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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이미지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기계인가
즉각적 감상에서 알고리즘적 이미지 체제까지
[1] 이미지의 주체가 달라지고 있다
1. 전통적으로 사진의 주체는 사진가라고 여겨졌다.
(1) 사진가는 대상을 선택하고 촬영 시점과 구도를 결정한다.
(2) 사진에는 사진가의 의도와 관점이 반영된다.
(3) 관객은 사진가가 만든 이미지를 보고 해석한다.
2. 그러나 오늘날 이미지는 사진가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1) 카메라는 자동으로 노출·초점·색채를 결정한다.
(2) 스마트폰은 여러 장의 사진을 결합하고 얼굴과 하늘을 자동 보정한다.
(3) 인공지능은 이미지를 생성·분류·선별한다.
(4) 플랫폼은 어떤 이미지를 누구에게 보여줄 것인지 결정한다.
(5) 관객의 클릭·체류·공유는 다시 추천 데이터가 된다.
3. 따라서 오늘날 이미지의 주체는 인간에서 기계로 단순히 교체된 것이 아니다.
이미지의 생산·선택·해석·유통·작동을 담당하는 힘이 인간, 카메라, 소프트웨어, 데이터, 인공지능, 플랫폼, 기업과 제도 사이에 분산되었다. 오늘날의 이미지 주체는 한 개인이 아니라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 복합적인 체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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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체’와 ‘행위자’는 구분해야 한다
1. 주체라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1) 이미지를 만들고 의도를 부여하는 창작 주체
(2) 이미지를 촬영하거나 생성하는 생산 주체
(3) 이미지를 선택하고 노출하는 유통 주체
(4) 이미지를 보고 의미를 만드는 감상 주체
(5) 이미지 분석을 통해 현실에 개입하는 행위 주체
(6) 결과에 책임을 지는 윤리적·법적 주체
2. 기계는 촬영·생성·분류·추천·삭제에서는 강력한 행위 능력을 가진다. 그러나 기계가 인간처럼 이미지를 경험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며 결과에 책임을 지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3.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인간이 아닌 사물과 기술도 다른 존재의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행위자 또는 행위소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행위 능력을 가진다는 것이 곧 의식과 도덕적 책임을 가진다는 뜻은 아니다(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사회적인 것의 재구성』(Reassembling the Social), 2005).
4. 따라서 기계는 이미지 체계 안에서 ‘기능적 행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기계를 인간과 동일한 ‘의식적·윤리적 주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인공 시스템에는 인간의 의도적 행위성과 다른 제한된 의미의 행위성을 인정할 수 있다(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Ag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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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진가는 장치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1.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는 카메라를 사진가가 자유롭게 사용하는 중립적 도구가 아니라 ‘장치’라고 보았다.
카메라에는 렌즈, 셔터, 노출, 초점, 색 처리와 같은 가능성이 프로그램되어 있다. 사진가는 자유롭게 촬영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장치가 미리 마련한 가능성 안에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Towards a Philosophy of Photography), 1983; Vilém Flusser Archive).
2. 오늘날 스마트폰 카메라는 플루서가 말한 장치의 힘을 더욱 확장한다.
(1) 촬영 전에 장면과 얼굴을 인식한다.
(2) 촬영 순간 여러 노출을 자동으로 결합한다.
(3) 촬영 후 피부·하늘·색채·명암을 보정한다.
(4) 촬영된 사진 가운데 좋은 사진을 자동으로 추천한다.
(5) 사진 속 인물과 장소를 분류하여 검색 가능하게 만든다.
3. 최종 이미지에는 사진가가 직접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계산이 포함된다. 사진가는 이미지를 만든 유일한 원인이라기보다 장치의 프로그램과 협력하거나 경쟁하는 존재가 된다.
4. 플루서의 이론에서 인간의 자유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진가는 장치가 예상한 이미지를 반복하는 기능인이 될 수도 있지만, 프로그램이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 장치에 맞서 놀 수도 있다. 사진가의 자유는 장치를 사용한다는 사실보다 장치의 프로그램을 이해하고 그 한계를 어떻게 변형하는가에서 나타난다(Flusser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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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즉각적인 느낌은 이미지 선택의 관문이다
1. 동시대의 관객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수많은 이미지를 빠르게 넘겨본다. 이때 이미지의 역사와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기 전에 먼저 호감·불쾌감·놀람·공포·친숙함을 느낀다.
