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號 용강龍江, 저동苧童, 갯벌, 한강韓江 장르:詩, 문화평론 / 우편물 수취:03187 서울 광화문우체국 사서함 146호 사무실:서울시 중구 난계로 163, 올리브Ⅰ 오피스텔 808호 한강문학회 회장, 《한강문학》발행인 겸 편집주간, 해동문인협회 명예회장, 한국문화 네트워크 상임대표,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한국문학비평가협회 감사 기자언론상(1999년), 올해의 작가상(2007년), 해동문인협회 특별공로상(2008년), 국 토해양부장관상(2012년, 녹색환경부문),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2013년, 문화예술발 전부문), 2015년 세계평화문화대상 수상 《교단문학》詩부문 등단(박화목 추천, 91년),《해동문학》천료(성기조, 정광수) 저서:詩集《숨어 흐르는 江》, 劇詩集《살다 살다 힘들면》, 산문집《겨울밤, 그 따뜻한 이야기들》外, 역서:《세일즈맨의 죽음》A.밀러 원작,《파리떼》J.P. 싸르트르 원작 |
권녕하權寧河의 극시劇詩
이마빡에 붉은 띠 매고
머리는 빡빡 깎고 밀고
복면하고 목 쉬고
물대포 맞아 나자빠지고
촛농에 손등 데고
신사화 한 번 못 신어보고
아스팔트 내달리던 한 시절
번듯한 직장 한 번
못 다닌 주제에
여자는 만나
바늘에 실 가듯 몰고 끌고 다니다
생산적 활동 한두 번에 덜컥 애만 생겨
결국은 때 돼서 학교 보냈더니
이 애가 글쎄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어느 날
아빠, 시인이야?
좌충우돌 한 평생
머저리 상병신들
차라리 꾼처럼이나 했으면
억억 하는 썩은 돈이라도 만졌지
세상, 사회, 역사, 미래, 문화, 예술 아우른다는
니네 아빠, 시인 맞아?
-권녕하作 〈니네 아빠, 시인 맞아?〉 全文
위 시에는 3인이 등장한다. 철 안 난 아버지와 말투로 보아 어린 딸과 세상과 남편을 싸잡아 비웃는(?) 아내가 있다. 장소는 식구가 다 모인 집이다. 1인 3역도 가능하겠다.
온 몸이 말라 비틀려
허리 부러질 것 같은 통증을 참고
몸 더 마르기 전에
남은 힘 모아
죽어도 온전히 죽으려고
온 몸 쭈욱 펴고
한 껏 숨 들이쉰 다음
입을 쫘악 벌리고
손 발 가락 끝까지 힘 준 그 순간
숨을 뚝 멈춘다
그리고 죽어버리자
이젠
썩던지 얼던지 찢던지 굽던지 삶던지
사흘에 한 번씩 두들겨 패던지
제사상에 올려놓고 절을 하던지
당신 맘대로 하세요.
-권녕하作 〈당신은 누구시길래〉 全文
19금 포르노처럼 전개되던 문장이 ‘숨을 뚝 멈추고’에 오면 시낭송 하던 시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까봐 걱정이 된다. 이어서 여자는 ‘사흘에 한 번씩’에 다다르면 색다르게 민감해지다가 ‘제사상’에 와서야 비로소 ‘북어’가 연상되는데, 그것도 ‘당신 맘대로’ 하란다. 그 ‘당신은 (과연)누구시길래’ 이토록 완벽한 복종을 요구하는가? 지고의 사랑은 복종이란 말도 있다.
바람 불 때마다
뒤집어지는 저 성깔 누가
여직 다독였나
잔잔하게 살랑이다가도
허이얀 포말 게거품 물며
숨 가쁘게 달려들어
그저, 야! 야! 반말이나 해대며
파도타기 즐기는 갈매기나 품고
때로는 첩년 속삭임 같이
동맥정맥을 출렁이게 해
그렇게 폭 빠져버리면
아니 되는데!
해가 뜨고 또 저물고
발그레한 노을 배경으로
눈물 그렁 맺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해변
왈칵 또 달려들기라도 하면
이젠 어쩌나!
미소 잔잔하던 그 얼굴
한 번씩 뒤챌 때마다
여지없이 드러내는 그 성깔
그 깊은 속내를 그래서
믿으면 안 되는데
위작僞作 인데.
