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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안을 작성할 때 지켜야 할 사항]
1. 답안은 연필, 볼펜 등 흑・청색 필기구로 작성할 것. 2.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는 표현을 쓰지 말 것. 3. 한 편의 완결된 글로 쓸 것. 4. 어문 규정과 원고지 작성법에 따를 것. |
【 문 제 】
다음 제시문의 요지(要旨)를 200자 이내로 쓰고, 글쓴이의 주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제목을 붙여 2,800자 정도(띄어쓰기 포함 ±200자 허용)로 논술하시오.
[제시문]
오랫동안 지식인은 진리와 정의를 주관하는 자로서 발언하였으며, 그 권위를 인정받아 왔다. 사람들은 보편적 진리의 대변인으로서 지식인에게 귀기울였다. 지식인은 모든 사람의 의식과 양심의 지표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지식인은 이제 더 이상 이러한 역할을 할 것을 요구받지 않는다. 지식인은 ‘보편’, ‘모범’, ‘모든 이들을 위한 진리와 정의’의 자격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직업적인 근로 조건 또는 삶의 조건이 처한 구체적인 장에서 일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이를 통하여 그들은 더욱 생생한 현실 의식을 얻게 되었고, 구체적이고 ‘비보편적인’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가족, 주택, 보건, 남녀 관계 등의 실질적인 일상 생활에 얽혀 있는 문제들에 관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지식인의 기능을 재고해야 할 단계에 이른 듯하다. 위대한 ‘보편적’ 지식인에 대한 향수를 가진 이들이 아직 남아 있다 할지라도, 지식인의 기능은 재정의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구체적’ 지식인이 핵 과학자, 유전공학자, 자료 처리 전문가, 약물학자 등의 신분으로서 싫든 좋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정치적 책임이 증대함에 따라서 그들의 역할 또한 더욱 중요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구체적 지식인이 특수 영역에서 맺게 되는 권력 관계를 두고 그것이 전문가들만의 소관사일 뿐, 일반 대중의 이해와는 무관하다는 구실 아래 그들을 정치적으로 과소 평가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또 이들 지식인이 개인적 이데올로기를 퍼뜨린다는 구실로 그들을 비난하기도 하는데, 지식인이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니며, 사실 그들이 이데올로기를 퍼뜨리려 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진정한 담론의 효과라는 근본적인 것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리란 권력 밖에 존재하는 것도, 진리에서 권력이 배제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진리는 세상에 속한 것이다. 진리는 여러 제약 조건들을 통하여 생산된다. 각 사회는 그 나름의 진리 체제, ‘일반적 정치 체계’를 갖는다. 각 사회가 은연중에 받아들이는 담론의 방식, 참된 진술과 거짓 진술을 구분하는 기제(機制, 메커니즘)와 사례들, 진리를 얻기 위하여 공인된 기술과 절차들, 무엇이 진리로 간주되는가를 말하는 책임을 지는 사람들의 지위 등이 이런 정치 체계를 구성한다. 우리 사회에서 보이는 진리의 ‘정치경제학’은 다섯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갖는다. 진리는 과학적 담론의 형식과 그 형식을 생산하는 제도에 맞추어져 있다.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생산을 위해 진리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진리는 지속적인 정치적, 경제적 동기에 의해 성립한다. 진리는 사회 전체 내에 널리 퍼져 있는 다양한 형식을 통해 대규모로 확산되고 소비되는 대상이다. 진리는 대학, 군대, 출판, 대중 매체 등 몇몇 거대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장치들의 지배 아래서 생산되고 전파된다. 마지막으로, 진리는 전반적인 정치적 논쟁과 사회적 갈등의 결말을 판가름하는 관건이다. 요컨대, 진리 체제는 우리 사회의 구조 및 기능과 본질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지식인은 이 가운데서 작업하고 싸우는 존재다. |
이번 시험 문제는 1) 제시문의 요지 쓰기와 2) 자기 글의 제목 달기, 그리고 3) 논술 본문 쓰기,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지 쓰기는 남의 글을 올바르게 읽고 이해하여 그 핵심 내용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올바른 요지 파악은 토론에서 논점을 잃지 않도록 해 주는 것으로, 이를 잘한다는 것은 남의 글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종합하는, 이른바 논리적 사고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말한다.
제목은 글 전체의 얼굴과 같다. 그러므로 제목은 글 전체의 핵심 내용을 첫눈에 짐작케 해 줄 수 있어야 하며, 되도록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그러니까 자기 글의 제목을 적절히 붙일 수 있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요령 있게 전달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본문 쓰기는 <논술> 시험의 본령으로서 글쓴이의 종합적인 사고 능력과 표현 능력이 이를 통해 드러난다.
제시문은 프랑스 출신의 대표적 현대 사상가 중 한 사람인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84)의 글 「지식인의 정치적 기능」("The Political Function of the Intellectual", 수록: Politique Hebdo, Nov. 1976)에서 발췌 번역 편집한 것이다. 푸코는 심리학, 정신병학, 정치 철학, 사상사 등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가졌으며 많은 저술을 남겼고,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학문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읽는 이의 시각에 따라서 요지는 여러 가지로 파악되겠으나, 적어도 다음 네 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예시 1】
“오늘날 지식인은 보편적 진리의 대변인이라기보다는 정치적 권력 관계에 놓인 ‘구체적’ 지식인의 성격을 갖는다.
그리고 지식인이 추구하는 진리 자체는 권력 밖에 존재하지 않으며 ‘일반적 정치 체계’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치경제학적’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오늘날의 지식인은 사회의 구조 및 기능과 밀접하게 연관된 진리 체제 안에서 작업하고 싸우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예시 2】
“시대와 사회를 초월하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지식인의 역할이 오늘날 새로이 이해되고 있다. 지식인은 자신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과 관계 맺으며, 또한 일정한 사회 제도의 영향 하에 문제 의식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존재로 이해된다. 이러한 사정은 진리 자체가 특정한 사회 구조의 영향 아래서 형성된다는 사실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예시 3】
“오랫동안 지식인은 보편적 진리의 대변인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이제는 일상의 실질적인 문제에 관여하는 ‘구체적’ 지식인의 기능이 강조되고 있다. 원래 진리라는 것이 권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장에서 활동하는 ‘구체적’ 지식인은 우리 사회의 구조 및 기능과 본질적으로 연관된 싸움을 할 수밖에 없으며, 그만큼 정치적으로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예시 4】
“지식인은 보편적 의식과 양심의 지표로 간주되었으나, 오늘날 ‘구체적’ 지식인에 대한 개념은 지식인을 재정의할 것을 요구한다. 즉 지식인은 구체적 상황 하에서 특정 권력과 연관되어 이데올로기를 전파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진리는 현실의 구체적 상황에서 발생하며, 이것이 나름의 정치 체제를 구성하여 기능한다. 진리는 현실과 연관되어 있고 지식인은 이 속에서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것이다.”
① 답안의 길이 (허용 분량 2,600-3,000자 기준 일정 한도 초과 또는 미달의 경우 감점. 1,300자 미만 0점)
⑤ 필기구 (지정되지 않은 것을 사용한 경우 감점 또는 0점)
(2) 문제의 3구성 요소에 적절하게 답하고 있으며, 답안 구성 요소간의 연결이 적절한가?
② 요소간 연결이 부적절한 경우 감점 (특히 제목과 본문 사이의 연관성 주목)
(3) (본문 쓰기에서) 논제 설정은 올바르고, 논거는 적절한가?
① 본문의 논제가 제시문의 요지와 상관이 있는가? (논점 일탈의 경우 0점)
② 논거는 적합한가? (부적합하거나 중첨될 경우 감점)
② 서두의 시작과 결말의 매듭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③ 본론에서 얼마나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1) 채점은 3단계로 한다. 제1단계에서는 2인 채점위원의 채점 결과를 합산하여 상위 200명(최하 등위자에 동점자가 있을 경우에는 동점자 전원 포함)을 선발한다. 제2단계에서는 제1단계 선발자 전원을 대상으로 3인의 교수 채점위원이 채점한 결과를 합산하여 상위 100명(최하 등위자에 동점자가 있을 경우에는 동점자 전원 포함)을 선발한다. 제3단계에서는 제2단계 선발자 전원을 대상으로 출제위원 중 3인의 채점위원이 채점한 결과를 제2단계 채점 결과와 합산하여 순위를 정한다.
(2) 상위 등위자 6명의 답안지를 6인(제2, 3단계 채점위원 전원) 수상자 선정위원회에서 재검토하여 대상 1명, 금상 5명을 선정한다.
