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 남쪽 끝까지 내려왔다.
오는 길의 탐진댐 수위가 아직 많이 낮다.
이번 장마로 수도권은 비가 제법 왔지만
여긴 아직 충분한 비가 오지 않았나보다
뜨거운 햇볕이 폭우처럼 뿌려지고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모든 것들의 이성은
펄펄 끓어 허공중으로 흩어져
뜨거운 감성의 그림자만 흐느적거린다.
오늘날 시골의 모습은 내면에 자리한
유년의 풍경을 늘 배반한다.
나즈막한 민둥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던
초가집의 고향 마을은 국적을 알 수 없는,
아무렇게나 페인트가 칠해진 어색한
원색의 지붕들이
얼기설기 얽힌 전깃줄들과 키큰 전봇대
아래 그리다 만 그림처럼 무질서하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가엔 고향을 떠나
올 때 붉은 울음을 송송 터트릴 듯
고개 숙이던
올벼꽃(배롱나무꽃)이 일찍 피었다.
봄의 보릿고개를 넘고
헛배 불린 보리밥 방귀가 성근 모시 삼베
바지 올 사이로 빠져나가면
슬그머니 꽃망울을 내밀어 올벼쌀
흰쌀밥 고봉으로 밥상에 오를 때까지
줄곧 피어 배고픔을 기대와 설렘으로 달래주었다.
올벼꽃나무가 지키고 있는 문전 옥답
비릿한 볏잎 서걱이는 소리를 먹고
따뜻한 논물 속 우렁이들이 꿈틀꿈틀
자라는 소리를 아랫배가 듣고
나도 이만큼 키가 자랐는데 올벼꽃나무는,
배롱나무는 남의 배고픔만 대신 했는지
그 때 키 그대로 아담한 높이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와
자식 목구멍에 밥 넘어가는 소리라고
하듯 가장 기분 좋은 바람도 있다.
국민학교 4학년 음악시간에
산위에서 부는바람, 여름에 나뭇군이
나무를 할 때 이마를 씻어주는 그바람을
가장 좋은 바람이라고 노래 불렀다.
그러나 내게 가장 좋은 바람은
한여름 벼논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이었다.
배롱나무꽃을 한 컷 휴대폰으로 찍는다.
가슴 안으로 논바람 한줄기가 불어온다.
그 바람, 내 손목을 잡고 기억의 깊은
골짜기로 나를 데려가는 바람이다.
소가 핥듯 눕는 볏잎들 위로 부는 바람이
조금 서늘해지면 아버지는
올벼 논 가 높은 둑에 원두막을 지었다.
아버지는 우리 집 가난을 때리고 때리듯
네 개의 굵은 말둑을 땅속 깊이
망치로 내려박고, 기둥을 세우고,
생솔 가지를 얽어 지붕을 만들고
묵은 볏집 마름을 올리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의 은밀한 집이 만들어 졌다.
아직 여물지 않은 올벼를
참새들로부터 지켜내는 늦여름 한 철은
어린 내가 우리집 가계에 한 몫 하는 때였다.
원두막 지붕 볏집 마름 속에 숨겨놓은
풋감이 홍시가되어 갈 무렵이면
새를 날리는 나의 목소리도 쉬고,
후여~~후여~후~우여
새를 쫓는 이웃 원두막 할머니의 소리는
사뭇 울음이었다.
그러면, 그 때가 되면
아버지는 서툰 지게를 지고 나와
지게질보다 서툰 왼낫으로
아직 여물지 않은 풋벼 몇 줄을 베었다.
소죽 끓이는 가마솥에서 익어가는
올벼 냄새가 새벽하늘보다 먼저
참새 새끼들 같은 우리 칠남매의 목구멍
으로부터 밝아왔다.
지금 저 올벼꽃나무 아래 벼논 위로
불어오는 하늬바람 속 그 때의 풋 올벼
냄새가 나의 자동차 에어컨이 힘겹게
내뿜는 현대식 바람도 씻어주지 못 하는
목덜미의 땀줄기를 원시적으로 서늘하게 식혀준다.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진평종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