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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필자
원래는 벌지 전투로 유명한 아르덴 전투를 쓰려고 책도 열심히 보고
인터넷도 뒤저봤지만, 이거 도무지 정리가 안된다.
이거 깔끔하고 세련되게 도표도 그려야 하고, 뭔 넘에 전투가 그리 많고 투입된 부대들이
많은지 도무지 머리가 아파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1990년에 있던 걸프전에 대해 먼저 떠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본 필자가 고3 수험생활에 집중하고, 학력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오는 어느 가을날 9월 23일 아침 그러니까…
벌써 24년이나 시간이 흘렀네요~~~
TV에서 갑자기 이라크 후세인이가 쿠웨이트를 기습 공격했는데,
쿠웨이트땅 대부분이 하룻밤만에 다 넘어 갔다고 뉴스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다국적군인지 다목적 군인지가 반격을 하는데
CNN에서 전쟁을 생방중계 해주는데,
자 그런데 이놈에 걸프전이 무슨 비됴 게임도 아니고, 뉴스에서 실시간으로 대공포 날라가는 거도 보여주고, 폭격장면도 보여주고, 패트리어트가 슝~~ 날라가서 스커드 미사일 맞추는거도 나오고….이게 좀 요상한 전쟁이었지요??
열라 공습만 하던 다국적군이 지상전 투입해서 긴장 엄청 했는데,
이건뭐 그냥 한방에 이라크군을 휙~~~ 쓸어버리니..
미국 영국 프랑스의 최신 전투기들하고 M1에이브럼스 전차가 짱이라는걸 세계에 널리 홍보도 했고,
프랑스 제규어 전투기는 이라크 공습 첫날부터 4대가 떨어저서 체면 구기고,
영국의 토네이도도 심심찬게 떨어져서, 저고도 폭격에서 제외당하는 가운데,
F-117과 F-18 호넷이 주가를 올리고, 뭐 한마디로 어린 시절 무기 대백과 사전에 사진속에 나오던 무기들의 실제 성능을 검증 할수 있었던 그 걸프전에 대해 좀 떠들어 보겠습니다..
이게 진짜 스텔스 였을까??
미해군의 뻥 무기 ~~토마호크 미살~~
이거 지금도 기억난다, 걸프전 초기 무기 소개할때 고성능 위치 추격 장치로 부산에서 쏘면
서울 종합운동장 축구골대에 골인시킬수 있는 무기라고 했는데....실전에서 써보니 그게 개뻥이었단게 증명되기도 했다는...
시간을 거슬러서 본 필자가 초등학생이던 79년인가? 80년인가?,
이란이랑 이라크랑 전쟁을 했습니다.
그시절에는 땡뉴스라고 해서 9시 시작과 함께 뉴스가 시작되면 ‘오늘도 전두환 대통령 각하께서는~~’으로 국산 뉴스가 나오고
한타임 지나 해외뉴스로 넘어가면 ‘오늘도 이란군이~~’ 또는 ‘오늘도 이라크군이~~’ 라는
뉴스가 주요 레퍼토리인 시절이 였습니다.
중동에 사우디, 아랍에미레이트등 여러나라들이 있지만. 전통적인 중동의 맹주는
이란이었습니다.
당시 이란의 국왕인 팔레비가 미쿡을 너무 사랑하는데다 엄청난 밀덕이라
석유판돈으로 미쿡의 최신 무기를 팍팍 사주니 최신 무기로 무장한 이란은 중동 최고의 대빵이었습니다.
밀덕 팔레비 국왕
(전통적인 왕족이 아니라 어쩌다 왕이 됐슴다)
미국과 함께 당대최고의 함상전투기 F-14를 운용하는 나라가 이란이었을정도니까요.
이란이 이 코브라를 200대 가까이 가지고 있었다는
자 그런데 이런 이란에 하나에 정부 반체제 인사가 있었으니 바로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이란의 호메이니옹~~이었습니다.
머리에 터반 두르고 허연 수염 기르고 나와서 이란 국민들에게 손흔들던 호메이니옹
호메이니~~
자 이양반이 주장한게 뭐냐면.
“알라신에게는 대리자가 있다.그 알라신의 대리자가 누구냐면 바로 나 호메이니다~~~”
뭐 우리 같이 사이비 교주 많은 우리나라에서야 그게뭐?? 할수도 있지만
절대왕정이던 이란의 팔레비국왕에게는 ‘이게 무슨 개소리??’