성별
지역 |
남 |
여 |
계 | ||||||||
1 학년 |
2 학년 |
3 학년 |
검정 고시 |
소계 |
1 학년 |
2 학년 |
3 학년 |
검정 고시 |
소계 | ||
서울 |
27 |
114 |
355 |
10 |
506 |
22 |
83 |
266 |
7 |
378 |
884 |
인천 |
3 |
20 |
40 |
|
63 |
5 |
13 |
54 |
|
72 |
135 |
경기 |
12 |
34 |
89 |
|
135 |
25 |
40 |
86 |
1 |
152 |
287 |
강원 |
1 |
2 |
12 |
|
15 |
7 |
5 |
8 |
|
20 |
35 |
대전 |
4 |
18 |
31 |
|
53 |
2 |
17 |
29 |
|
48 |
101 |
충남 |
4 |
24 |
26 |
|
54 |
9 |
20 |
27 |
|
56 |
110 |
충북 |
7 |
10 |
21 |
|
38 |
5 |
8 |
17 |
|
30 |
68 |
광주 |
|
13 |
58 |
|
71 |
1 |
4 |
10 |
|
15 |
86 |
전남 |
3 |
4 |
21 |
|
28 |
3 |
11 |
7 |
|
21 |
49 |
전북 |
1 |
27 |
63 |
|
91 |
7 |
20 |
36 |
|
63 |
154 |
부산 |
14 |
38 |
78 |
|
130 |
7 |
23 |
35 |
|
65 |
195 |
울산 |
1 |
7 |
17 |
|
25 |
5 |
3 |
5 |
|
13 |
38 |
경남 |
2 |
3 |
73 |
|
78 |
1 |
16 |
20 |
|
37 |
115 |
대구 |
2 |
20 |
72 |
1 |
95 |
9 |
20 |
29 |
|
58 |
153 |
경북 |
1 |
8 |
30 |
|
39 |
1 |
2 |
24 |
|
27 |
66 |
제주 |
|
|
3 |
|
3 |
|
|
2 |
|
2 |
5 |
계 |
82 |
342 |
989 |
11 |
1,424 |
109 |
285 |
655 |
8 |
1,057 |
2,481 |
참가자 |
수상자(장려상 이상) | ||||
남 |
여 |
계 |
남 |
여 |
계 |
1,424(57.4%) |
1,057(42.6%) |
2,481(100%) |
31(32.3%) |
65(67.7%) |
96(100%) |
성별 지역 |
남 |
여 |
계 | ||||||||
1 학년 |
2 학년 |
3 학년 |
검정 고시 |
소계 |
1 학년 |
2 학년 |
3 학년 |
검정 고시 |
소계 | ||
서울 |
1 |
1 |
10 |
|
12 |
1 |
2 |
28 |
|
31 |
43 |
인천 |
|
|
|
|
0 |
|
|
3 |
|
3 |
3 |
경기 |
|
1 |
1 |
|
2 |
|
|
6 |
|
6 |
8 |
강원 |
|
1 |
|
|
1 |
|
|
|
|
0 |
1 |
대전 |
|
|
|
|
0 |
|
3 |
1 |
|
4 |
4 |
충남 |
|
|
|
|
0 |
|
1 |
2 |
|
3 |
3 |
충북 |
|
|
1 |
|
1 |
|
1 |
1 |
|
2 |
3 |
광주 |
|
1 |
1 |
|
2 |
|
|
4 |
|
4 |
6 |
전남 |
|
|
1 |
|
1 |
|
|
1 |
|
1 |
2 |
전북 |
|
|
2 |
|
2 |
|
|
|
|
0 |
2 |
부산 |
|
|
2 |
|
2 |
|
1 |
5 |
|
6 |
8 |
울산 |
|
|
|
|
0 |
|
1 |
|
|
1 |
1 |
경남 |
|
|
3 |
|
3 |
|
|
|
|
0 |
3 |
대구 |
|
|
4 |
|
4 |
|
|
3 |
|
3 |
7 |
경북 |
|
|
1 |
|
1 |
|
|
1 |
|
1 |
2 |
계 |
1 |
4 |
26 |
0 |
31 |
1 |
9 |
55 |
0 |
65 |
96 |
성별 지역 |
남 |
여 |
계 | ||||||||
1 학년 |
2 학년 |
3 학년 |
검정 고시 |
소계 |
1 학년 |
2 학년 |
3 학년 |
검정 고시 |
소계 | ||
서울 |
|
5 |
13 |
|
18 |
|
3 |
22 |
1 |
26 |
44 |
인천 |
|
1 |
|
|
1 |
|
|
4 |
|
4 |
5 |
경기 |
|
1 |
5 |
|
6 |
|
4 |
3 |
|
7 |
12 |
강원 |
|
|
1 |
|
1 |
1 |
|
|
|
1 |
2 |
대전 |
|
1 |
2 |
|
3 |
|
1 |
3 |
|
4 |
7 |
충남 |
|
1 |
|
|
1 |
1 |
|
|
|
1 |
2 |
충북 |
|
|
1 |
|
1 |
|
1 |
1 |
|
2 |
3 |
광주 |
|
1 |
1 |
|
2 |
|
|
1 |
|
1 |
3 |
전남 |
|
|
1 |
|
1 |
|
|
|
|
0 |
1 |
전북 |
|
|
2 |
|
2 |
|
2 |
2 |
|
4 |
6 |
부산 |
|
|
4 |
|
4 |
|
1 |
3 |
|
4 |
8 |
울산 |
|
|
1 |
|
1 |
|
|
|
|
0 |
1 |
경남 |
|
|
5 |
|
5 |
|
1 |
1 |
|
2 |
7 |
대구 |
|
|
2 |
|
2 |
|
|
4 |
|
4 |
6 |
경북 |
|
|
|
|
0 |
|
|
1 |
|
1 |
1 |
제주 |
|
|
1 |
|
1 |
|
|
|
|
0 |
1 |
계 |
0 |
9 |
39 |
0 |
48 |
2 |
13 |
45 |
1 |
61 |
109 |
구 분 |
이 름 |
학 교 |
학 년 |
지 역 |
대 상 |
안혜성 |
신목고등학교 |
3 |
서울 |
금 상 |
이하윤 |
경남여자고등학교 |
2 |
부산 |
박찬섭 |
완산고등학교 |
3 |
전북 | |
이정미 |
낙동고등학교 |
3 |
부산 | |
주혜리 |
반포고등학교 |
3 |
서울 | |
이지현 |
명덕외국어고등학교 |
3 |
서울 | |
은 상 |
김성현 |
한영고등학교 |
3 |
서울 |
윤석준 |
휘문고등학교 |
3 |
서울 | |
박준엽 |
개포고등학교 |
3 |
서울 | |
윤경섭 |
세화고등학교 |
3 |
서울 | |
김하영 |
수피아여자고등학교 |
3 |
광주 | |
김연우 |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
3 |
서울 | |
이성민 |
한영외국어고등학교 |
3 |
서울 | |
조우영 |
창원남고등학교 |
3 |
경남 | |
이수진 |
경일여자고등학교 |
3 |
대구 | |
배수리 |
광남고등학교 |
3 |
서울 | |
동 상 |
이수주 |
대전외국어고등학교 |
3 |
대전 |
최정윤 |
서울과학고등학교 |
1 |
서울 | |
전희승 |
잠실여자고등학교 |
2 |
서울 | |
조정현 |
대전외국어고등학교 |
2 |
대전 | |
박다예 |
반포고등학교 |
3 |
서울 | |
주정민 |
경명여자고등학교 |
3 |
대구 | |
신나리 |
중앙대부속고등학교 |
2 |
서울 | |
이경란 |
혜화여자고등학교 |
3 |
서울 | |
박소영 |
서현고등학교 |
3 |
경기 | |
강소정 |
영파여자고등학교 |
3 |
서울 | |
김애영 |
천안북일여자고등학교 |
3 |
충북 | |
김기완 |
목포정명여자고등학교 |
3 |
전남 | |
김두현 |
우석고등학교 |
3 |
전북 | |
이지우 |
사직고등학교 |
3 |
부산 | |
유경미 |
데레사여자고등학교 |
3 |
부산 | |
신영경 |
삼성여자고등학교 |
3 |
부산 | |
박은진 |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
3 |
서울 | |
이은미 |
둔촌고등학교 |
3 |
서울 |
구 분 |
이 름 |
학 교 |
학 년 |
지 역 |
동 상 |
김지현 |
경상여자고등학교 |
3 |
대구 |
이새롬 |
인명여자고등학교 |
3 |
인천 | |
유병호 |
단국대부속고등학교 |
3 |
서울 | |
임성희 |
명덕여자고등학교 |
3 |
서울 | |
안수연 |
잠신고등학교 |
3 |
서울 | |
최윤희 |
제천여자고등학교 |
2 |
충북 | |
김은아 |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
3 |
서울 | |
김정수 |
지산고등학교 |
3 |
부산 | |
김혜민 |
광주여자고등학교 |
3 |
광주 | |
문형식 |
보성고등학교 |
3 |
서울 | |
박의현 |
과천고등학교 |
3 |
경기 | |
정윤정 |
연수여자고등학교 |
3 |
인천 | |
장려상 |
김보미 |
선정고등학교 |
3 |
서울 |
김보라 |
대일외국어고등학교 |
3 |
서울 | |
김민선 |
정신여자고등학교 |
3 |
서울 | |
손현주 |
오성고등학교 |
3 |
대구 | |
오소영 |
중경고등학교 |
3 |
서울 | |
김주미 |
수원여자고등학교 |
3 |
경기 | |
강상구 |
덕원고등학교 |
3 |
대구 | |
정유미 |
효원고등학교 |
3 |
경기 | |
조가영 |
금옥고등학교 |
3 |
서울 | |
범윤미 |
신목고등학교 |
3 |
서울 | |
서동준 |
숭실고등학교 |
3 |
서울 | |
서복현 |
전주영생고등학교 |
3 |
광주 | |
김현진 |
경상고등학교 |
3 |
대구 | |
이은아 |
천안북일여자고등학교 |
2 |
충남 | |
김수희 |
한서고등학교 |
3 |
서울 | |
김아림 |
창덕여자고등학교 |
3 |
서울 | |
이선정 |
개포고등학교 |
3 |
서울 | |
김수연 |
일신여자고등학교 |
3 |
충북 | |
이수행 |
광주제일고등학교 |
2 |
광주 | |
이재형 |
덕원고등학교 |
3 |
대구 | |
이재준 |
운호고등학교 |
3 |
충북 | |
이재경 |
광양제철고등학교 |
3 |
전남 | |
김영욱 |
대아고등학교 |
3 |
경남 | |
김태훈 |
보성고등학교 |
1 |
서울 | |
김혜영 |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
3 |
서울 |
구 분 |
이 름 |
학 교 |
학 년 |
지 역 |
장려상 |
김성득 |
거제고등학교 |
3 |
경남 |
김성민 |
청담고등학교 |
3 |
서울 | |
김성빈 |
구리인창고등학교 |
2 |
경기 | |
송하정 |
학익여자고등학교 |
3 |
인천 | |
송재윤 |
서초고등학교 |
2 |
서울 | |
최두희 |
강릉고등학교 |
2 |
강원 | |
김유진 |
수피아여자고등학교 |
3 |
광주 | |
김은영 |
부천여자고등학교 |
3 |
경기 | |
김은진 |
경북외국어고등학교 |
3 |
경북 | |
김인영 |
울산중앙여자고등학교 |
2 |
울산 | |
하연정 |
이사벨고등학교 |
3 |
부산 | |
강민희 |
대전외국어고등학교 |
2 |
대전 | |
이상준 |
상문고등학교 |
3 |
서울 | |
노은경 |
다대고등학교 |
3 |
부산 | |
연영남 |
이화여자고등학교 |
3 |
서울 | |
이강일 |
진성고등학교 |
3 |
서울 | |
이상명 |
포항제철고등학교 |
3 |
경북 | |
이승연 |
대일외국어고등학교 |
3 |
서울 | |
박민신 |
홍성여자고등학교 |
3 |
충남 | |
김근희 |
광주여자고등학교 |
3 |
광주 | |
권정원 |
명일여자고등학교 |
3 |
경기 | |
김기나 |
경기과학고등학교 |
3 |
경기 | |
정다영 |
양재고등학교 |
3 |
서울 | |
홍연주 |
한밭고등학교 |
2 |
대전 | |
홍은기 |
잠실여자고등학교 |
3 |
서울 |
▶ 가작 109명
구 분 |
이 름 |
학 교 |
학 년 |
지 역 |
가 작 |
최수지 |
선정고등학교 |
3 |
서울 |
박수빈 |
동아고등학교 |
3 |
부산 | |
박수현 |
세화여자고등학교 |
3 |
서울 | |
황지희 |
한영외국어고등학교 |
3 |
서울 | |
정지영 |
명신여자고등학교 |
3 |
인천 | |
이준영 |
성남고등학교 |
3 |
서울 | |
김서희 |
협성고등학교 |
3 |
대구 | |
천오벳 |
대전만년고등학교 |
3 |
대전 | |
전하영 |
오금고등학교 |
3 |
서울 | |
김민지 |
예문여자고등학교 |
2 |
부산 | |
황혜연 |
대일외국어고등학교 |
3 |
서울 | |
이정은 |
(검정고시) |
|
서울 | |
서규영 |
경신고등학교 |
3 |
대구 | |
이순영 |
동래여자고등학교 |
3 |
부산 | |
이주연 |
대덕고등학교 |
3 |
대전 | |
김필윤 |
대영고등학교 |
3 |
서울 | |
김정우 |
창원경상고등학교 |
3 |
경남 | |
홍성준 |
동북고등학교 |
3 |
서울 | |
유효은 |
남성여자고등학교 |
3 |
부산 | |
방경원 |
순천고등학교 |
3 |
전남 | |
송민현 |
대전중앙고등학교 |
2 |
대전 | |
류용성 |
서령고등학교 |
2 |
충남 | |
김수희 |
포항제철고등학교 |
3 |
경북 | |
강현주 |
창덕여자고등학교 |
3 |
서울 | |
윤재정 |
경명여자고등학교 |
3 |
대구 | |
최재인 |
안법고등학교 |
3 |
경기 | |
박상우 |
배명고등학교 |
2 |
서울 | |
이현교 |
과천고등학교 |
2 |
경기 | |
김정빈 |
서현고등학교 |
3 |
경기 | |
안혜옥 |
대원외국어고등학교 |
3 |
서울 | |
김온주 |
정신여자고등학교 |
3 |
서울 | |
김혜영 |
이화외국어고등학교 |
3 |
서울 | |
이은영 |
문일여자고등학교 |
3 |
인천 |
제1회 경시대회에 응시한 학생들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지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파악한 사람들이 적었다는 것이었다. 이번 경시대회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이 전년에 비해서 훨씬 더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지문의 주장을 오독하고 있으며 이는 상위 수상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응시자들의 글에서 가장 주종을 이루었던 논변들은 다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지문의 주장을 ‘현대의 지식인들은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경제적인 성과를 올리는 신지식인이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파악하면서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과거의 보편적이고 양심적인 지식인과 인문학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논변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문의 주장을 ‘진리가 경제적․정치적 권력구조에 종속되어 있다’는 식으로 파악하면서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진리의 객관성과 보편성 그리고 기성권력구조에 대해서 저항해야 하는 지식인의 책임을 역설하는 논변이었다.