2. 이미지와 관계 맺는 과정은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1) 이미지가 시야에 들어와 주의를 끄는 단계
(2) 이미지에 대한 정서가 발생하는 단계
(3) 멈추어 보기·클릭·공유·삭제 같은 행동을 선택하는 단계
(4) 이미지의 형식과 맥락을 해석하는 단계
(5) 이미지의 미학적·윤리적 가치를 판단하는 단계
3. 로버트 자이언스(Robert B. Zajonc)는 사람이 대상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하기 전에 먼저 호감과 비호감을 느낄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 정서 우선성이라고 한다(로버트 자이언스(Robert B. Zajonc), 「Feeling and Thinking: Preferences Need No Inferences」, 1980, Stanford Center on Longevity).
4. 즉각적인 느낌은 특히 주목과 소비 행동에 강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그 느낌이 이미지의 의미와 예술적 가치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띈다 ≠ 좋아한다 ≠ 공유한다 ≠ 이해한다 ≠ 예술적으로 가치 있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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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즉각적인 느낌도 사회적으로 형성된다
1. 즉각적인 느낌은 순수한 본능이나 개인 내부의 자연스러운 반응만이 아니다.
사람은 이전 경험, 기억, 교육, 사회적 규범을 바탕으로 대상을 매우 빠르게 판단한다. 얼굴, 피부색, 옷차림, 성별, 나이, 장소와 종교적 상징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즉각적인 느낌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2. 리처드 라자러스(Richard S. Lazarus)는 감정 역시 상황에 대한 인지적 평가를 포함한다고 보았다. 정서와 인지는 완전히 분리된 두 과정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는 관계이다(리처드 라자러스(Richard S. Lazarus), 「Thoughts on the Relations Between Emotion and Cognition」, 1982; 얀 스토벡(Jan Storbeck)·제럴드 클로어(Gerald L. Clore), 「On the Interdependence of Cognition and Emotion」, 2007, PMC).
3.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취향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급, 교육, 가족환경과 문화자본의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다(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구별짓기』(Distinction), 1979/1984, Google Books).
4. 따라서 “그냥 느낌이 좋다”는 말 안에도 오랜 문화적 학습이 들어 있다. 오늘날에는 여기에 반복 노출과 알고리즘적 개인화까지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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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보기 쉬운 이미지와 가치 있는 이미지는 다르다
1. 롤프 레버(Rolf Reber), 노르베르트 슈바르츠(Norbert Schwarz), 피오트르 빈키엘만(Piotr Winkielman)은 대상을 쉽게 처리할 때 그 수월함이 긍정적인 감정으로 경험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대칭, 선명한 대비, 익숙한 형태, 단순한 구도와 반복은 처리 유창성을 높이고 호감을 증가시킬 수 있다(롤프 레버(Rolf Reber) 외, 「Processing Fluency and Aesthetic Pleasure」, 2004, PubMed).
2. 이러한 특성은 짧은 시간 안에 경쟁해야 하는 플랫폼 이미지에 유리하다. 그러나 쉽게 처리되는 이미지가 반드시 예술적으로 뛰어난 것은 아니다.
3. 복잡하고 모호한 작품은 즉시 이해되지 않더라도 오랜 관찰과 맥락의 학습을 통해 깊은 미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불편함과 낯섦도 예술적 경험의 중요한 요소이다.
4.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개인적 욕망을 만족시키는 쾌감과 미적 판단을 구분했다.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은 감정을 포함하지만 단순한 소유욕이나 개인적 유용성과 동일하지 않다(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판단력 비판』(Critique of Judgment), 1790;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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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푼크툼은 플랫폼의 시선 끌기와 다르다
1.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사진 경험을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으로 구분했다.
(1) 스투디움은 문화적·역사적 지식을 통해 사진의 일반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관심이다.
(2) 푼크툼은 사진 속 특정한 세부가 관람자의 기억과 감정을 개인적으로 찌르는 경험이다(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밝은 방』(Camera Lucida), 1980).
2. 푼크툼은 광고의 시각적 자극이나 SNS의 ‘시선 끌기’와 다르다.
