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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농민인문학 [닦음과 행함] 원문보기 글쓴이: 목암 전희식
농민들에게 조건 없이 월급을 지급한다면?
농민기본소득제와 대자연 상속자 논리
전희식(nongju)?
지난 4월에 꼬박 22일 동안을 중국에 머물면서 틈틈이 자연재배 농장들을 둘러보았고 그 농부들을 만났다. 대화 도중에 그들이 한국의 귀농운동을 소개 해 달라고 해서 귀농의 추세와 배경, 그리고 귀농운동본부의 활동 과정을 이틀 동안이나 준비해서 두 시간여에 걸쳐 빔프로젝트를 이용해 내 나름대로 성의껏 전했다.
사회주의는 서민들의 천국?
중국의 농부들이 놀라워하는 것은 조직운동 그 자체였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율적인 조직운동을 해 본적도 없고 상상조차 불가능했기에 더 그랬던 듯하다. 질문도 그 부분에 집중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이번에 만난 중국의 자연농부들은 놀랍게도 2005년도에 중국을 방문한 조한규선생의 강의와 워크숍에 참석했던 분도 있었고 중국어로 번역된 그의 저서를 갖고 있는 분도 있었다. 그들에게 내가 가져 간 조한규 선생의 자제이신 조영상선생의 자연재배 자료집을 전해 드렸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의 농법과 생활은 우리하고 다른 것들이 많았고 내 눈에 부러운 것들도 많이 보였다. 내가 1996년에 큰 물 피해를 당해 기근이 심했던 북한 땅에 밀가루를 넣어주기 위해 갔던 중국을 근 20년 만에 다시 간 것인데 가서 보니 마치 처음 방문 한 것과 같을 정도로 참 많이도 변해 있었다.
글의 주제 상 다른 건 다 생략하고 관련 있는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을 소개 해 보겠다.
지하철 최하요금이 2위안 이었고 버스요금은 1위안이었다. 1위안은 우리 돈 174원이다. 노동자나 농민에게 그야말로 큰 위안이 되는 요금 체계였다. 다른 물가는 우리보다 더 비싼 것도 있고 비슷한 것도 있었다. 내가 생활했던 상하이와 그 주변을 기준으로 그랬다.
일행 한 분이 몇 번이나 사회주의는 노동자나 서민에게 진짜 천국이라고 했다. 중국의 농민공 문제를 알기에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려웠지만 수긍되는 바도 있었다. 3일 연휴로 즐기는 노동절 축제를 겪으며 더 그랬다.
3일 동안을 축제하느라 폭죽 터지는 소리가 밤낮으로 들렸다. 와이파이 지역에서 고국의 소식을 스마트폰으로 접하고는 기분이 더 참담해졌다. 서울 거리를 경찰들이 장악하고는 독성의 물대포를 노동자들에게 뒤집어씌우고 있는 소식이라서 말이다.
폭죽 불꽃이 밤하늘로 솟아오를 때마다 차라리 외면하고 싶었다. 노동절에는 노동자들이 그날 하루만큼이라도 시름을 놓고 나들이도 하고 놀이터도 가고 그래야 하거늘 행진도 못하게 차벽을 쌓고 물대포를 뒤집어씌우니 고개가 절로 가로 저어졌던 것이다.
노동절 때 놀랐던 건 하나 더 있다. 연휴기간 내내 모든 도로 통행료가 면제되더라는 점 때문이다. 우리가 농부 행사를 열었던 총밍섬에서 상하이로 나가는데 평소 같지 않고 차량이 너무 밀렸다. 고속도로 통행료가 전액 무료가 된다고 했다. 모든 연휴 때는.
농사의 안정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사람이 몰리는 곳은 바가지요금이 극성이고 사람을 존엄한 인격체로 보기보다는 돈벌이 대상으로 바라보는 자본주의적 시스템하고 매우 다르구나 싶었다. 한국에서는 연휴나 명절 때면 고속은 고사하고 거북이도로가 되는 고속도로가 통행료를 면제하기는커녕 깎아 줬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도 없다.
고속도로라고 만들어 놓고 차량이 밀려서 속도가 시속 20킬로나 30킬로도 겨우 나온다면 통행료를 반으로 깎아줘도 도로공사는 손해 볼 것도 없으련만 요금을 다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서처럼 노동자나 농민 등 서민들의 기초생활이 가능하도록 기본정책이 충실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해 보인다. 중국에서 우리의 5일장 같은 데를 가 봤는데 2위안이면 아침 때우는 게 가능했다. 우리 돈 350원으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이 아닌가? 물론 중국의 공항이나 도심은 우리 뺨치는 가격의 음식들도 있다.
