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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복음 선포 사명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마태오 10,7-15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서방 수도 생활의 아버지’라 불리는 베네딕토 성인은 480년 무렵 이탈리아 움브리아의 누르시아에서 태어났다. 로마에서 학업을 마친 그는 수도 생활에 대한 관심으로 수비아코에서 3년 동안 고행과 기도의 은수 생활을 하였다. 그의 성덕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모여들자 베네딕토는 마침내 수도원을 세우고 「수도 규칙」을 썼다. 이 규칙이 널리 전파되어 ‘서방 수도회의 시조’라고 불리게 되었다. 성인은 547년 무렵 몬테카시노에서 선종하였다고 전해지며, 8세기 말부터 여러 지방에서 7월 11일에 그를 기념하며 공경하여 왔다. 1964년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그를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오늘의 전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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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돈도,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말고 사람들에게 가서 하늘 나라를 선포하라고 명하십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예수님의 엄격함과 복음 선포의 급박성은 무척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 까닭은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오히려 예수님의 철저함을 외면하고자 할 위험이 더 크다는 사실을 성찰하며, 20세기에 제작된 종교 영화 가운데 문제작의 하나로 꼽히는 ‘마태오 복음’을 떠올립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이탈리아의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입니다. 무신론자이자 가톨릭의 가르침과 달리 산 그가 예수님에 관한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아시시에 머물 때 요한 23세 교황의 방문으로 말미암아 한참 동안이나 호텔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갇혀 있다시피 하였습니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던 그가 무심코 호텔 방에 비치된 성경의 ‘마태오 복음’을 읽은 것이 이 영화를 만들게 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대단한 찬탄을 받기도 했으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영화가 묘사한 예수님 상을 비판하였습니다. 20세기의 대표적 영성가 토마스 머튼 신부는 이 영화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이 영화의 그리스도는 젊고 놀랍도록 초연하며 진지하여, 지난 19세기 교회 예술에 묘사되었던 친절하고 너그러운 예수는 분명 아니었다. 그는 부드럽지 않고 단호하였다. 어느 면에서는 무자비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머튼은 우리가 정말 놀라야 할 것은 많은 신자가 이러한 예수님 상에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감독이 그린 그리스도의 모습은, 복음을 있는 그대로 읽은 것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머튼은 이렇게 반문합니다. “사랑이란 엄격하게 요구한다는 것을 우리는 잊었는가? 특히 사랑이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이나 남을 속이고 착취하려는 경향과 부딪칠 때는 어떠한가?”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의 모습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보고자 하는, 나에게 편안한 예수님의 모습만으로 변질시킬 수 있습니다. 때로 도전이 되는 예수님의 말씀과 태도도 늘 새롭게 만나려는 준비된 마음이야말로 그분의 제자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세일 것입니다.(매일미사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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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한형조의 ‘붓다의 치명적 농담’ 중에서」
“스님도 도를 닦고 있습니까?”
“닦고 있지.”
“어떻게 하시는데요?”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
“에이, 그거야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까? 도 닦는 게 그런 거라면, 아무나 도를 닦고 있다고 하겠군요.”
“그렇지 않아. 그들은 밥 먹을 때 밥은 안 먹고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고 있고, 잠 잘 때 잠은 안자고 이런 걱정에 시달리고 있지.”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온갖 걱정으로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삶이 기쁨이라고 생각하면서 잠들었다가, 깨어나자 삶은 곧 책임이라는 것을 알았다. 책임을 마친 후에야 그것이 바로 기쁨이라는 걸 깨달았다(타고르)>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마태오 10,7-15)
帯の中に金貨も銀貨も銅貨も入れて行ってはならない。
旅には袋も二枚の下着も、
履物も杖も持って行ってはならない。
ただで受けたのだから、ただで与えなさい。
その家に入ったら、『平和があるように』と挨拶しなさい。
(マタイ10・7-15)
Do not take gold or silver or copper for your belts;
no sack for the journey, or a second tunic,
or sandals, or walking stick.
Without cost you have received;
without cost you are to give.
As you enter a house, wish it peace.
(Mt 10:7-15)
聖ベネディクト修道院長記念日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ヌヒガ コジョ バダッスニ コジョ チュオラ。"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마태오 10,7-15)
帯の中に金貨も銀貨も銅貨も入れて行ってはならない。
오비노 나카니 킨카모 긴카모 도오카모 이레테잇테와 나라나이
旅には袋も二枚の下着も、
타비니와 후쿠로모 니마이노 시타기모
履物も杖も持って行ってはならない。
하키모노모 츠에모 못테잇테와 나라나이
ただで受けたのだから、ただで与えなさい。
타다데 우케타노다카라 타다데 아타에나사이
その家に入ったら、『平和があるように』と挨拶しなさい。
소노 이에니 하잇타라 헤에와가 아루요오니 토 아이사츠시나사이
(マタイ10・7-15)
Do not take gold or silver or copper for your belts;
no sack for the journey, or a second tunic,
or sandals, or walking stick.
Without cost you have received;
without cost you are to give.
As you enter a house, wish it peace.
(Mt 10:7-15)
Memorial of Saint Benedict, abbot
Mt 10:7-15
Jesus said to his Apostles:
“As you go, make this proclamation: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Cure the sick, raise the dead,
cleanse the lepers, drive out demons.
Without cost you have received; without cost you are to give.
Do not take gold or silver or copper for your belts;
no sack for the journey, or a second tunic,
or sandals, or walking stick.
