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기능은 대략 이상인데,
정정(正定)의 반성은,
이와 같이 하여서, 올바른 상념을 축으로 해서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반성 후의 명상은, 마음을 풍부하게 안정시킵니다.
마음의 진동은 신(神)의 마음으로 가깝게 다가갑니다.
마음이 차분하고 평정하게 되면,
수호령의 통신을 받기 쉬워져서,
시사에 풍부한 생각이, 뱃속에서 떠오르는 것처럼 됩니다.
평정한 마음을 생활에서 계속 유지하면,
외계의 움직임에 마음을 동요시키는 것이 적어지고,
외계의 여러 가지 움직임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마음을 안으로 향하고, 밖으로 향하지 않는다는 것은,
외계의 움직임에 마음을 사로잡히지 않고,
이것들을 모두 마음의 양식으로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기를 중상(中傷)했다고 합시다.
마음이 밖으로 향하고 있을 때는,
금방 그것에 반발하여, 마음을 초조하게 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안으로 향하고 있을 때는,
그 중상(中傷)을 평정하게 받아들여,
냉정한 입장에서 그 중상(中傷)의 알맹이를 생각합니다.
만약 자신에게 잘못이 없는 것이라면,
중상(中傷)한 사람은 진실을 모르는 불쌍한 사람인 것이니까.
오해를 풀 기회가 없으면 상대방을 위하여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중상(中傷) 속에 자신을 두면,
그만큼 마음을 불안정시켜서, 생활의 밸런스를 붕괴합니다.
독(毒)은 먹지 않는 것입니다만,
중상(中傷)이라고 하는 한 개의 사건을 통하여,
인간의 마음의 모습을 아는 기회가 된 것이니까,
마음이 안으로 향하고 있을 때는,
모든 것이 마음의 양식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정정을 거듭해가면,
결국은, 정(靜;마음)과 동(動;생활)의 밸런스가 유지되어
부동의 마음이 길러져 갑니다.
즉, 정정의 목적은,
하나로는 중도에 비춘 반성에 있는데,
또 하나는, 그 정(靜;고요한)한 마음을,
일상생활 속에서 계속 살려가는 부동심(不動心)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 이와 같은 정법의 생활 속에서만, 신불의 광명을 얻어,
미혹의 강가에서 깨달음의 피안으로 도달하는 것이다.
이때에 신불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조화되어
마음에 평온함이 생긴다.
마음은 광명의 세계로 들어가고,
삼매의 경지에 도달한다,〗
정법이란,
바른 법, 만고불멸(萬古不滅)의 신(神)의 리(理), 우주의 법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법칙이란,
만물에는 모두 전생 윤회라는 순환의 법이 있고.
그 법 자체가,
만물만생을 살리고, 자비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습니다.
극미의 원자도, 원자핵을 중심으로 음외 전자가 돌고 있습니다.
하루가 끝나면, 또 내일이 찾아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 결국은 죽음에 이릅니다.
선(善)의 행위는 선(善)의 결과로써 돌아옵니다.
이러한 원칙을, 순환의 법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일상생활도,
이러한 법에 따른 생활이야말로, 중요한 이유입니다.
올바른 행위는, 올바른 결과로써,
그 사람의 인생, 건강, 환경을 정돈해 줍니다.
자연의 운행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착오없는 운행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 인간은, 지상에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비와 사랑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법이 바르게 운용되고 있으니까,
태양의 열은 식지 않고,
지구는,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도는 것이 가능합니다.
지상에서의 생활도,
태양의 변함없는 열, 빛의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자비와 사랑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인간은, 인간적 행위, 인간적 감정을 연상합니다만,
태양도, 지구도, 인간과 똑같이,
마음을 중심으로 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은 불평을 말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불평을 말합니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있는데도,
자연은, 그러한 감정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확실히 표면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립니다.
이 지구라고 하는 대지도, 공기도, 물도, 식물도, 동물도,
모두 감정을 갖고 있고, 언어도 있습니다.
현상 세계에 있는 것은,
모두가 생명을 갖고 있으며,
생명이 있다는 것은, 의식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꽃도 동물도 그렇습니다.
사람이 사랑의 마음을 갖고 이것에 접(接)하면,
꽃도, 동물도, 그 사람이 말하는 대로 움직이고, 말도 알아서 서로 통합니다.
더욱 진행하면, 꽃에는 꽃의 정(精)이 있어서,
인간의 마음이 정화(淨化)되면, 꽃의 정(精)이 모습을 나타내어,
일본인의 경우는 일본어로, 아메리카인의 경우는 영어로 말을 걸어옵니다.
소나무나 은행나무도 그렇습니다.
그곳에 사는 식물의 정령(精靈)이 모습을 나타내고,
삼백 년, 오백 년의 풍설을 견딘 대목(大木)이라면,
세상의 변천을 보고 있으니까,
자신의 몸 주변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변화. 역사를, 들려줍니다.
이처럼 인간이 그들에게 사랑의 염(念)을 갖고 접(接)할 때는,
그들도 또한, 그것에 응하여 줍니다.
지구라고 하는 대지도 그렇습니다.
대지는, 인간을 비롯한 지상이랑 지하에 사는 생명을 계속 살리고,
지탱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참을성 있게, 모든 생명을 계속 살려가고 있습니다.
대지에 표정이 없는가 하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들이 여행을 합니다,
모르는 땅을 보고 걷습니다.
그러면 그 땅, 특유의 영위기(零圍氣)가 만들어져 있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대지는 수동적입니다.
인간은 능동적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감정 상념(感情想念)---
이른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의식의 조화도. 마음의 자세가,
그 토지의 공기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싸움이 많은 토지에는, 작물도 자라지 않습니다.
거리도 더럽습니다.
조화로 가득 찬 장소는, 거리도 예쁘고, 밝고 마음이 편합니다.
인기척이 없는 대지는, 어떨까요,
역시 표정을 갖고 있습니다.
기후랑 바람의 흐름에 응해서,
산뜻한 곳도 있는가 하면, 현재는 인기척이 없으나,
그 옛날, 인류가 집을 지었던 곳은 무수히 있기 때문에,
그러한 곳은, 예전의 인류의 파동이 남아서,
명암(明暗), 미추(美醜)의 공기를 자아내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이처럼, 대지라 하더라도, 생명을 갖고,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