우리가 거론하는 농민기본소득도 같은 이치다. 모든 사람들은 음식, 의료, 교육, 주거, 문화, 의복이라는 6대 필수품은 완벽하게 보장 받아야 한다고 본다. 경남도를 중심으로 학교 애들조차도 먹는 것 하나 가지고 이토록 논란이 심하니 언제 이런 6대 기본 생활재가 모든 인민에게 무조건 제공되어야 한다는 신 인본사상이 일반화 될지 조심스럽게 가늠 해 보는데 그게 불가능한 일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 농부들의 드넓은 농장을 보면서 맨 먼저 저 땅이 평당 얼마나 할까라는 생각이 든 것은 한국민의 디엔에이를 가진 자다운 생각이리라.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농지의 평당 가격은 거기서 농사를 짓는 농부도 모른다. 아니, 알 필요도 없다. 토지는 중국 헌법 10조에 의거하여 전인민의 소유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국가소유다. 사고 팔 수가 없다. 농부는 다만 이용권만 가지고 이용권을 매매하거나 상속 할 수 있을 뿐이다.
토지가 철저하게 사회주의 공유제로 되어 있다 보니 농지가가 안정될 수밖에 없고 이는 농사의 안정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농부에게는 농지의 소유관계와 이용관계가 핵심이다. 작년의 중국 토지개혁에서는 3가지 원칙을 수립했는데 그 중 하나가 '농지문제가 어떤 경우에도 농민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들어있다.
우리말로 하면 '토지의 공개념'이 아주 철저하다. 근대에 있었던 중국의 모든 혁명들은 농민에게 농지소유비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재지주가 늘고 늘어 50%가 넘어 선 우리의 처지와 비교된다.
귀농을 해도 농사지을 땅이 없어서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겨우 자리를 잡는가 싶다가도 관광지나 무슨 타운으로 개발이 되는 바람이 쫓겨나야 하는 우리 현실은 농사의 안정을 기대하기 힘들다. 농사의 안정성을 해치는 게 정부의 주요 정책이 된 듯하다.
우리나라도 농민들의 소득안정, 생활안정을 위한 조치들이 있어왔고 논의 중인 것들도 있는데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 농민월급제인 것으로 보인다. 보통 1년에 한 번 수확하는 농사의 특징 상 소득이 추수기로 몰려있는 농민에게 매달 일정액을 월급으로 줘서 안정적인 경제생활을 하게 하는 월급제 말이다. 농민기본소득제와도 같은 맥락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농민월급제'라는 이름으로 실시되는 정책들의 실상은 명칭과 사뭇 다르다. 현재 언론에 오르내리는 '농민월급제'는 엄격히 말하면 '예상 농산물 담보, 무이자 분할 대출'이 맞다.
농민 월급제가 되면
가을에 출하 할 농산물을 담보로 해서 예상 매입가격의 50%에서 70% 수준만을 5-10회로 나눠 미리 매달 지급하는 것이고 그 이자는 지자체에서 보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내막이 이런데도 자꾸 농민월급제 운운하는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자꾸 거론되다보면 농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대로 된 월급을 받게 되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만약에 월급제가 제대로 시행된다면 농민문제의 상당부분이 해결되리라 여겨진다. 매달 먹고 살만한 월급이 나오는데 누가 무리한 투자(?)를 하겠는가? 여기서 투자라고 하는 것은 주식투자나 펀드 등 금융권의 투기성상품을 사고파는 그런 투자를 말하는 건 아니다.
농민들은 농기계, 시설농장, 가온시설 등에 거의 '투자'에 가까운 출혈을 감수하는 경우가 많다. 그 끝은 농가 부도나 파산이 되는 것을 심심찮게 목격한다. 왜 출혈인 줄 알면서도 무리하게 '투자'를 하냐하면 농사 규모가 아무리 작아도 농기계 없이는 농사 자체가 불가능해서 농기계 구입을 한다. 지자체나 농협에 농기계 임대 제도가 있긴 해도 그것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다.