-권녕하 〈이발소 그림〉 全文
1인극 모노드라마이며 애드립이 풍부할수록 좋을 것 같다. 배경은 시원하게 푸르른 바다가 펼쳐진 툭 트인 바닷가 모래사장, 좌우에 노송이 드리워져 있고 물위에 나는 갈매기 떼는 금방이라도 울음소리가 들릴 것 같은 평화로운 풍경, 이런 풍경이 우리나라에는 실제로 많이 있다. 아주 흔하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그림이 이발소 큰 거울 위에 많이 걸려 있곤 했다. 그것도 한결같이 비슷한 그림이었다. 그래서 위작僞作인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랑에도 종류가 여럿 있다고 한다. 맞춤복처럼 착 달라붙는 사랑, 남들 볼 때 잉꼬부부로 보이는 전시용 사랑, 데면데면하게 살다보니까 늙고 말았다는 생존형 사랑 등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숫자 만큼 다양한 사연과 사랑이 있을 것이다.
어느날, 속 긁는 사람 생각이 떠올라, 저 바다가 언젠간 한 번쯤 뒤집힐 텐데? 그 속을 누가 알까? 그날따라 갈매기 우는 소리 하나만 갖고도, 고故 랑승만 시인은 월미도에서 지팡이 집고 따각따각 힘들게 걷는 소리에, 갈매기 우는 소리도 야! 야! 하고 반말하는 소리로 들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동물은 남자가 맞다. 그래서 또 혼자 풀어지고 스스로 용서해가면서 ‘눈물 그렁 맺히던 기억’에 알아서 타협해주고는 한다. 한편 ‘왈칵 또 달려들기라도 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한 번씩 뒤챌 때마다, 여지없이 드러내는 그 성깔’을 어찌 감당할지, 그래서 ‘그 깊은 속내를 믿으면 안 되는데’ 조심에 조심을 해가며 ‘위작僞作’임을 다짐하지만, 마냥 또 헛일이다. “에구, 그냥 지고 살지 뭐∼” 이 세상에서 제일 약한 동물이 남자라잖아!
힘들었죠?
그러게, 그냥 안고 있으랬잖아요!
팔이 후들대고
손목은 시큰거려
쉽지 않은 여자
전쟁 중에 어렵게 찾아낸 여자
역사는
현장에 있을수록 잘 안 보이는 법
이 여자와 있던 일주일이
대세를 그르쳤어! 그만
파죽지세로 깔아뭉개, 지금쯤 다 끝난 줄 알았더니
낙동강 오리알이 돼버렸어
이제, 한 숨 주무세요!
알다가도 모를 이 여자
그럴 순 없다며, 나쁜 놈이라며, 고결한 척 하더니
아니! 다른 사람은∼ 다, 잡디까?
-권녕하 〈자유부인〉 全文
여자와 남자가 등장한다. 그런데 장소가 아무래도 수상쩍다. 게다가 ‘쉽지 않은 여자’라는 남자의 독백에서 여자의 콧대가 높았거나 유명인이었나 보다. 게다가 ‘전쟁 중에 어렵게 찾아낸 여자’라는 독백에 이어 ‘일주일’, ‘파죽지세’, ‘낙동강 오리알’이라는 독백을 음미해보면, 때는 6.25동란 중인 것 같다. 더욱이 여자를 취한 남자는 정복자(?) 인 것 같다.
그나저나 〈자유부인〉의 진정한 묘미는 여자가 말한 ‘힘들었죠?’, ‘그러게, 그냥 안고 있으랬잖아요!’, ‘이제, 한 숨 주무세요!’가 아니다. 남자가 되받아친 말투 ‘아니! 다른 사람은~ 다, 잡디까?’에 있다. ‘논개’는 물귀신 작전을 썼지만 ‘자유부인’은 잠귀신 작전을 썼다.
아마 전부 꿈 일지도 몰라
미사리에 가면
VAGO 카페가 있(었)다
바고가 ‘박어’로 느껴져 그랬더니 역시!
바기나, 배가본드 등과 연관된다
깊고 좁은 어두움의 언저리 그래서
신경의학용어로 미주迷走가 됐나보다
뭉크의 그림이 보인다
공포에 떠는 표정 놀람의 극한상황
혼돈에 빠진 비명悲鳴
무작정 달려가는 외길
어둠 속 안개 짙은 미로에서
갈 곳 모르는 혼란
접신接神 하듯
밀려드는 두려움
불안의 한계선 밖 육감의 경계선에서
칼 끝 예리한 그래서 더욱
상큼한 통증을
발가락 끝으로 버티며
미친 듯 광란의 춤사위
무욕무통無慾無痛의 공간에서
끈적이는 생명줄 한 가닥 겨우
부여잡고 흔들다 부들부들 떨며
신경줄은 고무줄처럼 팽창해
초극超克과 체념滯念이 범벅된
살고 죽는 것은 인간의 일
나비처럼 가볍다
바람처럼 자유롭다
빗줄기처럼 후련하다
훈향이 온 몸을 휘 감는다
해방된 감각은 천리 밖도 성큼
가벼워진 발목 들어 올려
구름을 으깬다
한 여인이 서 있네
한 아이가 보고 있네
애잔한 얼굴로
아이 손 꼬옥 잡네
한 노인이 매달리네
꼭 다시 오라고
꼭 다시 온다고
막다른 골목길
아이들이 달려가네
째진 눈 흘기며 깔깔대며 뛰어가네
골목길 끝에서
안개처럼
구름처럼
폭풍처럼 거친 숨소리
요동치는 맥박소리
꽹가리 소리 요란한 귀청 찢는
금속성 소리
어머! 깨어나셨어요?