플랫폼에서 사용하는 강한 색채와 충격적인 장면은 다수의 반응을 얻도록 설계될 수 있다. 그러나 푼크툼은 관람자의 개인적 기억과 경험에 따라 우발적으로 발생한다. 작가나 알고리즘이 모든 관람자에게 동일한 푼크툼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3. 푼크툼이 반드시 첫눈에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여러 번 사진을 보거나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뒤늦게 어떤 세부가 관람자를 찌를 수 있다.
4. 따라서 바르트의 푼크툼은 즉각적인 소비를 설명하는 이론이라기보다, 이미지의 의미가 작가의 의도와 플랫폼의 예측을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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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디지털 이미지는 하나의 종류가 아니다
1. 동시대의 디지털 이미지에는 서로 다른 존재 방식이 있다.
(1) 현실에서 들어온 빛을 센서가 기록한 디지털 사진
(2) 여러 장의 촬영 기록을 계산하여 결합한 계산사진
(3) 기존 사진을 편집하거나 합성한 이미지
(4) 학습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든 생성형 인공지능 이미지
(5) 인간의 감상보다 기계의 분석을 위해 만들어진 작동적 이미지
2. 센서로 촬영한 디지털 사진은 수치 데이터로 처리되지만 촬영 당시 대상에서 들어온 빛과 물리적 연결을 가진다. 반면 생성형 인공지능 이미지는 화면 속 장면이 실제로 카메라 앞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장하지 않는다.
3. 디지털 기술의 등장으로 사진의 현실적 연결이 모두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달라진 것은 촬영 이후의 계산·합성·변형을 이미지의 외형만으로 확인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4. 디지털성은 하나의 고정된 미학적 성질이 아니다. 컴퓨터 처리가 이미지의 제작·편집·제시·유통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는가에 따라 구체적으로 구분해야 한다(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The Philosophy of Digital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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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미지는 표상에서 작동으로 확장되었다
1.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는 군사·산업·감시 체계에서 사용되는 이미지를 ‘작동적 이미지’라고 불렀다.
작동적 이미지는 어떤 대상을 보여주거나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미사일을 유도하고, 불량품을 검출하며, 차량을 추적하고, 얼굴을 식별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그것은 과정을 재현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과정 자체의 일부이다(하룬 파로키(Harun Farocki), 《Eye/Machine》, 2000–2003, Harun Farocki 공식 아카이브).
2. 트레버 패글런(Trevor Paglen)은 이를 기계시각과 인공지능의 문제로 확장했다.
얼굴인식, 위성영상 분석, 자동 표적화, 의료영상 판독에서 이미지는 인간에게 보이기 전에 기계에 의해 처리된다. 일부 이미지는 인간이 한 번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도 식별·분류·감시·예측을 수행한다(트레버 패글런(Trevor Paglen), 「Invisible Images: Your Pictures Are Looking at You」, 2016, The New Inquiry).
3. 이때 기계의 ‘봄’은 인간의 시각 경험과 다르다.
기계는 이미지에 감동하거나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대신 픽셀을 수치로 변환하고, 특징을 검출하며, 학습된 기준에 따라 범주와 확률을 부여한다. 따라서 기계의 봄은 ‘미적 감상’이 아니라 ‘계산적 판독’이다.
4. 중요한 것은 기계에 의식이 있는가보다 기계의 판독이 현실에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가이다. 기계의 분류는 출입 허가, 감시, 진단, 체포, 보험과 행정 판단에 사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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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기계의 분류는 이미지의 최종 의미가 아니다
1. 기계는 이미지의 특징을 검출하지만 그 이미지가 놓인 인간적 상황 전체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손목을 잡은 모습은 데이터상으로 ‘신체 접촉’이라고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 간호, 구조, 통제, 체포, 폭력 가운데 무엇인지는 앞뒤 사건과 당사자의 관계를 알아야 판단할 수 있다.
2.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은 미디어 생산자가 부호화한 의미와 관객이 해독한 의미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관객은 이미지를 지배적·협상적·대항적 방식으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스튜어트 홀(Stuart Hall), 「Encoding and Decoding in the Television Discourse」, 1973, University of Birmingham).
3. 인공지능의 출력 역시 이미지의 최종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데이터, 분류항목, 모델과 목표에 따라 나온 하나의 계산 결과이다.
4. 기계의 오독은 정당한 해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에 채택될 때 현실적인 효력을 갖는다. 잘못된 얼굴인식도 경찰이나 행정기관이 사용하면 한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의미의 진실성과 제도적 효력은 구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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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알고리즘은 감정을 직접 읽지 않는다
1. 플랫폼은 인간의 감정을 직접 이해하기보다 감정과 관련된 행동을 측정한다.
