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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공은 한달만 기다리면 된다는 낭정좌의 말을 전했고, 감휘 등의 부하 장수들은 이에 격렬하게 항의했습니다.
"구걸에 가까운 호소는 위장이며, 어떠한 담보도 없이 평화를 청하는 자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것, 손자병법에서도 그리 말하지 않습니까?"
지금 남경은 원군을 기다리고 있으며, 시간이 갈수록 남경을 공략하는것은 어려워질것이라고 하며 그들은 정성공을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정성공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가 남경 도독의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진실로 믿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지난번에 정성공은 양자강 상류로 진격하겠다고 했는데, 이러한 판단은 자신의 발언과 완전히 배치되는 일입니다. 자기가 버티고 있으면 수 많은 남경 내의 한족들이 먼저 반응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과거에 남경에서 공부했던 경험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고, 이 당시의 그는 이해할 수 없는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혹자는 정성공이 자기 생일날에 맞춰서 남경을 함락시키려 했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릴없이 보름이 지났습니다.
군사들의 기강은 점점 느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남경으로부터는 어떠한 저항의 낌새도 없었고, 정성공의 군사들은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고 조용하기만 한 성벽을 따분하게 지켜보았습니다. 경계 근무를 맡은 포위 병사들은 성 주변을 어슬렁 거리거나 성벽 앞의 커다란 해자에서 낚시를 하기까지 했습니다. 술병을 차고 보초를 서는 병사들도 있었습니다. 급기야 맍족 진영으로 탈주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일은 어려운것도 아니었습니다. 투항하는 자들은 그냥 걸어서 남경 안에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항복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은 정성공 부대에서 오랫동안 싸운 베테랑이었으나, 과주성 전투에서 현지의 소녀를 강간하려다가 정성공의 제지때문에 실패했고, 목이 잘려질 뻔했으나 그간의 공을 생각해서 군료를 대폭 깎는 수준에서 끝났습니다. 그는 성에 들어가 낭정좌에게 말했습니다.
"정성공 군사들의 불안감이 날로 고조되고 있고, 기강은 풀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성공의 생일 축하연이 준비되고 있으니, 혹시 적의 기강이 해이해질 때를 기다린다면 그 날 밤이야말로 적기입니다."
이러는 가운데 도성 후문까지 만주족의 원군이 도착했지만, 오히려 정성공은 기고만장하여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증원군이 오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하루면 그들을 몰살시키거나 항복을 받아낼 수 있을 테고, 따라서 앞으로 많은 싸움을 하는 수고로움을 덜을 수 있을 것이다."
라는게 요지입니다. 하지만 부하 장수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관운장과 비슷……한게 아니라 아예 똑같이 생긴 감휘 상. 관운장 닮았다면 대체로 평가가 좋다는 소리죠.
정성공의 오랜 수하이자 벗이자 신뢰하는 동료인 감휘가 가장 먼저 인내심을 잃었습니다. 이때 만주족의 한 부대가 도성의 서문으로 나왔습니다. 도발을 일삼던 병사들은 곧 물러나 양군의 인명 피해는 거의 없었지만, 감휘는 만주족이 아군의 방어 능력을 시험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적군의 저런 태도를 이유로 들어 항복을 기대하면 안된다고 주장했고, 이는 타당한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귀신이라도 쒸였는지 정성공은 남경이 싸우지 않고 항복해올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정성공은 감휘에게 진정하라고 당부하며, 만주족의 원군이 설사 당도하여 싸움이 벌어진다 해도 아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항복을 안한다고 쳐도 이기는건 문제가 아니라고 본것입니다.
"우리가 저들에게 물리적으로 공격을 가할수는 있지만, 그 경우 저들의 마음까지 승복시키지는 못할걸세."
감휘는 너무나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 뛰쳐나오고선 울화를 내뱉었습니다.
"나는 두 번 다시 오늘 일을 입에 올리지 않으리라!"