이러한 글들이 전개하는 논변들은 물론 논리전개상의 명쾌함이나 정연함에서는 서로 차이가 있었지만 기본적인 내용면에서는 천편일률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대동소이했다. 본인이 추측하기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본 경시대회에 응시하기 전에 ‘신지식인’에 대한 문제라든가 ‘지식인의 책임’과 같이 논술시험에서 자주 출제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모범답안을 토대로 하여 연습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러한 사정은 현재 우리 고등학생들의 수준과 아울러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문제성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본 경시대회에 참여한 학생들은 적어도 논술에 관한 한은 각 학교에서 최상위급에 속하는 학생들일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지문의 주장을 정확히 파악하는 가장 기초적인 능력조차도 갖추고 있지 않으며 자신들에게 이미 친숙한 선입견에 따라서 다른 사람의 글을 대충 읽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글을 정확히 해독하는 능력조차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제대로 토론을 하는 것은 더욱 더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토론능력이 민주주의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는 것을 고려할 경우 현재 우리 고등학생들의 수준과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문제성은 상당히 우려할만하다고 생각된다.
아울러 각 학교에서 선발된 학생들이 응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요구한 분량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거나 글쓰기의 기본(문단 나누기, 띄어쓰기 등)이 갖추어지지 않은 학생들이 예상보다 많았다. 분량을 채운 답안지들도 글의 마지막 부분이 부실한 답안들이 많았다. 분량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별 의미 없는 요약을 장황하게 한다든지, 아니면 시간 계산을 잘못하여 마지막 부분을 대충 끝내거나 앞에서 쓴 것을 다시 중언부언하는 답안들이 상당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경시대회의 결과가 그렇게 실망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소수의 학생들은 지문의 주장을 정확하게 파악하면서 폭넓은 교양과 논리 정연한 사고를 토대로 하여 훌륭한 글들을 쓰고 있다. 몇몇 글들은 고등학생으로서는 참으로 놀라운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된다. 아울러 지문의 주장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글일지라도 창조적이고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엿보이는 글들도 상당수 있었다.
♠대상 수상작♠
안혜성(신목고등학교)
【요지】
현대의 ‘구체적’ 지식인들은 정치ㆍ경제적 권력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들의 구체적 진리들이 막강한 정치ㆍ경제적 권력을 행사할 뿐 아니라, 그 진리의 성립이 정치ㆍ경제적 권력 기제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사회 권력 구조와 본질적으로 연관된 진리 체제 가운데에서 작업하는 존재이며 막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닌다.
【제목】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바탕으로 본 현대 지식인의 역할
【논술】
일찍이 플라톤은 보편적 진리의 존재를 ‘이데아’로 상정했다. 이데아는 초월적 세계에 존재하는 순수한 본질 그 자체이다. 기본적으로 플라톤은 보편적 진리를 현실 세계와는 동떨어진 피안에서 찾으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플라톤의 진리관은 오랫동안 확고한 믿음으로 존재해 왔다. 상아탑의 존재 등이 이를 잘 말해준다. 사람들은, 진리 탐구란 세속적 권력과는 무관한 순수한 활동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진리란, 어디까지나 사회와의 연관 속에서 성립된다. 즉, 인간 사회의 진리는 사회적 상황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진리로서, 이는 필연적으로 사회와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진리가 인간에 의해 사회적으로 수용된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인간의 진리란 ‘선택되고 수용’된 것이다. 지식인들은 분명 보편적 진리 탐구를 추구하지만 그 활동 자체가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적 순수성은 애초에 보장받기 어렵다.
진리와 권력의 필연적 관계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진리가 사회에 의해 ‘선택되고 수용’되는 지식 체계라면, 그 선택과 수용의 주체는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정치ㆍ경제적 권력 구조이다. 참ㆍ거짓을 구분하고 참으로 채택된 지식 체계에 신빙성이 가해지는 과정에서 정치ㆍ경제적 권력의 개입을 무시할 수 없다.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에는 이 같은 ‘진리 성립에 있어서의 권력 개입’이 잘 드러나 있다. 자연에 대한 가장 객관적 지식 체계라 믿어지는 자연 과학적 진리의 성립 과정에도 과학자 사회의 권력 기제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진리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사회 권력의 동의와 인정이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진리가 권력 기제에 의해 성립된다 해서 진리가 반드시 권력에 종속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진리 자체가 이미 사회 속에서 엄청난 정치ㆍ경제적 특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식ㆍ정보 사회로 변해가면서 진리의 정치ㆍ경제적 영향력은 더욱 막대해 지고 있다. 사회가 전문화, 분업화되면서 진리의 영향 범위는 축소되고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여전히 사회적 갈등의 해결과 정치적 논쟁의 결말을 판가름한다. 즉, 본질적으로 지식은 권력의 기제 속에서 선택되기는 하지만 권력에 완전히 종속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권력과 진리는 상호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 이는 진리의 본질적 속성에서 빚어진 불가피한 결과로서 둘의 관련성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가 현실적으로 왜곡되는 것을 방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즉, 현실 사회에서는 진리와 권력의 관계가 왜곡되어 진리가 특정 권력 강화에 기여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는 마땅히 경계되어야 한다. 권력은 흔히 진리와 비진리의 구분을 통해 자신의 정치ㆍ경제적 힘을 증대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주류 이론과 비주류 이론, 진리와 비진리를 철저히 구분하여 주류 이론과 진리를 통해 사회를 획일적으로 운영하려고 한다. 일례로, 중세엔 교회 세력이 기독교적 사상을 지배 진리를 수단으로 마녀 사냥 등을 벌이며 권력 강화에 힘썼다. 또한 푸코에 따르면, 근대 사회를 지배해 온 이성 중심주의는 병자, 광인 등의 약자를 분리시키며 기존의 권력 강화에 기여했다. 이 같은 권력에 의한 지식의 수단화는 경계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권력과 진리의 관계를 올바르게 정립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지식인에 의해 선구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권력 관계 속에서 직접 진리를 연구하는 존재가 지식인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지식인들은 우선 권력 관계로부터 자신이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아무리 자신이 순수한 의도로 진리를 탐구하고 이를 실생활에 적용하려 한다 할지라도 그 의도는 이미 권력과의 관계 속에 그릇되게 이용될 수 있다. 따라서 지식과 권력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가장 우선적으로 요청된다.
이러한 이해를 확고히 한 뒤에는 권력과의 긴장 관계 속에 자신의 진리와 지식의 활용에 대해 강한 책임 의식을 지녀야 한다. 특히, 전문 영역으로 학문 체계가 분화되어 있는 현실 세계에서는 지식인의 책임의식이 약화될 수 있다. 지식인이 사회 전반에 걸쳐 폭넓은 안목과 비판의식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식인들은 사회 전반의 권력 기제가 작동하는 원리를 인식하고, 자신의 진리가 수단화되는지 비판적으로 감시하며, 지식의 최종적 사용 결과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맨해튼의 원자탄 프로젝트가 그에 참여했던 지식인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권력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해도, 지식인들은 분명 그에 대해 책임이 있다.
마지막으로 지식인들은 지식의 수단화를 막기 위해 권력과 투쟁할 수도 있어야 한다. ‘실천하는 지성’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특히 개별화되고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지식인들은 거대 권력에 대한 실천적 행동을 포기하기 쉽다. 또 지식의 권력화를 통해 그 자신이 권력 속에 안주하기도 쉽다. 이를 막기 위해선 지식인들 간의 연대와 대중과의 연대, 언론을 통한 활발한 비판 활동이 요구된다.
지식과 권력의 연관성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지식이 플라톤의 이데아적인 순수성을 지킬 수 없다는 현실을 빌미로, 진리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순수성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진리는 분명 권력과 구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순수성은 진리에 대한 지식인들 스스로의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현실에서 사용되는 과정에서 권력의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그것은 이미 진리가 아니다. 따라서 지식인들은 권력과 자신의 관계를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자기 자신의 진정한 가치 발현을 위해 책임 의식과 실천 의식을 지녀야 할 것이다.
▶심사평◀
【요지】제시문의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요약한 글이다. 다만 제시문은 현대 지식인의 역할을 과거에 간주되었던 지식인의 보편적 진리 추구 역할과 대비하고 있는데, 이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 제시문은 지식인의 기능을 권력의 측면에서 재조명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이 지면의 제약 때문에 생략된 것 같다.
【제목】제시문을 제대로 파악하였음을 말해주면서 논술의 내용과도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논술】과거의 보편적 진리가 권력과는 무관한 순수한 활동으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았으며, 오늘날은 진리가 현실과 더욱 밀접하게 관련되어 성립함을 주장하는 글의 전개가 제시문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 특히 도입부에서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을 예로 들어 글을 시작하고, 전개부에서 토마스 쿤과 푸코를 인용하여 자신의 논지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솜씨는 글쓴이의 독서량을 뽐내면서 고등학생으로서는 수준급이라 할만하다. 즉 글쓴이는 제시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적절한 예를 들어가며 자기 나름의 논지를 설득력있게 개진하고 있다.