결국 이 호메이니를 팔레비가 이라크로 쪼까 버렸습니다.
이라크에서 유배생활을 조용히 했으면 됐는데, 이라크에서도 알라신의 대리인 ~~하는 소리하니
이라크에서도 열받아서 프랑스로 또 쫓아내 버립니다.(쫓겨보내는 나라가 유럽의 프랑스라니 대박이네)
자 이러니 호메이니 자기 쫓아낸 이라크가 좋게 보일 리 가 없지요., 한마디로 이라크를 겁나 싫어하게 됩니다.
자 여기서 세계 지도 보면 이라크랑 이란
지도상에 크기는 크지만 두 나라 땅 크기만 크지 사실상 물이 있는 쓸모 있는땅은 얼마안됩니다.
뭐 땅은 이란이 좀더 크지만 별 쓸모없는 땅이 태반이다 ,근데 하나 지도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라크 바랑
별로 안친하네요?
’거기다 국경까지 붙어있는데, 4대문명 발상지인 유프라테스강의 행정권과 수로관리권으로 두나라 분위기도 별루였는데,
땅이 바다에 붙어있는 면적도 더 적은 이라크가 이란하고 한방 붙어서 이란쪽 유프라테스강 좀 더 차지하고 해안선도 좀 차지하고 싶은 욕망을 겁나게 느끼기 시작합니다.
자, 여기서 결정적으로 사담후세인이가 정치적인 통빡이 돌아가게 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호메이니옹께서 1979년 이란을 엎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밀덕 팔레비 왕을 쫓아내고, 이란을 먹어버린 것이었지요...
뒤이어서 미국애들 몰아내자 분위기로 완전히 벌떼 쑤신 듯 나라가 휘청거리기 시작합니다
자그런데 여기서 하나 우리가 알고 넘어가야할 기본 배경지식이 있다.
TV 보믄 시아파 이슬람교가 어쩌고 수니파 이슬람교가 어쩌고 하는 말들이 나오지요??
이 이란 이라크 전에서도 이 종교적인 문제가 쬐끔 포함되어 있는데....
이란 애들은 시아파고, 이라크 애들이 수니파였습니다...그럼 시아파와 수니파의 차이가 뭐냐고??
간단히 말해서 천주교와 개신교의 차이 정도로 볼수도 있겠네요.
천주교에선 성모 마리아가 중요시 되잖아요?? 개신교에선 단순히 예수님의 어머니 정도의 역할 이시지만...
마찬가지로. 시아파 주장이란게 뭐냐면, 알라신은 자신의 대리자인 사람을 점지해 놨고, 그 사람을 중심으로 온 이슬람은 단결하자 뭐 그런 내용입니다,
그런 주장에 수니파 사람들은 그런건 웃긴이야기고
개개의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은 알라신과의 1:1 관계가 있으니 알라신만 믿어라라는 분위기입니다.
뭐 복잡하게 말하면 더 있는데 대충 애네들의 교리중 가장 큰 차이점이 이런게 있다는 정도만 아시면됩니다.
하여튼, 1979년에 이란에 혁명이 일나서 정치, 사회, 군사 모든 분야가 거진 쑥대밭이 됩니다..
특히 군부 쪽은 팔레비 애네들이랑 친했다고 해서 많이들 숙청당했는데,
그중에 공군애들 타격이 컸는데, 장비가 전부 미국거에다가 팔레비가 총애한 애들이었다기 때문이죠
그럼 이라크는?? 이라크도 장난 아니었습니다
사담 후세인에 대해선 이따가 말해주겠지만,
이라크에 사담 후세인이1968년부터 줄곳 2인자 자리에 있었는데, 1979년 7월에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선 걍 지가 대통령 되어버립니다....자, 두 나라가 모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이라크의 후세인이 생각한게 혼란함을 틈타 함 엎어보자 였습니다.
인구차이만 해도 3배가 나는 이란이랑 맞짱을 뜨자는 계산이 나온 게 뭐냐??
이란이 혼란스러웠는데다 어지간한 군간부들이 다 숙청 당하고 정신 하나도 없는 그 나라에 싸움을 걸면 두 나라 중에 누가 이기겠냐고...
거기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어라? 다 우리 이라크 편이네요??