가격의 불안정과 수급의 불투명으로 무슨 농사를 해도 수지를 맞추기 어려우니까 돈 되는 작물에 눈에 불을 켜고 달라 들다보니 시설농사에 눈을 돌린다. 이게 물 먹는 하마처럼 엄청난 돈을 빨아 먹는다. 억대는 사뿐히 넘어선다. 더구나 융자나 보조가 있을 때는 일단 저질러 보게 된다. 돈도 수 천만 원, 나아가 억대를 만지게 된다. 거치기간이 지나고 원금 상환이 두세 건 물리게 되면 농민은 숨을 헐떡거리게 된다. 한 해 삐끗하면 부도가 난다. 먹고 살만한 월급이 나오면 이런 무리한 시도를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농촌에 사람들이 늘어 날 것이라는 것도 쉽게 예상 할 수 있다. 농촌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을 간단히 여기면 안 된다. 고질적인 도시문제의 상당부분이 해소되는 과정이 함께 진행되기 때문이다. 도시형 범죄, 도시형 환경문제 등이 말이다. 이런 문제들로 인한 의료비와 행정비용은 상당 할 것으로 보인다. 농촌인구가 늘어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스트레스 평균 총량도 현격히 감소하리라.
식량자급율도 올라 갈 것이고 농지감소 현상도 줄어 들 것이다. 농사짓는 총각들 장가 못가는 일도 옛 이야기 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농사짓는 사람에게 월 150만 원 정도만 주면 말이다.
그런데 누가 월급을 주지?
도둑을 도둑이라 부르지 못하는 사회
맞다.
누가 무슨 돈으로 월급을 줘야하는지 걱정이 앞설 것이다. 지금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가지고 씨름을 하고 있는 판에 농어민 300만 명에게 월급을 주라고 하면 나라 걱정부터 할 것이다. 역시 모범국민, 애국국민답다.
어떤 이들은 농어촌 예산으로 농민 월급을 주자고도 하고 지역화폐를 발행하자고도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그런 접근은 노동자와 농민이 왜 비참한 생활을 하는지를 짚지 않는 접근이다. 왜 최상위소득과 최하위소득 격차가 계속 벌어지는지, 20:80의 사회가 이제는 1:99의 사회가 되어버린 근원을 캐지 않는 접근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삼성의 이건희씨가 1년 넘게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있다. 절대 죽어서는 안 되는 처지에 있어서 삼성이 시체놀이 하는 것이라는 풍문도 있다. 한 인간에 대한 이런 험한 말투를 양해 해 주기 바란다. 삼성과 이건희 일가, 나아가 대재벌과 권력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처참한 노동자 농민의 삶을 돌아보면 말을 좀 험하게 하는 것은 양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이건희씨가 누워 있는 1년 여 기간 동안 이건희의 3자녀인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의 재산이 3배로 뛰었다는 것이다. 2-3천만 원 재산이 6-9천만 원으로 뛴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자그마치 12조원이나 늘었다. 12억도 아니고 12조다. 그들이 하루 수 백 시간씩 일을 한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다. 며칠 전 노조 탄압에 항의하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근혜대통령의 남동생 박지만씨 회사 '이지테크'의 고 양우권 노조위원장보다 일을 덜했으면 덜 했지 더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식 사랑이 각별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삼성가 3남매가 삼성그룹의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지배주주로 주식을 긁어모으고 나면 이건희씨는 눈을 감을 것으로 보인다. 아니, 그때까지 마음대로 눈을 감게 놔두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무도 삼성가 3남매를 도둑놈이라고 욕하지 않는다. 순 후레자식들이라고 비난하지도 않는다. 사법당국이 잡아가지도 않는다. 도리어 '경영권 승계 토대 구축'이라든가 '그룹 지배권 확보'라는 호의적인 분석만 요란하다. 재벌과 대기업에 깔때기를 대 놓고 약자들을 착취하는 경제구조 때문이라는 게 뻔한데도 그들이 대단한 경영능력을 발휘한 듯 현실을 왜곡한다.
이런 부의 편중과 소득구조의 원천적 불공평을 없애지 않고서는 모든 처방은 몇 년 안에 효력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의 수 천 배, 수 만 배씩 돈을 버는 재벌가 식구들과 대기업 임원들의 도둑질 행위를 차단하지 않고 다른데서 농민월급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하면 안 된다. 농민기본소득제의 정당성과 형평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내가 이들을 왜 도둑놈에 비유 하는가?