글쓴이는 진리가 세상과는 무관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사회 속에서 “선택되고 수용”되는 점을 강조하면서 글을 전개한다. 이를 예증하기 위해 토마스 쿤의 “진리 성립에서의 권력개입”을 예로 든 것은 글쓴이의 다양한 독서경험을 과시하고 있으나 토마스 쿤의 진리의 개념을 약간 과장한 것이 흠이다. 사실 쿤은 진리의 사회적 맥락 너머의 요소도 간과하지 말 것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또한 진리가 권력에 종속되는 점 너머의 면에 착안하여 사회에서의 진리의 영향력, 즉 진리가 정치․경제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은 참신했다. 진리와 권력의 올바른 관계 정립의 필요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진리가 기존 권력을 강화하는데 이용되었던 역사적 예에 대한 푸코의 경우를 빌어온 것 또한 훌륭했다. 결론으로 지식인이 진리 또는 지식을 이용하여 신분상승 또는 권력 행사에 몰두할 수 있음을 경계하고, 진리가 권력의 수단으로 전락하지 말 것을 강조하면서, 지식인들이 권력과 긴장관계를 유지함과 동시에 자신의 활동에 책임의식과 비판의식을 지닐 것을 주문하고, 지식인들이 권력의 수단화되는 현상을 막아야함을 강조한 것도 순조로웠다. 실천하는 지성을 주장한 것은 제시문의 맥락과 상응하는 결론이면서 논술의 제목에 충실하고 있다.
문장들이 대체로 너무 긴 편인 점과 논리의 비약 등이 간혹 눈에 띄는 점, 그리고 시간상의 제약 때문이라 여겨지지만 거친 문장들이 보여서 아쉬웠다. 하지만 고등학생으로서 그것도 제한된 시간 내에서 그리 쉽지 않은 제시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자기 나름의 언어로 적절한 예를 들어가며 전개한 것은 높이 사줄만하다는 것이 채점위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글이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고 논리 정연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앞뒤가 상치되지 않으면서 예증을 적절하게 구사한 것도 강점이었다. 논술의 생명은 통일성, 일관성, 응집성 등이 아니겠는가. 더욱 정진하기 바란다.
♠금상 수상작♠
이하윤(경남여자고등학교)
【요지】
우리는 진리가 보편적인 것이라 믿어 왔으며 지식인의 역할 또한 그러한 일반적 진리를 연구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진리는 결코 사회ㆍ경제적으로 자유로운 보편적인 것이 아닌 체제 안에서 생산ㆍ소비되는 체제의 산물일 뿐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지식인은 정치ㆍ경제의 틀 속에서 실질ㆍ구체적 진리를 연구하는 존재이며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지닌다.
【제목】
진정한 진리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것이어야 한다.
【논술】
우리는 학문은 언제나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학문하는 사람이 어떤 권력을 옹호하는 학문을 하는 것을 가리켜 ‘곡학아세’라며 비난한다. 우리의 이러한 비난 속에는 학문이란 어떠한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할 자유로운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그러나 어떠한 가치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을 객관적 학문이 과연 존재하는가?
역사적 사실만을 탐구하는 사학은 자료를 있는 그대로 탐구해야 하는 것이므로 객관적일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실증주의 사학자 랑케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료들 중 필요한 것을 뽑고, 서술하는 것은 사가의 몫이다. 결국 그 서술에는 사가의 가치관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가 가장 객관적이라 말하는 과학은 어떠한가? 실험 수행 과정 자체는 객관적일 수 있을지언정 수많은 가설 중 하나를 뽑아 실험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에는 과학자 자신의 가치관이 포함되지 않을 수 없다. 오랫동안 가부장제를 뒷받침해온 남성 위주의 과학이 오늘날 비판을 받으며 허물어지는 것은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결국 학문은 어떠한 가치의 영향을 받아 성립하는, 어느 정도는 주관적인 것이다.
예시문의 글쓴이는 더 나아가 모든 학문(진리)이 정치ㆍ경제의 틀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학자의 가치관 또한 현재의 체제에 의해 의식적ㆍ무의식적 영향을 받으므로, 그에 의해 형성되는 학문 또한 체제의 소산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ㆍ경제의 틀에 입각한 학문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즉 현재의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는 진리를 논할 수밖에 없고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지식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신지식인’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등 실제적 진리가 주가를 높이고 있고, 많은 학문이 그 사회의 정치ㆍ경제적 상황을 배경으로 발전했다. 독일에 의학이 발달한 것은 오랜 전쟁을 겪은 덕택이다. 글쓴이는 이러한 추세가 현실임을 강조하며 구체적인 것이야말로 진리라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회의 틀 속에서의 학문을 인정하는 그의 태도는 옳지 못하다. 앞서 언급했듯 학문은 충분히 주관적이고 어떤 가치에 입각한 채 연구될 수 있다. 그러나 학문이 근거하는 곳이 정치ㆍ경제의 틀이어서는 안되며, 더 나아가 그 틀에 근거함으로써 구체적 진리만을 양산하는 사회는 대단히 위험하다.
우선 글쓴이는 학문의 다양성을 간과하고 있다. 과학 같은 학문은 제쳐 두고서라도 인문학, 사회과학 등의 목적 중 하나는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이다. 이러한 학문들이 우리 사회의 틀 속에 존재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정치ㆍ경제란 근거는 과연 완벽한가? 사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는 정치ㆍ경제의 문제에서 비롯되고 존재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의 틀에 근거하는 학문은 정치ㆍ경제 자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틀 자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틀 안팎을 넘나드는 눈이 절실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학문들이 체제 안에서 존재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의 양성 평등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여성학이 현재의 불평등한 가부장제적 정치ㆍ경제 제도에 기인해서는 결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또한 정치ㆍ경제의 영향으로 생산되거나 변형된 진리는 정치ㆍ경제적으로 영향력을 지닌 강자들의 것이 되기 쉽고 그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약자들의 권리를 대변해 줄 진리는 줄게 될 것이다. 현대 사회는 점차 힘을 지닌 소수는 더욱 강해지고 그 외의 다수는 점차 약해지는 양상을 띄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무지해지는 다수 위에 군림하는 똑똑한 소수가 자신들을 위해 진리를 악용하고 만들어내는 과정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우리 사회만 보더라도 몇몇 언론이 진실을 왜곡하고 악용했지만 받아들이는 국민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의 입지만을 강화시켜주었던 사례가 많다. 언론인도 지식인이며 정치ㆍ경제적 권력을 지닌 소수이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의 정치적ㆍ경제적 틀에서 그들만을 위한 진리의 양산으로 사회 발전을 저해한다.
정치ㆍ경제적 틀에서만 진리가 양산될 때 현재에 당장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래에, 혹은 현재에도 어딘가에 꼭 필요한 진리가 묻혀버릴 우려가 있다. 우리가 현재 당연하다고 여기는 수많은 것들이 과거의 틀에서 보면 결코 이롭지 못한 것들이었고, 그 때 만약 이것들이 그냥 없어져 버렸더라면 지금의 우리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모든 진리는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닌다. 그것이 언제 그 빛을 낼 수 있을지는 현재만을 바라볼 수 있는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는 알 수가 없다. 그것이 잘 사용될 수 있는 날까지 존중하고 보관하는 것이 현재 우리의 몫이다. 우리가 당연시하는 참정권, 자유권 등의 권리를 절대 왕권 시대의 사람들이 그 당시 사회에도 맞지 않고 쓸모도 없다 하여 쉽게 포기했었던들 현재의 우리 삶이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이제 우리는 학문이 진정으로 근거해야할 곳은 어디인가라는 의문을 지니게 된다. 모든 진리는 인간을 위한 방향이어야 한다. 진정으로 인류를 위한 방향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늘 지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때로 실제적인 방향에 지나치게 얽매인 채 우리가 학습해 온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못 보게 된다. 자유ㆍ평등ㆍ인간 존중과 같은 가치가 학문의 발전과 더불어 그것의 지침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학문은 정치나 경제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야 한다. 우리는 진리를 언제나 존중하고 보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이렇게 되면 몇몇 학문에서는 윤리의 문제가 등장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보편적 가치를 탐구하는 학문이 그들의 지침이 됨으로써 해결 가능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의 윤리 문제가 대두될수록 인문학 등이 더욱 활기를 띄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식인의 역할은 결국 사회의 틀 안에서 무엇인가를 양산해내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비추어 잘못된 사회의 틀을 허물 수도 있고, 그 위에 또 올바른 사회를 만들 진리를 제공할 수도 있는 것이 지식인이다. 인류의 역사는 끝없이 완벽을 향해 가고 있다. 완벽에 도달하는 그 때가 바로 보편적 진리에 다다르는 순간이 아닐까? 그리고 그 안내자가 바로 지식인이 아니겠는가.
▶심사평◀
【요지】어떤 사람의 주장에 대해서 자기 의견을 말하기 위해서는 상대방 주장의 요점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위의 논지 파악은 비교적 정확한 편이다. 다만, “따라서”로 시작되는 세 번째 문장의 후반부, 곧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지닌다”는 “그들의 정치적 책임 또한 증대하고 있다”로 바꿔 표현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제목】약간 길다는 느낌을 준다. “진정한 지식인과 보편적 진리 탐구” 정도였으면 어떨까 싶다.
【논술】〔요지〕서술에서와는 다르게, 논술자가 자기 주장을 펴면서 제시문을 간접 인용하는 것을 보면 제시문에 대한 이해가 그다지 정확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자기 주장을 강하게 피력하기 위한 방편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한편으로 몰아세우는 경향이 있는데, 이 글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컨대, 세 번째 문단에서 논술자는 “그래서 정치․경제 틀에 입각한 학문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현재의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는 진리를 논할 수밖에 없고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지식인이라는 것이다.”고 말하고, 또 네 번째 문단에서는 “글쓴이는 […] 구체적인 것이야말로 진리라는 사실을 이야기한다.”고 보고 있는데, 이는 제시문의 내용과는 상당히 다르다. 제시문의 필자는 단지, 일반 사람들은 오랫동안 지식인들을 보편적 진리의 대변자로 여겨왔고, 기대해 왔으며, 또 지식인들도 그런 양 행세해 왔으나,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고, 사회적 조건상 지식인들이 그러한 기대에 부응할 수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또한 제시문의 필자는 “구체적인 것이야말로 진리”라고 말한 바는 없고, 단지 지식인들은 점차로 구체적인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그 결과 ‘구체적’ 지식인이 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사정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제시문의 내용에 대한 이 같은 오해는 이 논술문을 ‘당위적’ 주장으로 짜여지게 만들었다. 제시문의 필자는 “오늘날 지식인은 이러이러하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그런 사실을 바탕으로 일반인들의 지식인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는데, 논술문의 글쓴이는 여전히 “지식인은 마땅히 이러이러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시문의 필자를 정면으로 논박하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지식인도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적 논거들을 제시한 다음에 이를 토대로 자기의 당위적 주장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한편에서 사실적 주장을 펴는데 이에 대응하는 쪽에서 당위적 주장으로 일관하면, 그 논쟁은 겉돌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이 “진리란 권력 밖에 존재하는 것도, 진리에서 권력이 배제되는 것도 아니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 대응하는 사람이 “진리란 권력의 지배 아래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면, 논의에 무슨 진전이 있겠는가? 뒤의 주장은 “진리란 권력의 지배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겠는데, 제시문의 필자는 이런 주장을 어디에서도 하고 있지 않다.