(1) 클릭 횟수
(2) 화면에 머문 시간
(3) 반복 재생
(4) 확대와 저장
(5) 좋아요와 공유
(6) 댓글과 스크롤 정지
2. 어떤 이미지를 오래 보았다는 것은 좋아했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충격·혐오·의심·혼란 때문에 오래 보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플랫폼은 서로 다른 반응을 모두 ‘높은 참여’로 처리할 수 있다.
3. 참여 중심의 추천은 감정적으로 강하고 당파적이며 외집단에 적대적인 콘텐츠를 더 노출할 가능성이 있다(사미르 밀리(Samir Milli) 외, 「Engagement, User Satisfaction, and the Amplification of Divisive Content on Social Media」, 2025, PNAS Nexus).
4. 따라서 알고리즘은 인간의 감정을 정확히 이해해서 이미지를 추천하는 것이 아니다. 측정 가능한 행동을 감정과 선호의 대리 지표로 사용한다.
5. 알고리즘도 독립적으로 욕망하는 존재는 아니다. 무엇을 성공으로 볼 것인지, 어떤 데이터를 사용할 것인지, 어떤 이미지를 제한할 것인지는 기업·개발자·국가기관의 목표와 정책에 의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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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인공지능은 취향의 조건을 조직한다
1. 레프 마노비치(Lev Manovich)는 인공지능이 이미지를 생성하는 데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듣고, 읽고, 구매할지를 추천하는 데 사용된다고 설명한다(레프 마노비치(Lev Manovich), 『AI Aesthetics』, 2018, 저자 공식 페이지).
2. 인공지능은 이미지의 전 과정에 개입한다.
(1) 촬영 전에는 장면과 얼굴을 인식한다.
(2) 촬영 중에는 초점·노출·색채를 계산한다.
(3) 촬영 후에는 이미지를 보정하고 선별한다.
(4) 플랫폼에서는 이미지를 분류하고 추천한다.
(5) 생성형 인공지능은 새로운 이미지를 합성한다.
3. 개인화 추천은 기존 취향과 비슷한 이미지를 반복하여 취향을 강화할 수 있다. 그 결과 관객은 자신이 좋아할 가능성이 높은 이미지만 계속 보게 되고, 낯선 이미지와 만날 가능성은 감소할 수 있다.
4. 그러나 인공지능이 언제나 취향을 획일화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추천 시스템은 소수의 작업과 새로운 이미지를 발견하게 할 수도 있다. 미적 다양성의 확대와 축소는 데이터의 구성, 추천 목표와 플랫폼 정책에 따라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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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미지의 행위성과 의식은 다르다
1. 윌리엄 존 토머스 미첼(W. J. T. Mitchell)은 사람들이 이미지를 마치 살아 있고 욕망을 가진 존재처럼 대하는 현상을 분석했다.
사람은 이미지가 자신을 유혹하고, 설득하고, 요구하고, 위협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미지에 실제 생물학적 욕망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지가 사회관계 속에서 힘을 갖는 방식을 드러내기 위한 이론적 표현이다(윌리엄 존 토머스 미첼(W. J. T. Mitchell), 『이미지는 무엇을 원하는가』(What Do Pictures Want?), 2005,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 이미지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1) 광고 이미지는 구매를 유도한다.
(2) 신분증 사진은 개인을 식별한다.
(3) 국가 지도자의 초상은 권위를 나타낸다.
(4) 감시카메라 영상은 수사와 처벌의 근거가 된다.
(5) 전쟁 사진은 여론과 정치적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
3. 그러나 이러한 힘은 이미지 혼자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 관객, 제도, 기술, 캡션, 전시장, 뉴스 매체와 플랫폼이 결합한 결과이다.
4. 이미지가 행동을 일으킨다는 사실과 이미지가 의식을 가진다는 주장은 구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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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이미지의 속도와 확산은 새로운 미학을 만든다
1.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은 복제와 압축을 반복하면서 화질과 원본성을 잃고 빠르게 이동하는 디지털 이미지를 ‘가난한 이미지’라고 불렀다.
