부하는 것도 교실이 일상생활과 너무 동떨어져서 피상적으로 흐름에 문제가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과과정도 국제적으로 획일화됨에 따라 문제가 된다. 교유과정에 의해서 성공적으로 조작처리 되어 배출되는 인간은 운명을 지배하는 능력-인간을 다른 나머지 물질로부터 구분시켜주는 고유한 특성-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4. 학교는 어떻게 돌아가는가
학교는 학교에서 가르친다고 내세우는 교과과정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과목을 숨기고 있는데 이 은폐된 과목의 목적은 사회적 신화들을 전파하는 데 있다.
그 중 하나는 “기회평등”인데 그 이면에는 강요된 불평등의 현실이 존재하고 “자유”의 이데올로기도 가르치지만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는 제한이 있고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만 가능한 자유이다.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인 “진보”는 그 자체는 무한하지만 반면에 지구도, 인간도, 인간성도 모두 한계가 있으며 생산의 능률성을 의미하는 “능률”의 신화는 사실상 그 가치가 의심스러운 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 많음에도 우리는 의식화된 활동에 의해 각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5. 학교의 기원
선사시대 의식은 부분적으로 현대교육과정과 공통되는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문자의 발명에 의한 역사시대에 신앙과 통치가 실시되면서 교육도 출현하였는데 초기에는 사원에서 사제라는 신분의 사람에 의해서 실시되었다. 학교는 그리스 황금기에 미약하게 출발하였지만 알렉산더의 동방세계의 정복으로 확대된 식민지에서는 현대의 학교와 유사한 학교제도가 번성하였다. 로마시대에는 헬레니즘시대의 학교제도를 도입하여 엘리트 교육에 이용하였고 로마의 멸망은 종교와 교육의 재결합을 가져왔다. 이후 기독교 교단에 의해 중세대학이 설립되고 민족국가의 발전과 함께 제도적인 차원의 학교교육이 도래한다. 이제 보편적인 학교교육은 거의 모든 국가의 공식계획에서 필수분야가 되었다. 이제 학교는 기존의 위계질서를 유지하고 정당화하는 데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6. 특권유지의 제도적 기반
학교는 교육을 학교활동으로 규정하고, 사람들은 교육을 학교활동과 동일시하도록 유인되며 , 어느 수준에 이르러 학교는 단지 일부의 사람들만이 다닐 수 있게 되고, 학교는 교육에 유용한 자원을 매점매석 한다. 학교가 제도화되었지만 막대한 비용을 지불할 수 없는 사람은 도태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도가 확고해지면서 학교와 교육이 불가분의 관계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대체로 제도는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운영되고 그 다음에는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게 되는데 이는 그 제도를 만든 사람과는 별 관련 없는 사람들의 희생에 의한 것이다. 우리는 제도의 노예로 전락하여 살고 있기 때문에 문제의 어려움이 있다.
7. 민주적 제도는 가능한가
학교자체는 지배적 제도이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기의 고개들에게 팔려나가는 하나의 생산품을 개발했다. 부모들은 자식에게 갖은 정성을 다 쏟기 때문에 학교는 보다 덜 비판적인 고객을 갖게되며 학교는 또 그들에게 다른 지배적 제도가 주는 상을 수여한다.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볼 때는 경쟁이라는 것의 허구성이 그리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 끝없는 소비경쟁은 인간의 가치를 분류한다. 학교는 중요한 교육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누구에게나 제공하는 조직망으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8. 교육자원의 재조직
거의 완전하리 만치 보편적인 교육을 잠재적으로 시키는 경제적인 방법의 한 가지는, 여러 가지 형식의 기록체제가 거의 모든 사람에 의하여 언제라도 아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편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록체제를 이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수준의 능력만 갖춘 사람이면 누구나 자신을 거의 어떠한 수준까지라도 교육시킬 수 있게 된다.
9. 교육인력의 재조직
교육자원의 관리에 있어서의 우선순위는 첫째, 기록되어 있는 정보를 이용하고 이 기록들을 생산하고 해석하는 도구를 이용하고 정보가 있는 다른 여러 가지 대상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데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고 둘째, 기술모델의 이용가능성과 더불어 기술시범을 보일 수 있는 기술모델이 확보되어야 한다는데 주어져야 하는 것이며 셋째, 학습을 실제로 같이 할 수 있는 같은 또래의 동료학습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경험이 풍부하여 보다 중요한 교육자원을 쉽게 이용할 줄 아는 교육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0. 보편적 교육의 재정문제
공공기금에 의한 교육비 지원은 학생들의 부에 반비례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개인적인 교육자금제도와 공적인 교육사업제도는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11. 교육의 혁명적 역할
진정한 교육은 사회의 근본적인 힘이 된다. 오늘날과 같은 사회구조는 교육받은 사람에 의해서 붕괴되고야 말 것이다. 여기서는 학교교육 이상의 다른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사회를 받아들이도록 학교에서 교육되지만 그들이 배우는 것은 사회를 창조하거나 혹은 다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12. 평화혁명을 위한 전략
새로운 법을 제정하도록 하기보다는 현행법률을 공정하게 적용하도록 주장하는 것이 훨씬 용이하고 그것은 쐐기를 박는 일과 같이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에 의한 교육의 제도적 독점이 철폐되어야 하고, 반차별법을 학교에까지 확대해야 하며, 교육기회를 평등하게 하기 위해 현재의 특권에 반비례하도록 교육자원을 배분해야 할 것이며, 반독점법을 교육분야에까지 효과적으로 확대하고 일반적으로 반독점법을 효과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13. 우리들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소비를 줄이고 나누어 갖고 보존한다는 것은 우리들 대부분이 할 수 있는 세 가지 행동이다. 또한 정의로운 세상이 조직되고 관리되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배워야하며 개인은 함께 행동하는 방법을 독자적으로 선택해서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