이런 점이 인지됐더라면, 좀 더 좋은 논술문이 됐겠지만, 그러나 제한 된 시간에 짧은 제시문을 읽고 지정된 글자 수로 자기 주장을 펴나간 점을 감안하면, 지금 상태로도 상당히 좋은 글이라고 본다. 글쓴이의 더 큰 발전을 기대한다.
♠금상 수상작♠
박찬섭(완산고등학교)
【요지】
오늘날의 지식인은 보편적 진리의 지표로서 존재하던 과거와 달리 특수한 영역에서만 종사하는 ‘구체적’ 지식인으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생산하는 진리는 정치, 경제적인 동기와 형식 하에 성립되고 거대한 권력 체계 내에서 확산, 소비되어 제반의 사회 문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제목】
바람직한 지식인으로서의 인간상
【논술】
지난 날,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사회 구성원은 규범 등을 통해 학습되고, 이에 따르지 못한 이는 비정상인으로 낙인찍혀 격리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당대의 기준을 ‘에피스테메’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합의하여 설정한 ‘에피스테메’가 정상과 비정상, 나아가 여러 사회 현상의 옳고 그름을 판정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 ‘에피스테메’를, 권력층이 설정하던 과거와 달리 시민들이 만든다. 그렇다면 시민들을 이끄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지식인이다. 지식인은 자신의 연구물과 이념에 내재된 권력적 속성을 통해 대중의 행동 방향에 영향을 주고 대중은 사회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따라서 현대 사회에서 지식인들이 갖는 영향력은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지식인의 책임 역시 크다. 그러므로 현대 지식인들의 특징을 규명하고 그에 따른 바람직한 지식인상을 설정해 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제시문에서 필자는 현대 지식인들이 가진 권력적 속성에 주목하고 있다.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의 표상이었던 지식인이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구체적이고 특수한 분야에만 종사하게 되고 그 분야에서 권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 지식인의 권력은 담론의 형식 속에 담겨진 ‘진리’를 통해 행사된다. 진리는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생산을 위해 성립되고, 제도와 형식을 통해 담론으로서 형성된다. 그리고 여러 매개 장치를 거쳐 사회 전체로 전파되고 소비된다. 이는 ‘구체적’ 지식인들이 만들어 낸 담론이 우리 사회의 구조 및 기능과 긴밀한 연관을 이루며 대중 속으로 확산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렇게 확산된 진리는 담론의 틀을 벗고 ‘여론’이 된다. ‘여론’의 형식으로 나타난 진리는 제반의 사회 문제 해결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즉, 결국 사회의 대세는 진리가 판가름하며, 그것이 곧 권력이고 진리를 생산해내는 ‘구체적’ 지식인들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제시문의 필자는 이렇게 지식인의 기능을 파악하고 있다.
실제로 소위 ‘지식 사회’라고 일컬어지는 현대 사회에서 지식인들이 갖는 영향력은 제시문에서 규정된 것 이상이다. 특히 과학 분야의 지식인들이 만들어내는 진리는 자체가 경제적 가치를 지니며 이는 곧 정치적 권력과 상통한다. 과학 분야의 지식인들이 생산한 진리는 대자본에 의해 상품화되어 개개인의 생활 속으로 확산되고 그것은 곧 진리가 개개인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정도로 큰 권력을 가짐을 의미한다. 또한 현대 사회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정치적 견해, 즉 여론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받는 자유 민주주의 사회이다. 따라서 지식인들이 이루는 담론과 그에 내재된 진리는 여론 형성을 통해 제반의 사회 문제에 직접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실례로 배아 복제나 안락사 등 생명논쟁의 담론에는 윤리학자, 유전공학자, 종교학자 등의 지식인의 진리가 내재되어 있고, 이 중 한 진리가 생명논쟁의 결말을 판가름할 것이다. 지식인과 그들이 생산한 진리가 인류 사회의 문제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식인이 정치, 경제적 권력을 지니고 있음은 자명한 것이며, 이제는 지식인이 그들의 권력을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지에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지식인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은 우리 사회의 발전 방향을 결정하는 ‘넓은 의미의 에피스테메’인 것이다. 일단, 지식인은 자신의 연구가 사회에 끼치는 중대한 영향력을 항상 염두에 두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생산해 낼 진리가 과연 인류 보편의 존엄성과 공공의 복리에 도움이 되는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과학자들의 그릇된 세계관이 오늘날 지구의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 점을 통해 과학자들의 올바른 윤리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나아가 지식인은 자신의 진리와 사회적 행보가 갖는, 여론에 대한 파급력을 자각하여 바람직한 여론 형성에 기여해야 한다. 정치적 논쟁이 있을 때에는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방향에 서야 하며, 여론을 그러한 방향으로 조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특히 신문과 방송 등 언론이 정의로운 편에 서야 한다는 명제가 더욱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지식인의 진리를 담론화, 여론화하여 사회에 확산시키는 매개체가 바로 언론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지식인의 역할이 바르게 수행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이면서도 실천적인 방향으로, 각급 학교에서의 인문 교육 강화가 필요하다. 지식인 계층으로 성장할 인력에게 건전한 가치관과 윤리관을 교육하여 그것이 그들 안에서 정립된다면, 미래에 그들이 생산할 진리도 바람직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식인 계층 사이에서도 활발한 토론과 담론 형성의 장이 마련되어, 비판과 합의를 거친 우수한 수준의 진리가 생산되어야 한다. 나아가 일반 시민들도 시민 운동 등을 통해 사회의 잘못된 진리 체제를 수정하여 다시금 지식인의 연구에 반영시키는, 능동적인 담론 형성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오늘날 소위 ‘지식 기반 사회’를 표방하며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보편화된 세계에서 인류 역사 그 어느 때보다도 지식인의 역할은 중요한 것이다. 지식인들이 생산해내는 진리는 그 자체로 거대한 경제적 가치를 지니며, 그들이 형성하는 사회적 담론은 사회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된다. 이제 현대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현실을 자각하고 바람직한 지식인으로서의 인간상을 추구해야 한다. 인류 보편의 가치에 기여하는 진리의 생산과 강한 신념, 이것이 바로 현대 지식인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그들이 이러한 가치를 내면화하여 바람직한 사회 형성을 위해 노력할 때, 비로소 세계는 인류 전체의 행복이 실현되는 공간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심사평◀
【요지】저자의 논지를 대체로 무난하게 정리했으나, 그 논지를 뒷받침하는 저자 특유의 관점이, 즉 탈근대적 관점이 생략된 점이 아쉽다. 이런 사정은 다른 모든 학생들의 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제목】‘바람직한 지식인으로서의 인간상’이라는 제목은 간결한 것 같지만, 지식인의 문제와 구별되는 인간의 문제,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현대 사회가 인간에게 부과하는 새로운 조건들에 대한 문제를 불필요하게 끌어들이고 있고, 이 추가된 문제는 본문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 점을 생각하면 제목은 ‘바람직한 지식인상’ 정도로 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논술】채점과정에서 제시문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한 답안지를 읽을 수 없었다. 그만큼 문제가 어려웠다고도 할 수 있다. 푸코(제시문의 저자)와 같은 탈근대 사상이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소화되기 어려운 면도 있을 것이고, 지식인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물음이 청소년에게는 아직 추상적인 주제일 수 있다. 그러나 논술과목의 취지가 주입식 교육의 병폐를 개선하고 독자적인 사유능력과 인문학적 안목을 키우는 데 있는 만큼, 이번 문제는 학생들에게 보다 높은 수준의 독서체험을 촉구한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답안지는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시작하고 있고, 그의 ‘에피스테메’라는 독특한 개념을 이용하여 과거의 지식인과 구분되는 현대적 지식인의 위상을 논하고 있다. 어느 정도 푸코의 사상을 알고 있는 응시자의 철학적 교양은 다른 응시자들에 비할 때 두드러져 보인다. 그러나 푸코의 사상에 대한 이해는 완전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도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푸코에 따르면, 근대적 의미의 주체(데카르트적 의미의 인간)와 그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현대의 지식인은 사회적 구조의 효과에 불과하다(제시문에 나오는 ‘담론의 효과’라는 표현은 이런 문맥에서 읽어야 한다). 스스로 자유롭고 자율적인 판단능력을 소유한다고 생각하는 지식인이 사실은 체제의 생산물, 혹은 권력장치의 생산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때 주체는 자신을 규정하고 생산하는 구조적 과정을 의식하지 못하고, 따라서 어떤 기만에 빠져 있다. 이렇게 한 시대의 주체를 물품처럼 주조하되 그 주체에게 의식되지 않고 있는 구조적 질서를 푸코는 ‘에피스테메’라고 불렀다. 그의 ‘주체의 죽음’이란 유명한 선언은 그런 구조주의적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제시문의 내용도 대체적으로 이런 관점에서 펼쳐지고 있다. 반면 학생의 답안지는 푸코의 ‘에피스테메’를 근대 이전의 지식인을 구속하는 조건으로 보았고, 현대의 지식인은 그런 조건을 벗어나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현대의 지식인은 ‘에피스테메’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생산하는 주체라는 것이다.
답안지에서 논술이 전개되는 구도는 이런 전도된 푸코 이해에서 성립하며, 지식인의 역할(대중에 대한 힘과 권력)이 과거에 비해서 점점 커져가므로 지식인의 책임이 그만큼 커져간다는 점을 부각시키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사고의 일관성이 있음으로 크게 나무랄 것은 없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적절한 사례를 동원하여 압축적으로 전개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할만하다. 그러나 결론에 너무 일찍 도달한 후, 동일한 내용이 뒤에서 몇 번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점이 이 답안지에서 개선되어야 할 가장 커다란 약점이다.
♠금상 수상작♠
이정미(낙동고등학교)
【요지】
오랫동안 보편적 진리와 정의를 주관하는 자로서 인정받아왔던 지식인들이 그들이 처한 구체적인 장에서 일하게 됨으로써 실질적이고 비보편적인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제 지식인들의 기능을 제고해야 할 단계이다. 진리는 세상에 속한 것으로 정치, 경제와 관련을 맺는다. 요컨대, 진리는 사회구조 및 기능과 연관되어 있고, 지식인은 이 가운데서 작업하고 싸우는 존재인 것이다.