결국 감휘가 옳았습니다. 첩자들은 이미 정성공의 부하들 속에서 암약하고 있었습니다. 남경을 지키는 낭정좌는 현지 농부로 위장시킨 첩자를 포위대의 진지로 들여보내 술과 음식을 팔았습니다. 처음에야 당연히 쫒겨났지만, 포위가 길어지면서 군기가 느슨해지자 그들은 환영을 받는 존재로 바뀌고 맙니다. 식품을 파는 그들은 그 과정속에 정성공 군사들의 상태와 군수물자 보관소의 위치등을 주위 깊게 살필 수 있었습니다.
이 원정 당시에는 일본에 원병을 구하러 가기도 했던 주순수도 종군 했었는데, 그는 당시 정성공 군대의 상태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작은 승리에 익숙해져, 상명을 따르지 않는다."
정성공 군대의 취약성은 곧 증명이 되었습니다. 어느날 정오, 500여명의 만주족 병사가 난데없이 기습을 가하자 넒게 진지를 펼친 정성공 군대는 적의 공격 사실도 뒤늦게 깨닫고 우왕자왕했습니다. 500여명의 만주족 부대는 철수전에 정성공 부대의 1개 포위대를 궤멸시켰으며, 그보다도 더 심한 피해는 장작더미에 불이 옮겨붙으면서 발생했습니다. 정성공은 조금 뒤로 물러났습니다.
진정한 역습은 다음날에 일어났습니다. 전날의 수백명 단위가 아니라 수천명이 넘는 정예병이 물밑듯이 튀어나왔고, 엄청난 함성 소리와 함께 대포를 쏘아댔습니다. 넋을 놓고 있던 정성공 부대는 바다처럼 쏟아지는 대포와 불화살 세례에 기겁을 하고 맙니다.
동시에 정성공 진지내에 암약하던 첩자들도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빈 술항하리에 폭탄이 담겨져 있다가, 가장 큰 화약고에 폭발시키자 주변 일대는 물론 인근에 정박해 있던 선박까지 날아가버렸다고 합니다. 폭발 그 자체보다도, 앞뒤에서 공격을 받고 있다고 오해가 퍼져 군대의 상황은 더 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승세를 깨달은 만주족 부대가 전력을 다해 공격하자 정성공 부대는 질서 있게 퇴각도 못하고 강을 따라 동쪽으로 달아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감휘, 만례, 장영, 임승, 진괴, 남연, 이필, 반경종 등 숱한 명장들도 어이없이 횡사해버리고 맙니다. 남경 강변에서 만주족 부대가 건져올린 시체만 4,500개구에 이르렀으니, 건져져지 못한 시체나 강에 빠지기전에 사망한 병사들, 뿔뿔이 흩어진 병사들을 모두 합치면 피해가 어마어마 했을 것입니다.
퇴각한 병사들은 간신히 그 날밤에 진강에 도착했습니다. 진강은 주전빈이 지키고 있었는데, 용맹한 그였지만 지난번에 화살을 5발을 맞은 탓에 후방에서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성공은 부상자들 사이에서 감휘를 찾아 나섰다가, 그가 죽었다는 소리를 듣자 정말 때늦은 탄식을 했습니다.
"내가 그의 말만 들었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미 일어났습니다. 정성공은 다른곳을 무시하고 곧장 남경으로 진격하면서, 남경에서 시간만 끌어먹는 동시에, 점령했던 도성들에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다지지도 못했습니다. 만약 그리했다면 패배는 일시적인 후퇴에 그쳤겠지만 지금은 다 틀린 일이었습니다.
10년의 공업이 물거품이 된 순간입니다.
달아나야 했습니다. 10년간 모은 정성공과 명 유신들의 군자금은 이미 바닥을 보였고, 곧 만주족의 부대가 밀려올테지만 진강을 지키기는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격론 끝에 정성공의 함대는 해안으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바다로 나가면 여전히 정씨 가문은 가장 막강한 존재였습니다.
