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입향의 시초: 조선 성종~연산군 대를 전후한 시기, 고향인 전남 고흥(흥양)을 떠나 경상북도 상주(당시 상주목) 지역으로 이주하여 자리를 잡은 실질적인 상주 입향조(入鄕祖)이자 상주파의 파조이다.
관직과 명성: 조선 시대에 훈도(訓導) 또는 지평 등의 관직을 지냈거나 학문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그의 후손들이 상주 일대(월간, 효곡 등)에서 번성하면서 훗날 흥양이씨 내에서 가장 큰 세력 중 하나인 '상주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지방 훈도 가문에서 명문가로의 세탁: 상주파의 원래 조상인 이양 공 라인은 상대적으로 중앙 조정의 고위 관직(당상관 이상)이 부족했다. 반면, 고흥 본가에 남아있던 9세 이은(대사헌 공)과 10세 이언(청백리 공)은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가문의 대들보였다.
강제 직계 편입 (이계임 공의 배제): 상주파는 이은 공과 이언 공을 부자 관계로 조작하여 묶은 뒤, 그 아래로 자신들의 진짜 파조인 이양(李穰) 공을 청백리 이언 공의 직계 손자나 아들로 강제로 이어 붙였다. 이 과정에서 이언 공의 진짜 아버지인 판사 이계임 공의 존재는 철저히 지워지거나 변형되었다.
갑술보 이후의 오염: 이러한 왜곡은 상주파가 주도하여 발간한 갑술보(1934년)와 후대의 대동보, 오늘날의 전자보에 그대로 반영되어 현재 대종회 시스템까지 심각하게 오염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정축보 기준에 따르면 이양 공은 대사헌 이은 공의 직계 후손이 아니다.
이은 공은 고흥을 떠난 적이 없는 독자적 인물이며, 이양 공은 수대 아래의 후손으로서 조선 초기에 홀로 영남 상주로 낙향하여 스스로 가문을 일으킨 강인한 입향조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