【제목】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지식인의 필요성
【논술】
‘성인도 시속을 따른다.’는 말이 있다. 즉, 아무리 뛰어난 현자라도 본질적으로는 그 사회 속에 속해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 현자가 현실 속의 구체적 인물이라고 해서, 추구하는 진리가 꼭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현실에 정확히 답해주는 성격의 것이어야 할까? 내가 굳이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앞에서 인용한 말을 쓰면서 은근히 ‘고고한’ 그래서 ‘현실과 동떨어진’ 진리(좀 더 정확히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진리를 이름이다)를 추구하는 지식인들을 비난하는 듯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산업화나 정보화가 진전되면서 ‘실용주의’가 많이 퍼지고, 그에 따라 ‘보편적 진리’나 그것의 당위성을 부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 진리는 사회 구조 속에 있으며, 지식인 또한 그 가운데서 작업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존재라는 제시문의 주장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다른 방향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먼저, 제시문에서 구체적 지식인이 그들이 작업하는 분야에서 정치적 책임이 증대함에 따라 역할이 중요하게 된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핵 과학자는 국가의 안보와 밀접한 가짐으로써 그 역할의 비중을 넓힐 수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막대한 책임 또한 짊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제시문의 필자는 한 가지 사항을 간과하고 있는 듯 하다. 구체적 지식인과 국가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게 될 정치 권력의 위험성을 말이다. 제시문에서는 ‘진정한 담론의 효과’라는 말로 그러한 위험성을 무마시키고 있지만, 지식인이 가지는 ‘정치권력의 횡포’는 그렇게 미지근하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특히, 엘리트층이 가지는 힘은 무지한 대중을 손쉽게 조작할 수 있고, 무관심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진리가 실질적이고 비보편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질 때 진리는 굉장히 유동적인 성격을 띄게 된다. 또, 이 때의 진리란 공익성을 주요한 가치 중의 하나로 채택하므로, 좀 더 많은 사람이 이익을 얻는 방향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진리는 상대적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며,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절대적 진리’에 비해 그것의 위치는 매우 불안정한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보편적 가치의 부재로 혼돈을 초래할 수 있지 않을까?
게놈 프로젝트의 경우를 보자. 인류의 평균수명 연장과 질병의 효과적 치료를 담보로 많은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던 그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마음 한켠에서 불안과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물론, 혁신적인 질병치료로 인류의 건강이 향상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그 연구의 이면에 깔린 인간존엄성에 대한 위협이 많은 이들로부터 경계의 목소리가 들려오게 만드는 것이다. 즉,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절대적 진리와 ‘인류의 보건 향상’이라는 실질적 가치에 우위를 둔 구체적 지식이 엇갈림으로써 불안과 공포를 가중시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경제적 동기로부터 성립되는 구체적 진리의 필요성에만 중점을 둘 수 있겠는가. 탄탄한 보편적 진리의 바탕이 먼저 구축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경제적인 목표가 진리와 학문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내가 제시문을 읽으면서 안타깝다고 느낀 것은, 물질적 가치를 창출하는 근원으로서 진리가 설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진리가 현실 세계에 존재하고, 지식인 또한 그 둘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좀 더 높은 이상에 몰두하는 지식인이 존재할 때, 진리 자체가 힘을 가질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진리 자체의 윤리성과 도덕성을 확보하고 그래서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를 치유하는 정의로운 기능도 담당할 것이라 확신한다.
몇 가지 덧붙여서 제시문이 가지는 결점들을 지적하고자 한다. 지식인층이 국가나 경제 기관과 밀접한 관련을 맺음으로써 발생하는 막강한 ‘정치 권력의 횡포’는 앞서 지적한 바가 있다. 또 이 제시문에서 발견하게 되는 오점(제시문이 지나치게 비약적으로 전개된 것인지, 내가 지나친 것인지 모르겠다)은 진리가 정치적이고 경제적 장치들의 지배 아래에서 생산되고 전파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와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큰 현 정치 형태만을 고려한 발언이 아닌가 싶다. 또 진리의 현실적이고 상대적인 성격만을 지나치게 부각시켰다고 생각한다. 몇 세기를 이어져온 혁신적인 과학 이론들은 당시 시대 상황과 대립했던 경우가 많았고, 그러한 불변의 진리 위에서 많은 응용 과학이 쏟아져 나왔음을 감안할 때, 진리가 가지는 절대적인 성격이 가벼운 것일 수 없다. 또, 단지 정치나 경제체제 속에 참여하지 않았을 뿐 초현실적이고 절대적인 진리의 탐구에 많은 힘을 쏟는 지식인들이 엄연히 존재하며, 그러한 가치들이 우리 사회를 보이지 않게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식인들의 기능에 대한 해답은 무엇인가? 국가경쟁력이나 국민의 복지가 중요한 국가적 과제인 이상 그것을 소홀히 다룬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경제나 정치체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구체적 지식인들의 활동에 앞서, 사회 발전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사회의 무질서나 혼란, 물질적 가치의 비대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보편적 진리’의 당위성에 더 힘을 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좀 더 소신 있는 ‘보편적’ 지식인들의 활동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분야에 관심을 두는 지식인과 진리가 초래하게 될 위험성에 대해 고찰하고, 동시에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지식인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해 보았다. 사회의 진행 방향이 점점 더 물질적 가치를 창출하는 곳으로 기울고 이에 따라 비보편적이고 상대적인 진리를 역설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사회와 인류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보편적 진리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바람직한 사회 발전을 이루어 나가기 위한 바람에서 ‘보편적 지식인’의 존재 이유를 찾았으면 한다.
▶심사평◀
【요지】제시문은 현대 사회에서의 지식인의 역할과 진리의 본성에 대한 주장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복합성을 지니고 있다. 한편으로 지식인은 자신이 처한 구체적인 삶의 조건과 관련하여 탐구를 진행하게 되었다는 현실적인 분석을 제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진리 자체가 정치 경제적인 조건에 의하여 구성된다는 진리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앞서 제시한 지식인의 기능을 정당화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본문의 요지는 위의 두 요소를 비교적 정확히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잘 구성되어 있지만 양자의 관련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제목】본문은 보편적 진리는 어떠하여야 하는가를 기술함과 동시에 그에 따른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본문의 제목은 이러한 논지를 반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소 지나치게 일반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보편적 진리의 본성과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했더라면 논지를 좀더 구체적이고 압축적으로 반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논술】글쓴이는 지식인이 일정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매몰되어 주어진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만 급급할 때 생겨나는 문제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우선은 지식인이 권력 내지 주어진 상황의 시녀가 되어 ‘정치권력의 횡포’에 야합하여 ‘무지한 대중을 조작하는’ 데에 기여할 수도 있으며, 다음으로 ‘진리는 굉장히 유동적인 성격을 띠게 되어’ ‘보편적 가치의 부재로 혼돈을 초래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글쓴이는 이러한 논지를 발전시키면서, 그때 그때의 사회에서 중시되는 물질적 가치와 개별적 사회 상황을 넘어서서 중시되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대비시켜 지식인이 추구하여야 할 더욱 중요한 진리로 후자를 부각시키고 있다. 게놈 프로젝트와 같은 시의성 있는 예들을 사용하고 정치권력이 악용되는 친근한 예들을 들어가면서 자신의 논지를 비교적 유려하게 전개하고 있는 것은 이 글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에서 나타나는 가장 아쉬운 점은 중요한 지점에서 개념상의 혼돈이 있고, 이것이 제시문의 요지를 올바르게 파악하는 데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혼동은 이 글뿐 아니라 이번에 응시한 많은 답안에서 나타나고 있어 강조할 필요가 있다. 평자가 여기서 염두에 두고 있는 구분은 가치와 사실의 구분이다. 무엇이 인류에게 중요한 것이며 어떤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것은 가치와 관련된 문제이고, 세상이 어떠한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는 사실과 관련된 문제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사회 상황을 넘어선 가치가 있는가 하는 문제는 가치의 절대성 및 상대성과 관련된 문제이고 이는 윤리학의 관심사다. 한편, 세계가 어떠한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과연 세계는 우리가 보기에 따라 다른 것인가 아니면 구체적인 관점을 넘어선 보편적인 모습이라는 것이 있으며 이러한 모습을 우리가 포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진리의 상대성 및 보편성과 관련된 문제다. 이러한 구분을 염두에 두고서 보면, 제시문은 가치의 절대성 문제보다는 진리의 보편성 문제에 주안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 경제적 권력 관계가 지식인으로 하여금 세계의 일정한 측면에 대하여 일정한 관점을 갖고 이해하게 만들어 진리는 결국 상대적일 수밖에 없으며, 지식인은 그러한 구체적인 상황에서 상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이 제시문의 요지인 것이다. 물론 본문이 제시문에 나타난 이러한 진리의 상대성 문제를 완전히 놓치지는 않았다. 뒤에서 두 번째 문단은 이러한 문제를 다루면서 절대적 진리를 추구한 과거의 사례들을 언급하면서 제시문의 논지를 공격하고 있다. 이점은 분명히 이 글의 장점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이 보편적 가치의 문제에 가려 지나치게 가볍게 다루어지고 있음이 아쉽다.
또 하나 지적할 것은 글쓴이는 가치의 문제를 다루면서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절대적 가치와 ‘인류의 보건 향상’과 같은 구체적 실용적 가치를 대립시키고 있는데 이것이 그렇게 단순히 대립할 수 있는 것인지가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게놈 프로젝트와 같은 경우에 대립되는 것은 오히려 연구 결과의 선용에 따른 결과와 악용에 따른 결과의 대립이 아닌가 싶다. 인간 유전자 연구에 대하여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 모두 자신의 입장이 인간의 존엄성에 기여한다는 논거를 내세운다는 것을 주목하자.
이 글에서는 위에서 지적한 문제와 아울러 어색한 표현들이 몇 군데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그 흐름이 유려하고 필자 나름의 입장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지가 전개된 우수한 글이라고 판단된다. 글쓴이가 앞으로 독서를 통하여 사고와 개념화의 수준을 향상하면 훌륭한 지식인이 되리라 믿는다. 건투를 빈다.
♠금상 수상작♠
주혜리(반포고등학교)
【요지】
과거 지식인은 보편적 진리의 대변인으로서 정의와 진리를 수호하고, 사회의 모범이 되었다. 그러나 진리란 사회와 유리된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와 연관되어 일정한 정치체계를 이루고 있으며, 진리의 탐구자인 지식인 역시 사회 속에서 비보편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를 연구한다. 따라서 현재의 지식인은 사회 모범으로서가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서 정치적 책임과 사회적 역할을 진다.