미국이야 이미 이란이랑 등돌린 상태고, 이슬람 문화권에서 보니 호메이니가 너무 과격한겁니다. 그 <혁명>이란거...그 당최 쓸모도 없는 것을 이란이 막 수출하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간단합니다, 이 걸프만에 <왕조>가 몇 개인지??
결국 사담 후세인은 1975년 자기랑 이란의 팔레비 왕이 각각 서명한 그 말많고 탈많은 알지에르 협정(Algiers Agreement)을 깨버리곤 전쟁을 시작해 버립니다.
이란 이라크 전쟁이 터지자, 이란을 지원하는 나라는 리비아나 시리아 등등 좀 못살고 삐딱선 탄 나라밖에 없었으나,
*이건 이라크 국기
이건 시리아국기
이라크는 장난 아니었습니다.
갑부 사우디에, 쿠웨이트, 요르단 등등...거기에 미국의 지원도 있었고요.
연일 전쟁이야기로 외신뉴스를 도배를 했지만
뭐 그런데 대충 무려8년간 전쟁은 했는데 결과는 지지부진 끝이 납니다
.
이란 애들은 남는게 사람이라고 인해전술로 이라크를 공격하고,
이라크는 주변 나라들이 도와주는 자금줄로 좋은 무기 사서는 그걸로 쌈하는 양상이었고.
* 용감히 싸우는 이란군 아저씨들
당시 후세인의 <순기능>이란 것이 호메이니옹이 수출하고파 하는 그놈의 <혁명>이란걸 막아주는 이슬람 세계의 구원자...
정확히 말하자면, <중동지역 왕조국가>의 구원자 였기에 그 지원이란 것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사우디 같은 경우만 봐도 자기가 보증서서 프랑스의 미라지 전투기와 슈페르 에탕다르와 엑조세 미사일을 빌려와선 사담에게 건네줬을 정도니 말이지요
걸프전의 두 피해국인 사우디와 쿠웨이트가 이 8년 전쟁 동안 이라크에게 무이자로 꿔 준 돈이 각각 200억 달러와 100억 달러였으니, 보면 알겠지요?? 애네들은 후세인이 참 고마웠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애네들이 손해보는 장사 했을까??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던가?? 이라크의 경우 80년 GDP의 70%를 차지하던 원유수출 수익이 전쟁하느라 바빠 85년 이후로 30%로 떨어졌습니다
거기까진 좋은데, 이 이란 이라크전이 터지면서 GCC(Gulf Cooperation Council : 걸프 협력회의...간단히 말해서 유럽의 NATO같은 개념입니다.
이란 놈들이 좀 과격해서 무섭다라고 생각하던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해서 쿠웨이트, 바레인 등등 6개 나라가 결성한 군사동맹) 가맹국들은 유가 인상으로 떼돈을 벌게 됩니다.
*우리는 GCC
전쟁 터지니 석유 값 오르는 건 당연한 사실이고... 돈 좀 만졌지요...
문제는 전쟁이 끝나자마자의 상황이었습니다.
90년대가 시작하면서 세계경제는 불황이 시작됩니다
산유국들은 어쨌든 시장 점유율을 높이겠다면서 석유의 공급과잉 상태로 몰고 가고
이라크는 전쟁 끝나고 나니, 사상자만 50만에다가, 80년 전쟁 발발전에 국고의 외환 보유액이 300억 달러나 되었는데, 웬걸, 이젠 빚만 1천억 달러에 이릅니다..
거기다가 석유시설은 시설대로 파괴되었으니...이젠 어째야 하나??
더 골때린건 토사구팽이라...이란이 이제 물러나자 GCC 애들이 이라크를 바라보는 눈이 요상해 진 것이었습니다...
이란이 물러난 지금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만?을 가진 나라가 되어버린 이라크....
그 요상한 상황에서도 후세인이가 통빡을 굴려보니 상황이 꼭 나쁜 건 아니었거든요??
지금 좀 힘들어도 굶어죽을 정도는 아니었어던 거지요
당장 석유가 나오지, 그 매장량이란 것도 중동지역에선 사우디 아라비아 다음가는 수준이고,
하루에 310만 배럴이나 석유를 뽑아낼수 있는 이라크인데...후세인도 믿는 구석이 있었던 거지요.
