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TGV를 타고 파리에 도착하면서 온 몸의 근육이 뭉치도록 신경을 곤두세웠다. 사람 혼을 빼놓을 정도의 능수 능란한 솜씨로 여행객 주머니를 털어간다는 파리 집시들에 대한 소문이 악명 높았기 때문이다.
시테섬에서 노틀담 성당을 구경하고 다리를 건너 루브르로 갔고, 박물관 보다는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고, 정원을 거닐었다. 긴장한데다, 파리 풍경에 정신을 못 차리고 최면이라도 걸린 듯 경치를 따라 가다 보니 꽤 먼 거리를 걸었고, 어느새 허리는 뻐근하고 돌멩이로 이뤄진 바닥은 발바닥을 자극했다. 툭 터지는 한숨과 함께 아무데나 털썩 주저 앉고 보니 콩코드 광장이었다. 광장은 주변으로 차가 다녀 마치 중앙선 근처의 안전지대처럼 여겨졌는데, 오벨리스크와 분수가 없었다면 광장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지 모른다.
한쪽 구석에 앉아 사가지고 온 빵과 콜라를 마시며, 멀리 샹제리제 거리를 바라봤다. 이곳이 파리 특파원이 서서 뉴스를 전하던 그 자리가 아닌가. 하지만 풍경보다는 소리가 먼저 들어왔다. 돌로 된 길은 차도도 마찬가지여서 그 위를 구르는 수많은 바퀴들은 내게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들려줬다. 그 소리가 어찌나 경쾌했던지 집시를 생각하며 움츠렸던 온몸과 마음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입 안에 든 빵을 씹는 것도 잊은 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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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코드 광장은 프랑스 혁명의 중요한 장소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죽임을 당했고, 혁명 광장으로 불리다 화합을 뜻하는 '콩코드'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 불리는 이 오벨리스크는 1800년대 중반 이집트 왕이 선물한 것인데, 덕분에 지금도 룩소 신전은 누가 봐도 대칭이 되어야 할 곳에 나무 뽑혀나가 듯 휑한 빈 자리가 있다. 이 오벨리스크는 원래 더 컸지만 당시 운송의 문제로 밑 둥을 잘라냈다고 하니 참으로 용감한 일이다.
이 혁명, 화합의 광장은 이제 여행자들에겐 파리 여행의 중심지다. 앞으로는 샹제리제 거리와 수많은 상점, 멀리 개선문이 펼쳐져 있고, 뒤로는 튀를리 정원과 루브르 박물관, 세느강을 건너 마주보고 있는 오르세 박물관, 동쪽으로 마들렌드 성당과 방돔 광장이 펼쳐진다. 조금만 힘을 내 서쪽으로 걷는다면 앵발리드와 그 앞으로 놓인 세느 강의 다리 중 가장 아름답다는 알렉상드르 3세교까지 욕심 내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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