이렇게 생각 해 보자. 부모의 유산을 형제 중 한 사람이 독차지 하거나 더 가지려 한다면 물불 안 가리고 싸움이 일어난다. 개인 가정은 물론이고 돈 더미를 쌓아 놓고 있는 삼성이나 두산, 금호그룹 등 재벌가들의 자식들이 벌이는 재산분쟁을 보면 그렇다. 사람들은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돈은 그 피보다도 진하다고 조롱하면서도 이를 당연시 한다. 형제간의 재산분쟁은 법정으로 가는 것이 상례가 되고 있다. 배우자나 자녀가 상속인의 재산을 고르게 나누도록 법으로도 딱! 정해져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자기 몫이 적다고 여겨지면 기를 쓰고 달려드는 것이다.
모든 인류는 대 자연의 동등한 상속자들이다
자. 그렇다면 이 지구는 누구의 것인가. 땅, 하늘, 물, 숲, 지하수, 햇볕, 공기 등 '어머니 대자연'은 누가 누구에게 준 것인가. '하늘'이 지구의 모든 생명체에게 줬다고 봐야한다. 사람만으로 좁혀서 말해보자. 이 세상의 재화는 그 어떤 일부분에 대해서도 특정 집단이나 특정 개인에게 상속된 바 없다. 하늘이 그런 유언장을 공증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자연의 재화 뿐 아니라 전파나 석유, 지하자원, 철도, 도로 등 인간의 손질이 조금 가해진 재화들 또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똑 같은 지분을 갖는 것이 옳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제도와 법으로 국가가 재벌과 부자와 대기업에 편중되게 나눠 주고 있다. 이제라도 모든 인민들이 그 재화와 거기서 나오는 이득을 공유해야 한다. 농민 기본소득제는 이런 자연철학에 바탕 한다. 여기서 농민월급제의 재원을 마련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매우 온당한 논리다.
누구는 호화방탕하면서 널부러져서 살고 누구는 피골이 상접하여 죽어가는 것은 제도의 악독한 착취성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매년 분기 순이익을 수 조원씩 내고 재벌총수나 투기자본가가 수백 억 원씩의 연봉을 받는 것은 환경오염과 재난사고 등 돈벌이의 사회적 비용은 인민들에게 전가하고 무한착취를 일삼기 때문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농민 기본소득제는 대자연의 동등한 자식으로서 상속권을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 왜 농민이어야 하는지는 사회적 출혈이 가장 큰 피해자이기 때문이며 대자연 상속권을 가장 심하게 훼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의 조현아 같은 망나니의 '땅콩회항' 짓을 보면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는가 싶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녀는 다수 백성들의 피를 빨아 먹고 괴물이 된 것일 뿐이다.
한번 둘러보자. 기후변화로 전 세계가 끙끙 앓는데 피해는 가난한 나라가 더 많이 본다. 2013년도 기준으로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보면 중국의 전체의 29%를, 미국과 유럽연합은 전체의 15%와 10%를 배출했다. 1인당 인구로 따지면 미국이 단연 세계 1위로 중국의 2배가 훨씬 넘는다. 온난화 가스의 배출로 기후변화의 원인을 가장 많이 제공하는 나라는 이들인데 피해는 북한이나 아프리카, 남미 등의 가난한 나라에서 더 많이 보는 현실은 정의도 아니고 진리도 아니고 공정도 아니다. 거대한 폭력 자체다. 가난한 나라 인민들이 재해의 피해를 크게 보는 것은 재해방제 시스템도 미비하고 복구나 지원도 빈약하기 때문이다.
모든 농민들이 트럭을 가졌다는 이유로 환경부담금을 물고 있지만 현대나 기아자동차가 환경부담금을 낸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필로폰은 거래 하는 자는 물론 제조하는 자도 처벌되는 것과 비교하면 이 부당성이 확연해진다. 왜 운전자만 환경파괴 부담을 뒤집어 써야하는가. 도로 건설에 현대나 기아가 돈을 냈다는 얘기도 들어 본바가 없다. 만백성의 세금으로 도로를 만들고 돈은 자동차회사가 번다.