The laborer deserves his keep.
Whatever town or village you enter, look for a worthy person in it,
and stay there until you leave.
As you enter a house, wish it peace.
If the house is worthy,
let your peace come upon it;
if not, let your peace return to you.
Whoever will not receive you or listen to your words—
go outside that house or town and shake the dust from your feet.
Amen, I say to you, it will be more tolerable
for the land of Sodom and Gomorrah on the day of judgment
than for that town.”
2024-07-11「ただで受けたのだから、ただで与えなさい。」
+聖ベネディクト修道院長記念日に、神に賛美をささげよう。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聖ベネディクト修道院長記念日です。
愛の主・イエス・キリストと主の御母聖母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聖ベネディクト、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西方修道生活の父』と呼ばれる聖ベネディクトは、480年ごろイタリアのウンブリア地方ノルチャで生まれました。ローマで学業を終えた彼は、修道生活への関心からスビアコで3年間、苦行と祈りの隠遁生活を送りました。彼の聖徳が知られるようになると、多くの人々が集まり、ベネディクトはついに修道院を設立し、『修道規則』を書きました。この規則が広く伝播され、『西方修道会の始祖』と呼ば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聖人は547年ごろモンテカッシーノで死去したと言われ、8世紀末から各地方で7月11日に彼を記念して崇敬されています。1964年には聖パウロ6世教皇によって、ヨーロッパの守護聖人に宣言されました。(今日の典礼か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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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タイによる福音
<ただで受けたのだから、ただで与えなさい。>
そのとき、イエスは使徒たちに言われた。10・7「行って、『天の国は近づいた』と宣べ伝えなさい。8病人をいやし、死者を生き返らせ、重い皮膚病を患っている人を清くし、悪霊を追い払いなさい。ただで受けたのだから、ただで与えなさい。9帯の中に金貨も銀貨も銅貨も入れて行ってはならない。10旅には袋も二枚の下着も、履物も杖も持って行ってはならない。働く者が食べ物を受けるのは当然である。11町や村に入ったら、そこで、ふさわしい人はだれかをよく調べ、旅立つときまで、その人のもとにとどまりなさい。12その家に入ったら、『平和があるように』と挨拶しなさい。13家の人々がそれを受けるにふさわしければ、あなたがたの願う平和は彼らに与えられる。もし、ふさわしくなければ、その平和はあなたがたに返ってくる。14あなたがたを迎え入れもせず、あなたがたの言葉に耳を傾けようともしない者がいたら、その家や町を出て行くとき、足の埃を払い落としなさい。15はっきり言っておく。裁きの日には、この町よりもソドムやゴモラの地の方が軽い罰で済む。」(マタイ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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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のミサの「今日の黙想」です。
毎日のミサの「今日の黙想」です。
今日の福音で、イエスは使徒たちに、お金も、旅行袋も、替えの服も持たずに、人々のもとに行き、天の国を宣べ伝えるように命じています。このイエス様の厳しさと福音宣教の緊急性は、私たちには非常に馴染みがないように感じます。それは、福音が伝えるイエス様の姿を私たちが正しく見ていないためかもしれません。
私たちキリスト教徒がむしろイエス様の徹底性を避けようとする危険性がより大きいということを反省し、20世紀に製作された宗教映画の問題作の一つである『マタイによる福音書』を思い起こします。この映画の監督は、イタリアのピエル・パオロ・パゾリーニです。無神論者でありカトリックの教えとは異なる生活をしていた彼が、イエス様についてのこの映画を作ることになったのは偶然の出来事がきっかけでした。彼がアッシジに滞在していたとき、ヨハネ23世教皇の訪問によって、しばらくの間ホテルの外に出られなくなり、ほとんど捕らわれていたような状況になりました。暇を紛らわすために彼が何とはなしにホテルの部屋に置かれていた聖書の『マタイによる福音書』を読んだことが、この映画を作るきっかけとなりました。
この映画は大いに称賛される一方、多くのキリスト教徒が映画に描かれたイエス様の姿を批判しました。20世紀を代表する霊性家であるトマス・マートン神父は、この映画に登場するイエス様の姿を次のように要約しています。「この映画のキリストは若く、驚くほどに超然として真剣であり、19世紀の教会美術に描かれていた親切で寛大なイエス様とは明らかに異なっていた。彼は優しくなく、断固としていた。ある意味では無慈悲にさえ感じられるほどだった。」マートンは、私たちが本当に驚くべきことは、多くの信者がこのようなイエス様の姿に衝撃を受けたことであると述べています。なぜなら、この映画の監督が描いたキリストの姿は、福音をそのまま読み取ったことを反映しているからです。
マートンはこのように反問します。「愛とは厳しく要求するものであることを私たちは忘れていないだろうか?とりわけ、愛が他者の苦しみに対する無関心や他人を欺き搾取しようとする傾向と対立するときはどうだろうか?」
私たちはキリスト教徒としてイエス様の姿をよく知っているつもりでいても、ある瞬間、自分にとって都合の良い、見たいイエス様の姿に変質させてしまうことがあります。時には挑戦となるイエス様の言葉と態度にも常に新しく出会おうとする準備ができた心こそが、彼の弟子として持つべき最も重要な姿勢であるでしょ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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難しい社会の中、ありとあらゆる大変な問題のうちで出会えるイエス様のことを識別できる知恵を得て生きる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聖霊、き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