【제목】
현대 사회의 변화된 진리관과 새로이 요청되는 보편적이고도 구체적 지식인상
【논술】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진리의 보편성이 강조되었다. 진리란 시대, 환경, 분야를 초월한 참된 것이며, 학문은 그것에 다가가기 위한 도구였다. 따라서 그들은 수학적 방법으로 철학, 음악을 연구하였으며, 심지어는 과학과 철학을 같은 학문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그리스 시대의 사상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자인 동시에 식물학자이자 동물학자였다는 사실은 이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근대 학문의 발전은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낳았으며, 발달된 인간의 이성에 의해 사람들의 지식의 양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지식의 양과 폭이 광대해지면서 학문의 분화가 이루어졌다. 철학과 역사학에서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여성학 등이 나왔으며, 과학 또한 크게는 물리, 생물, 화학, 지학의 네 분야에서 많게는 수천 가지의 분야로 나뉘어졌다. 이와 같이 지식이 구체적 특성을 띄게 되면서 진리와 지식인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변화했다.
과거의 지식인들은 보편적 진리의 대리인으로서 정의와 진리를 수호하고 의식과 양심의 지표로서 행동했다. 그들이 사회의 모범으로서 권위와 존경을 지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의 지식인들은 다르다. 그들은 사회의 모범으로서가 아닌, 구체적 직업인으로서 비보편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연구한다. 이 구체적 지식인들은 핵 과학자, 자료 처리 전문가 등의 신분으로서 정치적 책임을 지며, 지식의 공급자로서 사회에 영향력을 지닌다.
왜냐하면 이 지식인들이 연구하는 진리 자체가 우리 삶 속에 존재하는, 현실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진리가 우리 사회의 구조 및 기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각 사회의 진리 체계는 일정한 정치 체계를 갖는다. 각 사회가 은연중에 받아들이는 담론의 방식,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기제와 사례, 진리를 얻기 위한 기술과 절차,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 등이 이 체계를 이룬다. 따라서 진리 추구는 정치적, 경제적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이러한 진리 체계 내에서 진리를 탐구하고 싸우는 지식인의 역할 역시 사회적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식인은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여 사회 현실을 초월한 ‘모든 사람을 위한 정의, 진리의 추구’에서 벗어나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맞게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을 공급하는 구체적 역할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위의 내용을 고려하더라도 보편적 지식인의 시대가 끝났다는 글쓴이의 주장을 완전히 수용하기는 힘들다. 먼저 글쓴이는 진리의 사회적 특성, 혹은 구체성을 강조하면서, 진리의 보편성을 무시했다. 확실히 현재의 진리 체계는 사회의 시스템에 통합되어 있고, 따라서 진리 추구라는 행위 자체가 사회적 제약 아래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진리의 보편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진리의 정의는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항상 옳은 이치이다. 따라서 진리의 본질은 보편성이다. 다만 진리가 일정한 시스템 속에 속해 있는 인간에 의해 생산되고 소비되면서 구체적이고 비보편적인 문제의 해결에 적용되기 때문에 진리의 특수성이 나타났을 뿐, 그렇다고 진리의 보편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보자.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되풀이되어 왔다. 그러나 그것을 탐구하는 인간의 환경에 의해 해답은 다 다르게 나타났다. 공자같은 성인은 인간은 모두 선하다고 생각했고, 보다 더 혼란스러운 시대에 태어난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이성에 의해 진리를 탐구한다고 생각했지만, 말년의 흄은 진리란 인간의 능력으로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에 대한 대답이 다 다르다고 해서, 인간의 본질이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의 본질은 보편적 진리이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틀을 통해 진리를 보기 때문에, 사회의 구조에 포함되는 구체적 인간상을 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진리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서는 구체적 지식을 초월한, 보편적인 진리 추구도 반드시 필요하다.
또 글쓴이는 보편적 지식인의 상징성을 간과했다. 분명 지식인은 진리를 탐구하고, 지식을 생산하는 사람이다. 그들을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사회의 시스템을 연구하면서 사회적 담론으로서의 이데올로기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것만이 지식인의 역할은 아니다. 사회의 양심과 의식의 지표로서, 또 정의와 진리의 상징으로서의 지식인의 역할 또한 중요한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특수한 계층을 사회의 모범으로 삼는 것은 아이러니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또 현대 사회처럼 다원화되고 여러 계층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회에서 사회 정의가 무엇인지 분명히 답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이루는 사회라면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규칙은 언제나 존재하며, 이것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솔선수범하여 지키는 보편적 지식인의 존재는,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를 억압하는 권력집단으로 나타나지 않는 한 환영해야 한다.
확실히 지식인의 역할은 과거보다 구체적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변했다는 말은 보편성을 상실했다는 말과는 다르다. 마찬가지로 지식인에게 구체적인 역할이 새로이 부여됐다고 해서 보편적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도리어 구체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지식인이야말로 다원화된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진정한 지식인일 것이다. 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진리는 다원화라는 특수성과 동시에 보편성을 지닌 개념이기 때문이다.
▶심사평◀
【요지】이 요약문은 제시문의 내용을 비교적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난하다. 다만 문장은 좀 더 가다듬을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목】설정된 제목은 논술문의 내용을 반영하고는 있으나 제목으로서는 다소 길다고 생각된다. ‘현대적인 진리관과 지식인상’ 정도가 적당한 것이 아닐까 한다. ‘제목’은 해당되는 글의 내용을 대표하면서도 간단할 수 있다면 바람직할 것이다. 한 제목으로 논술문의 내용을 적시하기가 어렵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부제를 덧붙여 내용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논술】일반적으로 지문이 제시되고 그와 관련해서 논술문을 작성하게 될 때, 무엇보다도 제시문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 이해에 바탕하여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개진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문제에 대해서 비판적 태도를 가지는 것은 권장할 일이나, 어떤 경우라도 비판을 해야만 좋은 논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제시된 주장이나 견해가 옳다고 생각되지만 그것을 위해 제시된 논거는 충분하지 않다고 여겨질 때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취약한 논거를 필자 자신이 강화해서 제시문의 주장을 더 설득력 있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논술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제시문의 주장이 옳지 않다고 여길 때는 그렇다고 단정만 할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해 합리적 근거들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논술은 자기의 주장을 강변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그런가?’, ‘반드시 그래야 하는가?’, 아니면 ‘왜 그렇게 되었을까?’ 혹은 ‘달리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하는 식으로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견해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고 또 철저하게 생각해본 흔적을 담겨 있어야 한다. 예컨대 이번에 참가한 많은 필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진리는 보편적이어야 한다’고 단정하고 있지만, ‘진리’와 ‘보편성’의 의미 혹은 근거 그리고 그 타당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되물어 본 논술문은 드물었다. 근거가 확실하지도 않은 고정관념들을 미리부터 옳다고 단정하고 이것을 훈시적으로 내지는 감정적으로 강변하는 유형의 글이 적지 않게 눈에 띈 것은 아쉬운 점이다.
이런 전반적인 사항을 감안할 때 이 글은 여러 장점을 보여준다. 이 글은 제시문의 주제를 대체로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며, 이 이해에 기반하여 자신의 언어로 제시문의 주장을 해석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돋보이는 점은 이 글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적 냉철함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의 필자는 문제가 되는 사태를 일단 객관화해서 한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게 사고하고, 또 균형 잡힌 언어로 서술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이것은 평소 정확히 글을 읽고, 차분히 생각하고, 신중히 글을 쓰는 공부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바람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내용에 관해서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필자는 진리가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음을 한편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 이와 관계없이 ‘진리의 본질’은 보편적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는 그렇게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 진리의 현실적 다원성을 인정한다면, 이를 넘어서 보편적으로 타당한 ‘진리’가 있다는 주장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사실상 철학적 사고를 요구하며 당연히 이런 짧은 글에서 다룰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손쉬운 절충이나 당위적인 주장에 만족한다면 그것은 문제를 우회하는 것이지 그것과 끈질기게 대결하는 사고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 지점이야말로 일탈을 두려워하지 않는 좀 더 모험적이고 철저한 성찰적 사고가 필요한 자리가 아닐까? 끝으로 이 글의 문체는 이미 지적한대로 전반적으로 나무랄 데 없지만 - 시간적인 제약 때문이라고 짐작되는데 - 한두 곳에서 다소 매끄럽지 못한 표현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흠이 이 글이 가진 많은 장점을 상쇄시킬 수 없음은 물론이다.
♠금상 수상작♠
이지현(명덕외국어고등학교)
【요지】
오랫동안 지식인은 진리와 정의의 대변인이자 동시대의 양심과 의식의 지표로서 그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식인은 현실적인 문제에도 관여하게 되었고,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어느 정도의 정치적 책임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진리 역시 일반적 정치 체계가 될 수 있으며 사회 구조와 본질적인 연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제목】
현대 사회에서 요구되는 지식인의 바람직한 역할
【논술】
‘선비 정신과 청백리 사상’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사상과 생활은 이 두 가지의 틀 속에서 그다지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지식인’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그들이 가지는 분위기는 ‘깨끗함과 양심적임’이라는 것이다. 남보다 많이 앎으로써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만, 동시에 주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책임을 중시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다만 굳이 옛날과 오늘을 비교한다면, 오늘날의 지식인과는 다르게 역사 속의 지식인들은 정치와 깊게 맞물려 있었다는 것이다. 학식과 능력은 곧 정계로 통하는 수단이자 발판이었기 때문에 웬만한 지식인들은 정치가로서의 역할도 함께 수행해 내었다. 현대사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암울했던 ’70~’80년대에서도 지식인의 역할은 양심을 지키고 시대정의를 수호하는 것이었다. 조선시대 지식인의 참모습이 국왕에게 직언하는 선비의 모습이었다는 사실은 그 전과 그 이후로도 계속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식인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사회 구조의 변화는 늘 다른 것들과 유기적으로 맞물려 총체적인 변화를 일으켜 왔듯이 그 속에 포함된 지식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전의 지식인들이 동시대의 양심과 의식의 지표로서, 그리고 진리의 대변인으로서의 역할을 했다면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그보다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관여를 요구받는다. 이러한 변화는 앞서 말했듯이 사회 전반적인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사회는 예전에 비해 탈이념화되었고, 정의와 부정의―물론, 이러한 문제들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양심과 비양심 등과 같이 도덕 문제를 구분하고 판단하는 분위기를 가지기보다, 이윤을 따지는 경제 논리나 이 경제 논리를 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한 정치 체제, 국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 방법 등에 더욱 비중을 두는 쪽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마디로 사람들은 이념과 가치를 따지기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와 같은 현실 생활을 좌우하는 경제 문제에 관심을 더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또한 오늘날의 지식 분야는 예전보다 훨씬 양도 방대하고 질적으로도 복잡해져서 일반인들은 그 근처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생소할 정도로 세밀화되고 특수화되어 있다. 그 안에서 지식인들이 자기들만의 권력을 잡기란 어려운 일이 아닐 뿐더러, 설사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사회와 현실적으로 연관된 오늘날 지식의 특성상,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가령 핵 물리학자가 정치적인 목적이 없는 상태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핵연료를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말들었다고 하자. 그는 순수하게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발전을 이루어낸 것이기는 하지만, 그 연구 결과의 파장은 단순히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만약 그가 강대국이 아닌 이른바 약소국의 국적을 가진 국민이라면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 하나로 국제 정치의 판도까지 뒤바꿔 놓을 수도 있다.