* 항상 느끼는 거지만 우리 조상님들이 우리나라 터는 참 잘 잡으셨는데, 좀 좁게 터를 잡으셨다는것과 석유가 안나는 곳에
터를 잡으신게 좀 안타깝습니다.
사담 후세인...전쟁은 신나게 했으니, 그래 이제 내치에 힘을 쓰고, 전후 복구에 열을 올려 아름다운 심시티를 만든다는 착한 맘을 먹게 됩니다...
근데 문제는 말이지요. 나쁜놈이 개과천선해서 심성바꿔 잘살아보려고 하면 꼭 딴지에 걸리지요??.
후세인의 딴지가 바로 쿠웨이트, 쿠웨이트 놈들이 석유 증산정책을 고수하자고 우기는것이었습니다
OPEC(석유수출국기구)에선 어쩔줄 몰라하는 상황에서 쿠웨이트랑 아랍에미레이트 같은 한주먹거리도 안돼는 것들이 계속 석유 생산량을 늘려나가는 상황이 한푼이 아쉬운 후세인 돌아버릴 지경인 것이지요.
석유값은 점점 떨어지니 후세인이 미치고 환장할때쯤
사담 후세인은 어찌 방법이 없는 찰나에 결정적인 한방을 맞아 버립니다.
1990년 봄...유고슬라비아의 수상이 바그다드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때 이라크는 극진한 대접을 아끼지 않았고...이라크의 부통령까지 나서서 영접한 후에 숙소에 들어가는 도중에 수상에게 이라크에 차관을 좀 지원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지만, 수상은 거절합니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난 게 아니라
수상이 유고로 돌아간 다음에 유고슬라비아는 지난 8년 전쟁 때 이라크에 꿔준 차관을 되돌려 받아야겠다는 성명을 발표 해 버립니다..
자, 이때 사담의 실망은 장난 아니었지만, 더 큰 문제는 유고의 발표 이후 다른곳에 차관을 얻기 위해 손을 벌렸지만,
유럽, 일본 등지에서 전부 거절을 당하기 시작하였고, 오히려 다른 채무국에서도 돈을 달라고 쌩쇼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돈에쪼들린 이라크 넘들이 한 짓이 쿠웨이트에 수상을 보냅니다
그리고 “야 ~~ 쿠웨이트 100억 달러좀 줘봐??” 돈내 놓으라고 협박을 합니다.
이때 쿠웨이트 애들이 이라크에 건네 준 돈이 사담을 또 화나게 만들지요
쿠웨이트 애들이 '무슨?? 100억불??' 갈 때 차비나 하라고 5억 달러를 이라크 수상에게 건네주고 입을 닦아 버립니다.
그런데 왜 하필 쿠웨이트일까??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쿠웨이트 많이 작은나라 되겠습니다.
* 자 지도 보면 이라크가 열받을 만한 위치에 이 쿠웨이트가 있습니다..바다로 나갈길을 막아서 있는거지요??
뭐 물론 조큼 이라크도 바다가 있지만.거기다 윗쪽에 섬들이 보이지 ..이라크쪽에 붙어 있는 저 섬들이 또 문제가됩니다.
쿠웨이트에 역사를 알아보자면
원래 쿠웨이트란 나라는 없던 나라였습니다.
원래 거기 있는 애들은 베두윈 족이라고 유목민으로써 여기저기 사막에 흩어져 있는 것들이었는데,
18세기 들어와서 동서양이 서로 교류하자니 여기가 딱인 것이었다는.
결국 교역 중계지로 서서히 발전하는 중에 1756년 거기 유목민 중에서 "앗 사바하"족이 나타나 주변을 평정하고는 쿠웨이트 왕국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름도 참 요상하지. '앗 사바하'족이라니..)
다 좋은데, 애네들이 약소국이다 보니 이리저리 부쳐서 터키에도 붙고, 영국에도 붙고...암튼 영궁의 보호를 받으며 이리저리 휘청거리면서도 잘도 꾸려나갔다가...
두둥...석유가 터지고 말았네요??
그냥 나라 자체가 머 그냥 석유위에 떠있던거 였네요?
그러니 이 땅에 영국에 이어 미국 애들도 찝적거리게 되고..결국 1934년에 영국의 앵그로 페르시안과 미국의 걸프 석유가 공동출자해서 <KOC : 쿠웨이트 석유회사>를 차려버리지요...