시골 외딴집은 전기를 들이려면 일정 거리 이상의 전신주 가설비를 개인이 다 부담해야 한다. 서울 부자들이 고리 핵발전소에서 밀양을 지나 서울까지 가는 송전탑 건설비용까지 전기료로 부담한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불공평이 횡행하는 현실이고 이를 바로잡는 게 대자연 상속자의 정당한 권리를 회복하는 일이다.(한국농어민신문 2015년 4월 29일자)
최저임금제처럼 임금(소득)상한제를 둬야
아리스토텔레스 할아버지는 기억에 남을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그 중 하나가 소득 5배 사회 불안론이다. 그의 스승인 플라톤의 말을 전하는 형식인데 '어느 사회에서건 가장 가난한 사람보다 5배 이상 수입이 있어선 안 된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소득 차가 생기면 사회가 불안해지고 부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며 사실상의 도둑질 아니고서는 5배나 많이 버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로 읽힌다. 근데, 재작년에 현대 정몽구씨 소득은 최저임금자의 5배가 아니라 3,220배였고 에스케이의 최태원씨는 감옥에 들어 앉아 있으면서도 3백 몇 십억을 벌었다.
누구는 감옥에서 하루 일당을 5억씩 친다고 해서 황제노역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었다. 이게 법에 근거한 판사님의 판결이었으니 말문이 막힌다. 이제 법적 정의란다. 도시근로자 평균 일당이 84,000원이니 6천배나 많은 일당을 판사님이 법에 따라 인정 한 것이다. 한때 '월가를 점령하라'는 운동이 일어 난 배경도 이런 경제현실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아리스토텔레스 할아버지한테 물어 보고 싶다. 한국 사람들은 왜 폭동은커녕 분노조차 않느냐고. 대답은 뻔하다. 저항 하지 못하게 세뇌시켜 놓고 약탈을 강화 해 왔노라고. 언론과 지식장사꾼들로 구성된 중간 브로커들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황제노역의 주인공은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대주그룹' 허재호사장이었다. 자그마치 최저임금 노동자의 6천배 소득을 법원이 정당하다고 인정 한 것이다. 이건희씨나 정몽구씨였으면 일당이 10억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불공평이 대자연의 신성한 상속권을 약탈 해 간데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대자연의 신성한 상속권을 되찾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최저임금제를 두듯이 최고임금제, 또는 '임금(소득)상한제'를 두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경우에도 가장 소득이 적은 사람의 30배 이상의 소득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50배까지 양보 할 수도 있다. 더 벌고 싶으면 최저임금을 올리면 된다. 그러면 부자가 더 가져 갈 수 있는 것이다. 최저 소득자의 50배 이상 소득에 대해서는 초과소득누진세 100%를 부과하면서 사회적 기부로 인정해 '명예'를 주는 것으로 하면 되겠다.
이런 발상에 대해 생소한 나머지 웬 종북좌빨적 발상이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일부 극소수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소득상한제의 본산은 북한이 아니고 미국이다.
최고임금(소득)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100년도 더 된 옛날 옛적에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상당한 효과를 냈었다. 1910년대 미국에서는 연 소득 100만 달러(우리 돈 10억 8천만 원) 이상 과세율이 1914년의 7%에서 1918년에는 77%까지 올라갔었다고 한다.
만약에 '최저임금의 25배 이상 소득에 대해서는 부유세를 누진적으로 부과하며 50배가 넘는 소득부터는 100%를 부과 한다'고 하면 이 사회의 많은 분쟁과 불신과 극한투쟁들이 사라질 것이라 확신한다.
화폐의 유통기한 설정
당시 미국에서는 임금 차별을 범죄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연방정부는 인종과 성을 차별하는 기업에게는 정부기관 입찰권을 박탈했듯이 천문학적인 연봉을 임원들에게 주거나 성과급을 주는 기업에게는 국가 경제 불평등 심화죄를 적용하여 똑 같이 정부기관 입찰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런 정신이 계속 이어졌다면 노조를 탄압하다가 법적 제제를 받거나 위법성이 확인 되었을 때는 그 기업에 주던 어떤 지원금도 회수 하는데까지 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박지만씨 기업 이지테크는 아예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아니, 노조 만들면 목숨까지 바쳐야 하는 이런 참극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많은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지만 소득의 극심한 불평등은 사회의 안정을 크게 해친다. 부와 소득의 정의가 이루어지면 사회는 안정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연봉이 500억이나 되는 사람이 아무리 시장에 가서 흥청망청 돈을 쓴다고 해도 냉장고를 10대 살 수 없고 빵을 한 트럭 살 수 없다. 그 돈이 백성들에게 고루 돌아간다면 시장이 활성화되고 기업의 가동률이 높아지며 실업이 해소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우선 돈을 들고 시장에 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안정된 삶을 보장 받는다.