문제는, 양자강 유역에 이르러 새로 정성공에 합류한 세력과 동맹들이었습니다. 그들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었고, 자신들을 버린다는 소리나 진배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제발 머무르라고 애원했지만, 정성공은 부하 장수들을 새로 임명하며 진강을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위험한 후미는 용맹한 주전빈이 자원해서 맡아 부대를 지켰습니다. 정성공과 별개로 군대를 상류까지 밀고 올라간 장황언은 난감하게 되었습니다. 그후로도 그는 싸움을 계속하다가, 부하의 배신으로 처형당합니다.
정성공은 퇴각중에 숭명도(崇明島)를 공략하려 했으나, 이미 기운이 떨어진 정성공 부대는 별다른 힘을 내지 못했습니다. 주전빈 조차도 훗날을 기약하자고 조언하자, 자신감이 떨어진 정성공은 동의하고는 하문으로 돌아갔습니다. 북벌 싸움은 이로서 완전 종료된 것입니다.
정성공은 돌아온 즉시 영력제에게 연락을 취해 연평왕의 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일개 무장으로 남겠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또한 순치제에는 휴전을 시작하자고 서한을 보냈습니다. 일전에 청나라 사신들을 조롱하던 그의 태도도 대패끝에는 풀이 죽은것입니다.
북경 조정은 물론 안심했지만, 휴전을 허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정성공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물론 휴전 서한만 봐도 이는 거짓이었지만, 굳이 청나라 조정은 이 소문을 부인하는 조치를 취하진 않았습니다. 순치제는 황실 일족중에 한명을 "토벌대장"으로 삼았습니다. 당시 정성공은 부하들의 탈영을 막기 위해 쩔절매던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청나라는 기괴하게도 만주족 함대를 구성하여 공략을 가했지만, 물론 상대가 될리가 없었습니다. 함대는 거의 전멸했고, 정성공은 상대방의 사령관에서 아녀자들이 사용하는 손수건에 모욕적인 글을 휘갈겨 써서 보냈습니다.
"더 이상의 싸움을 그대가 원치 않는다면, 이 손수건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지."
허세를 부리고는 있었지만, 다음에도 이런 공격이 가해진다면 또 버틸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습니다. 문제가 있었는데, 만주족 정권이 몇가지 새로운 계책을 부리는것 때문이었습니다. 계획을 낸 사람은, 본래 정성공 부대의 일원이다가 적에 항복한 황오였습니다.
순치제는 이 배신자의 말을 곱씹었습니다. 그의 계획은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정지룡의 처형입니다. 황오는 정성공이 가문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지룡을 처형하여 그가 정성공이나 정씨 일족과 연계될 기회를 완전히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두번째는, 더러운 술책이었는데 정성공이 조상들의 후광을 받지 못하도록 정씨 가문의 신산을 완전히 파괴해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순치제 역시 저급한 술책이라고 생각하긴 했으나 준비는 하고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투항자들에 대한 보상을 제도화하는것입니다. 투항자들에게 보상을 내리는것은 기존에도 하고 있던 일이지만, 황오는 이를 제도화 하여 과정을 효율적으로 진행하자고 진언했습니다. 또한 투항자들을 적극 기용하는 문제도 말했습니다. 지금까지는 투항자들을 그들이 힘을 못쓸 위치에 배치하여 위험성을 줄였지만 이는 비효율적인 일입니다. 이를테면 시랑, 전중국 최고 수준의 해군 대장인 그가 투항한지도 몇년이 지났지만 시랑은 아무것도 하질 못하고 있었습니다. 정씨가문을 함대전으로 물리칠 인물이라면 청나라 전역에서 시랑밖에 없었습니다.