그리곤 아하바드 추장과 2026년까지의 독점 채굴권도 체결해 버립니다.. 완전 날로 먹었습니다…
KOC의 집유소
반면에 이라크 애들이 계속 쿠웨이트는 자기네 땅이라고 우겼는데 우긴 이유는 오스만 터키 시대 때 쿠웨이트가 이라크의 바스라 주에 편입 되어 있었다는 이유를 들어서 찝쩍였고,
1958년 이라크 혁명을 일으켰던 카셈 정권이
1961년 6월26일(쿠웨이트가 독립한지 6일만에)에 쿠에이트 왕을 그 지역의 지사(도지사 정도 되나??
울나라 도보다는 작나??)로 임명하면서 한번 찝쩍였지만,
이집트가 중심이 된 아랍연맹이 쿠웨이트의 합법 정부를 인정해 버린데다가, 영국 애들이 득달 같이 달려와서 별 충돌 없이 끝이 났습니다.
그러고나선 1973년 3월에 다시 한번 충돌이 있었는데,
이때는 사우디아라비아 애들이 달려와서는 이라크와 서로 노려봤는데...이때는 정말 한판 붙을 기세였지만.
뭐 하여튼, 이때도 그 <아랍식> 해결인 일단 일 벌려놓고, 배짱 튕기다 중재자가 나오면 좋게좋게 해결되는 수순으로 일이 잘 풀렸습니다....
7개월 뒤에 있었던 4차 중동전...일명 욤 키프르 전쟁 때문에 물러났다는 주장도 있는데 .뭐 하여튼 물러난건 물러난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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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와 쿠웨이트의 현 국경은 1920년대 초 영국애들이 찍 그은 건데...그게 참 절묘하고 오묘합니다...마치 울나라 38선처럼 말이지요..
이때 영국애들이 의도적인 계산에 의해서였던 건 지는 몰라도, 이라크의 해안선을 완전히 틀어막아 버리는 방법으로 선을 그어 버렸습니다.
이라크의 유일한 항구인 움 콰시르(Umm Qasr)항에서 걸프만으로 배가 빠져나가는 그 상황에서 막아서는 것이 바로 쿠웨이트의 와르바(Warba)섬과 부비얀(Bubiyan) 두 섬이었습니다.
눈에 거슬릴 수 밖에...이라크 역대정권의 가장 큰 숙원 사업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두개의 섬을 어쨌든 빼앗든, 회유하든 해서 걸프만까지 빠져나갈 수 있는 안정한 해로를 차지하려는 것이었고,
나중에 걸프전 터질때 사담이 외친 전쟁 이유 중 하나가 됩니다.)
8년 전쟁이 끝나고 이라크는 대내외적으로 이란에 대한 승리를 외쳤지만(전쟁 전보다 땅을 쬐끔 더 챙겼다) 상처뿐인 영광이었습니다...
이미 50만명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한 상태에서 전비 부담금은 계속 압박을 해오고 있었고,
더 골치덩어리는 바로 <군대>였습니다...이란 이라크 전을 치루면서 이미 100만 가까이 동원 해 놓은 군대가 상당히 불만에 쌓여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미 1989년에 사담의 군대는 자신들의 일자리를 이집트에서 이주해 온 노동자들이 다 빼앗아 갔다며 이 노동자 수백명을 죽여버리는 사건이 터져 버립니다...
그렇다고 사회가 안정돼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 군대를 동원 해제 했다가는 앞으로 무슨일이 터질지 사담으로선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마 이때부터 사담은 뭔가 머릿속에 계산이 서가고 있었을 것이다.
1989년...앞전에 언급한 GCC(Gulf Cooperation Council : 걸프 협력회의)와 대비되는 개념의 ACC(Arab Cooperation Council : 아랍협력회의...이라크와 요르단, 이집트, 북예맨의 지역 군사 동맹체)를 만들어 버립니다.
.표면적으론 경제 협력체라고 떠들었지만, 지도를 보면 금방 그 의도가 드러납니다.
.사우디와 쿠웨이트 등등이 모인 GCC 국가들을 포위해 버린 형국이었습니다..
물론 뭔 일이 있겠냐만은...문제는 이라크의 후세인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걸프전이 터지기 1년전 후세인은 이집트와 요르단에 비밀리에 접촉을 시도합니다.