가난한 이미지는 고해상도의 원본성을 잃는 대신 접근성·이동성·복제 가능성과 확산 속도를 얻는다(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In Defense of the Poor Image」, 2009, e-flux).
2. 오늘날 이미지의 영향력은 화질과 예술적 완성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밈, 캡처 이미지, 저화질 시위 영상처럼 기술적 품질이 낮아도 빠르게 이동하며 사회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3. 그러나 빠르게 확산된 이미지가 반드시 민주적이거나 진보적인 것은 아니다. 동일한 유통망은 저항의 이미지뿐 아니라 허위정보·선전·혐오 이미지도 확산시킨다.
4. 속도는 그 자체로 정치적 가치가 아니다. 속도는 이미지의 가능성과 위험을 함께 확대하는 유통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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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미지의 정치성은 가시성의 구조에 있다
1.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는 정치와 미학을 무엇이 보이고, 들리고, 말해질 수 있는지를 나누는 ‘감성적인 것의 분할’로 설명한다(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 『감성의 분할』(The Politics of Aesthetics), 2000).
2. 동시대 이미지의 정치성은 사진 속에 정치적 구호가 있는지에만 달려 있지 않다.
(1) 어떤 이미지가 첫 화면에 등장하는가
(2) 어떤 이미지가 검색되지 않는가
(3) 누구의 얼굴이 정상적으로 인식되는가
(4) 어떤 이미지가 위험하거나 부적절하다고 삭제되는가
(5) 어떤 사건이 반복 노출되고 어떤 사건이 보이지 않게 되는가
3. 플랫폼의 추천·검색·분류·삭제는 사회적 가시성의 질서를 만든다. 많이 노출된 대상은 중요하고 정상적인 현실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노출되지 않은 사람과 사건은 실제로 존재하더라도 공적 현실에서 밀려날 수 있다.
4. 따라서 이미지의 정치학은 “무엇이 찍혔는가”뿐 아니라 “누가 무엇을 보이게 하고 보이지 않게 만드는가”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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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인간은 기계의 수동적인 대상만은 아니다
1. 아리엘라 아줄레이(Ariella Aïsha Azoulay)는 사진을 사진가 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라 촬영자·촬영 대상·관객·권력이 관계를 맺는 정치적 사건으로 이해한다.
관객은 이미지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진 속 인물이 제기하는 요구에 응답할 윤리적 가능성을 가진다(아리엘라 아줄레이(Ariella Aïsha Azoulay), 『사진의 시민계약』(The Civil Contract of Photography), 2008, JSTOR).
2. 관객은 알고리즘의 추천을 그대로 따르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1) 이미지의 출처를 확인할 수 있다.
(2) 캡션과 분류의 오류를 비판할 수 있다.
(3) 삭제된 역사적 맥락을 복원할 수 있다.
(4) 이미지를 재배열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 수 있다.
(5) 플랫폼의 추천에서 벗어나 다른 이미지에 접근할 수 있다.
3. 작가도 장치를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장치가 작동하는 방식을 작품 안에서 드러낼 수 있다. 알고리즘의 분류 오류, 감시카메라의 시선, 데이터 편향과 자동 보정 과정을 예술의 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
4. 기계를 전능한 존재로 묘사하면 오히려 기업·국가·개발자·이용자의 책임이 감춰질 수 있다. 기계 권력에 대한 비판은 기계를 만든 인간과 제도의 책임까지 추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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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동시대 이미지의 핵심 순환구조
1. 플랫폼 환경에서 이미지는 다음과 같은 순환구조 안에서 작동한다.
이미지 노출 → 즉각적인 감정 → 클릭과 체류 → 행동 데이터 → 알고리즘 학습 → 새로운 이미지 추천 → 반복 노출 → 취향과 감정의 강화
2. 이 순환구조에서 느낌은 이미지 소비의 원인이면서 플랫폼이 수집하는 결과물이 된다.
3. 이용자는 이미지를 소비하지만, 플랫폼은 이용자의 시선·감정·주의력·행동을 데이터로 수집한다.
4. 쇼샤나 주보프(Shoshana Zuboff)는 인간의 경험이 행동 데이터로 전환되고 예측과 개입의 자원으로 이용되는 체제를 감시 자본주의라고 설명한다(쇼샤나 주보프(Shoshana Zuboff), 『감시 자본주의 시대』(The Age of Surveillance Capitalism), 2019).
