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 운동에 앞장선 보성의 茶人 일봉 이교문
이교문은 19세기 한말(1846~1914) 전남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에서 태어났다. 노사(蘆沙) 기정진 문하에서 10년간 수학하였으며, 26세에 성균관 장의를 지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하자 노사 문인들의 토적창의(討賊倡義) 선봉으로 섰으며, 1906년 최익현이 항일창의격문(抗日倡義檄文)을 전국에 배포하고 태인에서 거병하자,
의병 21명을 인솔하고 이백래‧ 양회일 등과 함께 화순 쌍봉사에 호남의병창의소를 설치 군율사감장(軍律司監將) 역을 수행했다.
이후 안규홍 의병장에게 군수물자를 제공하면서 의병활동에 적극 가담한 사실이 탄로 되어 외경에 체포된 후 혹독한 고문으로 순명할 때까지 불구가 된 비운의 선비였다.
일봉유고(日峰遺稿)를 남겼는데 총 8권으로 되어 있다. 평생 교류한 인물은 판서 김성근, 정언, 민치량, 승지 이건창, 김윤식(홍암 나철 선생 후견인),
의병장 송사 기우만, 면암 최익현 등 당대의 석학들이다.
1895년에 지은 茶詩 (啜茶 :차를 마심) 二首는 불후의 명시로 정찬주 작가의『다인 기행』에서 보성의 茶人으로 소개되었으며,
보성 녹차 박물관과 봇재 현관에 게시되어 있다.「일봉 이교문 선생의 철학 사상과 시문학 연구」논문집이 있으며, 그는 유학자, 서예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가족으로는 조선 왕조 실록 보성 편에 나오는 인물(암행어사가 보성의 진사 이지용을 등용해줄 것을 조정에 청하다)로 석성 현감을 지낸 이지용(李志容)이 부친이며,
또한 보성의 인물 중 나비 화가 석전 이희순은 손자, 송재 서재필은 내종 사촌, 손녀딸이 전서의 대가 허소의 며느리가 되었기에 그와는 사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