후세인의 생각은 간단했습니다...이라크, 시리아, 이집트, 요르단이 협력해 동맹군을 만들어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를 공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공격한 다음에 땅은 나눠가지면 된다는 야무진 꿈을 꾸지요.
30년동아 대통령 해드신 무바리크 이집트 대통령 제작년 쟈스민 혁명때 물러났지요.
당시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은 거절하였고, 후세인은 성공하면 250억 달러를 주겠다고 꼬드겼지만,
역시 이집트는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담은 이미 계산이 끝난 상태였습니다.
하루 195만 배럴을 생산하는 쿠웨이트를 삼키면 자기는 순식간에 전세계 석유 매장량의 20%를 장악하는 것인데다...
여기에 세계 석유 매장량의 25%를 가지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까지 먹으면...전 세계 석유시장은 후세인 맘대로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거였지요.
사실 후세인은 8년 전쟁이 끝나자마자, 이제 쌈은 고만하고 나라 발전이나 좀 해보자 하는 식의 건실한 마음으로 몇가지 프로젝트를 세워 놓고 있었습니다.
바그다드에 지하철도 놓고, 철도도 닦고, 수력 발전소도 짓고 그러려고 했다...사담의 생각은 참 순진하게도 단순했습니다..
OPEC 애들 잘 구슬려서 석유값을 배럴당 30달러 수준까지만 끌어 올리면 연간 이라크가 벌어들이는 돈은 연간 600억 달러 정도 되니까 다른 나라에게 아쉬운 소리 안하고 한 4년 부지런히 기름 팔면 빚 까고, 나라 발전시키고, 자긴 영웅 되고 뭐 그런식의 계산이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쿠웨이트와 아랍 에미레이트가 똘똘뭉쳐서 증산정책을 펼치네...
(1990년 1월에 기름값은 배럴당 21달러 선이었는데...얼마가지 못해 14달러까지 폭락하게 되었다는…)
거기다 지딴에는 열씌미 싸웠는데, 이젠 필요 없다고 주변국가에서 무슨 강도 쳐다보듯이 하니 완전 돌아버릴 수밖에...이미 전쟁은 예견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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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러던 ~~
1990년 7월 17일...사담 후세인의 연설이 중동지방을 바짝 긴장시킵니다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국경선 부근의 유전인 북 루마일라(North Rumaila) 유전에서 쿠웨이트가 이라크의 원유 24억 달러어치의 기름을 몰래 훔쳤다는 주장으로 시작된 사담의 주장은, 쿠웨이트가 지난 8년간 이란을 막기 위해 싸워 온 이라크를 독 묻은 비수로 찌르는 짓거리(석유 증산정책)를 지금 하고 있다며 끝을 냅니다
*루미일라 유전의 기름을 쿠웨이트가 인서텝터 했다고 사담이 우기지요
그리고 사담은 쿠웨이트에게 몇가지 요구 조건을 내 걸었다.
- 루마일라 유전에서 뽑아간 24억 달러 어치의 기름값을 보상하라.
- OPEC의 석유 할당량을 무시하고 멋대로 석유 증산을 해서 이라크에 끼친 손해 140억 달러를 물어내라.
- 지난 이란-이라크 전쟁 때 쿠웨이트가 이라크에 꿔준 돈 100억 달러 그거 포기해라, 솔직히 그거 우리가 네들 대신에 이란이랑 싸워 준 거다.
- 쿠웨이트의 와르바와 부비야 섬을 양도해라.
거의 대부분이 돈 달라는 소리 되겠습니다
...어쨌든 공은 쿠웨이트에게로 넘어가지요..
그러나 쿠웨이트 거절해 버립니다
그러자 사담의 반응은 간단했습니다.
부대를 쿠웨이트 국경선 근처로 전진 배치시켜 버렸네요.. 쿠웨이트는 늘 하던 짓거리 또 그러네...이런 반응이었구요
이때까지 그 누구도 전쟁이 터질거란 예상을 하지 않습니다
결국 사우디가 나섭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파드 국왕께서 중재자로 나서지요.
* 이양반이 바로 돈많은걸로는 둘째가라면 서로운 사우디 파드 국왕입니다
부인이 겁나 많은거로도 유명하죠?
1990년 7월 31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지다에서 이라크랑 쿠웨이트, 사우디 아라비아3국이 협상에 들어갑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에게 요구하는 건 간단했습니다. 머 거두 절미하고 100억달라만 내라!.