미로迷路에서 나온 순간
이 사람! 명줄 기네?
지끌지끌 소음에 편두통
아마 꿈인지도 몰라
조용히 좀 하세요!
시끄러워 죽겠네.
-권녕하 〈바고VAGO〉 全文
‘VAGO 카페가 있(었)다’ 미사리에 가면. 〈바고VAGO〉의 등장인물은 ‘어머! 깨어나셨어요?’하는 간호사와 ‘이 사람! 명줄 기네?’하는 의사 그리고 ‘조용히 좀 하세요!’ 하고 툭 쏘는 환자(남성)까지 3인이다. 그런데 이환자의 상태가 아무래도 비정상적인 것 같다. 현실인지 꿈인지 환각인지 구분도 못하는데다가 죽다가 겨우 깨어난 것 같은 상황인데 ‘지끌지끌 소음에 편두통’이 괴롭히는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도 인지하지 못한 채 ‘시끄러워 죽겠네’ 하고 독백을 한다. 아마도 긴 전개과정에 긴장감을 더하려면 독백을 처리하는 1인이 더 있어도 되겠다.
-남南
코티분[粉] 향 감도는
누이 방 꽃병에
속살처럼 투명한
연분홍 찔레꽃
한 잎 두 잎
지며 슬피
노을 진 만경강변
바람에 물든
살 내음.
-북北
찔레꽃 붉게 피는
유월이 오면
한 서린 두만강변
핏빛으로 넘실댄다
찔레넝쿨 들쑤시다
피칠갑한 왜놈순사
두만강 모래톱에
핏빛으로 물들었다
두고 온 고향
그리운 부모형제
동토凍土에 다진 獨立독립
고국산천 어드메
강 건너 추- 추-
말채찍 울면
울 아빠 말 달려
오시는 소리.
-권녕하 〈찔레꽃〉 全文
전제해 둘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붉은 찔레꽃은 북한에서 김정일 꽃[花]으로 의인화하는 꽃이다. 둘째, 남쪽에서는 붉은 찔레꽃 보기가 어렵다. 동족이지만 남과 북의 정서 차이가 찔레꽃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한 세대가 더 지나가면 말[言]까지 못 알아 듣는 지경이 올지도 모른다.
〈권녕하權寧河의 극시劇詩〉-작가노트
소리글 詩를 쓰기 시작한 동기
〈권녕하權寧河의 극시劇詩〉 쓰기는 처음부터 극시劇詩 혹은 시극詩劇을 목적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처음 시작하였을 때는 꽤나 단순한 생각이었다. 문자가 아닌, 말[言] 만으로도, 잘 전달될 수 있는 〈소리글 시詩〉 였다.
즉 ‘무대 혹은 모임 자리에서, 시인詩人이, 1인극 등을 연출 또는 연기하거나 시낭송詩朗誦을 하였을 때 ‘무대와 객석 사이에 공명共鳴을 느껴야’ 전달이 잘될 것 아니겠느냐’ 하여, 그 상황을 염두에 두고 쓰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소리글 시’는 소리글 시대로, 설익은 채였고, 단막극시單幕劇詩는 단막극시대로,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게 전개되고 있었다. 그 도중에 이수화 문학평론가의 길안내(이수화 평설 : 〈권녕하 극시 텍스트 고〉 2016. 6.)를 받게 된다. 그리하여 그동안 중구난방으로 생산(?)하던 ‘소리글 시’ 중 일부를 단막극시 개념으로 정리해가면서, 논리論理를 부여하면, 그 명칭을 극시劇詩로 추스르게 된다.
대화체를 시어로
〈소리글 시詩〉는 말 그대로 ‘말로 하듯’ 구술체로 쓰자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마주 보고 말하듯’ 인간의 정서를 인간적인 감성으로 자연스럽게 표현해내 보자는 말이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정말로 자연스럽게! ‘소리글 시’ 쓰기를 추구하다보니! 기존의 문장 구성방식에서는, ~고, ~며, 중복해 쓰지 말 것을 권고했었고, 특히 시어[韻文]에서는 같은 단어를 중복해서 쓰지 말 것도 권고했는데, 그리고 따옴표 등 문장기호와 외래어는 쓰지 말 것 혹은 기피하는 기준(?) 등도 있었는데, 이 모든 제약에서 어느 순간! 훨훨 스스로 벗어나 있더란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말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소리글로 시詩(운문韻文)를 쓴 결과’에 불과하다.