초 고소득자들이 실물경제에 투자한다는 소리 듣지 못했다. 그 돈 마저도 전환사채나 주식상장 또는 주가조작 등으로 번 돈이라는 면에서 노동자나 농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은 것에 다름 아니다. 실물경제와 금융경제의 엇박자가 지금처럼 극심한 적이 없다. 2008년 금융붕괴 때보다 더 큰 위기를 쌓아가고 있는 자들 또한 그들이다. 그러니 대자본과 그 족벌들, 결탁된 관료들과 언론 및 법률가들을 도둑놈이라 부르는 것은 양반이고 특수 범죄자로 봐야 하는 것이다. 2008년 위기는 4조 달러나 찍어내서 겨우 막았는데 그 뒤로 일본이나 유럽, 한국은 이른바 '프린팅 머니'라 하여 돈 찍어 내는 것으로 경제위기를 봉합하고 있는 실정이다. 화폐 남발은 서민에 대한 엄청난 도둑질이다.
또 하나 대자연의 신성한 상속권을 되찾는 방법이 '화폐 유통기간제'가 아닐까 한다. 모든 화폐는 국가화폐로 제한하고 파생 금융상픔을 금하며, 화폐의 유통기간을 3년 또는 5년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우유나 김밥이 유통기한이 있듯 돈에도 유통기한을 두어 은행에 저금하거나 집에 쌓아 두거나 논이나 밭에 파묻어 두었다가는 휴지가 되게 하는 제도이다. 돈은 씽씽 돌고 돌아야 한다는 철학이다.
교환의 수단으로 태어난 돈이 타락하여 부의 축적수단이 되면서 엄청난 비극이 시작되었다. 팽창해서 터져버릴 때까지 자신의 몸집을 불리는 괴질에 걸린 것이 지금의 (금융)자본주의다. 그래서 부의 축적기능에 제한을 두자는 것이다. 3년이나 또는 5년 동안 실물경제에 넣지 않고 쌓아두는 돈이라면 없어도 되는 돈이다. 먹고 살기에 문제가 없는 돈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신권과의 교환도 80% 정도만 쳐 준다고 해 보자. 지하경제 자체가 존립하기 힘들 것이다.
농민 기본소득제는 건강 경제의 촉매
가계부채의 급증으로 국민 모두가 어렵고 농민은 더 어렵다. 농민 기본소득제를 철학과 당위성의 문제로 접근하여 논의를 급진전 시킬 필요가 있겠다. 스위스는 이미 농민 총소득의 60% 이상이 각종 직불금이라고 한다. 한계농지의 경우 총 소득에서 차지하는 직불금은 95%라고 하니 농민 기본소득제의 실현이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부모 유산보다도 대자연의 유산을 되찾는 농민 기본소득제 실현에 나설 때다.
잘못된 경제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 작업이며 두 번째로 닥칠 금융붕괴를 회피하는 방지책이다. 2008년 붕괴는 금융의 식민지로 전락한 실물경제 영역이 어떻게 70억 인류의 고통으로 전가되는지 보여주었던 사건이다. 월가로 대표되는 투기자본이 저지른 대형사고를 70억 인류가 감당하지 않았는가? 당시에 미국은 보험사와 은행에 각각 1,500억 달러와 3,450억 달러를 지원했다. 아이엠에프 때 우리나라가 애걸복걸해서 요청 한 돈이 20억 달러였다는 걸 상기 보면 지금의 세계경제는 '달러 프린팅 머니' 경제라는 것을 실감 할 것이다. 미국이 마구 찍어 낸 달러(채권)를 중국이 사 주었다. 중국도 이제 제 코가 석자다.
농민 기본소득제의 도입을 부의 공평화, 소득구조의 정의. 새로운 부가소득을 향해 부나방처럼 몰려다니는 투기자본의 방제,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의 건설이라는 거시적 안목으로 차근차근 접근하는 것이 좋겠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도 50%가 아니라 80%까지 가능해지는 첫걸음이 되게.
다만, 농민 기본소득제가 실시 될 때는 농업의 공익적가치가 실현되는 방향으로 해야 할 것이다. 공장화된 농업, 산업화 된 농업을 제어하지 않으면 농민들에게 먼저 기본소득제를 실시하는 도덕적, 환경적 정당성이 사라진다. 다시 말해서 공장식 축산이나 산업화된 농산물 생산시설 등 이산화탄소 발자국이 과도한 부문에는 선별적으로 적용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귀농통문> 여름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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