어이없던 쿠웨이트~~ 그래도 협상력이 있었던지, 90억 달러만 내겠다고 뻐팅깁니다...
이라크 좆만한게 하면서 짜증을 내자 보고 있던 돈많은 사우디...
"아!썅~~~씨바 10억불 가지고 졸라들 싸우네...드럽다 내가 내께!! 됐지?? 그럼 여기서 끝" 협상은 잘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쿠웨이트 쪽에서 국경문제에 대해 말을 꺼낸 것이 화근이 됩니다.
아니 이라크 쪽에서 의도적으로 그랬을 것이고. 뭐 그 다음은 간단합니다...
이라크 협상 대표단 이라크로 바로 튀었고, 8월 1일 이 협상단은 사담에게 결과 보고,
사담은 혁명평의회 소집한 담에 전쟁 결의, 8월 2일 새벽 2시에 전쟁 시작!이었습니다.......
걸프전이 미국의 <음모>에 의해 발발되었다는 이야기가 설왕설래 오간 적이 있긴한데.
워낙 압도적으로 이긴 까닭도 있지만,
미국의 무기 재고를 확실하게 떨어버리고, 그동안 개발해 놨던 무기들 시험 무대 역할을 이라크가 자임한 까닭에 미국측에서 확실히 남는 장사를 했다는 이유도 있지만...
솔직히 이라크와 미국은 이란, 이라크전 때부터 그닥 나쁜관계는 아니었습니다...아니
나쁜관계가 아니라 우리로 치면 절친은 아니더라도 단체 모임에서 만나는 친구?? 정도였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이란-이라크 전 당시에 미국은 이라크에 약 15억 달러어치의 물자를 수출하였고, 그 중에서 5억 달러어치가 선적되었다...그 물자란 것이 무기는 아니어도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이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미국은 이라크에게 이란군의 무기와 이란군 동향 등에 관한 정보를 아주 친절하게 전달받았고
결정적으로 이란-이라크 전쟁 막바지에 미국은 이란에 대한 압박용으로 걸프만에 미해군의 배치를 증강시키며 실질적으로 이란을 압박해 들어갔고, 실제로 이란 해군 함정 4척을 격침시켜 버렸고, 이란의 해상 석유저장소를 날려버리기까지 했습니다.
미국이 이렇게 이라크에 접근한 이유는...역시 이란에 대한 호된 배신감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키워놨더니 나라가 이상하게 돌아가 버리니까 돌아버릴수 밖에...
대사관을 공격하질 않나...인질을 붙잡질 않나...하여튼 이란은 좀 제거 되어야 했습니다.
작년 아카데미 작품상이 바로 이 이란 미대사관 인질 사건을 다룬 영화 아르고였지요??
* 보세요 볼만합니다.
자 그런데 미국도 사담이 갑자기 1990년 들어와서는 돌변한 모습에 놀랍니다....
뭐 일단은 후세인에게 유일하게 직언을 할 수 있었던 사담의 친척이자 당시 이라크의 국방장관이었던 아드난 카이랄라 (Adnan Khairallah)가 였는데
1988년 헬기 추락사고로 죽어 버린 다음부터 후세인의 독선에 제동을 걸 인물이 사라져버렸고, 덕분에 후세인은 광기로 치달아버리지요
문제는 사담을 둘러싼 환경이 점점 사담을 전쟁으로 몰고 갔던 것이지요
그리고 1990년 2월부터 후세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갑니다....느닷없이 후세인은 걸프만에서 미해군이 떠나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4월이 되자 가만이 있는 이스라엘에게 뜬금없이
이스라엘이 이라크나 아랍에 대한 공격을 할 경우엔 이스라엘 절반을 불태우겠다며 전의를 불태웠는데...아무도 이때 이라크에게 뭐라 하지 않았던 상태인데 자기 혼자 화를 내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뭐 어쨌든, 그 이후로 후세인은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하였고, 미국은 후세인을 달래기 위해 90년 4월 12일에 미 상원의원인 로버트 돌을 대표로한 5명의 상원의원 대표단을 보내 후세인을 달랩니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이 후세인을 일부러 도발시켜 전쟁을 일으키려 했다는 음모론적 시각의 접근법을 잠깐 살펴봤으면 한다.