제시문에서는 진리라는 것이 정치 체계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진리라는 것은, 권력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 내부, 더 크게 범위를 확대하면 우리 사회의 구조와 본질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진리 체계가 정치 체계라는 말은 곧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의 가치, 지식들이 정치 논리 안에서 움직인다는 이야기다. 물론 다른 각도에서 볼 때 진리 체계라는 것이 그 사회에 속한 구성원들을 하나의 목표로 이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정체 체계와 비슷한 효과를 가진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제시한 것은 그것과 다르다. 이 말에 따르자면, 정치 논리에 상충되고 그 정치 논리가 만들어 놓은 규범화된 제도와 틀을 벗어난 가치와 지식들은 충분히 그 사회로부터 배제 당할 수 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고, 언론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결국 이미 제도화된 틀에 맞추어져 생산된 지식과 정보에 불과하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극단적인 과장일 수도 있으나, 어느 정도 우리 사회에 그러한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반대로 고려해 본다면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진리와 정치성은 전혀 어울릴 수 없는 것처럼 보이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히 존재한다. 나치도 그러했고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의 독재정권도 그러했다. 정치성이 인간 집단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권력 구조의 특성이자 각 사회의 모습이 직접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것이라면 진리는 보편적인 인간의 눈으로 바라볼 때 정치와는 거리가 멀게 추구되어야 하는 인간 사회의 목표다. 진리의 구현을 위해 정치가 그 수단이 될지언정, 정치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진리는 그 존재부터가 진리라고 부르기 꺼림직하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의 지식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매우 복잡하게 전개될 수도 있다. 그들의 의사나 활동이 직접적으로 정치와 경제로 연결된 것이 아니므로 그 영향력을 가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진리가 우리 사회에서 정치 논리나 경제 논리에 의해 주조될 수 있다는 것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그들의 역할을 명확해진다. 진리가 사회 전체적인 정치적 요구나 경제적 생산에 의해 소비되는 ‘상품’이 되지 않도록 막는 일이다. 진리가 상품처럼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며 물량화된 가치로 통용된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그 사회 내부 구조를 이념적으로 지탱해야 될 진리가 상품이 되어버린다면 그 사회는 내부 구조에서부터 통째로 흔들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의 역할이 단순히 지식의 양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사용해 진리를 바로 세우는 일에까지 나아간다면 우리 사회의 진리는 경제 논리에, 혹은 정치 논리에 휩쓸리지 않는 확고한 지위를 가지고 우리 사회를 지탱할 것이다. 진리가 바로 세워질 때 흔히 말하는 이상적 사회로의 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지식인은 변화하는 사회 구조에 맞물려 변화하는 진리 체계를 진리다운 진리 체계로 바꾸는 데 일말의 의식이라도 지닌 사람을 의미한다. 아무리 사회가 변화하고 그 구조가 복잡해진다 하더라도 인간 사회가 추구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진리를 지키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지식인이 가지는 몫인 것이다.
▶심사평◀
【요지】제시문의 요지는 제대로 파악했다고 생각되지만 각 문장들의 전체적인 연관성이 약하다. 보다 짜임새 있게 요지를 작성했으면 한다.
【제목】나무랄 바 없는 제목이다.
【논술】과거사회와 비교해서 현대사회에서 지식인이 처한 특수한 상황과 이러한 상황에서 지식인이 수행해야 할 바람직한 역할에 대해서 차분하면서도 논리적인 일관성을 잃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는 우수한 글이다. 제시문의 주장을 수용하는 부분에서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면서 제시문의 내용을 보다 분명히 부각시키면서도, 현대의 지식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과감하면서도 조리 있게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논평자는 다음과 같은 점은 이 글에서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글쓴이가 현대의 지식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밝힌 부분부터는(“제시문에서는 진리라는 것이 정치 체계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부분부터) 글쓴이가 제시문의 주장에 찬동하면서 그것을 보완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비판하고 있는지가 상당히 불분명하다. 전체적인 논지로 미루어 볼 때, 글쓴이는 제시문의 주장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현대의 지식인들이 기존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논리에 의해서 종속되지 말고 진리를 수호할 과제를 역설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만약 글쓴이가 자신의 이러한 견해가 제시문의 주장과 대립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제시문의 주장을 오해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현대의 지식인이 기존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담론구조에 종속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는 식으로 제시문의 주장을 파악하면서 그것을 비판한 글들이 이번 경시대회 응시자들의 답안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오해는 제시문을 신중하게 읽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제시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대의 지식인들은 전문적인 일에 몰두하고 있고 이러한 전문적인 일들은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과 무관한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지식인들은 그러한 사실을 직시하면서 자신들의 막중한 책임을 깨닫고 기존의 권력구조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제시문의 주장을 이렇게 파악할 경우에는 글쓴이의 비판은 과녁을 잘못 설정한 것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 만약 글쓴이가 제시문의 주장을 비판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완하려 했었다면 글쓴이의 글은 자기모순을 안고 있는 글이 된다. 이는 글쓴이의 글에서는 제시문의 주장을 비판하는 뉴앙스를 풍기는 글귀들이 종종 눈에 띄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고등학생의 글로서는 매우 훌륭한 글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글쓴이의 발전을 빈다.
♠은상 수상작♠
김성현(한영고등학교)
【요지】
지식인은 이제 보편적 진리의 대변인으로서의 역할이 아닌,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오늘날 구체적 지식인들의 정치적 역할은 중요해졌다. 그리고 각 사회는 그 나름의 진리 체제인 일반적 정치 체계를 갖는다. 진리는 정치적, 경제적 과정을 통해 성립, 확산, 전파된다. 진리 체제는 사회의 구조, 기능과 본질적으로 연관되며, 지식인은 그 가운데 역할을 수행한다.
【제목】
보편적 진리 추구에 바탕을 둔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
【논술】
오늘날 지식인은 사회의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문제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다. 지식인은 자신이 속한 학문 영역에서의 진리 추구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사회에서 실제로 발휘하는 과정을 통해 더욱 뚜렷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받는 듯하다. 이런 현상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원자폭탄 제조에 참여했던 미국의 과학자들로부터 유전자 지도 완성 작업에 참여하는 현재의 유전 공학자들에 이르기까지 과학자들이 추구하는 진리도 마치 정치, 경제적 목적과 결부된 것처럼 보인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몇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부각되었던 신지식인론도 다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최근 나타난 보수-진보 지식인간의 논쟁은 정치적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런 현상들을 근거로, 이제 사회의 구체적인 문제와 동떨어진 보편적 진리의 추구는 지식인에게 더 이상 무의미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지식인의 참된 역할 은 무엇이며, 그들이 추구하는 진리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이러한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진리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진리의 본질은 ‘보편성’에 있다는 데 있다. 누구에게나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또 세속적인 이해관계가 개입되지 않은 진리가 참된 진리이다. 따라서 단순한 개인적인 주장, 정치인의 논리, 상품의 광고 등과 진리는 확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오늘날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이 아무리 중요해지고 있다 하더라도, 지식인의 생명이 보편적 진리 추구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지식인이 사회에 대해 갖는 정치, 경제적 영향력도 사실은 그들이 지닌 진리 추구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보편적 진리라는 토양에 뿌리내리고 있지 않은 지식인은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없다. 그 예로 최근의 언론사 사태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는 황 모 작가와 이 모 작가의 경우를 들 수 있다. 그 두 사람 각각에게 지지 세력이 있고, 또 두 사람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각자의 작품세계를 통해 진리를 추구해 온 지식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즉, 그들은 정치적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내놓는 구체적 지식인이기 이전에 작품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보편적 지식인인 것이다. 지식인의 일차적 과제는 보편적 진리 추구에 있다. 일반인도 지식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들을 지식인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진리 그 자체와 진리의 사회적 파장을 혼동해선 안 된다. 진리 그 자체는 정치 혹은 권력과 별개일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에서 진리가 출판, 대중 매체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전파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리의 탄생과 성립 과정에까지 정치 논리 혹은 경제적 이윤 동기가 개입될 수는 없다. 시작부터 특정한 정치, 경제적 의도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진리는 참된 진리가 될 수 없다. 그것은 하나의 특수한 논리, 또는 의견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교과서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주장은 진리인가, 아니면 단순한 논리에 불과한가? 그들의 주장은 명백히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을 담은 교과서는 출판이라는 장치에 의해 전파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주장을 진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의 주장은 보편성과 타당성을 지닐 수 없으며, 따라서 단순한 논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이 만약 정치적 의도와 선입견을 배제하고 교과서를 만들었다면, 그들의 주장이 진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참된 진리를 도출해내기 위해서는 정치, 권력 등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진리가 정치, 경제 등 사회의 구조에 영향을 주고, 또 정치․경제적 과정을 통해 전파된다 하더라도 진리의 성립에까지 정치 논리 혹은 이윤 논리가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바른 자세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지식인은 보편적 진리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보편적 진리는 제쳐둔 채 사회 참여와 영향력 행사를 도모하는 것은 참된 지식인의 자세가 아니다. 이것은 중국 춘추 전국 시대의 제자백가들의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제자백가들은 사회 참여와 사회 개혁을 원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그들은 모두 각자 나름대로 보편적 진리를 추구했던 것이다. 유가, 법가 등은 먼저 사회의 바른 모습, 즉 보편적 진리를 도출해내기 위해 학문적 탐구에 힘썼다. 그것을 바탕으로 그들은 사회에의 정치적, 경제적 참여를 도모했던 것이다. 단순한 논객과 진정한 지식인을 가르는 기준은 그가 진리를 추구하며, 그것을 근본으로 삼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도구주의적 진리관에 빠져 학문 외적인 측면을 우선시 하는 것은 올바른 지식인의 길이 아니다. 그런 자세로 학문을 하게 되면 진리는 점점 멀어지고, 지식인은 권력이나 돈의 노예가 되어 버릴 것이다.
오늘날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이 증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은 지식이 가치 창출의 핵심이 되는 지식 기반 사회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지식인은 ‘구체적 지식인’이기 이전에 ‘보편적 지식인’이어야 한다. 지식인의 사회적 활동을 ‘말’에 비유한다면, 그가 추구하는 진리는 ‘생각’에 비유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이 있어야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식인도 보편적 진리 추구를 바탕으로 사회적 활동을 전개해야 하는 것이다. 현대와 같이 정치, 경제 등 학문 외적인 측면에 진리가 휘둘리기 쉬운 시대에 지식인은 같이 휩쓸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편적 진리를 수호해 내야 한다. 지식인의 본질은 진리 추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