또 있다. 방언, 사투리라고 하는 지역적 토속언어의 아름다움을 체감하게 된 것이다. 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보존가치가 차고 넘치는 데다, 토속적 언어가 바로 민족적 감성의 보고였던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울러 기존의 시 쓰기 방식과는 확연하게 어긋난 기술방식, 즉 대화체를 자연스럽게 시어詩語로 흡수 활용하게 되더란 것이다(《한강문학》:〈토속언어 향토시 특집〉2016. 신년호~ 봄호).
‘시서화가무악’ 다음에 ‘랑朗’이 있어야
*〈단막극시單幕劇詩〉는 발표무대를 설정하고 쓴 詩다. 현재 한국문단의 행사장에서 시낭송 분야가 호평 받고 있다. 활성화 되고 있는 시낭송 현상을 문학의 한 분야로 인정하고, 그래서 그 바탕을 다변화시키고 이론과 실리까지 겸비해 준다면! 한국문학 발전에 일정부분 기여하게 될 것 아니겠는가? 하여 당연히 무대를 생각하게 됐고, 그래서 모노드라마, 연기와 연출이 가능한 무대舞臺를(시낭송을 포함한) 설정하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과 행위 자체가 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풍요롭게 하는 문학의 본령 아니겠는가.
진리 탐구가 철학이라면 문학은 인간의 본성과 감성을 탐구하여 인격도야와 도덕성을 함양하는 분야다. 여기에 조화를 추구하는 음악이 가미된다면, 필자가 추구하는 단막극시는 기존의 시낭송만으로는 섭섭했던 그 무엇! 한국문단에서 느끼고 있던 부족감을 채워줄 수 있는 훌륭한 방편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시서화가무악’ 다음에 ‘랑朗’이 있어야 한다고 늘 주장해왔다.
이중적 지성, 변태적 정신
그런데~ 위 두 가지 논제, 소리글 시와 단막극시가! 자연스럽게 정말 자연스럽게 이신동체二身同體 였음을 깨닫게 된다. 생각은 표음문자(한글)로 말하면서 그동안 글쓰기는 표의문자(한자)적으로 해 왔다는 것을 불현듯 느끼게 된다. 이 말은 3개 국어 4개 국어를 하고 살아가는 다문화권역 나라의 언어생활을 말하는게 아니다. 우리 민족은 서로 간에 의사를 소통하기 위해 표의문자를 번역飜譯 해서 말을 하거나(문화적 용어일수록), 우리 것으로 만들어 수용하고 소통하거나 했고, 수천 년 간 글쓰기를 뜻글자 쓰는 형식으로 써왔다. 불편하니까 구구단처럼 용례用例를 만들어가면서 써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중적 지성! 변태적
정신 상태를 관습처럼, 불편한 줄도 모르고, 그럼에도 한국적 감성을 잘 지켜 온 선조들이 새삼 자랑스럽고 위대하게 보이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말, 한국적인, 한국인다운, 한국다움을 표현하려면, 말하듯 이야기 하듯, 그 소리를 소리글로 쓰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한글은 소리글인 것이다. 그래서 소리글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갖게된다.
함녕전과 무녕(령)왕능
우리말의 발음과 표기방식이 많이 살아남아있는, 만주의 조선족 중 필자와 이름이 같은 ‘권녕하’라는 동명이인을 인터넷에서 발견했다. 정말 많이 반가웠다.
‘장마’를 때에 따라 ‘장맛’으로 쓰게 강제하고, ‘문자文字’를 “문짜”로 못 읽게 하거나(방송언어) “안녕安寧하세요?”의 소리글 ‘녕寧’ 자字를 ‘영’으로 쓰게 정해 놨는데~ 필자의 전前 호적 이름 ‘권영하權寧河’를 법원에 가서 ‘권녕하’로 개정신청 했다. 호적 고치기 참! 힘들 때였는데~ 변경사유를 검토한 법원에서 “원하면~ 바꿔주겠다”고 허락했다. 기가막히게! 언어를 다루는 시인이 “제 이름 석자를 밝히 쓰기 위해서” 법조인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으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글은 입술과 입 속, 혀, 입천장, 목구멍 등 말하고 숨 쉬는 발성기관의 모양을 본 떠 만든 글자라고 훈민정음에 분명히 기록돼 있다. 그리하여~ 지금 시詩를 소리글 한글로, 극시劇詩를 쓰고 있는 내 자신을 새삼 발견한다.〈추록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