일단 사담이 잠깐 미쳤다(?)란 생각을 한 미 국무부는 바그다드 주재 미 대사인 에이프릴 글래스피(April Glaspie)보고 멀쩡하게 제정신 차릴 수 있도록 사담을 잘 설득하고 다독이라고 까지 합니다..
글래스피 대사...미친놈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문제는 미국이 이 지역에 대해 전쟁 나라고 부추기는 외교적 행태를 보였다는 것이다. 일단 순서상으로 보자.
글래스피.이여자 91년 미 상원에서 그녀는 "우리는 후세인이 멍청하다는 걸 바보같이 몰랐었다"고 얘기했다.
1) 1990년 2월 미 국무부 극동 담당 차관보 존 켈리 바그다드 방문시
- 우리는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국경분쟁에 관심이 없다~~ 니들이 알아서 해라
2) 1990년 4월 12일, 미 상원의원 대표단 모술에서 후세인과 회담했을때도
- 부시 대통령은 당신과 좋은 관계를 원하고 있다.
3) 언론에서 많이 떠들던 90년 7월 24일 글래스피 이라크 주재 미 대사와 후세인의 회견 중 글래스피 대사의 발언(발발 당시 글래스피 대사의 무책임한 이 한마디 때문에 전쟁 났다며 떠들던 기억이 난다)
- 우리는 아랍, 즉 귀국과 쿠웨이트와의 국경분쟁과 같은 아랍분쟁에 대해서 어떠한 견해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4) 90년 7월 24일 미 국무부 대변인 마가렛 터틸러
- 미국은 쿠웨이트와 어떠한 방위조약도 맺지 않았으며, 특별한 방위공약도 한 적이 없다.
5) 90년 7월 31일 미 국무부 극동 담당 차관보 존 켈리
- 위에 했던 말 다시 했다.
* 존켈리 한창 북한하고 분위기 살벌하던 시절 북한 핵이 있다 그랬다,없다 그랬다가 우리나라를
정말 미국은 이라크가 전쟁을 일으키기를 원해서 이렇게 외교적으로 실언에 가까운 말을 했는지는 아직까지 의문이긴 합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미국이 이라크를 착각하도록 만들어, 즉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먹어도 미국은 가만히 있을 거라는 메시지를 자꾸 던져 줌으로써 걸프전 발발을 미국이 "유도"했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제기되었고.
그 주장은 아직도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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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시 마지막 부분의 걸프전 원인 음모론은 언제 봐도 흥미진진 해 지는군요.
아, 정말 좋은 글입니다. 내년에 터키를 여행하고 그 이후 중동지역도 방문하기 위해 이슬람과 중동지역에 대해 책을 읽고 있는데 이렇게 명료하게 정리된 글을 읽어본 적이 없는 듯 합니다. 정말 흥미진진한 글 잘 읽었습니다.
와 이번에는 걸프전이군요!!ㅋㅋ
다 읽엇습니다...역시 재미납니다..멋진글에 추천 드리고요...포틀랜드 전쟁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흥미진진합니다. 한편 한편 더해질때마다 맛깔납니다.^^
걸프전 당시에 군복무중이었는데 외출외박금지가 떨어져 안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 전쟁의 배경을 이제서야 알게되네요. 항상 감사합니다
거플전에 대해서 또 새롭게 알게 되었네요... 잘알고 갑니다. 항살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글중에 천주교에서 성모마리아를 중요시한다는 글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 개신교에서만 얘기합니다. 아랍사람들도 우리나라 개신교신자가 그런얘기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더군요..천주교도 똑같이 하느님과 예수님을 중요시합니다.
역시 언제나 양쪽을 다봐야해요 오늘도 굳~!
도입부에 제규어 전트기와 토네이도전투기에 아쉬운 퇴장에 슬프군요.나름 좋아하는 전투기들인데! 이제 슬슬 본격적인 전쟁이야기 도입이군요!ㅎ 흥미진진한이야지는 기다리면 되는거죠?
이런 것만 봐도 국제사회에서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건 다반사~
이란이나 이라크, 아프간에 원조했던 미군무기가 나중에 미국을 향해 쏘게 되는 사태는 정말 세상은 어찌 변할지 아무도 예측 못한다는 거..
걸프전하면 또 한사람의 영웅을 만들어냈지. 바로 그 슈워츠코프 장군도 생각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