세번째로, 정성공은 바다에 있지만, 그 힘을 유지시켜주는것은 어디까지나 육지입니다. 비밀 동맹 세력이 해안가에서 정성공에 지원을 하고 있었고, 이를 전면 차단해야 했습니다. 황오 자신이 정성공 부대에 있기에 사정에 밝았는데, 엄벌을 각오하면서까지 정씨 상단과 교역을 하려는 밀수꾼들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이를 막는 방법은 단 한가자입니다. 해안 지역의 모든 교역은 불법이므로, 범법자들은 모두 처형하면 됩니다. 범법자들을 고발하는 자는 범법 상인의 전재산을 가지게 되고, 해안 지역에서 배란 배는 모두 불살라 버리게 했습니다.
마지막은, 너무나도 거대하고 어마어마한 계획이었습니다. 대청제국의 황제인 순치제조차 잠깐 머뭇거릴 만할 정도로 대담한 계획이었습니다.
전 해안의 봉쇄. 바다 전체에 둘러지는 벽.
광저우부터 시작하여, 해안선을 따라 북경 근처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모든 해안에서 주민들을 완전히 소개시키는 방안입니다. 바다에서 50km 이르기까지 육지의 어느 누구도 거주하지 못하게 하고, 이를 어기면 극형에 처하게 됩니다. 농부와 어부들은 모두 불과 며칠 내로 고향을 떠나야 하고, 그들이 살던 집은 무자비하게 박살하여 파괴시키는것입니다. 가옥과 헛간은 불에 타고, 곡식은 한 톨도 남김없이 치워지고, 배들은 모조리 바다 속으로 가라않지는 것입니다.
어느 지역의 주민들은 이를 심각하게 여겨지 않았고, 칙령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곡해가 생긴것이라 생각했으나 곧 횃불을 들고 온 병사들을 보자 경악하고 맙니다. 그들 모두가 집 밖으로 내몰렸고, 황오의 말 한마디로 수십만이 넘는 중국인들이 눈깜짝할 사이에 유민이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감시했습니다. 한가족이 굶주리는 여승에게 식사를 대접했는데, 여승은 바다 출입이 금지 된 상황에서 해초가 음식으로 나오자 금화 20냥을 주지 않으면 금지 구역에 들어간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이런 판국이자 해안가에서 모든 주민들이 사라졌고 오직 만주족의 순찰대만이 어슬렁 거릴 뿐이었습니다.
해금령은 단기적으로 보면 정성공 부대에는 좋은 일이었습니다. 만주족 병사들이 모든것을 잿더미로 만들기전, 정성공 부대는 해안가에 자유로이 드나들어 텅빈 마을에서 물품을 싹쓸이 해갔습니다.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조치에 격분한 해안가 주민들이 정성공 부대에 합류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허나, 시간이 흐르자 물자 공급이 끊기고 영력제와의 연락도 어려워지면서 정성공은 곧 극심한 타격을 받게 됩니다. 다만, 대만을 이용한 루트의 무역로가 살아 있었습니다.
해안가가 모조리 봉쇄된 상황에서, 정성공은 자신이 다시 대업을 이루려면 몇년이 걸릴지 짐작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해야했고, 대만은 또 그 계획을 실행시켜줄만한 자원이 있었습니다. 정성공이 대만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네덜란드 인들, VOC의 생각은 물론 달랐습니다. 그들은 순순히 대만에서 비켜줄 의도 따윈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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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직 어리고 경험이 적어서 그런지 그 대단한 명성에 걸맞는 능력은 못보여주네요. 대만 정벌때는 뭔가 보여주려나요. ㅎㅎ
흐음. 역시 해양세력을 고사시키는데에은 해금책이 갑이군요.......
그냥 명장이라기보다는 유생이군요 ㅉㅉ
제가 본 글에서는 자기 생일날 남경입성을 생각했다고 무지막지하게 욕하더군요ㅡㅡㅋ
여기까지만 본다면 명장이나 영웅은 커녕, 충성심만 뛰어난 유생에 가까운 자네요. 보면서 정말 어이가 없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