5. 오늘날 이미지는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다. 이미지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추출하고 측정하며 다시 행동을 유도하는 인터페이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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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동시대 예술의 과제
1. 동시대 예술은 즉각적인 이미지 소비에 순응할 수도 있고 그것을 비판할 수도 있다.
2. 강렬한 색채와 충격적인 장면을 사용하는 작품은 빠르게 주목받을 수 있다. 반면 느린 영상, 불완전한 서사, 모호한 사진, 반복 배열과 방대한 아카이브는 관객의 즉각적인 판단을 지연시킬 수 있다.
3. 그러나 느리고 난해하다는 이유만으로 비판적인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난해함은 관객의 접근을 제한하고 예술계의 엘리트주의를 강화할 수도 있다.
4. 반대로 쉽고 대중적인 이미지라고 해서 반드시 피상적인 것도 아니다. 쉽게 이해되는 이미지는 정치적 참여와 공동체적 연대를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다.
5. 작품의 비판성은 속도나 난해함 자체보다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달려 있다.
(1) 작품은 즉각적인 감정을 단순히 이용하는가?
(2) 관객이 그 감정의 발생 조건을 성찰하게 하는가?
(3) 이미지 뒤에 숨은 기술과 제도를 드러내는가?
(4) 관객을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해석자로 만드는가?
(5) 클릭과 인기와 시장가격을 예술적 가치로 오인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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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오늘날 이미지의 주체
1. 오늘날 이미지의 주체가 인간에서 기계로 완전히 교체된 것은 아니다.
2. 인간은 여전히 이미지를 만들고 해석하며 목적을 설정하고 결과에 책임을 진다.
3. 기계는 인간보다 먼저 이미지를 판독하고, 자동으로 이미지를 생성·선별·추천하며, 그 판독 결과를 현실의 결정에 연결하는 강력한 행위자가 되었다.
4. 따라서 동시대 이미지의 주체는 다음과 같이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이미지의 주체는 한 명의 사진가도, 독립된 기계도 아니다. 사진가·촬영 대상·카메라·소프트웨어·학습 데이터·인공지능·플랫폼·기업·국가기관·관객이 연결된 분산적 주체이다.
5. 이 체계 안에서 기계는 이미지를 인간처럼 감상하는 주체가 아니라 이미지를 계산하고 분류하며 현실에 작동시키는 기술적 행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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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핵심 결론
1. 즉각적인 느낌은 어떤 이미지가 주목받고 클릭되고 공유되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관문이다. 그러나 이미지의 의미와 예술적 가치를 최종적으로 결정하지는 않는다.
2. 인간의 느낌은 개인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순수한 반응만이 아니다. 신체적 지각, 기억, 교육, 문화, 계급, 반복 노출과 알고리즘적 환경이 함께 구성한다.
3. 기계는 인간의 감정을 직접 이해하지 않는다. 인간의 클릭·체류·공유 같은 행동을 측정하고 이를 선호와 감정의 지표로 사용한다.
4. 오늘날 이미지는 인간에게 세계를 보여주는 표상인 동시에 기계가 현실을 분류·감시·예측·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작동 수단이다.
5. 따라서 동시대 사진미학의 핵심 질문은 “사진에 무엇이 보이는가”를 넘어 다음으로 확장된다.
누가 이미지를 만들었는가?
어떤 장치와 프로그램이 이미지에 개입했는가?
어떤 데이터가 사람과 사물을 분류했는가?
누가 이 이미지를 보이게 하거나 감추는가?
기계의 판독은 누구에게 이익과 불이익을 주는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가?
작가와 관객은 장치의 프로그램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는가?
6. 오늘날 이미지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인간이 사라지고 기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데 있지 않다. 인간의 시선과 기계의 계산, 개인의 감정과 플랫폼의 측정, 예술적 선택과 제도적 권력이 분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결합했다는 데 있다.
7. 그러므로 최종 명제는 다음과 같다.
오늘날 이미지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기계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이미지의 생산·판독·선택·유통·작동을 담당하는 힘이 인간과 기계와 제도 사이에 분산되었다. 기계는 이미지를 의식적으로 감상하는 주체가 아니라 계산하고 분류하며 현실에 작동시키는 행위자이다. 동시대 사진예술의 과제는 이 인간-기계-제도의 결합체가 우리의 시선과 감정과 현실을 어떻게 조직하는지 드러내는 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